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576

탄소(炭素)이야기

탄소(炭素)이야기 瓦也 정유순 무덥던 여름 어느 날 제주 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라산을 뒤로 멀리하고 남해 바다를 건너 서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비행기 차창 밖으로 바라본 서울 하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는 한낮이었는데 서울 하늘은 마치 흐릿한 비닐로 덮어 놓은 거대한 온실(비닐하우스) 같았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활주로를 향해 내려올 때 두꺼운 온실 벽을 뚫고 돌진하는 양 그날따라 소음(騷音)은 고막을 무섭게 때린다. 비행기에서 본 서울의 하늘은 푸른색과 노란색 그리고 붉은색이 반죽이 된 흐린 색깔로 하늘에 경계선을 그려 놓은 듯 막을 치고 있었다. 그 안은 얼마나 뜨거울까? 과연 공항 밖에 나오자마자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다. 오후임에도..

나의 이야기 2022.01.13

고흥반도에서 새해를 품다(2)

고흥반도에서 새해를 품다(2) (2022년 1월 1일∼2일) 瓦也 정유순 고흥반도 녹동항에서 임인년(壬寅年)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어제 새해 첫 날 오천항에서 우연히 보게 된 채운(彩雲)이 금년 한 해를 설레게 한다. 해 뜰 때 일어나 조반을 마치고 오늘의 첫 방문지인 팔영산 능가사로 이동한다. 팔영산 능가사(楞伽寺)는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팔영산(八影山) 밑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인 송광사 말사다. 녹동항에서 능가사까지는 주행거리가 약37㎞이다. 팔영산(607m)은 199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감탄한 중국의 위왕(魏王)이 어명을 내려 조선의 고흥 땅에서 이 산을 찾았다 하여 그..

나의 이야기 2022.01.09

고흥반도에서 새해를 품다(1)

고흥반도에서 새해를 품다(1) (2022년 1월 1일∼2일) 瓦也 정유순 매일 똑 같은 날이지만 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왜 아쉬움만 남는 것인가? 항상 희망 찬 내일을 기다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오늘이다.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섣달 그믐날 세 밑 여행을 해마다 하는 편으로 해가 바뀌는 시간을 바라보지만 나는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 외에는 변하는 게 없는 것 같으나 그래도 마음은 설렌다. 항상 다가오는 오늘이고 지금이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기다려지는 마음은 항상 부풀어 있다. 서울에서 저녁 7시에 출발한 자동차는 새해 해맞이 가는 차들로 붐빈 도로를 따라 다섯 시간 반 만에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으로 2022년 1월 1일 새..

나의 이야기 2022.01.06

너희가 까치를 아느냐

너희가 까치를 아느냐 瓦也 정유순 우리는 까치를 길조로 여겨왔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나 희소식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가 까치는 농작물을 해치고 전봇대에 까지 집을 지어 사람들의 품을 팔게 하는 골치 아픈 새로 전락 됐다. 정부는 몇 년 전부터 까치를 ‘유해 조수(鳥獸)’로 지정하기까지 이르렀다. 원래 까치는 아주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자기들만의 영역 안에서 무리 지어 생활한다고 한다. 또한 무리 안에 서열과 위계질서가 뚜렷하여 우두머리 까치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새로 학계에 알려졌다. 다른 새들이 영역을 침범하면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협공을 통해 적을 물리친다. 위기가 닥칠 때 모두 나서 위기를 극복하는 까치들의 협동 정신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나의 이야기 2021.12.31

운길산과 수종사

운길산과 수종사 (2021년 11월 28일) 瓦也 정유순 새벽 운길산 정상에 올라서서 양수리 물안개가 하늘의 수염처럼 길게 늘어진 광경을 상상해 보았는가? 이런 상상을 하면서 경의중안선에 몸을 싣고 운길산역에서 하차한다. 부지런히 서두른 덕택에 오늘 동행할 일행들과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역 광장을 두리번거리다가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일제가 우리에게 멍에처럼 씌워버린 잔재가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마을 안내 표지석인 이란 명칭으로, 소위 부락(部落)이라는 단어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천민집단의 대명사”다. 안골, 닭실마을, 빛고을 등 아름답던 우리 마을 이름들이 일제강점기 때 온통 부락으로 바꾸어 조선 마을들을 일본의 천민집단으로 강등시켜 버렸고..

나의 이야기 2021.12.18

♣ 걸인과 창녀와 천사 ♣

♣ 걸인과 창녀와 천사 ♣ (퍼온글) 30여 년을 길에서 구걸하며 살아온 걸인 총각은 어린 시절 집에서 내쫓긴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이다. 그는 정확히 듣고 생각하기는 해도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걸 이외에는 어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번화가 길목에 앉아서 하루 구걸한 돈이 4-5만 원은 되지만 그의 허기진 배는 채울 길이 없다. 음식점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구걸이 아니라 당당한 손님으로 돈을 내겠다 해도 모든 식당들은 그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온 몸이 떨리고 뒤틀려 수저로 음식을 먹어도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밥이 더 많아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어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이토록 문전박대를 당해 서럽고 배고픈 그는 예..

나의 이야기 2021.12.17

전주 남고산성과 건지산

전주 남고산성과 건지산 (2021년 11월 21일) 瓦也 정유순 전주(全州)! 옛날에는 전주천을 중심으로 동·서·남쪽으로 산지가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었고, 만경강이 흐르는 북으로 평야와 만나 숨통이 트이는 형세였다. 그래서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甄萱)은 900년에 전주를 도읍으로 정하면서 남쪽의 남고산(南固山, 248m)에 산성을 쌓아 방어하였다. 북쪽으로는 금바위[금암(金巖)]가 있던 아래 지역은 기가 세다고 하여 그 기를 누르고자 지역 이름을 으로 하여 지금도 진북동과 금암동의 지명이 있으며, 북으로는 진산(鎭山)인 건지산(乾止山, 99m) 버티고 있다. 남고산성을 가는 길목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이정란의 공적을 기려 세운 충경사(忠景祠)란 사당이 있다. 이정란(李廷鸞)은 관직에서 물러나 있다가 임..

나의 이야기 2021.12.14

진안(鎭安)에서 하루

진안(鎭安)에서 하루 (2021년11월26일) 瓦也 정유순 전라북도 진안군은 산간 고원지대로, 80% 이상이 산악지대다. 백두대간은 무주의 덕유산에서 또 다른 줄기가 서쪽으로 마이산까지 뻗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이뤄 남동쪽인 장수군 신무산 중턱에 있는 물이 장수군과 진안군 북쪽으로 들어와 무주를 거쳐 충남 금산으로 흘러 들어가 금강을 이룬다. 북서쪽인 진안군 백운면 봉황산 아래에 있는 물은 진안군 남쪽을 적시며 임실과 순창을 지나 곡성과 구례를 거쳐 하동과 광양의 망덕포구를 통해 남해로 흐른다. 오늘은 전주에서 남원 쪽으로 국도17번을 타고 내려오다가 임실군 관촌에서 사선대 방향으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 반용교 상류 강변에 있는 아름드리 팽나무 아래 길을 걸으며 모진 강바람을..

나의 이야기 2021.12.08

명성산-개혁 군주 궁예를 위한 변명

명성산-개혁 군주 궁예를 위한 변명 (2021년 10월 14일) 瓦也 정유순 시월의 멋진 어느 날. 억새꽃이 아름답다는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이 나를 오라 손짓한다. 명성산(鳴聲山, 922m)은 울음산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왕건(王建)에게 쫓기어 피신하던 궁예(弓裔)가 이 산에서 피살되었다고 하며,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하는 설과,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이 산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고 하여 울음산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는데, 울음산을 한자[울 명(鳴)자와 소리 성(聲), 뫼 산(山)]로 표기한 것이다. 포천 일대의 산은 궁예의 전설을 빼고 이야기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 곳곳에 전설이 지명으로 남아 있다. 새하얀 억새 물결과 산속의 호수가 우물처럼 맑은 곳에서 슬픈 궁..

나의 이야기 2021.12.01

서삼릉에 있는 태실을 다녀와서

서삼릉에 있는 태실을 다녀와서 (2021년 10월 24일) 瓦也 정유순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99에는 서삼릉이 있다. 서삼릉(西三陵)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으로 중종(中宗)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의 희릉(禧陵), 인종(仁宗)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의 효릉(孝陵), 그리고 1864년 철종(哲宗)과 철인왕후 김씨(哲仁王后 金氏)의 예릉(睿陵)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능역이었다. 그러나 136만여 평에 달하던 광활한 능역은 나라 잃은 설움을 상징하듯 온갖 풍파를 겪으며 현재 6만여 평의 초라한 능역으로 남아있다. 현재 서삼릉의 능역 안에는 1968년 낙농국가를 꿈꾸며 농림축산식품부의 젖소개량사업소, 한국마사회 종마목장 등의 50만여 평의 금강소나무군..

나의 이야기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