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강계곡과 정방사
(2019년 7월 20일)
瓦也 정유순
태풍이 남쪽지방에 상륙하면 강한 비바람이 동반하다는 일기예보에 덩달아 마음만 급해진다. 그러나 천등산휴게소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빗방울만 오락가락할 뿐 그렇게 큰 비는 쏟아지지 않는다. 능강계곡 주차장에 도착하여 우기에 대비한 여장을 다시 꾸리고 정방사 가는 가파른 길로 접어들어 올라간다. 절을 찾아가는 신도들의 자동차인지는 몰라도 차들이 좁은 길을 달릴 때는 길이 더 좁게 느껴진다. 일부 사람들은 자동차를 피해 비로 인해 길이 미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오솔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었다.
<능강계곡과 정방사 지도>
제천 자드락길 2코스인 정방사길은 약2km로 짧은 코스이지만 능강계곡 입구에서부터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팔라 땀을 흘리게 된다. 그러나 길이 포장되어 있어 산행의 운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숲이 울창하고 길옆으로 계곡이 이어지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정방사 입구에 올라 숨을 가다듬으며 뒤를 바라보는 순간 멋진 풍경으로 보상받는다. 청풍강(淸風江)은 댕기머리 총각 가르마처럼 산과 산을 비집고 길게 뻗어있고, 산의 능선들은 열여덟 처녀 볼기짝처럼 매혹적이다.
<정방사 올라가는 길>
<정방사에서 바라본 청풍호>
정방사(淨芳寺)는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로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淨]물과 바람이 꽃향기[芳]와 어우러져 아름답게 펼쳐진 절이다. 662년(신라 문무왕2) 의상(義湘)대사의 제자 정원(淨圓)이 창건하고 그 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설화에 의하면 정원스님이 수행정진 중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깨닫고 의상에게 자문을 구한바 “내가 던진 지팡이 뒤를 따라가다가 멈춘 곳”에 터를 잡고 윤씨 성을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절을 지으라 하여 지었다고 한다.
<정방사 전경>
경사진 좁은 공간에 크게 3단의 축대를 평지 삼아 전각이 배치되어 있는데, 맨 아래 층계에는 선남(善男) 선녀(善女)만 이용하는 해우소(解憂所)는 절벽 쪽으로 창문을 내어 놓아 절경을 즐길 수 있게 자리한다. 그 위로 주법당과 나한전, 그리고 종무소로 사용되는 유운당과 범종각이 있다. 주법당인 원통보전이 자리한 중심곽은 폭이 매우 협소하여 의상대(義湘臺)를 배경으로 중정이 없는 모습이며, 법당에서 서쪽으로 장방형의 가람이 펼쳐진다.
<정방사 전각>
특히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지장전과 석금실, 그리고 해수관음보살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해수관음보살상은 낙산사, 향일암 등 해안을 중심으로 한 사찰의 언덕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서 있는 게 보통인데, 이곳 내륙지방에서 해수관음입상을 보는 것도 특이하다. 용(龍)은 물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존재하는 우리의 신앙이기 때문에 굽어보이는 청풍호를 운항하는 선박들과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수관음보살상>
원통보전 뒤 절벽 틈에서 솟는 석간수로 오장육부를 씻어내고 처음 출발했던 능강교로 내려온다. 최영미시인은 그의 시 <선운사에서>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더군/골고루 처다 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 이라고 했던 가∼. ‘제천청풍호자드락길 정방사코스’는 올라갈 때 뱉어 냈던 바튼 숨소리가 어느 새 콧소리로 변하여 흥얼거린다. 올라갈 때 흘렸던 땀방울은 젓가락 닿는 곳마다 맛있게 간이 쳐진다.
<정방사 원통보전>
정방사에서 돌아 나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편했다. 정방사로 올라갈 때 보았던 갈림길이 또 다른 자드락길인 금수산얼음골생태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길의 끝은 냉풍혈이 있는 얼음골까지 5.4km 이어진다. 금수산(錦繡山, 1,015.8m)은 원래 백암산(白巖山)이라 불렸는데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그 경치가 비단에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산기슭에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는데,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금수산>
능강계곡은 금수산 서북쪽 8부 능선의 한양지(寒陽地)에서 능강천이 흐르는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계곡이다. 능강계곡은 풍광이 빼어난 아홉 군데를 정하여 능강구곡(綾江九曲)이라 하였다. 그러나 1곡은 쌍벽담(雙璧潭)[두 절벽이 있는 연못], 2곡은 몽유담(夢遊潭)[꿈에 노니는 연못], 3곡은 와운폭(臥雲瀑)[구름이 누어서 흘러가는 듯한 폭포], 4곡은 관주폭(貫珠瀑)[구슬을 꿴 듯한 폭포로 일명 관주폭포]까지는 충주댐 건설로 청풍호 물속에 잠겨있고, 제6곡(금병대)은 홍수에 떠 내려와 계곡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금수산얼음골 표지석>
우선 첫발걸음은 오르막길이 없어 편하다. 계곡이 옆으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행진곡이다. 자연의 미(美)에 취해 얼마쯤 올라갔을까? 제7곡인 연자탑(燕子塔)과 족두리바위 안내판이 서있다. 연자탑은 ‘제비가 동쪽을 향한 곳은 능강구곡의 발원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금수 제일’이라 했고, 족두리바위는 여인의 족두리를 얹은 모습으로 ‘한 기생이 일본장수와 칼춤을 추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소(沼)에 빠져 죽었다 하여 기생바위로도 불리는 곳’이지만 울창한 숲이 가려 분간이 안 간다.
<금수산얼음골 입구>
<연자탑과 족두리바위 안내판>
돌탑이 줄지어 선 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제8곡인 만당암(晩塘岩)이다. 만당암은 능강리 상수도 발원지로 보를 막은 곳으로 냇물에 드리운 반석에 수십 명이 앉아서 자연의 시상(詩想)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만당암 약50m쯤 위쪽 왼편 계곡에는 5m정도 길이의 부처가 누워 있는 ‘얼음골 와불(臥佛)’ 형상이 있다.
<만당암>
<와불>
능강구곡의 맨 위에 있는 제9곡은 ‘푸른 물방울이 떨어지는 넓적한 바위’ 취적대(翠滴臺)다. 취적대는 취적폭포와 검푸른 취적담은 능강구곡의 정점을 이루는 최고의 절경이다. 능강구곡은 유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그 형상이 많이 변형되었으나 냇물이 굽이굽이 돌 때마다 만들어 놓은 기이한 담소(潭沼)와 폭포, 풍광은 무아지경이다. 취적대를 지나 얼음골로 가는 길은 조금 가파르고 잔돌들이 많은 험한 돌길구간이고 시간의 촉박으로 얼음골까지의 산행은 뒤로 미루고 나만 뒤돌아선다.
<취적대>
금수산얼음골은 지대가 높고 햇볕이 드는 시간이 짧아 여름철에도 바위가 차가워지고 얼음이 나는 곳이라 한다. 얼음골에는 상얼음골과 얼음골이 있는데 얼음이 나는 곳은 상얼음골이다. 1,000여㎡의 돌무더기에서 30∼40㎝ 가량 들추면 밤톨만한 크기의 얼음 덩어리가 나오는데, 이 얼음을 먹으면 온갖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있다. 금수산 얼음골은 초복에 얼음이 제일 많고 중복에는 바위틈에 있으며 말복에는 바위를 들어내고 캐내야 한다고 한다.
<금수산얼음골-네이버캡쳐>
얼음골은 먼저 올라간 사람들에게 갔다 온 소감을 듣기로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터덕대기만 한다. 내려오는 도중에 돌탑이 즐비하게 서있는 농장에는 먼저 올라가기를 그만 둔 도반께서 빈대떡으로 망중한을 즐기는 틈새에 끼어 함께한다. 꽤 넓은 남새밭에는 정성들여 가꾼 채소들이 주인의 손길에 무럭무럭 자란다. 이 집의 주인은 5∼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다. 바깥양반은 충남 천안에서 생활하시며 자주 들르신다고 한다.
<금수산얼음골 돌탑>
원래 이 터는 암자(庵子)였는데 몇 년 전에 불타 버린 절터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례를 많이 하여 병원도 많이 다녀보고 했으나 별 차도가 없어서 신내림까지 할 뻔 했으나 두 손 모아 “제발 무당만 안 되게 해달라고 정성들여 빌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천여 평에 달하는 이 터를 구입하게 되었고, 주변에 돌을 모아 돌탑을 손수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쌓은 돌탑 위의 귀석(龜石)은 꿈에 본 돌을 찾아 올려 논 것이라고 한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했던 가. 신통(력神通力)이 통한 것 같다.
<거북돌이 올려진 돌탑>
<화전민이 살던 집터>
<돌탑 위의 메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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