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9)
(2021년 9월 3일∼9월 14일)
瓦也 정유순
<제9일> 홍도
(2021년 9월 11일)
국도 제1호선과 제3호선의 기종점이 되는 목포(木浦)는 역시 항구(港口)다. 유달산(儒達山, 228m)노적봉 아래에서 단잠을 자고 홍도로 가기 위해 목포항 여객선터미널에 당도하자 서해와 남해의 각 섬으로 뻗어 나가려는 여객선들이 어장으로 나가는 어선보다 더 분주하다. 뱃고동 울리면 우리 님 훌쩍 떠날까봐 마음 조이던 선창의 이별은 보이지 않아도 망망대해를 가르며 떠나는 나그네의 마음은 설레기만 하다.
<목포항과 유달산>
목포항을 출발한 배는 압해도와 비금도 도초도 사이를 비집고 나간다. 도초항에 들렸다가 다시 떠나면 바람막이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다. 상당시간 배를 타면 누구나 배 멀미 때문에 걱정들이 앞서는 법인데, 지금 바다의 호흡은 아주 고르다. 파도는 바다가 호흡하는 상태에 따라 다르다. 고르게 호흡하면 파도가 잔잔하고, 심호흡이라도 하면 파도는 거칠어진다. 사람도 살아 있는 한, 숨을 쉬듯이 바다도 파도가 일렁이지 않으면 죽은 바다일 것이다.
<비금도>
홍도는 목포항에서 서남쪽 115㎞, 흑산도 서쪽 22㎞ 지점에 있는 섬으로 서쪽의 노을 때문에 섬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도(紅島)라고 부른다. 섬의 면적은 6.47㎢이고, 해안선길이 36.8㎞이다. 행정구역은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다. 1구 대밭밑(죽항)마을과 2구 석기미(석금)마을이 있다. 1구에는 해수욕장과 동백군락지가 있고 2구에는 등대와 자연림이 있다. 홍도는 섬 전체가 사암(砂岩)과 규암(硅岩)의 수직절리(垂直節理)로 이루어져 천연기념물(제170호)이 되었고 다도해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신비의 섬으로 국내 최고의 해상 관광명소다.
<홍도항>
옛날 돛단배를 이용하여 중국과 교역할 때 중간 기항지로서 이 섬에 정박하여 북서풍을 피하고 동남풍을 기다렸다 하여 대풍도(待風島)라고 불렀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에서는 홍의도(紅衣島)로, <숙종실록(肅宗實錄)>에는 홍어도(紅魚島)로 표기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바다에 뜬 매화꽃처럼 아름다운 섬이라 하여 매가도(梅嘉島)라고 부르다가 해방 이후 홍도라는 이름으로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홍도지도>
2시간 30여분 만에 홍도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한 숙소에 들려 여장을 다시 꾸려 우선 마을 구경부터 한다. 마을은 섬의 구릉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래도 가장 넓은 곳은 흑산초등하교 홍도분교(分校)다. 오토바이가 교행 할 정도로 좁은 골목이지만 전동차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숨 쉬는 소리가 뒤섞여 어우러지는 사람 냄새가 풍기는 세상이다.
<홍도1구 마을>
<홍도분교>
홍도는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는 섬으로 홍도분교를 중심으로 잘록한 허리모양을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홍도를 찾아오는 여객선터미널이 있으며, 홍도분교 너머 서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진 해변으로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좁은 골목으로 숙박업소와 식당과 가게들이 많고, 다도해국립공원 홍도분소가 있다. 마을 언덕 위로는 우체국이 있으며, 천주교 홍도공소의 성모 마리아상은 이곳 주민은 물론 홍도를 찾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평온하기를 기원한다.
<홍도 몽돌해변>
<천주교 홍도공소>
홍도는 바위섬이기 때문에 물이 귀할 것 같다. 오후에는 유람선을 타고 내항을 빠져 나가는데 깃대봉 자락으로 해수담수화시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는 홍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내연발전소도 있다. 홍도는 1995년에 지하 800m 암반수를 개발하여 식수로 사용하다가 1998년에 해수담수화에 성공하여 생활용수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각 가정에는 지금도 집안에 큰 저장탱크를 만들어 빗물을 받아 사용할 정도로 물을 귀하게 여기는 곳이다.
<홍도담수화시설>
유람선은 홍도항 방파제를 빠져나와 동남쪽으로 향한다. 멀리 흑산도가 보이고, 뱃머리를 남쪽으로 잠깐 틀면 양산봉이 동쪽으로 뻗은 자락 끝에 남문바위가 보인다. 제1경인 <남문바위>는 홍도의 남쪽에 위치한 바위섬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소형 선박이 왕래할 수 있는 석문이다. 배들이 이 문을 통과하면 행운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가까이 서있는 촛대바위가 밤마다 촛불을 밝혀 이 문을 통과하는 배들의 길을 열어주는 것 같다.
<흑산도 원경>
<홍도 남문바위와 촛대바위>
남문바위를 돌아 안으로 만입(灣入)되어 있는 곳에는 홍도 제2경인 <실금리 동굴>이 있다. 이 굴속에서 가야금을 타면 아름다운 소리로 울려 퍼지는 신비한 석굴로 눈을 감고 묵상하면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리는 것만 같다. 이 외에도 10경에는 3경 석화굴, 4경 탑섬, 5경 만물상, 6경 슬픈 여(礖), 7경 부부 탑, 8경 독립문바위, 9경 거북바위, 10경 공작새바위가 있다. 안내자의 열띤 설명이 이어지지만 홍도 10경은 뱃길 가는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미리 충분한 예습을 하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렵다. 내 눈에는 보이는 것 마다 모두 절경이다.
<홍도 10경 배치도>
<홍도 실금리 동굴>
홍도는 사암과 규암의 층리(層理)와 절리가 잘 발달되어 섬 전체가 홍갈색을 띠고 있다. 파식애(波蝕崖)와 파식대(波蝕臺) 등 해식단애(海蝕斷崖)로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해안은 독특한 자태를 자랑한다. 수많은 해식동(海蝕洞), 크고 작은 바위섬(岩島), 남쪽의 남문바위와 북쪽의 독립문 바위 등 두 개의 바위문(岩門), 명경지수 같은 맑고 푸르른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는 각도에 따라서는 저마다 또 다른 멋을 나타낸다.
<홍도 해식단애>
<홍도 해변>
그런데 여기서 독립문 바위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겠다. ‘독립문’이란 이름은 아마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에서 따 온 것 같은데, 그 독립문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1895년 청일전쟁 승리 후 1896년 일본이 이완용 등 친일파를 앞세워 국민성금으로 위장하여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줬다는 명분으로 건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승전문(勝戰門)인 것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손수 보수(補修)까지 하였고, 1936년에는 아예 문화재로 지정까지 해버린다.
<독립문바위>
<홍도 부부탑>
홍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을까? 문헌에 의하면 처음 홍도에 발을 들인 건 1480년 김해김씨 김태성이라는 어부가 고기 잡으러 왔다가 홍도2구인 석기미(석금)마을에 정착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홍도 연혁에는 처음 섬에 들어온 사람은 1679년(숙종 4) 제주고씨가 입도조(入島祖)로 되어 있다. 혈족이 남아 있어야 입도조로 인정한다는 것으로 지금도 홍도1구 마을에는 고씨의 12대손 몇 명 살고 있다고 한다.
<홍도 2구 석기미(석금)마을>
홍도2구 마을 언덕에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 2월 대륙진출을 꿈꾸는 일본이 침략전쟁에 참여하는 자국함대의 안전항해를 위해 세운 홍도등대가 있다. 등탑의 높이는 10m로 높지는 않으나 보통 원형으로 만들어진 다른 등대와 달리 사각형 콘크리트구조로 내부에는 등탑으로 올라가는 주물 사다리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유람선은 홍도2구 마을 앞바다에서 잠시 정박한 후 홍도2구 어민들이 잡아온 생선으로 즉석 회를 판매한다.
<홍도 등대>
두 시간 반 정도의 홍도 유람을 마치고 깃대봉(367.8m)을 오른다. 깃대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에서 시작하여 중턱의 제1·2전망대를 조금 올라가면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連理枝)가 나온다. 전에는 연리지를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지금은 남자와 여자 사이 또는 부부간의 사랑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홍도 깃대봉 연리지>
조금 더 올라가면 내연발전소와 깃대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고 더 지나면 <연인의 길>이다. 사계절 푸른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숲길은 아늑한 숲의 정취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길이다. 더욱이 연리지를 지나 이 길을 거닐면 연인들은 사랑이 맺어지고, 부부의 경우 금실이 더욱 좋아진다고 하여 연인의 길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홍도 깃대봉 연인의 길>
연인의 길을 걷다보면 <숨골 재>라는 곳이 나온다. 옛날에 주민이 절구공이 감으로 쓸 나무를 베다가 실수로 그 나무를 이곳에 빠뜨렸다. 다음 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던 중 물에 떠 있는 나무가 있어 확인해보니 어제 빠뜨린 나무였다. 이 때부터 이곳을 <숨골 재 굴>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숨골 재라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왔는데, 지금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주민들이 숨골 재 일부를 나무와 흙으로 메웠다고 한다.
<홍도 깃대봉 숨골 재>
홍도에는 18기의 숯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깃대봉을 중심으로 참나무 자생지가 많아 숯가마가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홍도 사람들은 숯을 팔아 식량과 소금을 사거나, 빗물을 받아 놓은 항아리나 쌀독 등에 넣어 나쁜 물질들을 제거 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홍도에서는 1940년대까지 숯을 만들다가 그 후로 폐쇄하였다. 깃대봉에 있는 숯가마는 1925∼1935년 사이에 정숙이라는 사람이 숯을 구웠다 하여 <정숙이 숯굴>로 부르고 있다.
<홍도 깃대봉 숯가마 터>
드디어 깃대봉 정상으로 오른다. 깃대봉(365m)은 한국 100대 명산으로 홍도의 최고봉이며 해안절경과 조화를 이루어 홍도의 수려한 경관을 돋보이게 한다. 정상에서 둘러보니 동남쪽으로는 흑산도와 가거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띠섬, 탑섬 등 부속 도서를 조망한다. 서쪽으로 계속 가면 중국의 상하이에 이른다고 한다. 깃대봉에서 북서쪽으로 내려가면 홍도2구인 석기미(석금)마을로 내려가지만 해 걸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 나온다.
<홍도 깃대봉에서>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홍도 청어(靑魚)미륵>이라는 귀여운 돌 한 쌍을 만난다. 홍도에서 흔히 청어미륵 또는 죽항(竹項)미륵이라고 하는 돌이다. 과거 홍도주변 어장이 매년 청어파시로 문전성시를 이룰 때 배에 청어는 들지 않고 둥근 돌만 그물에 걸려들어 바다에 던져버렸는데, 어느 날 한 어민의 꿈에 그 돌을 전망 좋은 곳에 모셔다 놓으면 풍어가 든다고 하여 그대로 하니 그 후부터 만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청어 선주들은 그 돌을 믿고 청어미륵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어장을 나가기 전 이 돌 앞에서 풍어를 빌었다고 한다.
<홍도 청어미륵>
홍도주민들의 소박한 민간신앙을 엿보고 낙조전망대까지 내려오니 아직 시간은 좀 남았지만 태양은 오늘을 결산하려고 두 다리를 쭉 뻗는다. 아침에 뜨는 해는 화려한 오늘 하루를 기약하지만, 저녁에 지는 해는 풍성하고 알찬 내일을 저축하는 의미다. 길게 옆으로 누운 햇살에 보람찬 내일을 기원한다. 한편 섬에 있는 산을 오를 때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선상유람을 하면서 홍도 해변을 보았듯이 해식단애(海蝕斷崖)로 깎아지른 절벽들이 뺑 둘러 있어 길을 잘못 드는 순간 위험한 사고는 순식간에 올 것 같다.
<홍도의 늦은 오후>
※ <제1일>부터 <제12일>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며
다음은 제10일차 <흑산도>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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