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여덟 번째-2)
(여주시 도리-이포보, 2019년 9월 28일∼29)
瓦也 정유순
2009년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강천보는 한강의 명물이던 황포돛배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강천보는 한강문화관, 강천섬 수변공원과 함께 천혜의 풍광을 자랑한다. 남한강에 설치된 보로 여주시 강천면과 단현동을 연결하고, 여주시 일대 농업용수와 상수도를 확보하기 위한 보(洑)이며, 2011년 10월 일반에 공개되었다. 보의 길이는 440m, 높이는 8m로 7개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보의 좌안에는 소수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강천보>
이곳에는 한강통합운영센터가 있어 남한강의 강천보·여주보·이포보를 관리한다. 강천보의 좌측 광장에는 지하1층, 지상3층 규모의 한강문화관이 있어 한강의 수로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39m 높이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특히 물빛누리로 이름 지어진 보의 야간조명은 시간대별, 계절별로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또한 강천보는 남한강 관광의 새로운 중심지로 인근에 신륵사관광지, 금은모래강변공원, 황포돛배나루터 등 볼거리가 있다.
<한강문화관>
강 건너 강천면에 있는 종교법인 <대순진리회여주본부도량>이 언덕 위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증산교 교리인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믿는 종교단체다. 증산교 신도인 박한경(朴漢慶, 일명 牛堂)이 1968년 4월 경남 함안에서 올라와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대순진리회를 세웠고 증산교의 분파들 가운데 가장 조직성을 갖춘 종교단체다. 1969년 5월 광진구 중곡도장을 기공한 이래 교세가 급성장하자 1987년에 여주본부도장을 세웠다.
<대순진리회 여주본부>
이밖에 제주수련도장, 포천수도장, 금강산토성수련도장이 있다. 교육 사업으로 1992년 3월 경기도 포천시에 대진대학교를 개교한 이래 대진고등학교, 대진여자고등학교, 분당대진고등학교,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대진정보통신고등학교를 세웠다. 의료사업으로는 1998년 8월 분당제생병원을 개원한 이래 동두천제생병원과 고성제생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남한강과 대순진리회>
강변 둔치에는 미국쑥부쟁이가 우점종(優占種)이다. 쑥부쟁이 종류는 흔히 연보랏빛 꽃이 피는데, 미국쑥부쟁이는 흰 꽃이 핀다. 고향이 북아메리카로, 고속도로나 빈터 여기저기에 빠르게 퍼져 자란다. 꽃은 쑥부쟁이보다 작고, 언뜻 보면 개망초를 더 닮았다.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로서 1970년대 말 강원도 춘천시 중도 지방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지금은 한국 중부 지방뿐 아니라 남부 지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쑥부쟁이>
금은모래강변공원과 강 건너 신륵사관광지 사이의 강 위에는 황포돛배가 여유롭다. 황포돛배는 말 그대로 누런 포를 돛에 달고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배다. 옛날에는 노를 저어 방향을 잡았으나 지금은 동력을 이용하여 움직인다. 황포돛배는 대부분 0.5t 정도의 작은 배로 어업이나 물자 수송 등에 쓰였다. 몸통은 스기나무로 만들고 노는 쪽나무로 만들며, 돛대는 6m 정도로 길게 세우고, 황토를 물들인 기폭을 매단다. 황포돛배 주변으로는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유람 중인 황포돛배>
개울의 징검다리 건너면 여강 위에는 황포쌍돛배가 전시용으로 떠있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의 중류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색으로 인해 조선 시대 4대 나루 중 이포와 조포나루를 보유하고 있다. 즉, 여주는 물자교역이 번성했던 중심 상업도시로서 역할을 한 고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강 건너 멀리 서 있는 고층건물은 바벨탑처럼 하늘을 찌른다. 높은 곳에 살면서 주변의 경관을 관망하는 사람이야 더없이 좋으련마는 바로 밑이나 주변에서는 스카이라인이 침해당하여 더 많은 불편을 겪을 것 같다.
<징검다리>
<전시용 황포돛배와 고층건물>
황포돛배유람선은 강 건너 신륵사경내아래 조포나루로 들락거리고, 이 몸은 그 배에 실려 가는 양 영월루에 오른다. 영월루(迎月樓)는 원래 군청의 정문으로 1925년 군청을 옮기면서 지금의 자리에 누각으로 다시 세운 것이다. 팔작지붕으로 낮은 기단과 기다란 몸체, 치켜 올라간 지붕이 누각 바로 아래에 있는 마암(馬巖)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달빛 쏟아지는 보름달이면 이 누각에 앉아 음풍농월(吟風弄月)하고 싶은 마음이다. 주변에는 한국전쟁 기념비와 충혼탑이 있어 숙연하게 한다.
<영월루>
<여강-영월루에서>
영월루 아래 있는 큰 바위다. 이 바위 밑 암혈(巖穴)에서 여흥 민씨 시조가 탄생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바위에서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나왔다고도 전해지는데 여주의 옛 지명인 황려(黃驪)는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절벽에 <馬巖(마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조선 말엽에 여주목사를 지낸 이인응(李寅應)이 썼다고 한다.
<충혼탑>
조포나루가 있던 곳 옆으로는 여주대교가 역할을 대신한다. 또 여주의 관문이자, 천년 고찰 신륵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여주대교는 1964년 8월에 준공되었지만, 노후화로 인해 이 다리를 그대로 놔둔 채 바로 옆에 새로운 다리를 세웠는데, 새로운 다리가 지금의 여주대교이다. 길이는 500m, 너비는 9.4m, 차도는 7m, 보도는 양측 1.2m이다. 이전의 여주대교를 편의상 구(舊) 여주대교로 부른다. 새로운 여주대교가 생긴 뒤에는 인도(人道)로만 사용되었다.
<여주대교 야경-네이버캡쳐>
그러다가 2001년 구 여주대교에 총 6억 8000만 원을 들여 안개 분수, 제트식 분수, 무지개 분수와 도자 벽화, 휴식 공간인 도자 갤러리 등 각종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다리 이름을 연인교(戀人橋)로 고쳤다. 여주시에서는 세계 최초의 교량공원으로 부르는데, 야간조명 시설도 갖추어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있다. 여주대교는 여주시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교통 요충지이다. 하루 평균 이용 차량 대수만도 1만 3000대가 넘는다고 한다.
<연인교-네이버캡쳐>
여주대교를 지나 여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다 보면 좌측으로 여주시청이 보인다. 1914년 3월 1일 여주군청으로 설치된 뒤 2013년 9월 23일 여주군이 시(市)로 승격하면서 여주시청으로 개편되었다. 1읍 8면과 3개 행정동을 관할한다. 시의 주캐릭터는 성군 세종대왕이며, 보조캐릭터는 쌀을 형상화한 미돌이와 도자기를 형상화한 청돌이와 백돌이이다. 이밖에 시나무는 은행나무, 시화(市花)는 개나리, 시새[市鳥]는 백로다.
<여주시청-여주시청홈피캡쳐>
여주시청앞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소양천과 만나는 곳에 양섬이 있고, 그 위로 세종대교가 가로지른다. 양섬은 남한강의 하중도(河中島)로 강의 유속이 느려지면서 퇴적물이 쌓여 강(江) 가운데에 만들어진 섬이다. 여주8경 중 5경으로 기러기때 내리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양섬에는 야구장과 여주시민들의 산책로 및 쉼터로 잘 꾸며져 있고, 캠핑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세종대교는 영릉삼거리(하수사업소)에서 여주시 현암동을 잇는 연장 500m, 폭 6m의 남한강 대교다.
<양섬과 세종대교>
다시 하류로 내려오면 영주향토유적(제21호)으로 지정된‘여주입암(驪州笠巖)이 나온다. 입암(笠巖)은 옛 여주8경 중 하나로, 해동지도 광여도 등에 제6경 입암층암(笠巖層巖)으로 기록된 자연경관유적이다. 현재 입암도 <笠巖>이라 글씨와 함께 당시 여주목사였던 이인응(李寅應), 당시 세력가인 민영목(閔泳穆)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경오막추각(庚午莫秋刻)>이라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경오년(1870년) 늦은 가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입암(笠巖)>
오후 햇살이 강 건너 싸리산으로 길게 늘어질 때 싸리산(192m)자락 아래 강물은 잔잔한 호수다. 싸리산은 예부터 자기(瓷器)의 원료가 되는 고령토가 많이 생산되어 인근에서 도자기산업이 발달하였다. 산에 고령토를 채취하는 굴이 많았는데 서로 맞 뚫릴 정도가 되어 관산(串山)이라고도 칭하였다. 싸리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에 있던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로부터 유래되었는데, 어느 욕심쟁이가 쌀 나오는 바위 구멍을 정으로 넓히자 쌀 대신 백토가 나와 도자기를 구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싸리산>
여주보가 점점 다가오자 발걸음도 빨라진다. 여주보는 강천보와 마찬가지로 2009년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였다. 보의 길이는 513m이며 높이는 8m다. 보 전체가 가동보로 이루어졌고 12개의 수문이 설치되었다. 좌안에는 소수력발전소가 위치하며 총 연간 발전량은 2,970만 kwh(1,650kw 발전기 3대)의 시설용량을 가지고 있고, 발전소 벽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이 새겨져 있다. 보의 교각 형태는 용을 형상화했으며 보의 우측에는 앙부일구(仰釜日晷)를 형상화한 세종광장이 있다.
<여주보>
<여주보수력발전소 훈민정음>
보의 교각 형태는 용을 형상화했으며 보의 우측에는 앙부일구(仰釜日晷)를 형상화하여 디자인한 세종광장이 있다. 또한 여주보 홍보를 위한 물 문화관과 전망대(높이 40m)가 여주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보의 상부에 설치된 공도교는 일반보행과 자전거 통행만 가능하며, 야간조명을 설치하여 관광명소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여주보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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