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8-2)
(2021년 9월 3일∼9월 14일)
瓦也 정유순
<제8일-2> 해남 대흥사
(2021년 9월 10일)
보성녹차 밭을 둘러보고 우리나라 다성(茶聖)으로 추앙 받던 초의선사가 계셨던 대흥사로 가는 것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연(因緣)인가? 대흥사에 도착하자마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1824년에 암자를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묘한 진리를 찾아 정진하였던 일지암(一枝庵)으로 향한다. 지금의 일지암은 초의선사 입적 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승려이자 서예가다. 법명은 의순(意恂), 법호는 초의(草衣)·일지암(一枝菴), 자는 중부(中莩), 속성은 장(張)씨, 아명은 우순(宇恂),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부친 장주팔(張籌八)과 모친 무안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친이 큰 별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그를 낳았다고 한다. 초의선사는 대흥사 대종사를 지냈다.
<초의선사 좌상>
일지암으로 올라가는 길모퉁이에는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하다가 끝내 만나지 못해 흔히 상사화라고 부르는 꽃무릇이 활짝 피어 반겨준다. 시간은 오후 4시를 훌쩍 넘겨 해걸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괜히 마음만 급해진다. 산길 오르는 내내 산새들의 맑고 투명한 합창과 바위에 부서지며 일으키는 물보라가 해는 짧아지고 갈 길이 먼 나그네의 등을 밀어준다.
<꽃무릇>
<일지암 가는 길>
가련봉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일지암이다. 일지암은 해남 두륜산 자락에 위치한 단촐한 암자로 한국 차 문화 중흥의 상징인 곳이다. 제일 높은 곳에 대웅전이 있고, 그 옆으로 초가인 일지암이 있으며, 그 사이에 자우홍련사(紫芋紅蓮社)가 있다. 자우홍련사는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다. ‘자줏빛 토란과 붉은 연꽃’이란 뜻의 이 건물은 초의선사의 살림채로 연못에 평석을 10개∼13개 쌓아올린 네 개의 돌기둥이 누마루를 받치게 만든 건물이다. 추사로부터 ‘자우산방(紫芋山房)’이란 당호를 얻었다고 한다.
<일지암 대웅전>
<일지암 자우홍련사>
이곳에서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당대의 명사, 시인, 예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다서(茶書)의 고전인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였고 <다신전(茶神傳)>을 정리했다. 동다송은 우리나라 차를 예찬한 31송으로 구성되었으며,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적은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다. 다신전은 찻잎의 채취[採茶]에서부터 차의 위생관리[茶衛]에 이르는 22절목으로 구성되었다. 우리나라 남종화의 비조(鼻祖) 소치 허련(小癡 許鍊)은 초의선사의 제자다.
<일지암>
달리는 말 등에서 찬밥 먹듯 서산에 기우는 해를 보며 다른 유물들을 살피지도 못하고 돌아서는데 멀리 발아래 탁 트인 자연의 풍광과 두륜산봉우리들이 서운한 마음을 달래준다. 두륜산(頭崙山, 703m)은 전북 진안의 주화산에서 백두대간을 빠져나온 호남정맥은 남으로 뻗어 나오다 월출산에서 광양 백운산으로 꺾이는 지점인 호남정맥 팔꿈치부분인 해남 땅 끝을 향해 흘러와 정기가 뭉쳐 우뚝 솟은 산이 두륜산이다. 두륜산은 전라남도 도립공원이다.
<두륜산 연봉들>
대흥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으로 두륜산의 수려한 절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흥사의 원래 이름은 대둔사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지명을 새로 표기하면서 頭崙山은 頭輪山으로, 대둔사는 대흥사(大興寺)로 바뀌었다. 절이 두륜산 대둔사(頭崙山 大芚寺)라는 이름을 회복한 것이 1993년이었으나, 사람들은 요즘도 대흥사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에도 대흥사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대흥사 대웅보전>
사찰 경내는 북원, 남원, 별원으로 구성하여 북원에는 대웅전과 응진당 등이 있고, 남원에는 천불전과 용화당 등이 있으며, 별원에는 표충사와 대광명전 등이 있다. 더욱이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져 정조(正祖)로부터 <표충사(表忠祠)>라는 편액을 하사받아 충의(忠義)를 기리게 되었다. 불가에서 가사와 발우를 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법을 전하는 것이다.
<대흥사 배치도>
서산대사가 입적하자 제자들은 시신을 다비한 후 묘향산 보현사와 안심사 등에 부도를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영골(靈骨)은 금강산 유점사 북쪽 바위에 봉안했으며 금란가사(金爛袈裟)와 발우는 유언대로 대흥사에 모셨다. 이리하여 서산대사의 법맥은 대흥사에서 이어지게 되었다. 서산대사는 왜 그런 외진 대흥사를 택한 이유를 제자들에게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종통(宗通)이 돌아갈 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표충사(表忠祠)>
이것이 기회가 되었던지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오고부터 대흥사의 사세가 번창한다. 보통 우리는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는 선(禪)과 교(敎), 좌선, 진언, 염불 등으로 나뉘어 자기들의 수행만을 최고로 치던 당시 불교계에서 “선은 부처의 마음이며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라고 설파하며 선교 양종을 통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대흥사는 그의 법을 받아,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와 13분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 잡아 왔다.
<대흥사 성보박물관>
사찰의 중심이며 목조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는 대흥사 대웅보전은 조선 1667년(현종 8) 심수대사(心粹大師)가 중건하였으나, 1899년(광무 3) 발생한 화재로 또 전소되었다. 이후 1900년(광무 4) 육봉법한(六峯法翰)대사가 화주가 되어 새로 지었다. 전면에 장대석으로 높이 쌓은 단 위에 기단을 마련하고 전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건물 전면에는 각 칸마다 빗살무늬를 달았으며 가운데 大雄寶殿(대웅보전) 편액은 조선 후기의 명필인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다.
<대흥사 백설당(무량수각)>
그런데 대웅보전 편액의 글씨에 대한 일화가 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1840년(헌종 6) 제주도로 귀양 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선사를 만나는데, 이광사가 쓴 대웅전 현판을 보고 조선의 필체를 망가뜨리는 글씨라며 직접 자신이 대웅보전과 백설당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편액을 써 주었다. 추사는 해배되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이광사의 현판 글씨가 아직도 보관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의 아집을 사과하며 다시 내다 걸게 하였다.
<추사 김정희 글씨 무량수각>
당시 해남 대흥사에는 추사와 동갑내기 절친 초의선사가 기거하고 있어 둘은 자주 교류가 이어졌으며, 이웃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던 다산 정약용과도 교류 관계가 이어져 대흥사를 중심으로 한 석학들의 차와 학문·시·서화 등 교류가 있었으나, 다산과 추사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고 한다. 다산은 이들 보다 24살 연상이다.
<대흥사와 삼층석탑>
대웅보전 옆에는 윤장대가 있다. 보통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 윤장대(輪藏臺)는 내부에 불경을 넣어 두어 팽이처럼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의미로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불경은 사실 일반인들에게 매우 어렵게 느껴지며,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윤장대는 중국 양(梁)나라의 선혜대사(善慧大士)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윤장대>
일지암에서 내려와 대흥사 본당인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에 보인 천불전은 높이 쌓은 석축단 위에 있는 건물로 앞면에는 궁창판에 안상(眼象)을 하였고 정교한 국화무늬·연화무늬의 꽃살 분합문을 달았는데 중앙 칸은 3짝, 좌우 협칸은 2짝이다. 내부 중앙에 목조의 본존불을 봉안하였으며 주위에 옥석으로 조각한 천의 작은 불상을 배열한 것이 특이하다. 특히 천불전 문살무니는 장인의 혼이 담긴 아름다움의 극치다.
<대흥사 천불전>
<천불전 문살무늬>
대웅보전 마당에 있는 500년 이상 된 연리근(連理根) 느티나무와 많은 전각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영화 “서편제”로 유명해진 여관인 <유선관>도 보인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뜬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서산대사의 해탈시가 삶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목포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유달산이 석양에 붉게 물든다.
<대흥사 연리근>
<목포 유달산 석양>
※ <제1일>부터 <제12일>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며
다음은 제9일차 <홍도>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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