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나흘(1)
(2022년 3월 31일∼4월 3일)
瓦也 정유순
1. 행남해안길(저동항∼도동항, 2022년 3월 31일)
봄비가 오락가락하는 자정 무렵에 울릉도를 가기 위해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있는 강릉항으로 출발한다. 강릉항은 안목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항구로 조선 후기까지는 견조도(堅造島)라는 섬이었으나, 현재는 육계도(陸繫島)가 되었다. 안목이란 이름은 원래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라는 뜻의 ‘앞목’이었으나 발음이 점차 ‘안목’으로 순화 되었다. 강릉 남대천 하류에 있는 항구로 백사장과 곰솔이 유명하고 지금은 커피타운으로 더 유명하다.
<강릉항여객터미널>
오늘 가는 울릉도(鬱陵島)는 바다 속의 거대한 화산이 솟아 오른 상층부의 일부분으로, 즉 빙산의 일각 같은 섬이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지질은 해안선이 단조롭고 섬의 중앙부에는 성인봉이 솟아 있다. 울릉도에는 평지가 거의 없고 동서 길이 10㎞, 남북 길이 9.5㎞, 해안선 길이 56.5㎞에 이르고 연평균 기온이 섭씨 12도로 온화한 날씨를 이룬다. 67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32종의 특산물과 8종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울릉도에는 도둑 공해 뱀이 없고(3무), 향나무 바람 미인 물과 돌이 많다(5다).
<울릉도>
강릉항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조반을 하고 울릉도 저동항으로 향하는 선박은 아침 8시에 뱃고동을 울린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중략)”가요 <울릉도 튀위스트> 가사 내용이다. 방파제를 벗어나 망망대해에 들어서자마자 배 전체가 울렁 댄다. 흔들림 자체가 심하여 무엇이든 잡지 않으면 서 있기가 불가능하다. 승선하기 한 시간 전에 멀미약을 복용했지만 소용없었다. 난생 처음 배 멀미를 해보았다.
<강릉~저동 여객선>
<저동항여객터미널>
세 시간 반 동안 그렇게 흔들어 대던 쾌속선도 시간이 지나니까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리자 약간 후유증이 있었으나 금방 사라진다. 짐은 우선 숙소로 먼저 보내고 가까운 식당에서 따개비빔밥으로 속을 채운다. 쫄깃하고 고소하며, 파르스름한 빛이 도는 따개비 밥을 한 입 먹으면 향긋한 바다 냄새가 느껴진다. 속이 확 풀리면서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점심 수저를 놓자마자 바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오늘 첫 코스는 저동항에서 옛길을 따라 도동항으로 넘어가는 ‘행남해안길’이다.
<저동항>
저동은 옛날 개척 당시 해변에 모시조개가 많이 자생하여 ‘모시가 많은 갯벌’이란 의미로 ‘모시개’로 부르다가 한자로 ‘모시 苧’자를 써서 苧洞(저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된 저동항은 울릉도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오징어잡이 성수기가 되면 배들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저동어화(苧洞漁火)>는 울릉 8경 중 하나라고 하나, 그 화려한 불빛은 기후변화로 오징어 어장이 바뀌면서 옛날만 못한 것 같다.
<저동>
저동의 좁은 골목을 헤집고 나가 저동∼도동 옛 길로 들어서면 촛대바위가 반겨준다. 저동항(港) 방파제에 맞붙어 있는 저동의 상징바위로, 바위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 광경이 일품이라고 하며, 부근은 낚시터로 이용된다. 원래 바위 섬이었으나 방파제와 맞붙게 되어 일부분이 되었다. 촛대바위는 효녀바위라고도 불리는데 홀아버지와 살던 딸이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어려 있다.
<촛대바위>
어디든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다. 산 말랭이에 삐죽이 보이는 ‘도동(행남)등대’를 향하여 ‘소라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 역시 가파르다. 계단을 올라 철조망을 따라 벼랑 길을 지난다. 활짝 핀 동백꽃의 환한 미소를 받으며 더 높이 올라갈수록 저동항과 마을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방파제로 밑 둥을 묶여버린 촛대바위가 한없이 애잔하게 보인다. 저동항 앞바다에는 북저(北苧)바위가 있고, 멀리 죽도도 보인다.
<죽도(상) 북저바위(중) 촛대바위(하)>
저동항에서 행남마을까지는 원시림과 울릉특산 희귀식물 군락을 이루고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시누대 숲을 지나 행남삼거리에서 곰솔이 도열한 길을 따라 도착한 도동(행남)등대의 정식 명칭은 <도동항로표지관리소>로 울릉도 동쪽 끝 해발고도 108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1954년 12월 19일 무인 등대로 설치되었으며, 1979년 6월 유인 등대로 전환되었다. 2007년 10월에 등대시설을 개량하여 등대 높이를 당초 9.1m에서 22m 흰색 원형 등탑으로 만들었고 최신형 등명기가 설치되었다.
<도동(행남)등대>
곰솔 길을 되돌아 나와 행남마을 삼거리에서 다시 도동항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래된 곰솔 아래에는 털머위의 행진이 끝없이 펼쳐진다. 작은 키에 넓적한 얼굴을 든 털머위의 반질반질한 잎사귀는 청정 울릉도를 웅변하면서, 노란 꽃으로 물들 가을이 그려진다. 비탈진 길 왼쪽 밭에는 풀들이 무성하고 그 위에는 염소들이 풀을 뜯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소리에 귀를 쫑긋한다. 그 맞은편 카페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와 콧소리로 흥얼거린다.
<울릉도 털머위>
우리가 걷고 있는 산책로는 이름이 <행남해안산책로>와 <도동해안산책로>로 혼용되고 있으나, 주민들 대부분은 행남해안산책로로 부른다. 행남(杏南)은 산책로 끝에 위치한 옛 마을의 이름이다. 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살구남’으로도 부르는데, ‘살구 杏(행)’자로 한자화하여 행남으로 된 것 같다. 그리고 ‘도동(道東)’이란 지명은 ‘도방청(道方廳)’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번화한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도동항으로 가는 곰솔길>
도동해안산책로는 울릉도 초기 화산 활동의 특징을 간직한 다양한 지질구조가 관찰되는 것 같아 가장 울릉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같다. 행남마을에서 도동항 까지는 바다 절경과 기암괴석이 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게 한다. 해안의 암석들은 금방 용암이 식어 굳어진 것처럼 보이고, 하부로부터 현무암질 용암류, 암석조각들이 산사태로 운반되어 만들어진 재퇴적쇄설암(再堆積碎屑巖), 화산재가 뜨거운 상태에서 쌓여 생성된 이그님브라이트, 분출암(噴出巖)의 일종인 조면암(粗面岩)이 분포한다.
<응회암>
<이그님브라이트>
<조면암>
해안 길은 중국의 잔도(棧道)를 연상케 하지만 진한 쪽빛 바다가 숨 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갈매기와 벗을 삼아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마자 펼쳐지는 동해의 물결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청정한 미역이 자라는 해안 절벽 계단을 따라 오르내리고, 바람이 뚫어 놓은 굴을 지나며 맑고 투명한 물빛을 보노라면 마치 섬과 바다 사이에 흐르는 한 점 바람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니 내 몸속에 무겁게 찌든 세월의 오물(汚物)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다.
<행남해안길>
<쪽빛바다와 갈매기>
해안길 도동항 쪽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도동항여객터미널 옥상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저동에서 해안을 따라 지나왔던 절경들이 보이고, 북으로 바라보면 도동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옥상에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표현한 태극조형물이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독도’라고 표시하고 한쪽에는 오징어를 잡아 가공하는 동상이 울릉도를 상징한다. 여객선터미널 옥상 바로 위쪽으로는 위태로운 절벽 위에는 수령 2,000년이 넘은 향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새벽을 여는 독도' 태극조형물 >
<수령 2,000년 이상 향나무>
도동항을 돌아 서쪽 해안으로 길을 따라 들어갔으나 길을 막혀 되 돌아와 도동 골목을 통과하여 독도전망대로 향한다. 도동 중심가에는 적산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이 가옥은 1910년대 일본인 벌목업자가 지은 2층 목조건물로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이다. 해방 후 2008년까지 여관과 개인주택으로 사용되었다. 보존도 좋지만 역사를 바로 알리는 참 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적산가옥(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
오르막길로 약 1㎞쯤 걸어 올라가면 독도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 승강장이다. 이번 여정에서 접안이 불투명하여 독도를 가지 아니하는 대신 독도전망대에 올라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를 다시 생각해 본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뻔뻔하게 일본은 독도가 자기의 땅이라고 우기지만, 독도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이는 양보할 수 없는 진리이며 진실이다.
<독도전망대의 독도방향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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