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청호 오백리 길(여섯 번째)

와야 정유순 2016. 4. 21. 23:37

대청호 오백리 길(여섯 번째)

(방아실입구꽃봉이평리, 2016420)

瓦也 정유순

   오늘은 출발시간이 어느 때보다 한 시간 늦어 모든 스케줄이 순연되었다. 새벽부터 서두르는 것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으나 현장에서는 더 바쁘다. 출발지로 도착한 곳은 대청호 오백리 길 네 번째국사봉으로 가기 위해 들렀던 방아실입구(와정삼거리). 봄 길을 마중했던 산수유는 열매가 자리 잡아가고 있고 앙상했던 가지들도 푸른 잎이 수북하게 나와 제법 위상을 찾아간다. 증약초등학교 대정분교 옆으로 하여 국사봉과 꽃봉이 갈라지는 삼거리까지 숨차게 올라간다.


   꽃봉(284m)으로 가는 길은 오르고 내려가는 경사가 급하다. 어느 산이고 크기의 차이는 있겠으나, 산행하는 재미는 큰 산 못지않다. 가는 길옆에는 제발 저를 밟지 말고 사뿐히 가시라고 각시붓꽃이 존경하는 눈초리로 환하게 웃는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땅에 납작 엎드린 각시붓꽃이 정말 발부리에 밟힐까봐 대단히 조심스럽다.


   꽃봉 정상에는 특별한 꽃이 없었으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대청호의 모습이 어느 꽃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숨 가쁘게 올랐던 산에서 내려오는 발길은 한없이 가볍다. 봄노래가 코를 통해 저절로 나온다.


   숲과 이어진 밭과 마을에는 왕벚꽃, 영산홍, 홍도(붉은 복사꽃) 등 봄꽃들이 휘 늘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감흥도 잠시뿐 가는 길마다 사유지라는 이름으로 막히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겨우 명당자리를 찾아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오전을 마무리한다.


<왕벚꽃>


<영산홍>


<홍도>

   점심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도 심상치 않다. 길 같은 흔적은 나있으나 넝쿨식물들이 길을 막고 있었고 종내는 길이 막히고 만다. 산 밑으로 길이 보이는 것을 보고 무작정 내려간다. 스틱으로 몸을 의지하며 급경사를 겨우 내려갔는데 사람 키보다 더 깊은 큰 도랑의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건너야 한다.


   그나마 풍성한 봄의 꽃들의 마중을 받으며 길을 찾아 가는데 가는 곳마다 되돌아 나와야 했다. 두릅을 재배하여 파는 아주머니에게 마을 이름을 물어보니까 이시울마을이라고 한다. 좁은 도로를 따라 큰 길을 찾아 나오는데, 승용차들이 심심찮게 들락거린다. 금옥골 정자의 느티나무는 연초록 빛깔을 더 물들이고 돌배나무의 하얀 꽃은 더욱 소담하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오는데 이시울고개라는 이정표도 보이고, 국도4호선(충청남도 장항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 겨우 다다른다.

<느티나무>

<돌배나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항곡리 항골삼거리 까지 딱딱하게 걸어가는데, 길옆의 홍도(紅桃)는 더 붉게 물들이며 응원하고, 대청호의 끝자락이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 사이에서 어렵게 자리 잡은 토종인 하얀 민들레의 영접을 받으며 항골삼거리에서 좌측 소로(小路)를 따라 꺽어 들어간다.



   항골마을을 지나 임도(林道) 같은 소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대청호 건너에는 오전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잠시 길을 해맨 꽃봉이 마주한다. 길을 따라 더 높이 올라 갈수록 길옆의 병꽃은 봄 향기를 유감없이 발산하며 봄 길로 유혹하고 힘겹게 올라간 길의 정상에는 공곡정이란 정자가 있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대청호와 꽃봉>


 <병꽃>


   숨을 고르고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니 옥천군 군북면 이평리 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호수 쪽으로 뻗은 산자락을 잘라내어 만든 도로를 지나 보현사입구에 오니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 된다. 당초 계획에는 호수 위에 떠 있는 병풍바위로 잘 알려진 부소담악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는데 오전부터 길을 잃어 해맨 결과 다녀올 시간이 없어서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 주려는 듯 무리지어 피어 있는 봄꽃들의 뒤편에는 박태기나무가 꽃을 붉게 피우며 다음에 꼭 오라고 손짓한다.

) --> 

박태기 꽃

 

밥풀대기

 꽃망울이 너무 붉어

눈이 시리다

도둑맞은 첫사랑이

다시 돌아온 양

가슴이

너무 시리다

 춘삼월

주린 배 움켜잡고

봄갈이 하던

그때가 하도 서러워

얄미운 세월이

너무 시리다(瓦也)


  ) -->  <박태기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