나의 이야기 576

오리 이원익의 유적을 따라

오리 이원익의 유적을 따라 (2021년 8월 19일) 瓦也 정유순 1597년(정유년) 2월 이순신(李舜臣)은 원균의 모함으로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국문장(鞠問場)이 열리게 되는데 200명의 문무백관 모두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한다.”며 조아리고, 선조(宣祖)도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고 압박했으며, 심지어 이순신을 발탁하여 파격 진급을 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유성룡(柳成龍)까지도 ‘公은 公, 私는 私’라고 하며 이순신의 사형에 반대를 못했다. 그런데 왜?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의 형의 집행을 못하고 있었는가? 당시전시상황을 총괄하는 도체찰사(都體察使, 지금의 계엄총사령관)인 이 전시상태에서 아무리 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고..

나의 이야기 2021.08.26

가깝고도 먼 길 - 독산성과 세마대

가깝고도 먼 길 - 독산성과 세마대 (2021년 8월 7일) 瓦也 정유순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55, 이곳에는 독산성과 세마대(洗馬臺)라는 곳이 있다. 경부선(지하철 1호선) 세마역(洗馬驛)에서 내려 약 3㎞ 남짓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라는 이름은 이 세마대에서 유래되었고, 이 역은 세교신도시 입주민들을 위해 지은 역이다. 역사(驛舍)는 세마대가 있는 독산성(禿山城)을 모티브 한 듯 견고한 성곽 같다. 세마역이 있는 곳은 세교동(細橋洞)으로 ‘작은 다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잔다리’로도 불린다. 옛 지명인 큰말·건너말[越村]·오리골 세 마을이 합쳐져 지금의 세교동이 되었다. 잔다리아파트 단지를 따라 남북으로 조성된 은빛개울공원은 도시의 생태계를 연결해 주는 비오톱(Bio-top)을 형성..

나의 이야기 2021.08.21

옛 길, 시간을 걷다

옛 길, 시간을 걷다 (충주 탄금대에서) 瓦也 정유순 가야사람 우륵이 나라를 잃고 이곳 충주로 이주하여 가야금을 탄 곳 탄금대(彈琴臺)는 남한강과 달천이 해후하는 합수부 낮은 언덕에 자리한 곳이다. 그리고 신립장군이 임진왜란 때 요새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이곳에 배수의 진을 쳤다가 소서행장(小西行長)의 왜병에게 콩 볶는 조총소리에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팔천 명의 기병을 몰사시킨 비극의 현장이다. 그래서 주현미의 탄금대 사연이란 노래비가 초입에 있고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이 나란히 있다. 열두 대로 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고 길 옆에는 일본 소나무 리키다가 역사와 어울리지 않게 서 있어서 심사가 뒤틀린다. 빨리 수종개량을 했으면 한다. 열두 대는 절벽의 층계가 열두 단으로 되었다는 설과 가야금의..

나의 이야기 2021.08.19

수원 화성 야경

수원 화성 야경 (2021년 8월 17일) 瓦也 정유순 경기도청 옆으로 하여 팔달산에 올라 화성 안을 둘러보는데, 행궁 앞 전광판에는 일본 왕실의 문양을 닮은 국화(菊花) 모양의 꽃무늬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서장대에서 장안문을 거쳐 화홍문을 지나 방화수류정에 올라 화성의 야경과 용머리 아래에 있는 용지(龍池) 또는 용연(龍淵)을 바라보며 화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둘러보고 화성행궁 앞으로 가서 전광판을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화성행궁관광안내소다. 언젠가 화성행궁을 돌아보며 화성행궁의 객사였던 자리에 있었던 신풍초등학교의 텅 빈 교정의 교문이 일본 신사(神社)의 정문인 도리이[鳥居]처럼 보였는데, 화성행궁관광안내소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전광판을 운영하고 있을까? 언제 쯤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일제 ..

나의 이야기 2021.08.18

가깝고도 먼 길 - 경희궁(慶熙宮)

가깝고도 먼 길 - 경희궁(慶熙宮) (2021년 8월 3일) 瓦也 정유순 고종의 길! 1896년 2월 11일 새벽, 일본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기 위해 세자와 함께 잠행했던 길! 그 길이 바로 아관파천(俄館播遷) 길이다. 옛 덕수궁 궐내였던 미국대사관저 돌담 밑으로 구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슬픈 역사의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구 러시아 공사관 터를 지나 신문로 길을 건너면 조선 5대궁의 하나인 경희궁(慶熙宮)의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이 나온다. 당초 경희궁의 부지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원종)의 저택이었지만 왕기가 흐른다 하여 광해군(光海君)이 그 부지를 몰수해 별궁인 경덕궁(慶德宮)을 짓게 하여 1617년 착공해 1620년 완공되었다. 하지만 건립된 지 3년만인 1..

나의 이야기 2021.08.16

가깝고도 먼 길 - 서대문독립공원

가깝고도 먼 길 - 서대문독립공원 (2021년 7월 25일) 瓦也 정유순 안산 동쪽과 인왕산 서쪽 자락 사이에 낀 독립문역 사거리, 서울역에서 구파발로 가는 통일로 왼편에 독립공원이 있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건축물이 독립문(獨立門)이고 그 앞에 영은문 주춧돌이 서있다. 그 뒤로 서재필(徐載弼) 동상이 자리하고, 3·1운동 기념탑, 좌측 옆으로 독립관과 순국선열추모탑이 나란히 있으며, 맨 뒤에 구 서대문구치소 자리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다. 이 구도는 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무언가 전혀 맞지 않는 조합들이다. 1963년 대한민국 사적 제32호로 지정된 독립문은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서대문에 독립문을 세웠다고 알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독립문이..

나의 이야기 2021.08.09

가깝고도 먼 길 - 서울 안산(鞍山)

가깝고도 먼 길 - 서울 안산(鞍山) (2021년 7월 25일) 瓦也 정유순 봉원사 만월전(滿月殿) 옆으로 오솔길을 따라 올라오면 안산(296m)자락 숲길이다. 폭염이 용광로처럼 이글거려도 안산 숲속으로 몸을 숨기자 그 열기는 조금 수그러진다. 오솔길을 따라 두 구간 쯤 올라가자 오른쪽은 능안정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무악정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안산 너머에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까지 가는 길로 무악정 쪽으로 발길을 돌려 동봉수대터까지 올라간다. 안산에는 동·서 양쪽에 봉수대가 있었는데, 1994년에 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동쪽 봉수대만 복원해 놓았다. 안산은 서대문구에 있는 산으로, 기봉·안산·무악·봉화뚝·봉우재·봉우뚝·기산·안현(鞍峴) 등 부르던 이름이 많았다. 인왕산 서쪽의 현저동..

나의 이야기 2021.08.07

촌 년 10만원

촌 년 10만원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 끼 굶어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뉴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걷이를 이고 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여 도착했으나 이날 따라 아들 만큼이나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 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 노의 눈에 신기하기만 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 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됐다. 그 물건은 ..

나의 이야기 2021.08.03

가깝고도 먼 길 - 봉원사(奉元寺)

가깝고도 먼 길 - 봉원사(奉元寺) (2021년 7월 25일) 瓦也 정유순 서울특별시 서대문 밖 봉원동(奉元洞) 안산(鞍山) 자락에는 봉원사(奉元寺)라는 절이 있다. 지하철 2호선 이대(梨大)역에서 내려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으로 하여 경의선 신촌역을 지나 성산로를 따라 금화터널 쪽으로 향하다가 세브란스병원 앞을 지나 이대부속중·고등학교 앞에서 봉원사길로 접어들어 경사진 길을 따라 숨 가쁘게 올라가면 봉원사 초입에 부도비 군락을 만나고, 절 입구 민가에는 회화나무가 한여름의 기운을 맘껏 발산한다. 봉원사는 한국불교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이다. 한국불교태고종은 고려 말 태고(太古) 보우국사(普愚國師)를 종조(宗祖)로 삼고, 석가모니의 자각각타(自覺覺他)와 각행원만(覺行圓滿)을 근본교리로 받들어 실천하고, ..

나의 이야기 2021.07.31

기다림

기다림 瓦也 정유순 기다림!! 당신은 기다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좋은 기다림이던 나쁜 기다림이던 조급증이 앞서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열매는 꽃이 피고 수정되어 어느 정도 성숙기를 거쳐야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으나 그 조급한 마음은 가끔 덜 익은 열매를 탐하다가 ‘조금만 더 참을 걸’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다 보면 남는 것은 후회 뿐입니다. 그러나 후회 없는 삶을 누리기보다는 후회할 수 있는 숫자를 줄이는 게 현명한 삶이 아닌 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기다림이 당신을 짜증나고 조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인내하고 아름답게 성숙시켜 거듭나게 하는 효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이야기 2021.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