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두 번째)

와야 세상걷기 2014. 7. 24. 12:50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두 번째)

함평영광법성포(2014. 3. 2223)

 

瓦也 정유순

 

 

  첫 번째 기행 마지막 지점인 함평군 손불면에서 두 번째 걷기가 시작되었다. 월척방조제를 지나 안악해변에 접어드니 섬마을 선생님노래비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길을 안내한다.

<노래비>

  백사장 끝으로 썰물로 갯벌이 길고 넓게 펼쳐진다. 안악해수욕장을 뒤로하고 한참을 걷다보니 갯벌 저 멀리 사람들이 실뱀장어를 채취하는 모습이 보인다. 실뱀장어는 뱀장어의 치어로 실처럼 가늘어 붙여진 이름이다. 강으로 들어가면 민물장어가 되고 바다에 남으면 붕장어 등 바닷장어가 된다. 인공부화가 안 되는 장어의 산란과정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게끼로 남아 있다.

<실뱀장어 채취>

  강 하구나 해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채취해 양식장에 공급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서해안으로 들어오는 강들이 방조제나 하구 둑으로 막히어 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연안으로 더 밀려온다고 한다. 만약에 이런 추세라면 민물장어는 멸종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영광군 염산면(鹽山面)에 접어드니 염전이 많이 보인다. 가까운 백수남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입에 쩍쩍 붙는 점심을 한 후, 백바우해수욕장으로 방향을 잡아 백사장과 뻘밭을 가로 질러 백수읍 백암리 해안 길을 찾아 가는데 손톱만한 게들이 같이 놀자고 발을 잡는다.

<영광군염산면 염전>

  멀리 부산의 오륙도 같은 섬이 6개가 보이는데 한 개는 물에 잠기면 안 보이고 물이 빠져야 보이는 7개의 섬이다. 이곳이 칠산도이고 옛날에는 물 반 조기 반 이었던 칠산 앞바다란다.

  “칠산바다에 돈 실러 가세/ 수수억만금 벌어서/ 우리 청춘 만대라도 먹고살게 돈 실러 가세(중략)” 칠산바다의 조기잡이 노래가 이제는 전설이 되어 귓전에 맴 돈다.

  홍곡저수지 좌측으로 숲과 잡초가 우거진 산길인 하우재 고개를 넘는다. 예쁜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백수해안도로변의 해당화는 잎눈이 티어 푸릇푸릇 고개를 내밀고 있고, 노을이 아름다운 칠산 앞바다는 우리 일행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오늘 두발로 걸어 온 30km의 여정은 석양에 비치는 실루엣으로 마감한다.

<백수해안의 실루엣>

 

  어제 저녁은 굴비정식으로 진수성찬이었다. 곤한 잠에서 깬 우리는 이른 조반을 하고 불갑사로 이동한다.

  불갑사는 백제불교의 시원으로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법성포로 들어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여 맨 처음 지은 사찰이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백일홍 가을에는 상사화가 피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고 한다.

<불갑사대웅전>

  대부분 대웅전의 불상은 남쪽을 향해 정좌하고 있는데 이곳은 측면으로 동쪽을 향해 있는 것이 남 달랐다. 대웅전 정면의 문살은 화려한 연화문과 국화문으로 새겨져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만발한 매화는 산등성이로 얼굴을 내미는 햇살을 받아 매혹적이다.

<불갑사 매화>

  눈길을 끄는 것은 사찰 입구 길옆에는 1908년 이곳에서 잡힌 호랑이 모형이 서 있는데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본 호랑이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누볐던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불갑사 호랑이 상>

  다시 노을전시관 쪽으로 이동하여 북으로 걷는다. “부인들이 왜병에게 잡히대마도로 끌려가던 중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의로운 죽음을 택해 남해에 몸을 던져 순절한 열부들을 모신 정유재란열부순절지(丁酉再亂烈婦殉節地)’를 지난다. 또 영광 출신 강항(姜沆, 15671618)선생은 정유재란 때 의병활동을 하다 왜에 포로로 잡혀가 고초를 겪은 것을 간양록(看羊錄)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국 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임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신봉승 작시, 조용필 작곡) 조용필의 애 끓는 노래 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북쪽으로 뻗은 해안도로는 모래미해수욕장을 지나 백수읍 길룡리에 있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朴重彬 18911943) 대종사의 생가와 영산성지를 순례한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대종사의 설법이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우리는 다시 바쁘게 영광굴비로 유명한 법성포로 이동한다.

<원불교 영상성지>

  법성포는 작은 반도의 남안에 자리 잡아 북서계절풍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항구였다. 옛날에는 조창(漕倉)을 설치하여 영광 흥덕(興德) 12개 군의 세곡(稅穀)을 받아 저장하던 곳이었으나 토사가 점점 쌓여 수심이 얕고 심한 간만의 차로 선박의 출입이 어려워 항구의 기능을 잃었다고 한다 

<영광굴비>

<법성포>

  오후에는 간다라 양식 불상이 인상적인 법성포 백제불교문화최초도래지를 찾았다.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 침류왕 1(384)에 최초로 발을 디뎌 불교를 전하면서 백제불교가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사면불상과 본당은 불사가 한창이다. 법성포의 법()은 불교를, ()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가리킨다고 한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오늘의 종착지인 가마미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홍농읍 칠곡방조제를 지날 때 제수문 입구에서는 숭어 잡이가 한창이다. 그물질 한 번에 십여 마리 이상이 무겁게 들어 올려 진다. 칠곡로를 따라 목맥(木麥)마을을 지나 원곡마을 삼거리에 당도한다. 갯벌에서는 때깔 좋은 백합(白蛤) 대합(大蛤)을 비롯한 각종조개류를 채취하는 모습이 한결 여유롭다.

  오늘의 종착지인 가마미해수욕장을 목전에 두고 각자의 삶터로 돌아가기 위해 아쉽게도 일정을 마무리 한다. 칠산바다는 사랑하는 이여/ 임 오실 날/ 언제나 기다릴지니/ 아니 오신 듯/ 다녀가시라며 가슴을 넓게 펴 보인다.

참으로 영광(靈光)의 해안 길을 많이 걸었다는 것이 큰 영광(榮光)이었다.


<게들의 모래구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