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2-2)
(2021년 9월 3일∼9월 14일)
瓦也 정유순
<제2일-2> 소수서원/영주 선비촌(2021년 9월 4일)
부석사를 빠져 나와 소수서원으로 향하는데, 마침 점심때다. 영주시 단산면은 지나가는 길목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중국식 식당에 들린다. 알고 보니 자장면 집으로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소문난 집이라고 한다. 자장면으로 식도락(食道樂)을 하고 나오니 길거리를 지키고 있는 ‘情鄕丹山(정향단산)’표지석이 다정하게 안기고, 영주의 지붕이 되는 소백산 줄기가 더 정겹게 다가온다.
<영주시 단산면의 정향단산>
사적(제55호)으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소백산 죽령(竹嶺)에서 흘러내려 이름이 된 죽계천(竹溪川)변에 자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1542년(중종 37)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순흥 출신 고려의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묘(祠廟)를 세웠고, 다음 해에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것이 서원의 시초다. 원래 이 자리는 신라 후기 사찰인 숙수사(宿水寺)가 있던 자리로 안향이 젊은 시절 공부했던 곳으로 당시 유물로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소수서원 표지석>
<소수서원 당간지주>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이 1549년(명종 4)에 왕에게 건의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과 서적을 하사 받는 등 국가의 공인과 지원을 받음으로써 서원제도의 정착에 디딤돌을 놓았다. ‘소수(紹修)’라는 이름은 ‘학문을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서원의 일반적인 배치방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가 아니라 동학서묘(同學西廟)의 독특한 배치로 지어졌고 개개 건물의 배치도 자유롭다. 이러한 현상은 서원이 정착되기 이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소수서원 은행나무>
소수서원의 입구에는 소나무 숲이 낙락장송(落落長松)을 이루고 있다. 이 소나무 숲은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가지를 운치 있게 길게 축축 늘어뜨리고 서원에 가까운 것일수록 서원 쪽으로 숙이고 있어서 마치 공경을 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죽계(竹溪)와 닿은 평지에 있는 소수서원이 풍수적으로 뒤쪽이 허하다는 단점이 있어 소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숲의 소나무들은 겉과 속이 모두 붉은 금강송(金剛松)으로 수령이 수백 년에 달하는 것이 많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푸르름이 선비의 기개(氣槪)와 닮았다 하여 학자수(學者樹)로도 불린다.
<소수서원 소나무 숲>
정문으로 들어서면 먼저 강당인 명륜당과 마주하게 된다. 강당은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는 곳으로 넓은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이 달려 있다. ‘白雲洞’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 강학당(講學堂)은 동향을 하고 있는데 규모가 정면 4칸 측면 3칸이며 팔작지붕이다. 강당 안의 대청 북쪽 면에 명종의 친필인 ‘紹修書院’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뒤에 있는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는 선비들의 기거공간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나뉘지만 집은 이어진 한 채다.
<소수서원 백운동(강학당)>
서원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제향을 드리는 일이다. 서원마다 누구를 모시느냐에 따라 그 서원의 품격과 세력이 달라질 수 있어 서원들은 되도록이면 영향력 큰 선비를 모시려 한다. 소수서원은 처음에는 안향을 모시는 사묘로 출발하였는데, 안향 외에도 안보(安輔)와 안축(安軸), 주세붕을 함께 모시고 있다. 사당 뒤로는 장서각(藏書閣)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이 있다.
<소수서원 제향영역(문성공묘)>
안향(安珦, 1243~1306)은 안유(安裕)라고도 하는데, 고려시대 사람으로 흥주 죽계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안향은 왕과 원나라 공주인 왕비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원의 지배를 받는 현실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주자학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주자를 추모하여 그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하여 호를 회헌(晦軒)이라고 지을 만큼 주자학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원나라에 가서 그곳 학풍을 직접 느끼고 주자서(朱子書)를 베껴와 보급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불린다.
<소수서원 안향 영정(국보 제111호)>
안향은 주자학을 만난 후 주자학이야말로 새 시대를 열어가기에 합당한 사상, 새로운 철학이라고 여겼고, 그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백 년여 뒤에는 마침내 주자학을 수양과 치세의 원리로 삼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고 유교를 통치원리로 삼는 나라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안향을 공경하고 추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영정각에 모신 안향의 영정은 고려 때 그린 것을 조선 명종 때에 다시 고쳐 그린 것으로 국보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수서원 영정각>
죽계천 건너편에는 바위에 새겨진 ‘白雲洞’이란 흰 글씨와 붉은 칠을 한 ‘敬’자가 보인다. ‘白雲洞’은 소수서원의 최초의 이름이고, ‘敬’자는 ‘敬以直內 義以方外(경이직내 의이방외)’를 주세붕이 ‘敬’자 한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곧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 옆의 취한대는 자연을 벗하며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는 곳이다. 퇴계 이황이 터를 닦고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에서 따온 것으로 ‘푸른 산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다.
<소수서원 취한대>
<소수서원 '경'자바위>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의 죽계교(竹溪橋)를 건너면 바로 영주시가 운영하는 선비촌으로 소수서원과 함께 운영한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복원하고 생활상을 재현하여, 유교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선비촌은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하였고, 그들의 정신을 담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입신양명(立身揚名)>, <거구무안(居求無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의 네 구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죽계교>
<수신제가(修身齊家)>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올바르게 가꾸는 것’을 말한다. 선비들은 수신을 위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구역에 있는 <김상진 가옥>은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 있던 건물로 1900년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항상 자신을 수양하면서 늘 바른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던 곧은 정신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집 같다.
<선비촌 김상진 가옥 - 네이버캡쳐>
<선비촌 강학당 - 네이버캡쳐>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자신의 뜻을 확립하고 이름을 드날린다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 구역에 있는 <두암 고택>은 영원군수 해미현감을 역임한 두암 김우익이 1590년(선조 23)에 건축한 집이다. 선비촌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중심이 되는 곳이다. 영주시 이산면 신암2리 우금촌에 있던 고택으로 ‘口’자형 집으로 몸 칸 한집 당 6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도 장수면 화기리에 있던 인동장씨 종택(1600년 초 건축 추정)이 있다.
<우금촌 두암 고택>
<선비촌 인동장씨 종택>
<거구무안(居求無安)>은 ‘사는데 있어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명상과 풍류를 즐기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지 않고 현실의 잘잘못을 비판한 영주 선비들의 곧은 기개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대표적인 가옥은 <김문기 가옥>으로 크게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기와집이며 안채는 안방 건넌방 작은 사랑방 대청 및 부엌이 일자형태를 취하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 외에도 박수 선생이 무섬마을에 입향하여 건립한 <만죽재(晩竹齋) 고택>이 있다.
<선비촌 김문기 가옥>
<만죽재고택>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은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공자의‘군자는 도를 추구하지 먹을 것을 추구하지 않으며,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子謀道不謀食, 君子憂道不憂貧)’말에서 나온 것 같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선비들의 체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대표적으로 <장휘덕 가옥>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두암 고택의 하인과 노비가 외거(外居)하는 가람집(하배집)이 있다.
<선비촌 장휘덕 가옥 - 네이버캡쳐>
<우도불우빈 거리 - 네이버캡쳐>
선비촌에서는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서예체험, 인성교육, 밥상머리교육, 전통혼례, 전통예절교육 등 체험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이 외에도 선비촌의 무쇠공방 배순대장간, 당나귀가 끌어 주는 마차체험이 있으며, 저자거리에는 도예공방, 종갓집, 수랏간, 전통찻집, 주막집, 죽계루 등과 소수박물관이 있으나 갈 길이 바빠 발길을 돌려 안동의 도산서원으로 향한다.
<선비촌 죽계루>
<소수서원 충효교육관>
※ <제1일>부터 <제12일>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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