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네 번째)

와야 세상걷기 2014. 7. 24. 13:13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네 번째)

(부안변산 마실 길, 2014. 5. 24-25)

 

瓦也 정유순

  어젯밤 밤길을 달려와 새벽에 눈을 뜬 곳은 전북학생해양수련관이다.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솔섬이 코앞이다. 밤새 파도로 어둠을 삼켜버린 바다는 왜 이리 고요한지? 옆구리에 떠 있는 배 한척과 함께 정물화(靜物畵) 같다.

<솔섬>

  제8코스에서 제1코스로 이어지는 부안변산 마실 길해안 길을 역순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먼저 제8코스의 하나인 우반동 계곡을 찾아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선생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선각자인 반계 류형원선생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우반동계곡>

  비가 와야 물이 떨어진다는 60m 높이의 선계폭포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모습이 물소리의 위용을 짐작케 한다. ‘허균은 공주목사에서 파직당한 후 부안으로 내려와 시와 가무에 있어서 황진이와 쌍벽을 이뤘던 이매창과 교유를 했고, 선계폭포의 깎아지른 벼랑 위에 위치한 정사암에 머물며 홍길동전을 썼다고 한다. 부조리한 세상을 한탄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허균에게 서녀(庶女)출신 이매창은 사상과 우정을 나누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동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이매창의 이상향을 허균이 홍길동전을 통해 표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 해본다. 정사암이 위치한 우반동 일대가 홍길동전에서 묘사한 지형과 지명이 비슷하게 나오는 것도 그렇고, 도적들의 은거지인 굴바위와 율도국으로 전해오는 위도가 부안 땅이라 그런 생각을 더 깊게 한다.

<선계폭포>

<선계폭포-이매창>

  ‘우동저수지를 지나 대불사 앞으로 조금 올라가니 주로 화살을 만들었던 신우대가 숲을 이뤄 하늘을 가린다. 댓잎이 부딪히는 소리를 따라 조금 가파르게 올라가니 굴바위가 시원한 바람을 내품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이 국립공원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굴바위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는 게 더 궁금하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빈 소주병이 굴바위가 처한 현재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굴바위>

  이곳 우반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반계 류형원(磻溪 柳馨遠) 선생이다. 1653(효종 4)에 과거를 단념하고 우반동(愚磻洞)에 내려와 반계서당을 열어 후학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면서 그의 저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통해 실사구시를 통한 전반적인 제도개혁을 구상했던 것 같다. 또한 그의 호 반계(磻溪)’()’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반계서당>

<반계수록 안내판>

  사적 제69호로 지정된 유천리도요지로 간다. 부안 일대에 흩어져 있는 고려청자 가마터 중에서도 보안면 유천리 일대의 가마들은 가장 뛰어난 수준의 순청자와 상감청자를 구워낸 곳이라고 한다. 전남 강진가마터와 더불어 고려청자의 생산지였으나, 그 당시 개경과 더 가까운 이곳 청자가 여러 면으로 더 우수한 대접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유천리도요지기념비 주변에 널려 있는 사금파리도 혹시 그때의 유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유천리도요지-안내문>

  옛 농경시대를 엿볼 수 있는 구진마을에서 시작하여 곰소염전을 지나 곰소항에서 젓갈백반으로 점심을 하고 젓갈시장을 관통하면서 가게를 기웃거린다. 전나무 숲길이 좋은 내소사를 뒤로하고 다음 코스를 향해 해안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자주 숨 고르기를 한다.

<곰소항>

  ‘곰소항은 일제 때 우리 농산물과 자원을 침탈하기 위해 축조한 항구로 전북에서 군산 다음으로 큰 항구였다. 특히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어획물의 집산지였던 이웃의 줄포항이 토사 퇴적으로 항만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자 더 유명해졌으나 지금은 곰소항 마저 퇴출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곰소시장>

  해안 길을 걸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제방을 쌓아 걷기에 편한 곳이 있는가 하면 각진 돌이 모래 대신 깔리어 발바닥이 불편하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칼바위가 솟아 있어 잠시라도 한눈을 팔 경우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 같다. 그나마 갈 수 없는 해변은 절벽 같은 언덕을 헉헉대며 기어올랐다가 다시 내려 갈 때에는 기분이 배로 좋아진다.

<갯바윗길>

  ‘모항부근 갯벌에서는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갯벌체험에 여념이 없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 열매는 손님을 기다리고, 철 이른 앵두는 입술로 나를 유혹한다. 모항을 지나 샹그릴라해안을 지나니 바위에 푸른 이끼가 만발한다. 각종 조류(藻類)를 총칭하여 이끼라고 하는데 조류의 이상번식은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이 있다는 신호가 분명하다. 제발 아무 탈 없이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갯바위 이끼류>

  둘이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둘이 되며 한참을 걸으니 숙소(전북학생해양수련원)가 있는 솔섬이 반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제4코스인 상록해수욕장쪽으로 발을 옮긴다. 서산에 기우는 해를 보며 오늘을 정리하고 지금까지의 나를 조용히 되돌아본다. 격포항에서 저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싱싱한 생선회를 안주 삼아 소주로 목젖을 적시며, 철석거리는 파도와 함께 새벽으로 달린다.

<모항해변>

<솔섬 앞>

  고요 했던 어제 아침과 달리 오늘은 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눈을 뜬다. 갯내음이 풍기는 솔섬을 뒤로하고 격포항 쪽으로 이동하여 조반을 한다. 격포항에서 시작하는 제3코스로 접어드니 채석강의 너럭바위는 우리 고향집 평상 같은 편안함이 있어 아주 좋았다. 그냥 조용히 지나쳤으면 좋으련만 분위기가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이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채석강 너럭바위에서 한곡>

  ‘닭이봉밑에 있는 채석강은 그 형상이 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당나라 이태백이 배위에서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바닥이 고르지 못한 바위들이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바위에 핀 석화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적벽강쪽으로 발을 옮긴다. ‘죽막동마을을 경계로 남쪽은 채석강지역, 북쪽은 적벽강지역으로 구분 짓는다고 한다.

<채석강>

  마을길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니 후박나무군락지가 펼쳐진다. 이곳의 군락지는 자생하는 후박나무의 북방한계선으로 천연기념물(123)로 지정되었다. 봄에 노란색으로 물들였던 유채꽃 언덕 위에는 개양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수성당이 기다린다. 매년 정월 초사흘 날 제사상을 차려놓고 풍어와 어부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제사를 올리는데 제주는 마을에서 궂은 일이 없는 사람을 선출하여 제를 올린다고 한다. 아마 인간의 능력으로는 다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신의 능력이라도 빌려서 맞서보려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해 진다.

<후박나무>

<수성당>

  “칠산 앞바다의 깊이가 개양할머니의 버선 목이라는 전설을 들으며 신우대가 우거진 좁은 길을 따라 적벽강으로 들어서니 금빛바위가 폼을 잡는다. 중국의 적벽강과 경치가 견줄만하여 불리었다고 한다. 붉은색을 띤 바위와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져 석양에 붉게 물드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적벽강 해안은 날선 각진 돌보다 몽돌이 많아 눈길을 끌고 절벽에 매 달린 주상절리도 신기하다.

<적벽강>

<적벽강 금바위>

<고드름형 주상절리>

  반월마을을 지나 하섬전망대에 이른다. 원불교 성지로 알려진 하섬은 음력 매월 1일과 15일쯤에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열린다고한다. 전에는 바다가 열리면 바다생물 채취가 가능 했는데 지금은 해양자원 보호를 위해 채취를 금하고 있다고 한다. 야영과 산책하기 좋은 고사포해수욕장의 송림 길을 따라가니 해당화 향기가 종아리의 피로를 풀어준다.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바지락 죽으로 점심을 하고 마지막 제1코스로 박차를 가한다.

<하섬>

  공사현장으로 길이 끊어질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언덕에 다다르니 가깝게 새만금방조제가 눈앞이다. 언덕길에는 마가렛이 만발하여 가슴을 활짝 열어 따뜻하게 안아준다. 어제부터 내내 걷는 동안 고비마다 아카시 꽃과 찔레꽃은 바튼 숨을 가라앉히고 산딸기와 오디도 간간이 시장기를 달래준다.

 

<변산마실길 출렁다리>

  ‘부안마실길은 멀지 않은 옛날 대간첩작전의 일환으로 군()에서 설치해 놓은 해안초소를 연결하던 방공호를 이용해서 만든 길이라 그런지 바다에 더 가까워 스릴도 있고 아름답기도 하다. 해안을 향해 있는 녹슨 철조망도 간첩들의 상륙을 막기 위한 시설물 같다. 그러나 기다림의 미학느림의 철학을 소유한 자만이 바닷길을 걸으며 수 만년 파도가 만들어 놓은 자연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보는 길이다.

  오는 길에 새만금방조제 중간에 있는 신시도‘199에 오른다. 동쪽으로 만경강동진강포구와 개화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자전거 길로 유명한 선유도 등 고군산군도가 한눈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새만금 전망대>


<고군산군도>

<신시도 199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