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첫 번째)
목포→함평(2014. 2. 22∼23)
瓦也 정유순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동백꽃처럼 타오르다/슬프게 시들어 버리는 곳/항상 술을 마시고 싶은 곳이다.(하략)” 시인 문병란의 “목포”라는 시의 첫 구절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렇다. 우리는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처럼 술 한 잔 마시고 슬프게 시들지 않기 위해 이제 발길을 북으로 돌려 서해안으로 거슬러 신의주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목포시내>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 걷기를 주관한 <(사)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는 “꿈꾸는 것은 자유다. 목포에서 출발하여 서해안을 따라 걷는 것은 기왕지사 돈 드는 일도 아닌데 꿈을 좀 더 키워보자고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잡았다. 혹시 아는 가 대통령께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였으니 내후년쯤에는 남북관계가 좋아져서 북한의 해주 진남포를 거쳐 신의주까지 갈 수 있지 아니한가?”라는 취지의 설명에 공감하면서 신의주까지 꼭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포항>
목포항 선착장에서 간단한 의식을 끝내고 2014년 2월 22일 아침 8시에 첫발을 디뎠다. 유달산 입구에 있는 "국도1호선과 2호선 기점 기념비"와 유달산예술공원을 둘러보고 유달산 순환도로를 따라 목포와 신안군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押海大橋 앞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걸음이 시작 되었다. 2008년에 완공된 압해대교 덕에 목포에 있던 신안군청과 유관기관들이 압해도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국도 1.2호선 기점기념비>
<유달산>
<목포의 눈물 노래비>
갯벌의 돌들을 징검다리 삼아 한발 한발 디디며 우리는 북으로 전진한다. 무수한 생명이 숨 쉬는 갯벌의 숨소리를 들으며 전통어업의 하나인 '독살'도 구경하면서 자갈밭 해안도 걸어본다. 다산 정약용과 불가분의 관계인 초의草衣 선사 탄생지를 뒤로하는 것이 조금 아쉽다. 조선조 정조 10년(1786년)에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나난 초의선사는 강진에 유배중인 다산과 함께 학문과 다도茶道를 교류하며 시와 그림 특히 탱화에 일가를 이룬 인물로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그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무안 독살>
<갯벌징검다리>
눈에 띠는 무수한 것들과 쉼 없는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무안군 청계면에 당도하였을 때는 점심시간 이었다. 청계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해안 길을 따라 톱머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 펼쳐지는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해송 숲이 조화를 이루어 장관을 이룬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도중 언젠가 한번 와봤던 길들은 선명하게 눈에 띤다. 국내 다른 공항과 비교할 때 운항 횟수가 적은 무안국제공항은 한가로이 오수를 즐기는 양 활주로가 길게 누워 있다. 톱 머리 해변 길을 지나 무안군 운남면 원동암마을에 있는 장조황제사당을 찾아 갔다.
<톱머리해수욕장>
장조황제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고조벌이 되는 사도세자를 황제로 추존한 것이란다. 사도세자는 잘 알다시피 영조의 아들이고 정조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무고를 당하여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 죽었다. 정조가 즉위 하던 해에 이곳 마을의 원로들의 꿈에 사도세자가 나타나서 억울하게 죽은 나의 원혼을 위로해 줄 사당을 이곳에 세워주기 바란다고 하였단다. 마을의 여러 사람들 꿈에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으므로 마을사람들이 의논하여 사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동암묘-장조황제 사당>
사당은 원래 무속인 들이 억울하게 죽은 분을 위하여 짓는 것인데, 순수한 민간인들이 지은 사당은 이곳이 처음이란다. 얼마나 자신의 죽음이 원망스럽고 억울했으면 아무연고도 없는 이곳 해변마을까지 꿈에 나타났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목포에서 무안군 해제면 창매리까지 약30여km의 1일차 도보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참새골황토팬션"에서 하룻밤 갈무리하고 아침 해가 뜨는 시각에 짐을 꾸려 슬로우시티 증도로 발길을 옮긴다.
<서해안 낙조>
<서해안 일출>
증도대교를 건너 짱뚱어 다리를 지나니 또 다른 갯벌이 맞이한다. 이른 아침이라 짱뚱어는 숨구멍만 남긴 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나 보다. 하얀 모래밭과 갯벌이 잘 조화 된 우전리 해변을 거닐며 아침나절 조용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인사를 한다. 명사십리 해변을 걸어 '엘도라도'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면서 '증도염전 낙조대'에 올라 염전과 갯벌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니 미세먼지로 시야가 선명하지 않지만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세가 섬의 멋과 맛이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다시 증도대교를 건너 함평으로 방향을 잡았다.
<증도대교>
<짱둥어다리>
<증도갯벌>
<증도우전해수욕장>
<증도염전>
나비축제로 유명한 함평에서 육회비빔밥을 맛 바람에 게 눈 감추듯 허기를 채웠다. 함평농협 마당에는 나비모형으로 만든 황소형상이 나비의 고향답게 눈길을 끈다. 다시 함평읍 석두리에 있는 돌머리해수욕장과 해양생태가 잘 발달 된 함평만을 향해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석두石頭라는 이름은 원래 돌머리라는 우리말로 된 마을 이름을 한자어로 쓰다 보니 석두가 되어 버렸단다.
<나비모형으로 만든 황소상>
<돌머리해안길 안내판>
이 해변은 확 트인 서해안을 바라보며 깨끗한 바닷물과 은빛 찬란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넓은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돌머리 해변에 있는 ‘함평만생태보존기념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함평만은 무안군 해제면의 해제반도와 영광군 염산면의 사이에서 무안군·함평군을 끼고 안쪽으로 길게 만입되어 있는 곳으로, 잘 발달 된 갯벌에 무수한 생명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 사람들은 그 넉넉함에 기대어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다.
<함평만생태보전기념비 앞>
<함평해안조개잡이>
<함평해안실뱀장어 채취장>
오후에 더 세차게 불어대는 북서풍의 갯바람은 북으로 가는 길손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데, 철 이른 진달래는 꽃망울로 봄소식을 전하며 지치지 말고 끝까지 가라고 조용히 속삭여 준다. 길가에 서 있는 구슬나무(?)도 화이팅을 외치며 응원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하여 함평군 손불면 석창방조제까지 2일차 일정을 소화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용히 버스에 오른다.
다음 달 영광에서 고창까지의 우리 땅 걷기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구슬 같은 열매가 열린 나무>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여섯 번째) (0) | 2014.07.24 |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다섯 번째) (0) | 2014.07.24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네 번째) (0) | 2014.07.24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세 번째) (2) | 2014.07.24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두 번째) (0) | 2014.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