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여섯 번째-2)
(단양 애곡리-충주 중원탑, 2019년 7월 13일∼14)
瓦也 정유순
청포도가 익어가고 처마 밑에 제비집이 있는 식당에서 오전을 마무리하고 청풍문화재단지로 이동하기 위해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이용한다. 장회(長淮)나루는 옛날부터 구담봉(龜潭峰)과 옥순봉(玉筍峰)을 보기 위해 배를 띄우던 곳이다. 지금도 구담봉과 옥순봉은 도담삼봉(島潭三峰)과 더불어 유람선을 타고 뱃길로 돌아볼 수 있다. 충주호 월악에서 단양까지 오르내리는 유람선이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곳 여울은 남한강에서도 급류가 심한 곳으로 배와 뗏목들이 무진 애를 먹던 곳으로 ‘자린고비’ 이야기의 무대이다.
<제비집>
조선 영조 때 충북 음성에는 조륵이라는 구두쇠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파리 한 마리가 장을 빨아먹고 달아나자 조륵은 파리를 쫓아 이 곳 옥순봉 장회리까지 왔으나, 파리가 강을 건너 달아나 버린다. 그는 안타까운 심정에 “장이다, 장이 날아간다.”고 외쳤다. 파리가 훔쳐간 장이 무척이나 아쉬웠던 모양이다.
<장회나루매표소>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륵은 평생 구두쇠로 모은 돈을 나중에 모두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썼다고 한다. 그러자 그가 죽은 뒤에 나라에서는 그의 착한 행적을 기려 자애롭고 인자한 사람이란 뜻으로 자인비(慈仁碑)를 세워 주었는데, 자인비가 자린비가 되고, 다시 오래된 비석이란 뜻에서 옛 고(古)자를 붙여 자린고비라고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외치던 장이라는 말에서 따 그 지역을 ‘장회’라고 불렀다고 한다 . <문화원형백과-한강 생활문화에서>
<장회나루>
뱃고동소리 울리며 배가 출발하면 퇴계와 두향이의 로맨스를 말없이 지켜보던 구담봉이 병풍처럼 보인다. 명승(제46호 2008년 9월)으로 지정된 구담봉(龜潭峰, 373m)은 단양팔경에 속하는 산으로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무늬를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는데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덩굴을 구담의 양안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구담봉>
구담봉을 휘돌아 나가면 옥순봉이다. 명승(제48호 2008년 9월)으로 지정된 옥순봉(玉筍峰, 283m)도 기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의 경관이 뛰어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봉이라고 이름 붙였다. 기암괴석이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지면서 충주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연출한다. 원래는 청풍군에 속하였으나, 조선초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때 돌 벽에 ‘단구동문(丹丘東門)’이라는 글을 암각하여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옥순봉>
북쪽으로 제천시와 단양군 적성면과 경계를 이루는 금수산이 굽어본다. 금수산(錦繡山, 1,015.8m)은 원래 백암산(白巖山)이라 불렸는데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그 경치가 비단에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산기슭에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는데,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다워 북벽·온달산성·다리안산·칠성암·일광굴·죽령폭포·구봉팔문과 함께 제2의 단양팔경로 꼽힌다.
<금수산>
유람선은 미끄러지듯 청풍호를 가로질러 청풍나루로 들어선다. 청풍호(淸風湖)는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인데 제천과 충주에 걸쳐있는 넓은 호수로 제천지역에 해당되는 곳을 청풍호, 충주지역에 속하는 곳은 충주호(忠州湖)라고 부른다. 청풍호가 있는 곳은 예전에 청풍강으로 불렀던 강이며 강 주변에 있는 마을은 모두 수몰 되었다. 호수의 주변은 풍광이 뛰어나 우리나라 중부 최대의 관광지를 이룬다.
<청풍호>
청풍나루에서 하선(下船)하여 청풍문화재단지로 이동한다.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는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조성한 문화재마을이다. 청풍은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읍리,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청북도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
<금병헌-옛 청풍관아>
청풍문화재단지에 입장하려면 팔영루를 지나야 한다. 팔영루(八詠樓)는 조선시대에 청풍부(淸風府)를 드나들던 관문이다. 팔영루라 부르는 것은 고종 때 부사 민치상(閔致庠)이 청풍팔경(淸風八景)을 읊은 팔영시(八詠詩)에서 연유한다. 숙종(肅宗) 28년(1702)에 부사(府使) 이기홍(李箕洪)이 창건하고 현덕문(賢德門)이라고 한 것을 1870년(고종 7)에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수하였다.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을 피해 청풍면 읍리(邑里)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여 현재는 청풍문화재단지의 정문으로 이용되고 있다.
<팔영루>
연자방앗간 뒤로 제천 도화리와 후산리 등에서 충주댐 수몰로 이전해 온 고가(古家)들이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을 보여준다. 성묘 길에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은 김중명(金重明, 1614∼1685) 조각도 눈길을 끈다. 김중명은 1645년(인조 23) 무과에 급제하고, 효종의 북벌 계획에 참여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671년(현종 12) 영흥 대도호부사로 재직 중 관내 사노(私奴)가 주인을 죽인 사건으로 파직되었으나, 그 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와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만년에 청풍의 백치에 은퇴하여 살았다.
<제천 도화리 고택>
<김중명의 범 잡는 모습>
지석묘(支石墓) 군을 지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벽루(寒碧樓)가 남한강을 조망한다. 한벽루는 청풍 관아에 딸린 누각이었다. 이산해(李山海, 1538∼1609)의 시에서 “아름다운 경치는 호서 제일[形勝湖西第一洲]”이라고 했듯이 호서 제일의 누각으로 많은 사대부들이 풍류로 활용되었다. 특히 남한강 변의 풍광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벽루에 올라 강물 소리 들으며 신선이 산다는 창주(滄州)에 붙어살기에 딱 좋은 곳이다.
<한벽루>
청풍 관아로 사용했던 금병헌(錦屛軒), 멋진 몸매 S라인 벚나무를 훑어보고 망월산 정상을 둘러 싼 작은 규모의 석축산성인 망월산성과 망월루에 오른다. 청풍을 삼국시대에는 사열이현(沙熱伊縣)이라 했으며, 신라 문무왕13년(673)에 사열이산성(沙熱伊山城)을 늘려 쌓았다고 하는 고증이 있으나, 이와 관련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산성의 둘레는 500m이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4m다. 신라 말의 작품으로 보이는 ‘물태리 석조여래입상’까지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송계계곡으로 향한다.
<망월산성>
<망월루>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송계계곡(松界溪谷)은 충주시(忠州市) 수안보면(水安堡面)과 제천시(堤川市)에 걸쳐있는 월악산 자락에 있는 계곡이다. 월악산(月岳山, 1,097m)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흐르는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길이 약7㎞다. 계곡 주변에 있는 월광폭포(月光瀑布), 학소대(鶴巢臺), 자연대(自然臺), 청벽대(靑壁臺), 와룡대(臥龍臺), 팔랑소(八娘沼), 망폭대(望瀑臺), 수경대(水鏡臺) 등은 송계팔경(松界八景)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월악산 일대는 1984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월악산>
<송계계곡>
송계계곡 남쪽 상류인 제천시 한수면(寒水面) 송계리(松界里)에는 사자빈신사지에는 보물로 지정(제94호, 1963년 1월)된 고려시대의 화강석 석탑이 있다. 높이 4.5m의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은 상층기단 네 귀에 4구(軀)의 사자를 앉혀서 갑석을 받게 하고, 중심에는 지권인(智拳印)의 비로자나불좌상을 모셔두었다. 앉은 모양의 비로자나불좌상은 특이하게 두건을 쓰고 있으며 뒷머리의 나비매듭 형상이 매우 흥미롭다.
<사자빈신사지 석탑>
<비로자나불좌상>
하층기단 정면에 10행 79자로 적힌 명문(銘文)에는 고려현종 13년(1022)에 거란의 침탈을 불력으로 막아 태평안민을 기원하고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원래 이 석탑은 9층이었던 모양이나 현재 옥신(屋身)은 5층까지, 옥개석(屋蓋石)은 4층까지만 남아 있다. 갑석에서와 같으나, 갑석은 아래는 하층기단갑석과 같으나, 더욱 얕게 부연이 표시되었고, 상면에는 사각형으로 16판(瓣)의 연꽃이 조각되어 탑신부를 받치게 되어 있다.
<비로자나불좌상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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