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반도에서 새해를 품다(1)
(2022년 1월 1일∼2일)
瓦也 정유순
매일 똑 같은 날이지만 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왜 아쉬움만 남는 것인가? 항상 희망 찬 내일을 기다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오늘이다.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섣달 그믐날 세 밑 여행을 해마다 하는 편으로 해가 바뀌는 시간을 바라보지만 나는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 외에는 변하는 게 없는 것 같으나 그래도 마음은 설렌다. 항상 다가오는 오늘이고 지금이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기다려지는 마음은 항상 부풀어 있다.
<녹동항의 여명>
서울에서 저녁 7시에 출발한 자동차는 새해 해맞이 가는 차들로 붐빈 도로를 따라 다섯 시간 반 만에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으로 2022년 1월 1일 새벽 0시 30분이다. 이 새벽의 어둠은 새해 첫 날의 광명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로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해 뜰 무렵에 일어나 녹동항에 나가 해맞이를 하며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었고, 대한민국의 통일과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다.
<녹동항의 일출>
<녹동항의 일출>
녹동항은 남해안의 해상 교통 요충지로 남쪽의 조용하고 풍요로움이 가득한 전형적인 항구 도시이며, 인근 각 섬지역과 연결되는 기점 역할과 각 섬에서 생산되는 활어, 선어 등과 김, 미역, 다시마, 멸치 등 모든 해산물의 집산지로 고흥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녹동항 바로 앞에는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는 국립병원이 있는 소록도가 지금은 연육교를 통해 바로 건너 갈 수 있고, 소록도에서 거금도까지 거금대교가 연결되어 있어 지금은 섬 같지 않다.
<녹동항>
조반을 마치고 녹동항에서 약33㎞ 떨어진 고흥군 도화면 지죽도에 있는 금강죽봉으로 이동한다. 지죽도(支竹島) 면적은 1.07㎢이고, 해안선 길이는 6.0㎞다. 지죽대교(지호대교)를 통해 고흥반도와 연결되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명(地名)은 섬 내에 있는 호수가의 지초(支草)라는 풀에서 풀이름 지(支) 자와 호수 호(湖) 자를 따서 지호도라 부르다가 옆에 위치한 죽도(竹島)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죽도가 되었다고 한다. 지호(支湖)마을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금도 지내고 있다.
<지죽도 지도>
지호마을을 가로질러 남쪽 해안가로 가까이 다가가면 금강죽봉이 나온다. 금강죽봉(金剛竹峰)은 도화면 남단에 있는 섬인 지죽도 태산(또는 남금산)에 있는 주상절리로, 다도해 국립공원의 진주로 불린다. 예부터 바다 쪽에서 보면 마치 바위가 왕 대나무처럼 솟아 오른 주상절리 대를 <금강죽봉>이라 불러왔으며, 2020년에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금강죽봉>
금강죽봉은 수직절벽의 높이가 약 100m로 절경을 이루며, 흰색의 응회암(凝灰巖)이 발달한 주상절리로 지질학적 특성을 가진다. 바다와 맞닿은 부분에는 해식동굴이 있고, 바위경사지인 해식애(海蝕崖)와 기암괴석들, 산 능선부의 억새군락지, 바위틈에서 자라는 천년 소나무(곰솔) 등 식생경관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고 특히, 다양한 다도해 경관이 함께 연출되어 경관(景觀)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금강죽봉(주상절리)>
죽봉(竹峰)으로 절벽을 이루는 남쪽 해안으로 잔도(棧道)를 타듯 너덜 길을 조심스럽게 걷다가 마지막 오름에는 사다리 타듯 급경사로 기어오른다. 산마루 초입에는 송곳바위가 동쪽 바다 건너 나로도 우주선발사기지에서 쏘아 올린 로켓모양으로 하늘을 향한다. 나로도는 우리나라 우주선발사기지가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소록도와 나로도 거금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떠돌다 동시에 머문 것처럼 함께 어우러진다.
<금강죽봉 송곳바위>
죽봉의 마루들을 징검다리 밟고 건너듯 아름다움에 취해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함도 즐거움으로 스며든다. 주변에 망개나무로도 불리는 청미래덩굴의 붉은 열매가 세상에 씨를 뿌리고자 겨울새들을 기다린다. 산 정상에는 묘(墓)가 있는데, 이곳의 묘지는 사람이 죽으면 가까운 곳에 초분(草墳)을 만들어 완전 탈골(奪骨)이 되면 좋은 곳을 골라 매장한다고 한다. 동쪽의 바다를 굽어보이는 경관이 가히 일품이다. 하산 길은 경사가 남쪽 보다 조금 완만한 북쪽 길을 통해 지호마을로 내려온다.
<금강죽봉 상층 단면>
<금강죽봉>
다시 녹동항으로 돌아와서 오전을 마무리하고 금산면 오천리 거금도 청석마을 해변으로 이동한다. 거금도(居金島)는 고흥군의 남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섬 자체가 금산면(錦山面) 행정구역과 일치한다. 지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 섬에 큰 금맥이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헌에 ‘거억금도(巨億金島)’라는 말이 나와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현재도 섬 가운데 위치한 적대봉 산록에는 진막금·전막금·욱금·청석금·고락금 등의 지명을 가진 마을들이 있는데, 이러한 지명이 금광물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청석마을 해변>
금산면 오천리(五泉里)는 거금도에 있는 섬마을로 동촌, 서촌, 청석마을이 있다. 동촌과 서촌은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고, 청석은 마을 앞 바다가 퍼렇고 해안가에 있는 바위 속에 금이 들어있는 푸른 돌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해변에서는 주민들이 푸른 금인 파래 채취에 여념이 없다. 파래가 붙은 바위는 미끄러워 엉덩방아 찧기가 그만이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건너에는 오전에 다녀온 지죽도의 금강죽봉이 낯이 익어서 그런지 더 반갑다.
<주민들의 파래 채취>
청석마을 해안에는 널려 있는 파래 말고도 특별한 것이 있다. 다소 고르지는 못하지만 공룡알 같은 몽돌이 해안을 따라 널려 있고, 금빛 바위에 꽃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진 화문석(花紋石)이 눈길을 끈다. 어떻게 매끈하게 다듬었고, 단단한 돌 위에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繡)를 놓았을까? 자연의 능력과 조화를 어찌 감히 인간이 넘볼 수 있으랴. 주변에 <반출금지> 표시가 있으나 우리 스스로 소중한 자연자산을 지키려는 마음이 우선해야겠다.
<청석마을 해변 화문석(花紋石)>
해안을 따라 내려오면 오천항이다. 오천항(五泉港)은 국도27호선의 시발점이다. 원래 녹동항에 있었던 것을 소록대교와 거금대교가 완공됨으로서 도로의 최남단인 오천항으로 연장된 것이다. 국도27호선을 오천항을 출발하여 고흥읍과 보성군 벌교읍∼순천시 주암읍∼곡성군 옥과면∼전북 순창읍∼임실군 강진면∼전주시∼완주군 삼례읍∼익산시 오산면을 거쳐 군산시로 이어지는 도로다. 솔도 전망대에 올라 동으로는 지죽도와 그 건너에 나로도가 보이고, 남으로는 거문도 등 많은 섬들이 다도해(多島海)를 이룬다.
<국도27호선시점 오천항>
오천항 방파제와 연결된 곳에는 솔도 전망대가 있고, 이곳에서는 고흥의 독도가 보인다. 이곳 독도는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1882년(고종19)에 어명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였다. 당시 울릉도에는 140여명이 포구 가까운 곳에 움막을 짓고 어업을 하며 살았는데, 114명이 전라도 사람이며 이중 94명이 고흥사람이었다. 이들은 봉산(封山)으로 지정된 고흥에서 나는 소나무로 전선(戰船)을 만들기 때문에 벌목이 금지되었다.
<고흥 독도>
이에 고흥(흥양) 사람들은 봄철에는 낡은 어선을 타고 울릉도로 건너가 나무를 벌목하여 만든 배로 어업을 하였고, 가을철이 되면 이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런 과정에서 고흥사람들은 울릉도를 오가며 음식과 언어 등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이며, 구암·죽암 등 고흥과 동일한 지명이 있다. 현재 울릉도 지역에서는 ‘돌’을 ‘독’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독도(獨島)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 고흥의 독도가 머나먼 동해바다의 외로운 섬 독도와 연관 지어지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오천항>
솔도 전망대에서 뒤돌아서는데 하늘에는 채운이 우리를 반긴다. 채운(彩雲)은 태양으로부터 30° 또는 그 이상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는 적색 또는 녹색의 아름다운 담색으로 빛나는 구름으로 태양광선의 회절현상(回折現象)으로 나타나며 물방울인 구름입자거나 과냉각된 구름입자라고 한다. 채운은 아름답기 때문에 서운(瑞雲)·경운(景雲)·자운(紫雲)이라고도 하며, 큰 경사가 있을 징조라고 하는데, 올해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한다.
<채운(彩雲)>
자동차로 거금도 서북단에 있는 거금대교 입구로 이동한다. 거금대교(居金大橋)는 국도 제27호의 연장구간으로 거금도와 소록도 사이를 연결하는 총연장 2,028m의 사장교(斜張橋)로 2011년 12월 16일에 개통되었다. 국내의 해상교량 중에서는 처음으로 자전거 및 보행자 도로(1층)와 차도(2층)가 구분된 복층 교량으로 건설되었다. 중앙 부분에 높이 167.5m의 다이아몬드 모양의 주탑(主塔)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사이의 거리인 주경간장(主徑間長)은 480m이며, 바다에서 상판까지 높이는 38.5m다.
<거금대교>
보행자도로 입구에는 ‘잠들어 있던 고흥의 잠재력을 마침내 깨어난 거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형상이 하늘을 향해 힘찬 손짓을 한다. 고대부터 인간은 대우주를 닮은 소우주로 인식하여 왔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작은 우주이며 그들이 이뤄내는 화합의 에너지가 고흥의 염원을 이루는 순간을 표현한 것 같다. 하단부 전망대는 ‘고흥의 興’을 상징한 것으로, 고흥의 흥을 일으키는 물결과 그것을 실어 나르는 바람을 모티브로 디자인 하였다.
<고흥의 꿈을 심다>
거금대교 인도로 들어가는 대교 벽에는 제주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먼나무 붉은 열매가 따뜻한 남쪽을 자랑한다. 다리 안으로 들어가자 2차선으로 곧게 뻗은 자전거 도로는 사람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교량 양쪽으로 고개를 기웃 거리며 바다가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상화도·하화도 아름다운 섬이 짝을 이뤄 바다의 전설을 써내려 간다. 갑자기 철새들은 때를 이뤄 찾아와 세상이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먼나무>
<거금대교 1층 자전거 도로>
<철새 군무>
거금대교를 걸어서 소록도에 도착한다. 소록도(小鹿島)는 녹동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부른다. 예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한센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섬이었으나 현재는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소록도는 사실상 섬 전체가 병동의 일부로, 7개 마을에 각각 치료소를 설치하여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
<거금도 소록도 녹동항 지도>
이곳에 도착하여 첫 번째로 만난 것이 1970년대에 지어진 한센병환자의 집이다. 1960년대부터 환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이곳 장안리에 살던 원생들을 중앙리와 신생리로 이주하고 남은 집들은 폐가가 되었다. 이후 소록대교와 주차장이 만들어지면서 주변의 전답(田畓)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집 한 채는 2016년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센병 환자의 집>에서 <모두에게 열린 집>으로 개방하여 남게 되었다.
<1970년대 한센병환자 집>
어머니/나를 낳으실 때/배가 아파서 울으셨다.//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날 두고 가신 길을 슬퍼하셨다//어머니/흙으로 돌아가선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집 중앙 유리창에 붙어 있는 한하운(韓何雲, 1919∼1975) 시인의 <어머니>란 시가 가슴을 울린다. 출입시간을 넘긴 발걸음은 소록대교를 건너 녹동항으로 귀환한다.
<한하운 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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