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울릉도에서 나흘(2)

와야 정유순 2022. 4. 14. 05:24

울릉도에서 나흘(2)

(202233143)

瓦也 정유순

 

2. 성인봉 산행(도동성인봉추산, 202241)

 

  어젯밤 도동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교통카드 태그가 가능한 섬일주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이라 방향감각이 없었는데 곤한 잠을 자고 동창이 밝아와 눈을 떠 보니 울릉군 북면 현포리의 송곳산 아래에 있는 팬션이다. 창밖으로는 바다에 솟아 있는 공암(코끼리바위)이라는 바위섬이 우뚝하고 좌측으로 작은구멍바위섬이 동해의 여명을 맞이한다

<공암(우)과 작은구멍바위섬(좌)>
 

  조반을 마무리하고 다시 섬일주버스를 타고 도동으로 나와 택시로 다시 성인봉주차장까지 이동하여 여장을 점검한다. 여장을 꾸릴 때 옆에서 지켜보시던 주민들은 아직도 성인봉의 잔설이 많이 있어서 조심히 다녀오라고 일러주신다. 택시 기사도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급경사 계단이 잔설에 묻혀 어려울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나 오늘의 일정은 KBS중계소 부근의 성인봉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성인봉에 올랐다가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소요시간은 약 6시간 정도 예상한다

<성인봉가는길>
 

  성인봉 등산로 푯말을 따라 짧은 임도를 지나 기분 좋은 흙 길이 펼쳐진다. 숲 길로 들어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울릉읍 도동리가 V 계곡 품에 안겨 포근하게 자리한 모습이 보이고 서남쪽 아래로는 울릉중학교가 보인다. 오르막길을 따라 숨소리도 거세진다. 서어나무 닮은 수피(樹皮)가 하얀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는데, 울릉도에는 너도밤나무와 우산골쇠나무가 우점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도동 전경>
 

  우산고로쇠처럼 이름에 우산이 붙은 것은 이곳 우산국(于山國)에서 난다는 뜻 같다. 울릉도에는 약 300여개종의 식물이 자리한다. 특이한 식생을 두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깊이 있는 지식 없이도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섬피나무와 너도밤나무 등에 눈길이 간다. 섬조릿대는 성인봉 지천에 자리한다. 울릉도에 식생(植生)하는 섬노루귀·섬바디 등은 섬에서만 나는 희귀식물이라는 뜻 같다. 양치식물인 섬고비는 아기 손 같은 새싹을 수줍게 오므린다

<섬고비(양치식물)>
 

  너도밤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높이가 20m에 달한다. 울릉도 특산으로 해발 300900m에 분포하며, 줄기는 곧게 자라서 원추형의 나무모양을 이루고, 나무껍질은 회백색으로 평평하고 매끄러워 육지의 서어나무와 구별이 힘들었다. 세계적인 조림수종이며, 목재는 재질이 우수하여 건축재·가구재·선박재·펄프재 등으로 쓰이고 껍질에서는 염료를 얻는다. 가을에 익는 종자를 채취하여 노천 매장하였다가 봄에 파종한다

<너도밤나무 숲>
 

  정상을 향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겨울에 내린 잔설(殘雪)이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걸음을 더디게 한다. 출렁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를 때는 어느 곳이 계단이고 길인지 분간하기 힘들 때도 있다. 해발 600를 지나면서부터는 완전히 눈길이라 가끔은 미끄러져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이 좋아했다는 서산대사의 시가 갑자기 생각난다.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후일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성인봉의 잔설>
 

  앞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열심히 걸으면 정상이 가까워 온다. 섬말나리와 섬현호색 보존지역을 지나 정상에 가까울수록 쌓였던 눈은 보이지 않고 정상부근을 휘감은 섬조릿대 사이를 헤치고 올라서면 성인봉 정상이다. 섬조릿대는 울릉도에서만 서식하는 특산식물이다. 제주도 한라산은 조릿대가 이상 번식하여 골칫거리가 되었는데, 울릉도에서는 어떤 취급을 받는지 모르겠다. 섬조릿대와 비슷한 식물로 특산식물인 고려조릿대가 있는데, 섬조릿대는 고려조릿대보다 잎이 더 크고 가지가 적게 난다고 한다

<성인봉 섬조릿대>
 

  울릉도 탄생을 알리는 시작점이자 최고봉인 성인봉(聖人峰, 986)은 화산암층에 덮여 지형이 약간 완만하며, 산의 정상에서 침식곡이 방사상으로 해안으로 향하여 발달해 있다. 그리고 성인봉 북쪽에는 나리분지(칼데라)가 있어 성인봉과 함께 생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 울릉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식생의 문화까지 이곳의 속살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성인봉>
 

  성인봉은 울릉읍과 서면, 북면의 행정 구역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또한 울릉도의 모든 하천 수원의 발원지이며, 성인봉을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식물과 조류, 원시림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성인봉은 형제봉·미륵산·나리령 등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거느리며, 정상 부근에 있는 원시림은 천연기념물(189)로 지정되어 있다

<성인봉 원시림>
 

  울릉도 성인봉 원시림(原始林)은 오랜 기간 동안 중대한 피해를 입은 적이 없고 인간의 간섭을 받은 적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숲을 말한다. 성인봉 정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숲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인 너도밤나무, 섬조릿대, 솔송나무, 섬단풍나무 등 나무와 섬노루귀, 섬말나리, 섬바디 등 풀이 있다

<성인봉의 잔설(殘雪)> 

 

  그리고 울릉도 산지에는 화산의 영향으로 부석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부석(浮石)은 화산이 폭발할 때 지하의 마그마가 속에 있던 가스들은 지표로 올라온 용암 속에서 공기방울을 만든다. 이 용암이 폭발에 의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공기방울이 빠져 나가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암석이 되는데, 이 암석들은 수많은 기공 때문에 물에 뜰 정도로 가벼워는데 이를 부석이라고 한다.  5,000년 전에 울릉도에 마지막 화산폭발에 의해 형성된 부석이 풍화되어 토양층을 형성하였고, 원시림 조성의 기반이 되었다

<부석>
 

  성인봉에 오른 김에 이곳에서 도() 닦아 성인(聖人)이라도 되어볼까 하는 망상도 해보았지만, 정상의 좁은 공간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뒷물에 밀려 바다로 향하는 장강의 앞 물처럼 뒤 따라 올라오는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나리분지로 향하는 급경사 계단은 여간 조심스럽지만, 성인봉을 올랐다는 자부심의 발로인지 계곡의 잔설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경쾌한 행진곡으로 들려온다. 아니 삼라만상의 모든 목소리를 모아 아름답게 함창(含唱)한다.

<나리분지 쪽으로 가는길>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은 듯 한참을 내려오면 나리분지로 가는 길과 알봉둘레길로 가는 갈림 길에는 <억새 투막집>이 곱게 단장을 하고 기다린다. 이 집은 1883년 울릉도 개척 당시 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투막집으로 1945년대에 재건축한 것이다. 4칸의 일자집으로 지붕과 집 주위를 새로 엮은 우데기로 둘러쳤다. 큰방과 작은방 정지(부엌)을 사이에 둔 마구간도 귀틀로 되어 있고, 정지는 바닥을 낮게 하여 부뚜막을 설치하고 방구들도 놓았다. <울릉나리억새투막집>은 국가민속문화재(257)로 지정되었다

<억새투막집>
 

  울릉 나리분지에는 밤에 그 향기가 백리를 간다는 섬백리향 군락지가 있고, 특히 섬바디라는 목초는 크게 각광을 받으면서 섬 전역에 대대적으로 파종되었다. 줄기를 쪼개어 보면 우유 같은 하얀 진액이 흘러나오는데, 울릉도에서는 돼지가 좋아한다고 해서 돼지풀 이라고도 부르며, 울릉 오미 중의 하나인 울릉약소도 주로 섬바디를 비롯한 약초를 먹여서 키운다

<섬바디(돼지풀>
 

  알봉둘레길은 알봉을 중심으로 길이 나있다. 알봉(538)은 나리분지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작은 이중화산으로 정상에는 분화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20세기 초 전라도 사람들이 울릉도에 와서 배를 만들 나무를 구하러 산을 올랐다가 마치 알처럼 생긴 봉우리를 발견하면서부터 알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알봉은 나리분지가 형성된 후에 형성되었다

<알봉-네이버캡쳐>

 

<알봉지도>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하여 화산이 만들어지면서 마그마가 수축하였고, 이로 인해 마그마 위해 있던 화산이 무너져 내려 나리분지가 만들어졌다. 그 후 마그마가 나리분지의 틈을 따라 분출하였는데 멀리 흐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봉긋한 돔의 형태로 알봉을 만들었다. 알봉에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다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되어 북동쪽에 나리마을, 남서쪽에 알봉마을이 있다

<나리분지-네이버캡쳐>
 

  나리분지는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지대로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조 때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수백 년 비워 오다가 고종(高宗) 때 개척민들이 들어왔는데, 옛날부터 정착한 사람들이 산야에 많이 자생하고 있는 섬말나리 뿌리로 연명하였다 하여 나리골이라 부르다가 한자화 하면서 비단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羅里(나리)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지역에는 지금도 나리가 아주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섬말나리-네이버캡쳐>
 

  알봉둘레길을 따라 알봉과 형제봉 사이의 밭을 따라 내려온다. 밭 가운데는 허수아비 한 쌍이 웃음을 선사해 주고, 밭 가장자리에는 솟대가 하늘을 향한다. 솟대는 삼한(三韓)시대에 신을 모시던 장소인 소도(蘇塗)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긴 장대 끝에 오리 모양을 깎아 올려놓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간(神竿) 역할을 하여 화재, 가뭄, 질병 등 재앙을 막아 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소도에 세우는 솟대[立木]가 그것이며, 소도라는 발음 자체도 솟대의 음이 변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솟대>
 

  알봉을 지나면 울릉군 북면 정수장이 나오고 그 아래로는 송곳산[추산(錐山, 452)]을 배경으로 성불사라는 절이 있다. 남쪽의 도동에서 출발하여 성인봉을 넘어 북쪽으로 내려오는 동안 울릉도는 너도밤나무, 우산단풍나무, 곰솔,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목본류와 명이나물, 부지갱이나물 등 각종 초본류가 어우러져 생태계를 더 두텁게 한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었지만 아직도 중천이다. 추산몽돌해변을 거쳐 숙소에 도착하여 울릉도에서 두 번째 날을 마감한다

<송곳봉과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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