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태안해변 길을 걸으며(바람길, 完)

와야 정유순 2017. 10. 27. 18:53

태안해변 길을 걸으며(바람길, )

(황포영목항, 20171026)

瓦也 정유순

   지난 4월 봄부터 걷기 시작한 태안해변 길이 이제 한 구간을 남겨 놓고 마지막 장정을 하기 위해 버스는 출발한다. 노을하면 저녁에만 붉게 타오르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아침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어 차창을 통해 가슴으로 깊이 스며든다. ! 나에게도 저렇게 붉게 타오르던 정열의 시절이 있었던가? 지난날의 나약했던 자화상을 그려보는 순간 내 얼굴도 살며시 붉어진다.

<아침 노을>


   지난달에 시간이 좀 남아서 1정도 더 걸어서 황포방조제를 건너온 지점이 오늘의 출발점이 되었다. 갯벌은 바닷물이 빠지고 민물만 흐르는 물길 옆에는 백로들이 외다리를 꼬고 망중한을 즐긴다. ‘대하(大蝦) 축제가 끝났는지 새우양식장도 큰일을 끝낸 양 한가롭다. 곰솔이 우거진 고개에는 명감 또는 망게라고 불리는 청미래덩굴이 붉은 열매를 구슬처럼 얼굴을 내민다.

<황포해변 갯벌>

<청미래덩굴>


고개 너머에는 운여해변이 기다린다. 운여(雲礖)라는 이름은 앞바다가 넓게 트여 파도가 높고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의 포말이 구름 같이 장대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운여의 ()’는 썰물 때는 바닷물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는 바다에 잠기는 바위를 말한다. 운여해안에는 운동장의 벤치처럼 축대를 쌓아놓았고, 해변 바닥의 모래톱에는 아주 작은 게들이 발자국 소리에 지진을 만난 양 구멍 속으로 숨기 바쁘다.

<운여해변으로 가는 고개>

<운여해변>

<운여>


발바닥을 모래에 적실 여유도 없이 언덕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면 운여해변의 앞 바다는 잔잔한 호수 같고, 앞으로 펼쳐지는 장삼포해변은 한 폭의 장엄한 산수화를 그리며 두 팔을 벌린다. <장삼포>라는 지명은 태안군 고남면 장곡3구에 위치한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대숙밭>이라고도 하는데, 대숙을 먹은 껍질이 밭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숙은 대수리의 방언으로 해안의 바위나 자갈 밑에 서식하는 고동의 일종이다.

<운여해안>

<장삼포해안>


장삼포해변은 조용한 바닷가의 정취가 물씬 풍겨 가족단위로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 같다. 전망 좋은 곳에는 이미 여러 펜션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지난여름 손님들로 붐볐을 것 같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려 멀리 못 보는 게 좀 아쉽지만 길고 넓은 해안선을 걸으며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곳으로 여겨진다.

<장삼포해변 펜션>


장삼포해변을 지나면 장돌해변과 바람아래해변이 연이어 나온다. 장돌은 마을 한복판에 크고 평평한 돌이 놓여 져 있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승천할 때 큰바람과 조수변화를 일으켜 지금의 모래사장과 둑이 형성 되었다는 바람아래해변은 한번 찾아온 관광객들은 다음에 꼭 찾아온다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한쪽으로 비켜선 숲에는 통발 등 버려진 어구(漁具)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주듯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해주면 반드시 크게 보답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

<어구쓰레기>


더욱이 바람아래해변은 멸종위기동물인 표범장지뱀을 비롯한 갯방풍 등 다양한 해안사구 생물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발생, 바다모래 채취, 탐방객들의 무분별한 이용으로 해안사구가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2013년 해변에 설치된 옹벽 등 인공구조물을 철거하고 대나무를 발로 엮은 모래포집기를 설치하여 자연해안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복원도 중요하지만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

<모래포집기>


장돌해변에는 천주교에서 세운 조각품인지 안내문이 없어서 정확히는 알 수가 없지만 예수님의 일생이 성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처음 눈에 띤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는 과정을 제자들이 우러러 보는 장면 같다. 이면에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라고 새겨져 있다. 이곳이 혹시 초기 선교과정에서 선교사들이 상륙한 곳인지? 아무도 대답이 없다.

<예수님의 승천>

<빈무덤>


옛날에 한 할머니가 말을 길렀는데, 어느 날 허기에 지친 말이 고삐를 풀고 풀밭으로 달아났다. 말에게 먹이려고 여물을 구해온 할머니는 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할미바위가 바다 멀리 가물거리고, 썰물 때 옷점항에 배가 닿지 않을 때 옷감교역이 이루어졌던 섬옷섬이 물 빠진 바다 위에 떠 있다.

<섬옷섬>


장돌해변과 바람아래 해변 등을 묶어서 장곡(長谷)해안이라고 한다. 장곡은 장돌귀골(-)’의 두 마을이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란다. 귀골은 마을의 지세가 거북이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거북이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변의 백사장에는 콩알 보다 작은 게들이 구멍을 뚫고 모래구슬을 뱉어내 생명이 살아 있음을 알린다.

<게 구멍과 모래구슬>


사막과 같은 모래언덕 아래로 바람도 비켜간다고 붙여진 바람아래해변에서 만()을 따라 조성된 제방 오른쪽으로는 갯벌이 잘 형성되어 있고, 왼쪽으로는 논이 발달되어 있다. 제방 입구에는 달맞이꽃이 방긋 웃으며 맞이해 준다. 고남방조제 둑에는 억새와 갈대가 어울려 춤을 추고 쑥부쟁이와 감국(甘菊)도 가을의 향기를 한껏 내품는 만큼 갯벌도로도 물 빠진 바다 끝으로 길게 뻗어 있다.

<고남방조제>

<방조제 위의 억새와 쑥부쟁이>


고남방조제 끝에서 우측으로 꺾으면 주꾸미 낚시로 유명하다는 조개부리마을(옷점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농촌과 어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농어촌마을 같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온 주민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한 조개부르기행사를 전승하는 마을이라 조개부리마을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이 마을에 있는 어항이 옷점항이다.

<조개부리마을>


마을 뒤편에는 태양광발전을 위한 집열판(集熱板)이 온 땅을 뒤 덮고, 옷점항은 배들은 물들어 오기를 기다린다. 갯벌체험장 옆으로 새로 난 길을 착각하여 조금 망설이다가 다시 접어든다. 어느 집 울타리에는 풍선덩굴이 꽈리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풍선덩굴은 해열(解熱)과 이뇨(利尿)에 효과가 있으며, 뱀에 물렸을 때 해독(解毒)제로 사용한다고 한다.

<태양광발전소>

<풍선덩굴>


조개부리마을을 지나면 가경주(佳景州)’마을이다. 마을이 아늑하고 자연이 수려하여 붙여진 이름 같다. 물이 들어찬다면 앞 바다를 오가는 배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상상으로 그려진다. 다시 언덕에 올라 고개를 넘어가는데 꾸지뽕이 빨간 열매를 내민다. 굿가시나무라고도 불리는 꾸지뽕은 길이가 5mm인 열매들이 모여 덩어리를 이루는데 지름이 23cm로 둥근 모양이고 먹을 수 있다. 잎은 뽕잎 대용으로 쓰고, 나무껍질과 뿌리는 약용으로 쓴다.

<가경주 해변>

<꾸지뽕나무>


<꾸지뽕나무 열매>


꾸지뽕 열매를 몇 개 따먹고 고개를 넘으면 바다를 품에 안은 것처럼 사리 때 마치 마을이 바닷물로 꽉 차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붙여진 만수동(滿水洞)이 반긴다. 이 마을은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만수(萬壽)골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을 지키는 할아버지는 바다일 나가기 전에 그물 손질에 바쁘다.

<그물 손질>

<만수동 해변>


만수동해변 끝에서 모퉁이를 돌아서면 태안해변 길의 마지막 지점인 영목항이다. 영목항도 어느 어항처럼 한가로이 배가 떠 있고 여유롭다. 동쪽으로는 보령 땅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빛의 조화를 이루겠다는 영목솔빛대교는 그곳을 향해 약6km의 길이로 길게 다리를 뻗고 있다. 그리고 항구 앞 시루섬을 디딤돌 삼으면 남쪽으로 방파제처럼 누워 있는 원산도를 한걸음에 갈 것 같다.

<영목솔빛대교>

 <영목항>


이 길이 끝나면 다음 길은 어디로 향할까? “끝이라는 것은 시작을 알리는 단순한 신호에 불과 하니까 다음 길을 향해 또 시작이다.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 이니까

  <태안해변길 7코스(바람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