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치즈와 옥정호 물안개길
(2017년 10월 7일)
瓦也 정유순
오늘은 전북 임실의 <임실N치즈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옛 백제 땅 황산벌을 달린다. 서기 660년 나당(羅唐)연합군의 침략으로 꺼져가던 마지막 백제의 불씨를 지키려는 계백(階伯)의 오천결사대가 혈전을 치르며 장렬하게 최후를 보낸 황산벌! 지금 아침공기를 가르고 지나가는 논산시 들녘이 바로 그 황산벌이다. 그때 들녘을 덮었던 붉은 피는 누런 황금빛으로 변하여 다시 백제로 태어나려 한다. 차령터널을 지나 공주∙부여와 논산, 그리고 전북의 익산을 지날 때까지는 백제의 정령(精靈)들이 신령스런 기운이 되어 보살펴 주는 것 같다.
<논산들녘-황산벌>
전주∼순천 간 고속도로 임실IC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임실N치즈축제>가 열리는 임실치즈테마파크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2017 임실N치즈축제>는 천만송이 국화꽃과 함께 ‘웃어봐요! 치∼즈∼, 행복 쭉∼∼’이라는 주제로 추석 황금연휴 마지막 4일 동안(10월 6일∼10월 9일)임실치즈테마파크와 임실치즈마을에서 열린다. 그리고 1967년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치즈를 도입한 후 50주년을 맞는 기념행사라고 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밀려오는 사람과 차량으로 무척 붐빈다.
<임실치즈테마파크 지도>
<임실치즈테마파크 전경>
지정환신부(1931∼ )는 본명이 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로 벨기에 출신이다. 1964년 임실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1967년 산양 두 마리를 가난한 농민들에게 보급한 것으로 임실치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임실로 오기 전에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사역하면서 가난 때문에 어렵게 사는 농민들을 구제하고자 30만평에 이르는 땅을 간척하여 나누어 주었으나 그 땅들은 고리대금과 노름으로 탕진하자, 이를 보며 분통이 터진 그는 ‘다시는 한국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치즈축제 애드벌룬>
<치즈축제 안내소>
그러나 임실에 와서 가난으로 신음하는 농민들을 보게 되자 마음이 흔들려 풀밭이 많은 임실에서 자라기 쉬운 산양을 길러 그 젖으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벨기에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2,000달러로 치즈공장을 세운 것이 단초가 되어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이탈리아에 견학까지 갔다 와서 1969년에야 치즈를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내에 제대로 된 치즈 공장 하나 없던 시절이었기에 임실 치즈는 서울의 특급 호텔에 납품될 정도로 유통망을 넓혀갔고 오늘날의 <임실=치즈>가 되었다.
<임실N치즈 판매장>
<씨름 치즈장사 선발대회>
지정환신부는 1970년대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에도 항거하여 다른 외국인 신부와 선교사들과 저항운동을 하다가 체포되기도 했으며,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시민군에 제공할 우유를 싣고 홀로 광주에 내려가기도 했다. 그는 70년대부터 오른 다리에 몸의 신경을 조금씩 마비시키는 다발성신경경화증을 앓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3년 간 벨기에에서 치료를 받은 후 84년 귀국하여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인 ‘무지개 가족’을 설립하여 지금까지도 운영하며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2월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시계탑>
<바람의 언덕>
<바람의 언덕의 조형물>
<임실N치즈축제>는 임실만의 차별화 된 임실N치즈라는 고유콘텐츠를 활용하여 축제 인프라를 확보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관광∙산업축제로 정착함은 물론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프로그램 개발로 임실N치즈를 소재로 하는 체험∙관광형 축제이다. 또한 임실지역 천혜의 생태환경 속에서 자란 소들의 새벽에 짠 원유가 임실치즈의 원료가 되는 목장형 유가공 제품을 널리 알려 지역 특산품 판매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임실군주민 경연대회>
축제장 내 각종 체험관에서는 임실치즈와 피자만들기, 유럽정통음식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을 만끽할 수 있으며, 청정원유로 순수 자연주의 임실치즈 전 과정을 재미있게 직접 배우는 ‘임실N치즈’체험, 지역농산물로 만드는 쌀피자 체험, 세계의 다양한 치즈요리도 만들고, 특별한 추억을 함께 만드는 유럽 정통 요리체험 등 임실치즈테마파크만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치즈캐슬>
오전 내내 축제장의 각종 체험관에서 향토 맛과 치즈 맛을 즐기며 오전을 보내고 임실군 운암면 용운리 ‘옥정호 물안개길’로 이동한다. 1940년에 착수하여 1965년에 준공된 섬진강다목적댐을 만들면서 생긴 옥정호는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걸쳐 있다. 운암저수지 또는 갈담저수지라고도 불리며 넓이는 26.5㎢, 저수면적은 370㎢로 전라북도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1965년 섬진강다목적댐이 건설되면서 저수지의 물은 만경평야의 젖줄로서 대부분 관계용수로 공급된다.
<옥정호>
또한 옥정호는 오봉산과 국사봉이 호수를 양팔을 벌려 감싸 안은 듯한 풍경과 사계절 마다 다르게 보여 지는 옥정호 붕어섬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최고의 명소이다. 아침햇살을 받아 호수 면으로부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마치 신선이 노니는 풍경으로 최고의 백미이다. 이러한 옥정호의 풍광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호수주변에 물안개길 15㎞를 2012년에 준공하여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
<옥정호 물안개길>
운암면 용운마을 앞에서 옥정호물안개길 푯말을 보고 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첫 걸음부터 길이 막힌다. 땅 임자가 사유지라고 길을 막아 버린 것 같다. 다시 되돌아 나와 우회하는 길을 만들면서 앞으로 나간다. 잡초가 우거져 앞으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으나 사람이 밟고 가는 곳은 바로 길이 된다.
<기분 좋게 출발>
용운리 마을의 재실은 엊그제 추석을 맞이하여 후손들이 다녀갔는지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으나, 그 아래 집은 텅 비어 넝쿨식물들이 사립문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몇 발짝 벗어난 곳에는 쑥부쟁이가 자리를 잡는다. 쑥부쟁이는 어디든 잘 자라는 들꽃이다. ‘쑥을 캐러 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핀 꽃’이라 해서 슬픈 전설을 안고 이름이 붙여진 쑥부쟁이는 구절초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재실-홍덕재>
<빈집>
<쑥부쟁이>
밭에는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들깨도 씨받을 때가 되었으며, 고구마도 밑알이 여물었지만 만져 줄 손길이 부족해 세월만 익어간다. 복분자도 가지치기를 한번만 해주면 내년에 더 많은 열매를 맺을 텐데 쳐다보는 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바로 옆의 문 닫은 폐교 건물도 을씨년스럽기는 매 한가지이다.
<고추>
<들깨>
<고구마>
<복분자>
<폐교>
국사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마암리 방향으로 들어서니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하고는 사뭇 다르다. 높이 오르다 깊이 내려가고 오후 한 낯의 햇빛을 가려주는 숲이 아름답다. 가끔 숲이 문을 열어줘서 보이는 옥정호는 한 폭의 그림이다. 다시 한 고비를 넘으면 대나무가 스스로 숲을 이뤄 사이 길을 만들어 준다.
<숲길>
<대나무숲길>
<숲 사이로 보이는 옥정호>
대나무 숲을 빠져 나오면 구절초가 군락을 이루어 맞이한다. 구절초는 ‘음력 9월9일 즈음에 채취해야 약효가 으뜸’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옛날부터 부인병에 좋다고 하여 선모초라고도 한다. 그러나 여름엔 5마디이고, 가을이 되면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하여 구절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줄기 끝에 꽃이 한 송이씩 피는데 쑥부쟁이와 구별하는 법은 쑥부쟁이 꽃잎 끝은 둥근 편인데, 구절초의 꽃잎 끝은 가운데 부분이 약간 들어간 모양이다.
<구절초>
마지막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오니 조그마한 가게가 나오고 옆에는 운암정(雲巖亭)이라는 정자가 있으며 길 건너에는 ‘효자운암이선생조삼대(孝子雲巖李先生釣蔘臺)라는 비석이 웅장하게 서있다. 조삼대(釣蔘臺)는 운암 이흥발(雲巖 李興浡, 1600∼1673)이 중병에 든 홀어머니를 위해 강에서 낚시를 하는데 하루는 물고기 대신 산삼을 낚아 병을 치유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하며 운암정은 이흥발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효자운암이선생조삼대 비>
<운암정>
붉게 익어 가는 감을 바라보며 대추와 밤과 같이 꼭 제사상에 올라가는 이유와 임실(任實)의 속뜻도 다시 새겨본다. 대추는 꽃자리에 열매가 꼭 열듯이 후손의 번성을, 밤은 씨 밤이 나무가 죽을 때까지 뿌리에 붙어 있듯 조상이 후손을 끝까지 돌봐준다는 의미를, 감은 똑똑한 후손을 얻기 위해서는 접을 붙여야 하듯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하여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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