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다섯 번째)
<군산→서천→보령무창포, 2014. 6. 28∼29>
瓦也 정유순
서해안 걷기 네 번째 길 끝에 새만금방조제(약34㎞)를 지나왔다. 만약에 이 방조제가 없었다면 개화도간척지를 거쳐 동진강·만경강 포구를 지나 군산의 회현 옥구 해안을 따라 군산 금강포구를 넘어야 하는데 약 3일 정도는 절약이 된 것 같다. 새만금방조제는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우리 땅의 서해안 지도를 바꾼 대단위 공사였다.
<군산월명공원 삼일운동기념비>
목포에서 시작한 ‘서해안 걷기’ 다섯 번째 여정은 ‘군산’의 ‘월명산공원’에서 시작한다. 월명산은 군산시민들의 활기찬 숨소리로 아침을 힘차게 열어간다. 산 아래 ‘해망굴’은 옛날 ‘째보선창’에서 파시(波市)의 소리를 바람에 실어 들려주는 것 같다. 여승들의 도량인 ‘월명산흥천사’는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나 군산은 일제가 호남평야의 곡물을 수탈하기 위해 개항한 항구도시다. 군산∼전주 간 ‘신작로’도 수탈의 일환으로 벚꽃을 심어 만든 도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봄만 되면 ‘사꾸라’꽃이 아름답다고 철없이 놀았던 어린 시절이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이곳은 왜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왜인들이 살던 왜식건물들이 가장 오래된 건물들이며 우리의 혼을 침탈하려는 의도로 세운 왜식 사찰 ‘동국사’가 월명산 아래에 넉살 좋게 서 있다.
<시민을 지키는 군산월명공원의 수시탑>
<해망굴>
<동국사>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 일제가 수탈의 빨대를 꽂던 거리를 돌아보고 ‘금강하구둑’을 건너 충남 서천군 장항으로 간다. 금강은 장수군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으로 북진하다가 청원과 만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신탄진 공주 부여 강경을 거쳐 익산과 서천을 가르고 이곳 군산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군산근대문화박물관>
채만식의 ‘탁류’는 천리 길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흘러 온 금강을 서사의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탁류(濁流)’란 금강의 혼탁한 흐름을 연상하게 하지만 사실상 좁게는 개인의 일생을, 넓게는 식민지의 역사적인 흐름을 비유하고, 국가의 주권은 물론이고 삶의 터전마저 잃어버린 채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살아가던 일제치하의 우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작가의 의도 같다. 하구둑으로 가는 길목엔 ‘채만식문학관’이 썰렁하게 서 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지 걱정이 된다. 둑방 안쪽은 민물이고 바깥쪽은 바다물인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경계를 그어 나눈다는 게 무리인 것 같다. 안과 밖이 어느 정도 살을 섞어 가면서 많은 생명들의 통로와 완충지대가 필요한 것인데 그 끝이 생태적 비극으로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금강하구둑>
장항이란 곳은 총독부로 부터 지원을 받아 갈대밭 50만평을 메워 만들었다고 한다. 1935년경 왜인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장항제련소’는 충남 청양과 보령지역의 비철금속을 착취하기 위해 세워진 제련소로 군산과 함께 우리들의 아픈 과거사의 산물이다. 지금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인수하여 전기로(電氣爐)로 바꾸어 구리만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제련소가동으로 그 주변의 땅은 오염지역으로 되었는데, 치유의 일환으로 지금은 제련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국립생태원’이 자리하여 작년에 문을 열었고 ‘토양오염 복원사업’을 환경부의 지원으로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장항제련소>
<국립생태원 상징탑>
장항역에서 제련소로 가는 철길은 아련한 학창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제련소 앞을 지나 골목길을 지나니 폐가가 된 빈집들이 즐비하다. 한때는 장사가 잘 되어 가게 터를 잡기가 힘들었던 곳이 쓸쓸히 폐허로 돌아왔다. 환경오염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가 땅이 중금속으로 오염된 것을 알고부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 것이다. 장사도 안 되고…
<구 장항선 철길>
해안 길을 따라 가다가 몇 번인가 발걸음을 되돌려 당도한 곳은 ‘장항 송림 갯벌’이다. 2007년 갯벌을 막아 공단으로 조성하려 했던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송림갯벌을 보전하고 생태산업의 중심’으로 서해안의 마지막 갯벌로 남아 있는 지역이다. 솔밭사이로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길이 나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장항해변과 송림>
오늘은 옳게 걸은 것 보다 들어갔다가 길이 막혀 되돌아온 길이 더 길게 느껴진다. 어느 길은 막혔어도 산딸기가 반겼고 어느 곳은 뽕나무 열매 오디가 길을 가르쳐 준다. 해변 옆 솔밭 길은 모래가 흙보다 더 많은 사구 길이다. 소나무 아래로 발달된 풀숲에는 ‘미국자리공’이 우점종으로 자리하고 있어 걱정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백사마을로 가는 솔밭에는 귀한 ‘황칠나무’가 질서정연하게 심어져 있었는데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기를 바란다.
이렇게 갈지자 행보를 종종 보이며 ‘서천유스호스텔’ 솔밭 길을 지나 ‘솔리천’을 건너고 ‘백사마을’과 ‘죽산리 하서마을’을 거쳐 서천군 마서면 ‘송석리’까지 진군한다. 그리고 ‘새만금방조제’로 해안을 잃은 전북 김제로 회군한다.
<장항방조제>
우리나라에서 땅 끝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분간이 안가는 지평선이 있는 곳이 김제·만경평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용 저수지인 ‘벽골제(碧骨堤)’가 있는 곳도 김제이다. 저녁식사로 불고기 백반을 제공하신 이곳출신 ‘바우’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맛있는 식사 외에 시루떡과 감자 옥수수를 서비스하여 너무 푸짐했다. 저녁식사 후 ‘김제체육공원’을 운치 있게 산책하고 김제 ‘흥복사’를 둘러보다가 밤이 늦었다고 스님으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했다.
<김제체육공원 야경>
<김제흥복사>
둘째 날 일정은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제224호)’ 답사로 시작한다. 이 탑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으로 백제시대 석탑을 모방한 같은 유형의 많은 석탑 중에서 가장 충실하게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고 있다고 한다. 지붕돌은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기단이 협소하며 2층 이상의 몸돌들이 지나치게 작고 각층의 지붕돌이 커서 안정감을 잃고 있는 것만 같다.
<성북리5층석탑>
‘철새 나그네 길’을 따라 ‘다사항’을 거쳐 ‘할미섬 전망대’쪽으로 방향을 잡아 ‘띠섬목’해수욕장’을 향해 해안을 걷는다. 목포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느끼는 것은 갯벌과 모래언덕(사구 砂丘)이 잘 발달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리아스식’ 해안이 잘 발달되어 있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도 꾸불꾸불 휘어진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당도할 수 있다.
<갯바윗길>
‘선도리’해안을 지날 때는 돌고래 한 마리가 파도에 밀려와 죽은 채로 모래톱에 걸려 있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도 필요할 것 같다. ‘갯벌체험장’에는 간간히 엄마 손을 잡고 열심히 호미질을 하며 조개 채취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이 눈에 띤다. 그리고 해수욕장은 여름 손님을 맞이할 준비에 일손이 바쁘기만 하다.
<선도리해변>
<갯벌체험>
말굽처럼 휘어져 있어 ‘마량(馬梁)’이라고 부른다는 반도의 끝 지점에 ‘동백정(冬栢亭)’이 있다. 동백정(천연기념물 제169호)은 이곳 ‘동백나무숲’에 있는 아담한 정자다. 동백나무숲은 바닷가 언덕에 심어져 4월이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되어 있다. 바다 쪽 절벽에 있는 기암괴석도 절경이고, 인근에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며 성경이 최초로 들어온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 가지 흠은 동백나무숲 아래로 화력발전소가 있는데 균형이 영 맞지 않아 “개발의 편자” 같은 생각이 든다.
<동백정>
<서천화력발전소와 동백섬>
동백정을 빠져 나와 ‘홍원항’으로 방향을 잡는다. 전어(錢魚) 축제가 해마다 열리는 홍원항은 낭만이 넘치는 항구 같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수십 척의 어선들과 멀리 방파제 끝 등대에서 잔잔한 서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어항으로 갓 잡아온 싱싱한 생선들이 풍부해서 더욱 좋은 곳 같기도 하다.
<홍원항>
<홍원항 등대>
어젯밤을 의탁했던 ‘건양대학교수련관’이 있는 ‘춘장대해변’을 지나 보령지역으로 간다. ‘춘장대해변’은 백사장과 갯벌이 잘 발달되어 해수욕과 갯벌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추어진 것 같다. ‘웅천천’ 입구의 바다를 막은 ‘부사방조제’를 건너니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에 있는 ‘소황사구’가 반갑게 맞이한다.
<춘장대해수욕장>
사구(砂丘)는 모래가 바람에 의해 옮겨져 만들어진 언덕 즉 ‘모래언덕’이다. 이 모래언덕은 육지와 바다 사이의 퇴적물 양을 조절하여 해안을 보호하고 해안 고유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하며 해안 식수원 저장기능, 아름다운 경관보호 등 다양한 기능을 보유하고, 자연환경을 원상대로 유지하여 생태계의 평형을 유지해 준다.
<소황사구 입구>
이곳 ‘소황사구’는 ‘생태·경관보전지역(2005.10.28)’으로 사빈(沙濱)과 전사구(前砂丘), 2차사구가 약2㎞에 걸쳐 발달되어 있으며 해안의 모래는 거의 세사(細沙)로 이루어 졌다. 그래서 그런지 소황사구 양쪽 끝에는 장안해수욕장(남)과 독산해수욕장(북)이 잘 발달되어 있다. ‘독산해수욕장’을 거쳐 ‘독대섬’을 뒤로하고 ‘무창포해수욕장’까지 걸어와 다음 여섯 번째 출발지를 확인하고 이번 여정을 마무리 한다.
<소황사구>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일곱 번째) (0) | 2015.08.12 |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여섯 번째) (0) | 2014.07.24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네 번째) (0) | 2014.07.24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세 번째) (2) | 2014.07.24 |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두 번째) (0) | 2014.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