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용봉산에는 용과 봉황이 노닐고

와야 정유순 2020. 2. 25. 23:21

용봉산에는 용과 봉황이 노닐고

(2020222)

瓦也 정유순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충남 홍성의 용봉산(龍鳳山, 381m)을 오르기 위해 새벽공기를 가른다. 버스는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에 잠깐 들렸다가 홍성군 홍북읍 용봉초등학교 입구에 도착하여 용봉초교 옆길로 하여 산을 오른다. 용봉초등학교는 홍북읍 상하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로 1957년 개교하였는데, 용봉산을 뒤로하고 용봉천을 앞으로 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으로 용봉산을 찾아가는 이정표 같다. 시멘트로 포장된 딱딱한 길로 가파르게 오르면 맨 처음 용봉산 석불사 미륵불과 마주친다.

<용봉초등학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87)로 지정된 미륵불(彌勒佛)은 고려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8m에 이르는 거대한 선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 3대 미륵불에 속한다. 이 미륵불의 뒤에는 삼신(三神) 바위가 우뚝한데, 민간에서는 미륵불을 남성으로, 삼신 바위를 여성으로 여겨 자손과 풍요를 점지해 준다고 믿고 있다. 삼신 바위와 미륵불과 일직선으로 위치한 만물바위는 땅과 하늘의 기가 응축된 곳이라고 한다. 너럭바위의 울퉁불퉁한 변화는 마치 산 들판 호수 계곡 등 만물의 형상을 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미륵불과 삼신바위(뒤)>

<만물바위>


   홍성군의 진산(鎭山)인 용봉산은 홍성 8경 중 제1경으로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이라 유래했다고 한다. 그 용의 입에 물린 여의주 위치에 자리한 석불사는 종전에는 용도사로 불렀다고 한다. 대웅전이 불법 건물로 지어져 철거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최근 법원 판결로 유지하게 되었고, 이름도 석불사(石佛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웅전 아래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불유천(佛乳泉)의 샘물이 있어 부처님께 올리는 청정수로 사용함은 물론 모든 생명을 살리는 감로수(甘露水)로 여긴다고 한다.

<석불사 대웅전>


   석불사에서 다시 위로 올라가면 투석봉이다. 투석봉(投石峰)은 소향이란 아가씨를 두고 백월산과 용봉산의 두 장수가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투석전(投石戰)을 하였는데, 백월산의 장수는 백월산 중턱에서 바위를 던졌고, 용봉산의 장수는 용봉산 투석봉에서 바위를 던졌는데 싸움이 끝났을 때 백월산에 있던 바위들은 모두 용봉산으로 던져졌고 싸움에서 승리한 백월산의 장수는 소향아가씨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월산과 용봉산은 서로 이웃해 있지만 백월산 보다는 용봉산에 바위가 훨씬 많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투석봉>

<투석봉 표지>


   투석봉에서 약 300m 남짓 거리에는 용봉산의 정상인 최고봉이 있다. 용봉산은 오봉(五峰, 악귀봉, 노적봉, 용봉산, 투석봉, 無名) 또는 팔봉(八峰)으로 이루어져 있어 팔봉산으로도 불린다. 용봉산 최고봉이 용의 머리이며 투석봉은 용의 이마에 해당한다. 전체적인 산세는 수암산 세심천에서부터 시작한 용의 꿈틀거림이 주 능선을 휘감아 수많은 기암괴석을 만들어 석불사에 이르러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용봉산은 충남 홍성군 홍북읍, 예산군 삽교읍 일대에 걸쳐 있다.

<용봉산 정상>

<용봉산 암봉>


   최고봉에서 동북 방향으로 충청남도청이 대전에서 이전해와 형성된 내포(內浦)신도시가 나래를 편다. 20121213일 충청남도청과 도의회 신청사가 완공되어 201312일 내포신도시 신청사에서 시무식(始務式)을 했다. 그 밖에 2020년까지 충청남도의 도 단위 기관과 단체 121개가 자리 잡은 인구 10만 명(38500 가구) 규모의 계획도시로 조성된다. 충남도청과 교육청은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에, 충남도의회와 지방경찰청은 예산군 삽교읍 목리에 소재하고 있다.

<내포신도시>


   최고봉에서 동쪽으로 가면 최영장군이 활을 쏘았다는 활터가 있으나 방향은 북쪽 노적봉으로 잡는다. 최영(崔瑩, 13161388) 장군은 동주최씨(東州崔氏)로 강원도 철원 출신으로 알려졌으나,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출생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기봉사(奇峯祠)란 사당도 있다. 최영은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도와 원나라에 속했던 압록강 서쪽 지역을 회복하였다. 또한 요동 정벌을 단행하여 고구려 옛 땅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위화도회군으로 물거품이 되었고, 1388년 개경에서 처형되어 경기도 고양시에 묻혀있다.

<최영장군 활터>


   용봉산의 암릉(巖陵)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세상을 유희(遊戲)한다. 노적(露積)가리 쌓아 놓은 것 같은 용봉산의 비늘들은 기암괴석의 바위가 되어 금방이라도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형상으로 서로가 몸을 의지하며 승천(昇天)을 꿈꾼다. 봉황이 살았다는 대나무 숲이 바위로 변했을까? 용이 거느리던 물짐승들과 봉황이 다스리던 날짐승들의 걸죽한 한판의 조화였을까? 용봉(龍鳳)이 서로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도 나누었을까? 자연이 빚은 걸작들은 용봉산의 전설을 몸짓으로 이야기한다.

<악귀봉과 노적봉>


   노적봉(露積峯)의 큰 바위에는 일곱 개의 성혈(性穴)이 있다. 성혈(性穴, cup-mark)은 바위 그림의 한 종류로서 돌의 표면에 파여 져 있는 구멍을 말한다. 주로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이나 자연 암반에 새겨진다.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민속에서는 홈구멍·알구멍·알바위·알터·알미·알뫼 등으로도 불리며, 기자신앙(祈子信仰)의 일종으로 농경사회에서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기원하는 신앙적 의식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일곱 개의 구멍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노적봉 암봉>

<노적봉 성혈>


   그리고 솟대바위와 행운바위 등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바위들이 많이 있고, 그 틈새에서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는 나무들이 주요 볼거리다. 노적봉의 옆으로 크는 소나무는 생명이 얼마나 질긴 것 인가를 보여준다. 안내판에는 수령(樹齡)100년으로 되어 있지만, 소나무가 살아온 질곡의 세월은 천년을 훨씬 넘긴 것 같다. 소나무는 잎이 푸르러 그 기상과 절개를 표상하는데, 지나온 세월과 손때에 시달렸는지 누렇게 변색이 되어 간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도 결국은 나를 사랑하는 것일진 데

<솟대바위>

<행운바위>

<옆으로 크는 소나무>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이어지는 아담하면서도 가파른 암릉(巖陵) 능선길은 정말 천하절경이다. 암석들의 기이한 모습과 주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산세는 산행의 짜릿한 묘미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힘들지 않게 올라온 가벼운 발걸음에 미끄러질 것 같은 바위 위와 틈 사이를 오르내리면 오금 절이는 즐거움이 더하고, 한숨 돌려 고개를 쳐들면 악귀봉의 악귀(惡鬼)들은 선한 천사처럼 다가와 포근하게 맞이해 준다.

<악귀봉 암릉>

<악귀봉 암릉>

<악귀봉 암릉>


   기이한 모습의 바위들 속에서 그래도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두꺼비 바위, 물개 바위, 삽살개 바위, 하트 바위, 고릴라 바위 등을 만날 때는 해어졌던 가족을 만난 양 미소가 저절로 나오고 반갑다. 줄지어 서 있는 수많은 바위를 향해 이름이라도 지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짧은 식견에 미안할 뿐이다. 비록 금강산 일만 이천 봉과 설악산 공룡 능선을 가지 않더라도 용봉산은 이미 그곳들의 풍광을 마음속에 듬뿍 안겨준다.

<두꺼비바위>

<물개바위>

<삽살개바위>

<고릴라바위>

<하트바위>


   장강의 뒷 물이 앞 물을 밀어내듯 밀려오는 사람들에 밀려 몸은 이미 용바위로 향한다. 용봉산의 용()바위는 아주 특별한 감회를 준다. 동ㆍ서양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인 용은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한국·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몸에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매우 큰 눈과 긴 수염을 지니고 있는데 코와 입으로는 불이나 독을 내뿜으며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용봉산의 용바위를 본 오늘 밤 용꿈이라도 꾸고 싶다.

<용바위>


   용바위에서 북쪽의 수암산으로 향하지 않고 동남 방향의 병풍바위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다. 병풍바위 전망대에서 숨을 고르고 아래에 있는 의자바위에 앉아서 사방을 둘러 본다. 발아래로는 백제 시대 창건된 용봉사가 보인다. 용봉사(龍鳳寺)는 홍성 지역의 사찰 중에서 불화, 부도 등 종류가 다양한 성보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들르지 못했다. 용봉초등학교에서 시작한 용봉산 [1코스] 종주는 홍북읍 신경리 구룡대 매표소 앞에서 마감한다. 20178월 읍으로 승격된 홍북읍(洪北邑)은 홍성의 북쪽이라는 뜻이다.

<병풍바위 전경>

<병풍바위>

<의자바위>

<용봉사 원경>

<용봉산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