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여섯 번째-4)

와야 정유순 2019. 7. 20. 00:18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여섯 번째-4)

(단양 애곡리-충주 중원탑, 201971314)

瓦也 정유순

   탄금대인증센터에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탄금대다.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탄금대(彈琴臺)는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남한강과 지류인 달천(達川)이 합류하는 바로 동쪽으로 대문산이라 불리는 해발 108정도의 낮은 구릉으로 충주의 대표적인 명소다. 본래는 견문산이나 개 견()자를 잘못 읽어 대문산 또는 태문산으로 불려왔다고도 한다. 이곳은 오누이 전설이 깃든 달천이 바로 밑으로 들어오고 우륵의 가야금 이야기, 임진왜란 때 장군 신립이 배수진을 쳤던 이야기들이 서려 있다.

<탄금대공원 지도>


   달천은 보은군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군을 거쳐 충주시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옛날 수달이 많이 살아서 달강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 때문인지 인근에 수달피고개가 있으며, 달천리 서쪽 물가를 물개달래로 부른다. 한편, 달천은 물맛이 좋아 단냇물이라 하였던 것이 달냇물로, 다시 달천으로 변했다는 지명 유래도 전한다. 한편으로는 누이의 옷이 젖은 몸매를 보고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죄책감에 스스로 죽은 남동생에 대한 슬픈 푸념 달래나 보지가 전하여 달래강으로도 부른다고도 한다.

<달천과 남한강의 합수지점>


   탄금대는 기암절벽을 휘감아 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탄금대란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중 하나인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400년 전인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악사 우륵은 이곳에 강제 이주 당한 후 탄금대 절벽바위에서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탔다. 그 오묘한 음률에 젖어 들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곳을 탄금대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탄금정이라는 정자가 자리한다.

<탄금정>


   탄금대공원에서 하늘을 찌를 듯 높게 팔천고혼위령탑이 서있다. 이 탑은 1592년 음력 428일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 15461592)이 장졸 8천여 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전적지임을 기리고자 세워진 것이다. 탑 상단의 혼불은 영령들이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하고, 아래 부분의 4인의 군상은 죽음으로써 국토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내고 있다.

<팔천고혼위령탑>


   신립은 지형을 정찰한 뒤 조령에 진지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군사들의 훈련이 부족한 오합지졸인지라, 28일 새벽 8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으나 신립 장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천추의 한을 품고 남한강에 투신자살을 한다. 탄금정에서 북쪽 층계 아래에는 열두대라는 층암절벽이 있다. 왜군과의 격전 당시 장군이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면서 활줄을 강물에 식히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두대>

   탄금대공원 한쪽에는 충혼탑 하나가 서있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순국한 충주출신 전몰장병과 경찰관, 군속, 노무자 등 1,910위의 넋을 기리고자 1956년에 세웠다. 그리고 충혼탑과 탄금정 중간에는 충주출신 항일시인 권태응(權泰應, 19181951)의 감자꽃 노래비가 있어 발길을 머물게 한다. 공원 군데군데에는 조각 작품이 들어서 있고, 소나무 군락의 시원한 그늘은 상큼한 호흡을 할 수 있게 한다.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권태응의 감자꽃 노래비>


   달천과 남한강의 퇴적물에 의해 만들어진 하중도 습지인 용섬에는 숲이 우거진다. 열두대에서 바라봤던 용섬은 장방형으로 길게 늘어진 형태인데, 여러 초본류들이 서식하는 새로운 자연생태계를 이뤄 안정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용섬을 뒤로하며 달천 하구를 가로지르는 탄금교를 건넌다. 탄금교 옆으로는 중앙탑면·노은면·앙성면과 충주 시내를 연결하는 국가지원지방도 82호선 구간으로 1977년에 완공된 탄금대교가 한껏 멋을 부린다. 달천과 합수되는 남한강은 탄금호(彈琴湖)를 이룬다.

<탄금대교>


   탄금호는 1985년에 충주댐과 함께 건설된 조정지(調整池)댐으로 인해 형성된 인공호수이다. 원래 특별한 명칭 없이 그냥 조정지호라고 불리다가 2004년 충주시가 시민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여 호수 이름을 탄금호(彈琴湖)로 정하고, 200484일에 명명식까지 열었다. 호수를 끼고 명승지 탄금대가 있어 탄금호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 같다. 수면을 가로지르는 수상스키의 모습은 시원스럽다.

<탄금호>


   탄금교를 건너 1쯤 걸으면 중앙탑면의 첫 마을 창동리다. 창동리에는 고려시대의 석탑과 석불, 마애불 등이 남아 있다. 창동리 마애불은 입구를 지나 언덕에 올라 강가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을 딛고 내려가면 남한강과 맞닿은 암벽 4m 높이에 새겨져 동남향을 향하고 있다. 불상의 중앙부분이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호방하고 근엄한 표정과 거친 표현이 전형적인 고려시대 마애불로 남한강 뱃길을 오가는 이들의 안녕을 염원하는 듯하다.

<창동리마애불상>


   다시 가파른 계단을 기어 올라오면 가까운 곳에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과 석조약사여래입상이 나란히 서 있다. 창동리 오층석탑과 석조약사여래입상도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커다란 돌에 약합을 들고 서 있는 약사여래를 새긴 것으로 후덕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오층석탑은 두툼한 2층 기단 위에 갸름한 탑신부를 세워 마치 다른 두 석물을 올려놓은 것 같다. 석탑은 인근 폐사지에서, 약사여래입상은 인근 폐광에서 발견된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과 약사여래입상>


   창동리 오층석탑에서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탄금호 순환자전거길이 부교(浮橋)처럼 길게 나있다. 일렁이는 파도를 따라 내 마음도 일렁이며 물 위를 걸어가듯 발걸음도 사뿐하다. 탄금호에서는 2013825일에서 91일까지 제42회 세계조정선수권 대회가 국제조정연맹(FISA) 주관으로 열렸다. 그 후 이곳은 조정경기 대표 선수뿐 아니라 전국 조정팀들의 전지 훈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탄금호  순환자전거길>


   호수 너머 호반에는 대한민국 중심고을 충주라는 푯말이 자랑처럼 서있다. 충청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충주(忠州)’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원(中原)으로 불리었다. 중원이란 명칭은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도농통폐합 될 때까지 이어져 왔다. 충청도의 ()’자도 충주에서 따왔으며,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남한강과 달천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도 농업과 공업이 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관광산업도 한 몫 한다.

<탄금호>


   탄금호 순환자전거길 끝에는 충주박물관과 탑평리 7층 석탑이 중앙탑사직공원 안에 있다. 충주박물관은 중원문화권 중심부에 자리 잡았으며, 시민들이 기증한 유물을 모아 1986년 유물전시관으로 출발하여 1990년 박물관으로 승격하였고, 200411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기증된 유물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충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준다. 야외전시실에서는 지역의 흩어져 있던 석조유물과 충주댐 수몰지역에 있던 석조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충주박물관>

<충주박물관 야외전시장>


   탑평리 7층 석탑은 신라석탑 중 유일한 7층 석탑으로 중원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국토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으로 부른다.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9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높이는 12.95정도로 상당히 높으나 너비가 비교적 좁아 안정감 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진 탑이다. 1917년 해체·복원 시 훼손된 고서류와 구리거울, 은제사리함 등이 나왔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 것으로 밝혀졌다. 이 탑은 여러 차례 해체·복원과정에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주 탑평리 7층 석탑>


   중앙탑사직공원 안에는 많은 조각품들이 제 멋을 뽐내고 있으나, 코를 벌름거리며 입술을 반쯤 벌리고 혓바닥이 보일 듯 말 듯 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상이 이번 여을 마무리 해준다. ()

<조각-잠자는 사람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