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씨버선 길 도보여행 동행 기
(치유의 길<7길>, 2016년 4월 17일)
瓦也 정유순
어제 비가 내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 새벽에는 비가 그쳤다. 신청을 늦게 하여 좌석은 버스 맨 뒷자리에 배정 받아 장장 세 시간 반에 걸리는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벌매교에 당도한다. 벌매교를 건너 반변천을 따라 ‘외씨버선 길’을 걷기 시작하여 7코스가 시작되는 일월산자생화공원 까지는 약4km길이다.
많이 내린 비 때문인지 계곡의 물은 폭포처럼 넘쳐흐르고 소리 또한 생명의 힘이 솟는다. 조금 얕은 길은 물이 넘쳐 지나가기 어렵고, 농업용으로 만든 도랑을 넘다가 미끄러져 물에 빠지기도 한다. 산중이라 그런지 매화는 늦게 만발하였고, 물살에 떠밀릴 것 같은 노란 꽃 산괴불주머니 한 무더기는 안간 힘을 다해 뿌리가 바닥을 휘어잡는다.
<산괴불주머니>
징검다리도 물이 돌 위에 까지 넘실거려 건너기가 여간 조심스럽게 건너 다다른 곳은 일월산자생화공원이다. 일월산자생화공원은 1939년에 건너편 일월산에서 채굴한 금속광석을 이곳 용화 선광장(選鑛場)으로 운반하여 금(金) 은(銀) 동(銅) 연(鉛) 아연(亞鉛)을 약40여 년 간 생산한 곳으로 주변이 카드뮴(Cd) 비소(As) 납(Pb) 등 중금속으로 오염된 지역이었으나, 정부의 폐금속광산복구사업의 일환으로 일월산자생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공원 안에는 이곳 출신인 조지훈시인의 시(詩) 승무(僧舞)가 매끈한 오석(烏石)위에 그림과 함께 새겨져 있다. ‘외씨버선 길’이란 이름이 길의 모양이 외씨버선을 닮아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조지훈의 시 승무의 중간 연에 나오는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의 “외씨버선”에서 따온 ‘외씨버선 길’이란 이름이 붙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청송에서 영양과 봉화를 거쳐 영월에 이르는 이 길은 개그맨 전유성이 쓴 “외씨버선 길”이란 설명문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자생화공원 안에는 봄꽃들은 얼굴을 다 내밀고 봄날을 노래하지만 좀 늦게 나오는 식물들은 싹을 움트기 위해 온갖 생명의 힘을 부풀린다. 봄 소풍을 온 듯 공원 안의 정자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즐겁게 시장기를 달래고 외씨버선 길 7코스 걷기를 시작한다. 벌매교에서 걸어온 십리길보다 걷기가 더 좋은 것 같은 31호 국도를 가로 질러 대티골마을 입구로 접어든다. 대티골마을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일월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고, 이 산 허리를 감고 도는 임도(林道) 같은 옛 국도가 지친 도시인들에게 청량한 공기로 다독여 주는 ‘치유의 길’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일월산(1219m)은 경북내륙의 최고봉으로 산이 높아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와 달을 먼저 본다고 해서 일월(日月)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하며, 동쪽으로는 일자봉(日字峰)으로 이산의 주봉이고, 서쪽으로는 월자봉(月字峰, 1,170m)이 자리하여 산세가 넓고 장중하며 정상부근에는 천문대도 있다.
그리고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이 일월산에서 발원하는데, 청송군 진보면에서 용전천과 합류하여 임하댐을 이루고 안동시 길안면에서 길안천과 만나 서서히 흐르다가 낙동강에 합류하는 낙동강 제1지천으로 경북 동북부 산간지역의 삶과 문화가 유유히 흐르는 생명의 강이다.
지금은 포장이 잘 되고 직선화되어 있는 제31호 국도는 부산에서 함경남도 안변까지 연결되는 도로이나 지금은 경북 청송, 영양, 봉화, 강원도 태백, 영월, 홍천, 인제를 거쳐 양구군 동면까지 이어져 있다. 지금 걷고 있는 구간은 일월산 허리를 휘휘 감고 돌아가는 옛 국도로 지금은 임도로 사용하는 것 같다. 봉화 쪽으로 넘어가는 입구에는 ‘자연치유 생태마을 대티골’이란 간판과, ‘7길 치유의 길’이 시작된다는 이정표를 따라 대티골로 접어든다.
집집마다 북 같은 예쁜 팔각형 문패가 특이하고 산속의 벚꽃은 터널을 이룬다. ‘자연생태마을’로 정부로부터 지정도 받았고, 길옆에는 외씨버선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돌담처럼 서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운 사람에게∼, 자기가 자기에게∼ 편지를 써 보는 희망우체통이 손 편지를 쓰던 옛날의 낭만을 가슴 아득히 먼 곳에서 추억을 끄집어낸다.
자생화공원에서 경사가 완만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칠밭목 삼거리에는 빛바랜 옛 국도 이정표가 일제강점기에 금속광물의 수탈목적으로 만들어진 도로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벌목이 성행하던 1960년대에는 지에무시(GMC)트럭이 곧고 미끈한 금강소나무를 가득 싣고 쉴 새 없이 넘나들던 삶의 애환과 땀방울이 길바닥에 고스란히 서려있는 것 같다.
일월재 바로 밑 작은 개울을 건너니 봉화군 소천면이다. 금강소나무가 무리지어 길을 안내하는 잘 포장된 길을 따라 쭉 내려오니 오늘의 걷기 종점인 우련전이 나온다. 진행자의 리드에 따라 ‘고향의 봄’ 등의 봄의 합창이 애잔한 추억을 쌓아주고, 같이 함께 한 도반님의 꾀꼬리 같은 미성으로 부르는 ‘봄 처녀’는 오늘 우리가 지나온 ‘치유의 길(7길)’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악산과 구이저수지 (0) | 2016.04.25 |
---|---|
대청호 오백리 길(여섯 번째) (0) | 2016.04.21 |
섬진강 530리를 걷다(네 번째, 完) (0) | 2016.04.12 |
대청호 오백리 길(다섯 번째) (0) | 2016.04.08 |
안양천 벚꽃 터널 (0) | 2016.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