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대산 노인봉에서 소금강까지

와야 정유순 2017. 10. 21. 06:05

오대산 노인봉에서 소금강까지

(20171019)

瓦也 정유순

   오대산 노인봉의 단풍구경 가려고 새벽길 나서는데 가을 찬바람이 옷을 뚫는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진부IC를 빠져나와 강릉으로 가는 제6호 국도를 타고 진고개정상휴게소에 0945분경에 도착했을 때도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느낌은 차갑다. 휴게소 마당에서 가볍게 몸도 풀고 행장을 다시 점검한 후 길을 나선다. 휴게소 뒤에는 19491952년 사이에 이곳에서 양민학살 등 무장공비의 준동을 섬멸한 경찰전적비가 햇살에 더 빛난다.

<진고개정상휴게소>

<경찰전적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4리에 있는 진고개[泥峴(니현, 960m)]는 백두대간 줄기인 오대산(동대산)과 노인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비만 오면 땅이 질어져서 진고개가 되었다고 하며, 또 고개가 길어서 긴 고개라 하다가 방언의 구개음화(ㄱ→ㅈ)로 진고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휴게소 앞 동대산 줄기도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동대산 능선>


   오대산은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성지이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던 역사적 장소이자 백두대간의 중추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장소다. 19751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비로봉(1563m)을 주봉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동쪽으로 따로 떨어져 나온 노인봉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 자리하고 있다.

<고위평탄면에서 본 노인봉 원경>


   진고개탐방지원센터 쪽 계단을 타고 쭉 올라가면 진고개고위평탄면이 나온다.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은 오랜 침식 작용을 받은 평탄면이 융기하여 높은 고도에 위치한 지역에 평편하게 나타나는 지형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신생대 제3기 요곡 운동에 의하여 융기되어 현재의 지형을 형성한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오대산과 태백산 사이에는 산지들이 1000m 내외의 동일한 고도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고랭지채소와 목축업이 발달하고 있다.

<진고개 초입 올라가는 계단>


   고위 평탄면을 지나면 가장 힘들다는 700계단이 기다린다. 고산지대라 가을추위에 대비해 껴입은 겉옷을 벗어 배낭에 매단다. 계단 아래서는 참나무가 노랗게 물들더니 계단 위에서는 단풍나무도 뒤질세라 붉게 타오른다. 여름 내내 푸르기만 하던 잎들도 형형색색의 물감들로 채색한다. 가을 물에 흠뻑 젖어 바람에 실려 올라가다보니 큰 바위가 앞을 가린다. 바로 노인봉 정상이다.

<주문진 방향 계곡>

<700계단 아래 참나무>

<700계단 입구>

<700계단 위 단풍>


   노인봉(1338m)은 소금강의 주봉이다. 산삼을 캐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면 노인이 나타나서 심메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과 산정에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백발의 노인처럼 보인다고 해서 노인봉이라 불린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려던 찰나에 갑자기 운무(雲霧)에 휩싸인다.

<노인봉 정상의 바위들>

<노인봉 정상>

<노인봉 주변의 운무>


   몇 사람 들어서기도 힘든 노인봉 정상에서 인증 샷 하랴 서로가 바쁘다. 뒤에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정상 바위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몇 사람의 염려어린 환송을 받으며 소금강 쪽으로 대장정을 시작한다. 고지대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신하다. 바로 아래에는 노인봉 무인관리대피소가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린다.

<노인봉 주변의 낙엽>

<노인봉 무인관리대피소>


   내려오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사다리가 없는 지역은 해찰할 기회가 없을 정도로 급한 경사와 짱돌로 이루어졌는데, 만약 사다리가 없었다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름다운 단풍들이 정신을 쏙 빼간다. 잘라 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로 불리는 나무도 뒤질세라 밝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간다.

<단풍>

<내려가는 계단>

<생강나무>


   내려오는 길 가운데에는 용이 되려고 용을 썼는지 하늘로 용틀임 하는 자세로 고사목이 서있다. 바람이 만들고 세월이 다듬었는가. 사람의 재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자태다. 단풍나무 사이를 가볍게 건너뛰던 다람쥐도 단풍에 취했는지 땅으로 내려와 고개 숙여 인사하며 반가워한다.

<고사목>

<다람쥐>

<단풍나무>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물 흐르는 소리가 내려갈수록 조금씩 더 크게 들려온다. 이렇게 깊은 계곡에 폭포가 안 보인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할 즈음 아니나 다를까 낙차(落差)가 큰 낙영폭포가 육자배기 한 마당을 늘어놓는다. 물이 떨어지면서 소()를 이루어 잠시 쉬었다가 세 갈래로 흩어져 또 아래로 힘차게 떨어진다.

<낙영폭포(윗단)>

<낙영폭포(아랫단)>


   마치 내가 흐르는 물이 되어 협곡을 휘젓는 기분이다. 계곡의 흐름에 따라 느리게 소리를 내다가도 어느 대목에서는 자진모리로 흐르다가 다시 중모리로 돌아와서 힘을 모아 휘몰이로 몰아치기도 한다. 장단의 속도에 따라 단풍들도 굿거리장단에 추임 세를 넣는다. 낙영폭포에서 2쯤 내려오면 땅으로 길게 누운 광폭포가 소를 만들어 물이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든다. 나무 사이로 낙엽은 쌓이는데 몇 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진다.

<붉은 단풍>

<광폭포>


   가을비 와봤자 병아리 눈물이라고 했던가. 어차피 땀으로 젖은 몸 더 와도 상관없으련만 가지에 붙어 있는 단풍이 떨어질세라 금방 멈춘다. 조금 더 내려오면 삼폭포가 기다린다. 광폭포나 삼폭포의 이름을 무슨 연유로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자연을 금수강산으로 만드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흐르는 물도 너무 맑아 내 마음 속까지 비춰진다.

<삼폭포>


   얼마나 많이 내려왔을까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가는 마당만큼 너른 바위 백운대가 나온다. 잠시 배낭을 벗고 쉬는 동안 바위 위의 큰 바위 하나가 아주 작은 받침돌에 의해 괴여 있다는 것이다. 한 뼘쯤 공중에 떠있는 바위를 자연이 만들었는지 사람의 힘에 의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자연이 만든 걸작으로 믿고 싶다.

<백운대>

<백운대 괸돌>


   아래로 내려올수록 단풍은 절정으로 향한다. 피천득(皮千得, 19102007)<단풍>이라는 시에서 단풍이 지오/단풍이 지오/피빛 저산을 보고 살으렸더니/석양에 불붙는 나뭇잎같이 살으렸더니//단풍이 지오/단풍이 지오/바람에 불려서 떨어지오/흐르는 물 위에 떨어지오하며 낙엽 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붉게 물든 저 단풍이 어찌 영원할 수 있겠는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소금강의 가을>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제다리를 건너오면 기암(奇巖)들이 즐비하다.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 처음에는 남설악의 주전(鑄錢)골에 온 착각도 들었다. 하늘로 솟은 바위들이 저마다 소리 높여 자기소개를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고 그저 입만 쩍 벌어진다. 바로 이곳이 말로만 듣던 청학동 소금강(小金剛)의 만물상(萬物相) 아니던가.

<만물상 입구>


   만물상은 소금강 계곡 내에 위치한 기암으로 삼라만상의 온갖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수직절벽 같은 단애(斷崖)의 끝을 보기 위해 고개를 쳐드는데 뒤로 꺾이는 목이 아플 지경이다. 귀면암(鬼面岩)은 급격히 융기된 화강암이 풍화작용을 거치는 과정 중 사람의 얼굴형상으로 비치는 만물상의 대표적 기암이다. 구멍이 뻥 뚫린 일월암은 귀면암을 만들 때 세월이 넘나들었던 통로였던가.

<귀면암과 일월암>


   계속 내려오면서 청아한 물소리에 내가 물이 되었는데. 이제는 단풍에 물들어 간다. 과연 이 모든 조화가 누구의 솜씨인가? 모든 산이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 가을이 불붙는다. 조금 늦은 지금도 가슴에 불붙는 가을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제때에 왔다면 어떠했을까? 지금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살아 숨 쉬며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단풍과 귀면암>


   몇 개의 언덕을 오르내리다가 도착한 곳은 구룡폭포이다. 구룡폭포(九龍瀑布)는 아홉 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진 형태의 다단폭포로 아홉 마리의 용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는 판상절리를 따라 흐르는 물의 침식작용으로 폭포가 형성된 이후 폭포가 점차 상류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폭포 아래에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의 침식에 의해 음푹하게 파인 폭호(瀑壺)가 형성되었다.

<구룡폭포(위)>

<구룡폭포(아래)>


   구룡폭포에서 아래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식당암이라는 너른 바위가 또 나온다. 식당암(食堂岩)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고려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내어줄 때 이를 반대하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천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들어와 성을 쌓고 훈련을 시킬 때 함께 식사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바위 한쪽에는 10여명의 사람 이름이 명필한문으로 암각 되어있다. 왜 이름이 여기에 올랐는지 부연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식당암>

<식당암에 새겨진 이름들>


   식당암 아래에는 소금강 내에 유일하게 있는 금강사(金剛寺)라는 사찰이 있다. 신라시대에 건립된 관음사가 있던 절터라고 하나 역사적 정확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1964년 김진홍이란 거사가 중건했다고 하며, 김진홍 거사의 사리탑과 법당, 종각, 요사채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나 시간에 쫓길까 봐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위치한 장소로 보아 소금강계곡과 주변의 아름다움에 반해 찾아오는 손님도 많을 것 같다.

<금강사 대웅전>


   절이 있어서 이제 계곡이 거의 끝나나 싶었는데 금강사를 지나 낮은 언덕을 넘으니 연화담과 십자소가 나온다. 연화담(蓮花潭)은 폭포 아래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연꽃봉우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폭호이다. 폭호(瀑壺)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과 함께 자갈 모래 등이 아래에 있는 기반암을 침식(浸蝕)하여 만들어 진다.

<연화당>


   십자소(十字沼)는 소금강계곡의 강바닥을 따라 발달한 열십자() 모양의 소이다. ()는 하천의 물굽이바깥쪽이 침식을 받거나 폭포가 후퇴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수심이 깊은 곳이다. 이 십자소는 계곡의 폭포가 점차 침식을 받아 후퇴하면서 물웅덩이가 생기고 양편에서 들어오는 조그만 계곡이 서로 교차하면서 열십자 형태를 갖추어 졌다고 한다.

<십자소>


   노인봉에서 십자소를 지나 오대산국립공원 지킴터가 있는 곳까지가 대한민국 명승 제1(1970)로 지정된 청학동 소금강계곡이다. 소금강(小金剛)은 오대산국립공원의 일부로 금강산 못지않은 장엄한 경치 뿐 아니라 고적(古蹟)으로도 유서 깊은 곳이다. 원래의 명칭은 청학산이었으나, 소금강의 명칭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청학산기(靑鶴山記)에서 유래한 것으로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금강 입구>


   조선 정조 때 이옥(李鈺, 17601812)이라는 사람은 그의 저서 <중흥유기(重興遊記)>에서 아름답기 때문에 왔다. 아름답지 않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佳故來 無是佳 無是來, 가고래 무시가 무시래)”라고 했다. 내가 비록 힘이 들지언정 소금강이 아름다워서 왔다. 아름답지 않았다면 나도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소금강 코스>

<소금강 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