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열 번째-6)
(팔당댐∼가양대교, 2019년 11월 23일∼24일)
瓦也 정유순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당산철교(堂山鐵橋)는 영등포구 당산동과 마포구 합정동을 연결하는 한강 다리다. 교량 이름은 당산동의 동명에서 유래되었는데, 마을 단산(單山)에 당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1,360m, 폭 10m로 1980년 2월 26일 착공하여 1983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한강의 다리 중 최초로 트러스(truss) 형식으로 가설되어 조형미가 뛰어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고로 인해 교량 안전 점검을 시행하여 1996년 12월부터 완전개수(改修)하여 1999년 11월 재준공되었다.
<당산철교>
당산철교 북단에는 절두산 성지가 있다. 원래 이곳은 한강으로 돌출한 봉우리 모양이 누에머리 같기도 하고 용의 머리 같기도 하여 잠두봉 또는 용두봉으로 불리었으나, 병인양요(丙寅洋擾) 이후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고 1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이곳에서 처형하여 얻은 이름이다. 한국천주교에서는 순교 100주년인 1966년에 순교기념관을 건립하여 순교정신을 헌양하였다. 순교자기념성당과 박물관, 순교성인 28위를 모신 경당(經堂, 지하묘소) 등 셋으로 구분하여 순교자 기념공원을 꾸몄다.
<절두산-2017년 3월>
<절두산성당-2019년 5월>
당산철교 남단의 영등포구 당산동(堂山洞)은 경기도 시흥군에 속해 있다가 1936년 경성(현 서울)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1912년 일제강점기부터 조선 피혁주식회사 등 방적, 기계 등의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1960년 이후에는 정부의 공업정책에 따라 많은 공장이 세워지고 상가가 형성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유흥업소가 생기면서 당산로 주위는 번화가가 되었다. 영등포구청, 영등포경찰서, 구민회관 등이 있어 영등포지역 행정 중심이 되고 있다.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양화대교는 두 차례에 걸쳐서 건설되었는데, 제2 한강교로 불리는 구교는 한강대교와 광진교 다음으로 건설된 한강 위의 세 번째 다리다. 특히 이 다리는 해방 후 우리 기술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한강 다리로 폭 18m, 길이 1,053m로 1965년 1월에 준공하였다. 그러나 김포공항 확장과 경인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량이 계속 늘어나 8차선으로 확장하여 1989년 2월에 신교가 개통되어 이름도 양화대교로 바뀌었다.
<양화대교>
다리 중간에 있는 선유도(仙遊島)는 1978년부터 서울 서남부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선유도정수장을 건설하여 사용되다가 2000년 12월 정수장이 폐쇄된 후, 정수장 건축시설물을 재활용하여 물을 주제로 한 시민공원인 선유도공원을 만들어 2002년 4월에 문을 열었다. 침전지(沈澱池)와 침사지(沈砂池) 등 과거 선유정수장 시설과 건물을 자연과 공유할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개조한 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이다.
<선유교와 선유도>
이 공원은 그야말로 콘크리트 등 회색 문화지대에 꽃이 핀 형국이다. 선유도는 겸재 정선(鄭敾)이 진경산수화를 그릴 정도로 아름다운 선유봉(仙遊峰)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있던 한강의 섬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홍수를 막고 길을 확·포장하기 위해 암석을 채취하면서 깎여나갔다. 그리고 개통 당시 제2한강교로 불리던 양화대교가 건설(1962년6월∼1965년1월)되면서 선유봉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선유도-네이버캡쳐>
<지금의 선유도>
하천부지에 마련된 한강시민공원에는 농구장, 배구장, 테니스장 등 체육시설과 시민들이 여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따라가면 성산대교 남단이 나오고, 남단에서 하류로 조금만 가면 안양천이 한강을 만난다. 1980년 6월에 준공된 성산대교는 마포구 망원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다리로 1,140m의 길이에 폭 27m다. 이 다리는 서울 서부지역의 교통 분산에 효과적이었고, 한강의 12번째 다리로 성수대교와 같은 트러스트공법으로 세워졌다.
<성산대교>
안양천(安養川)은 수원의 광교산(光敎山, 582m) 북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안양시를 관통하고 광명시와 서울특별시 서부지역을 지나 한강으로 합류하는 한강 제1지천이다. 안양(安養)이란 뜻은 불교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세계로 모든 일이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의 세계를 말한다. 안양천 유로의 길이는 35.1㎞이다.
<안양천 하류-2017년 8월>
안양천이 수질이 개선되고 풍부한 물이 흐르면서 버들치, 피라미와 백로, 해오라기 등의 조류가 찾아오는 도심 속의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렇게 복원된 학의천 및 안양천을 많은 시민이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천 변에 자전거도로, 인공습지, 징검다리, 오솔길, 발지압장, 농구장, 쉼터 등의 편의시설을 설치하였다. 석수역∼가양대교 구간 중 안양천은 서울둘레길 제6코스로 지정되었다.
<안양천과 한강의 합수부>
성산대교 북단 아래로는 홍제천이 흐르고 우측은 망원동이며, 좌측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중심으로 조성된 월드컵공원이다. 홍제천(弘濟川)은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불광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방하천(2급)이다. 하천 본류에는 모래가 많아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모래내>라고도 부른다. 하천 위로는 내부순환도로가 가설되어 교통적체 해소에 한몫하지만, 하천의 물을 마르게 한다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홍제천과 내부순환고가도로-2017년 3월>
망원동(望遠洞)은 마을에 망원정(望遠亭, 서울시기념물 제9호)이 있어서 동 이름이 유래되었다. 망원정은 조선 태종의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별장으로 1424년에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희우정(憙雨亭)이라고 하였다가, 1484년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소유로 바뀌자 정자를 보수하면서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의 망원정으로 하였다. 명나라 사신 접대 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 1925년 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91년에 복원하였다.
<망원정-네이버캡쳐>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 개최를 목적으로 2001년 11월 10일 개장하였다. 연 면적 16만 6,503.34㎡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타원형 건물로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관중석은 총 6만 6,704석이다. 경기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 방패연 모습으로 승리를 향한 희망을 띄우고, 월드컵을 통하여 한국의 이미지와 문화를 띄우며, 21세기를 맞아 통일과 인류평화에 대한 희망을 띄우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월드컵공원은 월드컵경기장 주변과 쓰레기매립장에 조성된 공원으로 6년에 걸친 안정화 사업 등을 거쳐 2002년 5월 1일 개장하였다. 1978년부터 15년간 쓰레기 9,200만t을 매립한 105만 평의 부지(敷地)에 조성된 ‘환경월드컵’의 상징물로 습지와 꽃밭, 연못, 요트장, 흙길 마라톤 코스 등을 갖춘 5개 테마생태공원으로 이루어졌다. 5개 공원 가운데 평화의 공원과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하늘공원은 2002년 문을 열었고, 2004년 문을 연 노을공원은 9홀 규모의 대중 골프장으로 개장했다가 가족공원으로 전환하였다.
<월드컵공원(평화의공원)지도-2018년 8월>
<얼드컵공원 난지연못의 아침-2018년 8월>
특히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으로 조성된 곳은 옛날 한강의 하중도(河中島)인 난지도(蘭芝島)라는 섬이었다. 처음에는 국제 매립장 높이인 45m까지 매립할 계획이었으나 마땅한 매립지가 없어 계속 매립하다 보니 높이가 무려 약 100m가 되는 윗부분이 평평한 쓰레기산(山) 두 개가 생겼다. 1991년 인천 서구에 수도권매립지가 조성되면서 쓰레기매립이 중단됨에 따라 여러 가지 환경복구 노력을 해온 결과도 있지만, 수풀이 스스로 자라면서 각종 동·식물이 자리를 잡아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월드컵공원 노을공원>
<월드컵공원 하늘공원>
안양천 하구를 건너 염창교를 지나면 강서구 염창동이다. 염창동(鹽倉洞)은 서해안 염전으로부터 수집해 온 소금을 보관하기 위한 소금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염창으로 운반된 소금은 국가용, 군사용, 일반 판매용으로 구분해 각각 저장되었다. 고려 말기에는 양천현(陽川縣)에 속하였으며, 1914년 김포군 양동면에 속하였고, 일부는 가양리로 편입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고, 1977년 강서구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한강공원 염강나들목>
<한강공원 마곡나들목 승강기>
한강 하류를 방향을 잡으니 가양대교가 눈에 보인다. 오후부터 지척거리며 내리던 빗방울은 갈수록 거세지고 주변의 시야도 많이 흐려졌다. 한강공원 염강나들목을 통해 가양동 <황금내 근린공원>을 지나 가양대교 입구에서 마무리하려 했으나 그냥 지나쳐 <구암근린공원>까지 와버렸다. 구암공원(龜巖公園)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 1471번지에 있는 공원으로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저자 의성(醫聖) 허준의 출생지이자 생을 마친 가양동에 공원을 조성하고 허준의 아호를 따서 <구암 공원>이라 이름 지었다.
<가양대교>
<구암공원>
허준(許浚, 1539~1615)은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능안마을에서 태어났다. 비록 서자였지만 차별받지 않고 명문가 출신답게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경전과 사서 등에 밝았다.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갈 때 어의로서 선조 옆을 끝까지 모셔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다. 그 후 계속 승진하여 정1품인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까지 올랐으나 서출(庶出)이라 보류되기도 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고, 2009년 7월 31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完)
<허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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