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청호 오백리 길(다섯 번째)

와야 세상걷기 2016. 4. 8. 00:41

대청호 오백리 길(다섯 번째)

(법수리신남면사무소, 201646)

瓦也 정유순

   대청호 오백리 길 걷기 가기 전날 밤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을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는 것은 나만의 일인가? 그렇게 집을 나와 버스에 몸을 실으면 눈꺼풀은 왜 이리 무거운지창밖으로 펼쳐지는 세월의 풍경을 비몽사몽으로 놓치면서 길을 나선다. 그래도 생명이 꿈틀대는 봄의 소리는 전파를 타듯 전류처럼 내 몸으로 흐른다.


   버스에서 내려 첫 걸음을 내디딘 보은군 회남면 법수리는 온통 벚꽃이 만발한 봄꽃 세상이다. 이곳 법수리는 약400여 년 전에 병자호란을 피해 들어온 광산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때부터 마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을 동쪽에는 국사봉이 있고, 남쪽의 성황당고개 능선은 대전광역시와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북쪽에는 양지산이 우뚝하여 북풍한설을 막아주는 아늑한 고장으로 대부분의 옥토가 물에 잠겼지만 대신 도로가 개설되어 더 좋아졌다고 한다.



   회남대로(지방도로 571) 옆 샛길을 따라 형골마을로 진입하여 수선화가 만발한 어부동연꽃마을 생태체험관을 지나 산수리로 넘어가는데 어부동 날망이란 푯말이 나온다. “날망은 지붕이나 언덕의 마루를 나타내는 이 고장의 사투리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를 위한 아주 작은 설명이라도 붙여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산수리로 접어드니 길가의 야생복숭아나무가 복사꽃 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한다. 대추밭과 복숭아밭이 어우러진 산수리계곡은 봄의 향연이다. 꽃이 만발해서가 아니라 가마솥처럼 옴폭 파인 계곡에는 금년 한해를 영글게 하는 생명의 소리가 고동을 치기 때문이리라. 매산리 호반으로 내려가는 나를 자꾸만 뒤 돌아보게 한다.



   만수(滿水)가 되지 않아 속살을 들어 낸 호반 비탈을 뒤뚱뒤뚱 걸으며 풀 섶 사이로 자리하는 온갖 생명들이 심장을 뛰게 한다. 곰보배추가 포기를 만들어 건초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도마뱀도 그 사이로 봄을 만끽한다. 상수원보호를 위해 낚시를 금지한다는 문구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몫이 좋은 지점은 어김없이 꾼들이 모여든다. 환경을 보호하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확보하려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지 수변 곳곳에 버려진 빈 깡통과 물병 등이 심하게 널려 있다.


   매산리 숲길은 솔 향이 가득하다. 오솔길에 쌓인 낙엽은 푹신하면서도 걸음의 속도는 비례하여 느려진다. ‘대청호 오백리길이라고 쓰인 손바닥만 한 안내판에 의지하여 길을 찾는데 들어간 길이 막혔다.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확인하니까 붙어 있는 방향이 삐딱하다. 그러나 가끔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다른 새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덕분에 구경 한번 잘했다.


  봄 향기에 취해 있는 동안 벌써 아침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도시락으로 오전을 정리한다. 대청호 주변에는 묘()들이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후손들이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지극한 것 같다. 회남대교 쪽으로 나오는 길목에는 가지가 밑으로 처진 소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으며, 양지바른 쪽의 복사꽃은 활짝 만개를 하였고, 회남대로(571호 지방도로)는 벚꽃으로 터널을 이룬다. 호수 안의 수초 재배지에도 푸른빛으로 봄을 알린다.



   회남대교(懷南大橋)는 폭 10m, 길이 452m2차선 교량으로 회남면 매산리에서 어성리를 연결하는 다리다. 대청호 완공 무렵에 준공되었는데 높이가 60m(상판포함)이며 수평다리가 아닌 1% 경사진 다리로 다리 아래 대청호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어성리 쪽 다리 끝에는 소중한 당신! 당신은 희망이요. 사랑입니다” “쉼표가 필요할 뿐이예요! 당신의 힘이 되어 드릴께요등 투신자살(投身自殺)을 방지하는 의미의 표어가 계속 뜬다.



    다리 건너 어성리 쪽으로는 도로를 내면서 산자락의 허리를 싹둑 끊어 놓아 흉물스럽다. 느낌이 내 육신의 일부분이 잘린 기분이다. 그리고 낙석을 방지한다고 그물을 거미줄처럼 쳐 놓았는데 언제까지 그물에 의지할 것인지벚꽃 길을 걸어 양지공원 입구에는 명자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반겨준다. 평일임에도 주차장에 자동차가 많은 것으로 보아 대청호를 찾는 상춘객(賞春客)이 많은 것 같다.





   다시 꽃길을 걸어 나오는데 대청호에 물이 차면서 수몰된 마을 주변에는 신곡공원’ ‘정문공원등 공원이 조성되어 이곳을 떠났던 실향민과, 나그네가 지나가면서 쉴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남대문교(南大門橋)를 지나 회남면사무소 입구에서 오늘을 정리한다.





   이번 대청호 오백리 길(다섯 번째)을 걸으면서 느낀 단상은 역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의 딱딱한 길바닥과 오고가는 자동차의 피로감 때문인지 피로가 빨리 오는 것 같다. 기왕에 도보 길을 만들려면 자동차 도로 옆으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이러한 사소한 점들이 배려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