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연대도지겟길과 미륵도달아길
(2017년 10월 14∼15일)
瓦也 정유순
통영의 연대도지겟길과 미륵도달아길에 가기 위해 새벽길 나서는데 가을은 살며시 속곳 속으로 차갑게 파고든다. 약4시간 반 만에 도착한 통영시 산양읍 달아항에서 승선수속을 마치고 연대도에 가는 배에 오른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인 연대도에서 점심을 한 다음 출렁다리를 타고 만지도에 가기 위해서다.
<연대도 매표소>
<연대도 들어가는배>
만지도(晩地島)는 달아항에서 3.8㎞ 떨어진 섬으로 약200년 전 박 씨, 이 씨가 처음으로 입도하여 정착하였으며 주변의 다른 섬보다 늦게 주민이 정착하였다 하여 만지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바로 앞에 있는 저도는 닭, 연대도는 솔개, 만지도는 지네에 비유되어 서로 먹이사슬로 되어 있어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함께 번성할 길지라고 전해진다.
<만지도>
연대도 선착장에서 100여m쯤 떨어진 곳에 설치된 연대도∼만지도 출렁다리는 마을주민 및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다리로 길이 98.1m, 폭 2m이며 2014년 12월 17일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바윗길을 타고 조금 올라가서 건너는 출렁다리의 출렁거림은 어릴 적 어쩌다 대처에 나가 도회지의 모습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호기심과 함께 떨림으로 다가온다.
<출렁다리 원경>
<출렁다리>
다리를 건너면 작은 백사장 위로 설치된 목재데크를 따라 걸음을 내디딘다. 헤안 암벽을 덮은 돈나무는 남쪽 따뜻한 해안에 잘 자라는데 혈압을 낮추고 혈액의 순환을 도우며 종기를 가시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고혈압, 동맥경화,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증세 등에 사용하며, 습진과 종기의 치료약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출렁다리 주변 양식장>
<만지도 들어가는 입구>
<돈나무>
해안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면 ‘만지도명품마을’이 나온다. 상수도가 없던 시절에도 만지도는 항상 물이 자급자족이 되어 옆 섬인 학림도와 연대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빨래하러 왔다고 한다. 백 년이 지난 작두샘에 마중물을 넣고 서너 번 펌프질을 했더니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먹을 물이 부족했던 섬에서 지하수를 맘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만지도명품마을 표지>
<만지도명품마을>
<작두샘>
바람길 전망대에서는 몇 년 전에 트레킹을 한 욕지도와 연화도가 마고할멈 한 걸음쯤 되는 거리에서 아른거린다. 폐교된 만지분교(晩地分校) 옛 이야기는 뒤로하고 ‘견우길·직녀길’로 들어선다. 함께 걸으며 데이트하기도 힘든 시절에 마을의 견우와 직녀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올라와 저녁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숨은 자리에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같은 길이지만 들어오는 길을 ‘견우길’, 나가는 길을 ‘직녀길’로 만들어 놓았다.
<욕지도와 연화도>
<견우길>
<직녀길>
경사진 잔디밭 뒤로 돔 형식의 조립식 건물로 만들어진 펜션주택을 뒤로하고 만지봉으로 올라간다. 만지봉(晩地峰, 99.9m)은 만지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사각 돈대(墩臺)를 쌓고 자연석을 다듬어서 정상표시를 했다. 욕지도 전망대로 내려오는 남쪽 해안에는 해식(海蝕)작용에 의해 전반적으로 단애(斷崖)를 이룬다. 바위 틈새에서는 털머위가 꽃대를 늘어뜨리며 해풍과 맞선다.
<돔형 펜션>
<해안단애>
<만지봉 정상>
반환점을 돌아 동백 숲 터널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데크 해변길이 나온다. 해안 바위에서 잘 자라던 풍란은 1980년대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종(種) 복원을 통해 ‘멸종위기종’ 지정 해제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데크 밑으로 부서지는 파도소리는 바위의 숨소리이다. 철썩 한번 부딪힐 때마다 풍란의 향이 코끝을 어루만져 주었으면 한다.
<해안절벽>
<풍란복원사업>
<만지도 데크>
출렁다리를 건너와 연대도로 들어선다. 연대도(烟臺島)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연대(烟臺, 봉화대)가 이 섬의 산 정상(연대봉, 220m)에 있어서 그대로 섬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전에 다녀온 만지도는 행정구역이 산양읍 저림리이고, 연대도는 산양읍 연곡리로 되어 있어서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만지도 동백숲길>
<연대도>
마을 앞에는 약간 넓은 공간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비석이 두 개 있다. 오른쪽은 3단의 기단 위에 세운 비석으로 ‘별신장군(別神將軍)’ 비석이 있다. 남해안 별신굿을 모시는 별신대(別神臺)라고 한다. 별신굿은 무당이 제사하는 큰 규모의 마을굿이다. 굿은 토속신앙 적 성격이 강하면서도 마을의 일체감으로 생산과 소비를 자극함은 물론 종합예술성을 내포하고 있다.
<별신장군>
그 옆에 있는 것은 ‘연대도사패지해면기념비(烟臺島賜牌地解免紀念碑)다. 연대도는 섬 전체가 1665년 충렬사(忠烈祠) 사패지(賜牌地, 왕이 내려주는 전답)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소작농이 되었다. 정부수립 이후 1949년에 농지개혁이 있었지만 일부대지와 전답은 여전히 충렬사 사패지로 남아 있다가 1989년 7월 섬 주민의 소유권으로 이전되어 세운 기념비란다. 통영시 명정동에 있는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연대도 사패지 해면 기념비-네이버캡쳐>
마을의 집집마다 문패가 인상적이다. 집집마다 담벼락에 걸린 문패는 연대도만의 자랑이다. 연대도의 문패는 이름만 있는 보통의 문패와는 다르다. 짧은 거리를 지나치며 문패를 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고인다. 생면부지의 집주인이 마냥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같은 집이라도 도시의 집보다는 어느 때고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집 같다.
<연대마을 문패>
선으로 표시된 마을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울안에서 귤이 익어가는 어느 집 앞으로 신우대의 사열을 받으며 한려수도백리길 ‘연대도 지겟길’구간이 시작된다. 기름칠 한 것처럼 잎이 반질반질한 동백도 꽃 필 때가 가까워 오는지 마디마디에 꽃자리를 잡아간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연대봉도 올라가고 싶지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힐링하 듯 숲속을 거닐면서 에코아일랜드 체험관으로 내려온다.
<연대도지겟길 표시>
<귤>
<동백>
<연대도 지겟길 입구>
<신우대 길>
에코아일랜드 체험관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지열(地熱)이나 태양광 같은 자연에너지를 사용하여 냉난방을 해결하는 패시브하우스(passivehouse)이다. 이곳에는 숙박시설과 식당, 강당 등이 준비되어 있는 것 같다. 운동장에는 놀면서 대체에너지를 학습할 수 있도록 태양열조리기, 자전거발전기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에코아일랜드 체험센터>
<에코체험관 운동장>
에코체험관 운동장에 마련된 그네를 타며 동심에 잠기다가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달아항으로 나온다. 달아전망대에서 통영의 낙조(落照)를 보려고 서둘러 달려왔건만 태양은 구름 속에 꽁꽁 숨어 얼굴을 보일 기미가 없다. 멀리 사량도(蛇梁島)만 손가락으로 확인하고 내려온다.
<달아공원 전망대>
<사량도>
통영시청소년수련원에서 곤한 잠을 잤다. 어디서 잠을 자던 눈만 감으면 그곳이 스위트룸이다. 건물 앞 정원에는 금목서가 황금빛 꽃을 활짝 피운다. 금목서는 꽃이 귀한 초겨울에 꽃이 피어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푸른 잎과 함께 황홀한 향기가 정원을 꽉 메운다. 수련원 옆의 하늘에는 미륵산으로 가는 케이블카가 둥실 떠간다.
<금목서 나무>
<금목서 꽃>
<미륵산 케이블카>
조반을 마치고 가을비가 내리는 미륵산을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탄다. 미륵산 상부정류장에 도착하면 바로 바다 건너로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정상으로 가는 목제계단을 타고 올라갈수록 통영의 시내가 선명하다. 보이는 풍광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의 백미다.
<통영 앞-한산도>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더욱이 한산섬을 중심으로 하여 한려수도 일대의 충무공 대소 전첩기를 이제 새삼스럽게 내가 기록해야 할만치 문헌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중략)” 시인 정지용이 청마 유치환을 만나러 통영에 왔다가 아름다움에 반해서 쓴 통영이란 글에 표현한 내용이다.
<통영시 전경>
한 계단씩 올라가면 ‘해병대통영상륙작전’전적비가 기다린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단숨에 낙동강까지 밀려 방어선을 쳤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때 마산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해병대의 ‘김성은부대’가 1950년 8월 19일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통영 시내를 완전 점령하였고, 9월 15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통영상륙작전>
이는 외국군의 지원 없이 우세한 적의 점령지를 한국군 단독 작전으로 탈환한 것을 보고 당시 <뉴욕헤럴드 트리분> 종군여기자 ‘마가렛 히킨스’로부터 ‘귀신 잡는 해병대(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란 찬사를 받아 한국해병대의 용맹성을 얻게 되었다. 한산대첩과 더불어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 또 하나의 통영대첩이었다.
<귀신잡는 해병대!>
미륵산 봉수대를 지나 정상에 오른다. 미륵산(彌勒山, 461m)은 통영 남쪽 미륵도 중앙에 우뚝 솟은 산으로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산이다. 이 산은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분출된 화산으로서, 신라의 원효대사가 장차 미륵존불이 강림하실 것이라 하여 미륵산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산자락에는 용화사와 미래사 등 천년고찰이 있다.
<미륵산 정상>
<봉수대 터>
또한 미륵산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한려수도(閑麗水道)가 한눈에 펼쳐진다. 한려수도는 한산도에서 여수 오동도에 이르는 물길 300리 해역을 말한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푸른 물빛에 5백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동시에 뛰어올라 그대로 멈춘 형상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화려한데 새처럼 훨훨 날아다닌다면 이것 또한 꿈일 지어라. 수온과 수질이 안정되어 우리나라 수산업에도 크게 기여함은 물론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의 전적지가 곳곳에 널려 있어 역사의 산교육장이다.
<한려수도>
정상에서 미륵도달아길을 따라 내려온다. 날카로운 짱돌들이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조심조심하며 눈과 발은 계속 더듬는다. 통신기지국 안테나가 설치된 초소(?)는 벼랑길을 오가는 손님들을 조심스레 안내해 준다. 초소 밑 바위에는 천년을 지탱해 온 소나무가 가을이 물들어가는 단풍을 지켜본다.
<초소?>
<천년송>
포신(砲身)을 박아 논 것 같은 주상절리바위는 해안을 지키는 초병 같다. 구절초가 활짝 웃는 아래에는 작전회의라도 할 수 있게 야전회의장이 정갈하게 마련해 놓아져 있다. 능히 15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정상부에서 조금 가팔랐지만 아래로 내려올수록 경사가 완만해지고 걷기가 수월해 진다.
<주상절리바위>
<야전회의장?>
<구절초>
소설가 박경리 묘소 가는 길도 보인다. 박경리(朴景利, 1926∼2008)는 대하소설<토지(土地)>를 쓴 소설가이다. 이 작품을 26여 년간 집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뤘다. 통영에서 태어나고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남편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박경리묘소 가는길>
<뒤 돌아 본 미륵산>
벽화가 그려진 야소마을에는 붉은 열매 피라칸타가 소담스럽게 익어간다. 도목수집 연장그릇에는 망치를 비롯한 펜치들이 녹슬어 간다. 물건으로 보아서는 도목수가 아니라 전기수선공 공구그릇 같다. 통영산양 스포츠파크에서 희망봉을 찾아가는데 이정표가 숨어 있어서 방향이 아닌 곳으로 몇 번인가 발을 옮긴다. 겨우 야구장 옆으로 난 길을 찾아 나선다. 거의 직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숨 가쁘게 올라가면 희망봉(230m)이 나온다.
<피라칸타>
<도목수 집>
<희망봉 정상>
숲으로 둘러싸인 희망봉은 시야가 가린다. 나뭇가지가 팔을 들어 앞을 터준 사이로는 그저 시원한 한려해상만 넓게 펼쳐진다. 희망봉에서 내려오는 길목에는 투구꽃들이 군락을 이룬다. 투구꽃은 관상용으로 심는다. 유독식물로서 뿌리에 강한 독이 있는데, 초오(草烏)라고 하며 약재로 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에 분포한다.
<한려해상>
<투구꽃>
내려갈 때는 바람 끝이 싸늘하여 겉옷을 입었다가 올라갈 때는 더워서 겉옷 벗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벌써 시간은 정오를 넘기고 미리 준비한 충무김밥으로 요기한다. 충무김밥이 통영의 명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부터이다. ‘국풍 81’에서 판 김밥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충무(忠武)는 도농통폐합 시 통영군과 합쳐지면서 없어진 이름이다.
<망산 올라가는 길>
다시 행장을 수습하고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정자가 나오는데 이곳이 망산(255m)이다. 미륵산에서 시작한 ‘미륵도달아길’을 마지막으로 오른 산이다. 남쪽 해안으로는 펼쳐진 섬들만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찐빵 같은 큰 버섯이 길목을 지킨다. ‘미륵도달아길’ 문을 빠져나와 어제 해넘이를 보러 왔었던 달아공원에 도착한다.
<망산전망대>
<한려해상의 섬들>
<찐빵 같은 버섯>
<미륵도 달아길 마지막 문>
트레킹을 마치고 통영활어시장 근방으로 이동하여 자유 시간을 갖는다. 통영은 경상남도 끝자락 고성반도 남부와 미륵도·한산도 및 그 밖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여기서 뻗어 내린 산등성이가 바다에 몰입하여 크고 작은 반도와 섬을 형성한다. 주로 구릉지와 매립지가 발달하여 평지가 별로 없고, 다만 해안에 약간의 평지가 있을 뿐이어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지역이다.
<통영 강구안 항>
해안은 드나듦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43개의 유인도와 527개의 무인도(2015년 기준)가 산재하며, 미륵도는 2개의 다리와 1개의 해저터널로 육지와 연결된다. 대부분의 섬들이 아름다운 바다 풍경으로 유명한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수온이 적당하고 동해난류가 흐르는 이 해역은 한국 수산자원(水産資源)의 보고라 할 수 있어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하였다.
<통영 강구안문화마당 거북선>
통영(統營)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을 총괄 지휘하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주둔해왔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 수군통제사는 종이품(從二品)의 벼슬로 평양감사 및 전주감사와 동격으로 변방에서는 그래도 격이 있는 고을이었다. 자연풍경이 좋고 바다 먹거리가 풍부한 고장으로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등이 이곳 출신들이다.
<동피랑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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