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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8-1)

와야 정유순 2021. 10. 18. 03:0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8-1)

(2021 9 39 14)

瓦也 정유순

<8-1> 낙안읍성  보성녹차 밭

(2021 9 10)

 

  초가 지붕 위로 얹힌 박이 탐스럽고 저녁이면 하얀 연기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옛 고향 정취가 새삼 떠오르는 마을이 있는 낙양읍성을 향해 발걸음은 바쁘다. 송광사를 출발하여 낙안읍성의 진산(鎭山)인 금전산(金錢山, 668) 자락을 넘어 낙안읍성 서문에 도착하여 읍성 안으로 들어간다. 원래 정문인 동문으로 들어가야 했으나 바쁜 일정 상 서문부터 시작하여 북쪽 성벽 위를 따라 동문과 남문을 거쳐 마을을 관통하여 길을 따라 동문으로 나온다

<낙안읍성 지도>

 

<낙안읍성 배치도>

 

  넓은 평야지대에 축성된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일대에 있는 민속마을로 사적(302)으로 지정되었다. 총길이 1,420m, 높이 4m, 너비 3~4m의 네모 형 석성으로 1~2m 크기의 정사각형 자연석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아 끊어진 곳이 없이 웅장하다. 1397(태조 6) 왜구(倭寇)가 침입하자 김빈길(金贇吉)이 의병을 일으켜 처음 토성을 쌓았고, 1626(인조 4) 임경업(林慶業)이 낙안군수로 부임했을 때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하였다. 동내, 서내, 남내 등 3개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낙안읍성 마을>

 

  이후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쌓으면서 성의 규모가 커졌는데, <세종실록>에 의하면 당시 둘레 2,865, 높이는 9.5, 여장(女牆) 420개로 높이가 2.5, 옹성(甕城) 없이 문이 세 곳이었고, 적대(敵臺) 12개가 계획되었으나 4개가 만들어졌다. 성안에는 우물 2개와 연못 2개가 있었으며, 성 밖의 해자는 파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문의 보호를 위해  옹성이 설치되고, 여장은 모두 붕괴되었다

<낙안읍성 성벽 위의 길>

 

  읍성 안은 동문에서부터 서문 쪽으로 난 큰 도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으며, 남문에서 진입하는 도로가 동서 도로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면서 T자형을 이룬다. 마을을 관통하는 동서 방향 도로의 북쪽에는 동헌과 객사를 비롯한 관아 건물이, 남쪽에는 민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관아 지역에는 동헌과 객사가 동서로 나란히 남문을 향해 있다. 동헌은 조선시대 수령(首領)의 집무처이며, 객사(客舍)는 외빈이나 출장을 온 관리들을 맞이하는 곳으로 영빈관이라 할 수 있다

<낙안읍성 홍살문>

 

  전설에 따르면 낙안읍성은 1626(인조 4)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큰 칼로 낙안마을 뒤에 있는 금전산의 바위들을 내리쳐 하루 만에 쌓았다고 한다. 이는 임경업 장군이 벌인 개축공사가 그의 공적과 뒤섞여 백성들에게 과장되게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지금도 임경업 장군의 선정비가 남아 있으며, 마을사람들은 임장군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해마다 정월 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낸다고 한다

<임경업장군 비각>

 

  한편 임경업 장군이 하룻밤 만에 석성을 쌓았다는 전설 속에는 지혜로운 임장군 누님의 동생 사랑 이야기가 곁들어 있다. 누님은 왜구를 물리칠 궁리를 하는 장군을 돕고자 동생에게 성곽을 쌓도록 하고 자신은 낙안 군사들의 군복을 만드는 내기를 했는데, 군복을 다 지었는데도 동생이 성을 완성했다는 소식이 없자 다 지은 군복의 옷고름을 다 뜯어 다시 달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런데 동생이 성을 다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끝내 동생의 옷고름만은 달지 않고 남겨두었다. 동생의 사기를 꺾지 않으려는 누님의 지혜로운 배려였던 것이다

<낙안읍성 쌍청루(남문)>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는 전통마을로 108세대가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남부지방 특유의 주거양식을 볼 수 있으며 부엌, 토방, 툇마루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중요민속자료인 가옥 9동과 전남문화재자료인 임경업 비각, 전남유형문화재인 객사, 마을의 목신(木神)인 은행나무(전남기념물) 등의 문화재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땅은 넓고 백성이 많이 살며 한 지방이 평평하게 뻗쳐 있어 남방의 형승지로는 이곳이 제일이다.” 라고 한 낙안 풍광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로 간다

<낙안읍성 낙풍루(동문)>

 

<낙안읍성 은행나무>

 

  낙안읍성 동문을 나오자 2011년 개관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표지가 손짓한다. 이 박물관은 월간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한 출판인 한창기(韓彰璂, 1936~1997)의 기증 유물 6,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800여 점을 순환 전시한다. 연면적 1,736m²규모로 전시동과 김무규 고택,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시동은 상설전시실, 한창기실,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토기, 옹기, 도자, 고문헌, 가구, 지도, 회화, 의복 등의 소장품을 전시한다

<순천시립뿌리깊은박물관>

 

  상설전시실 뿌리깊은나무에는 고조선시기인 청동기 시대부터 광복 이후 시기까지를 아우르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삼국시대 토기, 옹기, 민속품부터 은제유개병, 납석제사리합, 바라, 금구, 청자, 백자, 조선시대 고문헌, 문방구 등을 관람할 수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소장 유물을 선별하여 고서·목가구·민화·소설·유기·지도 등 매년 2회 주제 전시를 개최한다. 야외 전시실에서는 석조 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순천시립뿌리깊은박물관 전시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낙관이 있는 <창해낭구도(滄海浪鷗圖)>, 조선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장례식을 담은 국장행렬도인 <정순왕후국장반차도(貞純王后國葬班次圖)> 등이 알려져 있다. 박물관의 일부인 김무규 고택은 1922년 구례군 구례읍에 지어진 중요무형문화재 구례향제줄풍류 보유자 김무규(金茂圭, 1908~ 1994)의 한옥을 2006년 옮겨 지은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 주택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네이버,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두산백과)에서 발췌]

 

<전시 중인 옹고집전>

 

<김무규 한옥>

 

  생각지도 못한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덤으로 본 것은 이번 여행의 보너스다. 더욱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한창기 선생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외래 상업문화에 밀린 토박이 민중문화에 물길을 터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1976 3 <뿌리깊은나무> 잡지를 발행하였는데, 1980 7월 신군부에 의해 통권 50호로 폐간되었다. 그리고 이곳을 왔다는 행운인가? 나오는 길에 순 우리말의 생각이라는 뜻의 옛말 혜윰이라는 찻집을 만나 차를 마시고 <보성녹차밭>으로 향한다

<순천시립뿌리깊은박물관 석물공원>

 

  <보성녹차밭>은 활성산(活城山, 466) 자락에 온통 푸른 이랑들이 펼쳐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차밭인 대한다원(大韓茶園)을 말한다. 이곳은 1939년 일본인에 의해 개원한 다원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1957년에 대한다업주식회사가 설립하면서 이 차밭을 사들여 1962년부터는 홍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후 다른 회사도 들어와 차밭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이곳은 차의 산지로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 지리지> 등에 기록되어 있었다

<보성녹차밭 지도>

 

  매표소에서 녹차 밭으로 들어가는 삼나무 길은 피톤치드가 넘쳐난다. 차밭 조성과 함께 삼나무, 편백나무, 주목, 향나무, 은행나무 등 약 300만 그루의 관상수와 방풍림으로 심었는데, 삼나무 숲 가운데로 난 길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 되어 우리나라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삼나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언덕으로 약 580만 그루의 차나무가 자라는 차밭이 넓게 펼쳐진다. 계단과 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 녹차 밭 풍경을 둘러본다

<보성녹차밭 삼나무 숲>

 

  1969년에 전라남도가 녹차 생산을 농특산업으로 지정하고 일본산 개량 차나무를 많이 심으면서 차밭은 더욱 넓어져 우리나라 최대 차 인공재배지로서 자리를 굳혔다. 차나무가 잘 자라려면 날씨가 따뜻하고 연평균 강우량이 1,500 이상 되어야 하는데 이곳은 강우량은 좀 모자라지만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교차하는 곳이어서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끼어 습기를 보충해 준다고 한다

<보성녹차밭>

 

  차는 가공 방법에 따라 서양 홍차와 같은 발효차와 중국 우롱차 등의 반 발효차, 그리고 찻잎을 증기로 찌거나 가마솥에 덖은 후 손바닥으로 비벼서 만드는 차들이 있다. 그러나 이곳 보성에서 나는 차는 대량 생산을 위해 증기로 쪄서 만든다. 보성군에서는 1985년부터 해마다 봄철 곡우가 지나면서 시작되는 차 수확 철에 맞춰 다신제(茶神祭)를 시작으로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 아가씨 선발, 다례시범 등 전국에서 유일한 차 문화제인 보성 다향제가 열린다

<보성녹차밭>

 

 

 <1>부터 <12>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며

다음은 <해남 대흥사>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