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여섯 번째-1)

와야 정유순 2019. 7. 17. 01:34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여섯 번째-1)

(단양 애곡리-충주 중원탑, 201971314)

瓦也 정유순

   한강의 시원을 따라 여섯 번째 출발점은 단양군 단성면 애곡리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앞이다. 이 전시관은 1983년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발굴을 시작하여 2001년까지 총 8차례의 조사로 중기 구석기시대로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문화층에서 발굴되어진 유물과 연구된 자료들을 정리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일제강점기 때 파놓아 방치되었던 터널에 영상과 음향시설, LED조명 등 빛의 테마로 조성한 수양개 빛터널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수양개 빛터널>


   충주댐이 준공된 후 마을 전체가 수몰된 수양개마을의 망향비(望鄕碑)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수몰되기 전 가옥의 배치와 당시 살았던 가옥 주인들의 이름을 새긴 석판이다. 1980년대 중반 이곳 출장 중에 만난 어느 할아버지는 북한 실향민들은 통일이 되면 언제든지 찾아 갈 수 있지만, 누대를 이어온 정든 고향을 저 물 속에 묻어야 하는 나는 통일이 되어도 영원히 갈 수 없는 신세라며 장탄식을 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사는 지금이 있지 않았을까?

<수양개 망향비>


   남한강 위로는 중앙고속도로 단양대교와 적성대교가 하늘을 받친다. 중앙고속도로는 강원도 춘천시에서 대구를 경유하여 부산까지 이어주는 중부 내륙지역의 자원개발 및 지역 간 균형개발을 촉진하며 관광도로로서의 역할을 한다. 200112월에 개통된 단양대교의 교각 높이는 103m로 국내 다리 가운데 가장 높으며 중앙고속도로를 대표하는 구조물로서 2006년 정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포함되었으며, 단양8경에 덧붙여 단양 제9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단양대교>


   적성대교는 단양군 적성면과 단성면을 연결하는 교량이다. 단양군 적성면은 예로부터 적산(赤山)이라 불러 왔다. 온 고을이 붉은 빛을 띠는 데서붙여진 이름이다. 적성면에는 금수산을 비롯한 문화유적지가 많이 있으나 외지와 단절된 교통 낙후지역으로 머물러 있었다. 1969년 다릿발 두 개로 시작하여 선거 때마다 정치꾼들의 선거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어버렸으며, 또한 주민들의 모금으로 추진하다가 충주댐 건설로 물거품 된 것을 1989년 주민번영회를 중심으로 재추진하여 20093월에 준공하였다.


<적성대교>


   적성대교를 건너면 단성면이다. 면역이 거의 월악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산수가 아름다운 고장 단성면(丹城面)은 단양군의 남서쪽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상방리다. 월악산 줄기의 영향으로 면 전체가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도락산·용두산·사봉·두악산 등이 솟아 있다. 충주호를 이루는 남한강이 북쪽 경계를 따라 흐르며, 단양천과 죽령천이 충주호로 흘러든다. 국보인 신라적성비와 단양 8경 중 5(구담봉·옥순봉·상선암·중선암·하선암)이 있으며, 현재 상방·하방·중방리 등의 14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단성면사무소>

<단성면소재지>


   적성대교를 건너 마을로 접어들면 단성보건지소 앞에 딘양 봉서정이 있다. 봉서정(鳳棲亭)은 말 그대로 봉황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정자는 1602(선조35)에 단양군수 이준이 창건하고, 영조 때 군수 조정세와 철종 때 군수 심원택이 중수하였으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첩인 구학첩(丘壑帖)에 그려져 있다. 일제 때(1912) 이곳 지명이 봉화면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단양을 상징하는 봉서정이 있어서다. 단양군에서는 지역의 역사성 회복을 위하여 20136월에 현재의 자리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봉서정>

<겸재 정선의 봉서정>


   단성면사무소 뒤편에는 단양향교가 있다. 1415(태조15)에 세운 단양향교(丹陽鄕校)는 명종(明宗) 초기 퇴계 이황(李滉)이 군수로 있을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영조 때 두 차례 고쳤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 등과 부속건물이 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었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단양향교 정문>

<단양향교 배치도>


   단성면 상방리마을로 흐르는 단양천 우화교(羽化橋)를 건너간다. 한강수계에 속하는 단양천(丹陽川)은 유로연장 22의 지방(2)하천이다. 상류에 단양팔경에 속하는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의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 곳이다. 우화교는 1753(영조29) 단양군수 이기중(李箕重)이 세운 무지개모양의 홍예교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리 옆에 우화교비(羽化橋碑)를 세웠. 소실과 건설이 반복되어 한 때는 목교(木橋)로 건설하였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철근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


<우화교>


   우화교를 건너 쑥고개로 올라서면 단성면 중방리로 남한강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옛단양뉴타운지역이다. 처음에는 충주호 수몰민을 위해 새로 조성한 마을인줄 알았는데, 귀농을 희망하는 도시인이나 단양 거주 농업인, 부모의 농업을 승계할 도시거주 자녀, 농산물가공유통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정부지원 조성 전원마을이다. 이 뉴타운에는 대지 33099, 82.5규모주택 100동이 들어서 2013년에 준공되었다. 이 마을은 전북 장수와 고창, 전남 장성과 화순 등과 함께 농어촌뉴타운 사업대상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옛단양뉴타운 표지석>

<옛단양뉴타운 전경>


   옛단양뉴타운을 지나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호수 가운데에 수중보가 보인다. ()는 수위를 높이고 필요한 수량(水量)을 확보하기 위해 하천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로막아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충주댐으로 담수되어 있는 곳에 보를 설치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먼 거리에서 보여 부대시설(소수력발전 등)을 파악할 수 없으나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충주댐 안의 수중보>


   북쪽 적성면의 말목산(710)과 남쪽 단성면의 제비봉(721)이 마주보며 자웅을 이루고 그 사이로 남한강이 용소(龍沼)를 이루며 유유히 흐른다. 금수산이 남한강을 향해 종으로 달리다가 천 길 낭떠러지를 이루며 펼쳐진 말목산과 장수들이 쓰는 투구와 비슷하여 부쳐진 투구봉과 강물이 굽이쳐 흐르다 큰 소()를 만든 용수구미동에는 지세와 관련된 투구봉의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투구봉?>


   투구봉 아랫마을에 사는 인동 장씨 집성촌 종갓집에 건장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삼칠일(21)만에 시렁(선반)에 올라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도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장사로 성장하여 기쁨 보다는 한숨만 깊어졌다. 이런 아이를 보며 종가의 어른들은 아이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아이의 겨드랑이 비늘을 잡아당겨 긴 날개를 뽑아 아이가 죽자, 말목산에서 용마 한 필이 나타나 길길이 뛰면서 울어대었고, 용수구미에서는 용 한 마리가 나와 슬피 울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말목산 지도>


   단성면 외중방리 얼음골을 지나자 장회고개가 지루하고 길게 늘어선다. 고갯마루를 지나면 외중방리에서 장회리로 바뀐다. 장회리(長淮里)도 주택 72호가 평화롭게 살던 마을이었는데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이 되었다. 강 건너 강선대자리 위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애절한 사랑을 나누었던 두향(杜香)의 무덤이 내려다보이는 장회나루 언덕에 매화를 들고  퇴계와 거문고를 타는 두향 모습을 청동상으로 표현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 공원이 애틋함을 더한다.

<퇴계와 거문고 타는 두향>


   내리 두 아내와 동생을 여의고 단양군수로 부임한 48살의 퇴계는 단양에서 16살의 청상과부 기생 두향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퇴계는 열 달 만에 풍기군수로 옮겼고, 두향과 애달픈 이별을 하게 된다. 두향은 장회나루 건너편 강선대에 초막을 짓고 퇴계를 그리워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퇴계가 타계하자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자결했다. 그로부터 단양 기생들은 강선대에 오르면 반드시 두향의 무덤에 술 한 잔을 올리고 놀았다고 전한다. 퇴계와 헤어질 때 두향은 말없이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퇴계와 두향이의 사랑이야기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