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다섯 번째-2)
(영월각동리-단양하선암, 2019년 6월 22일∼23일)
瓦也 정유순
여울목! 강이나 바다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 단양군 가곡면 사평리에 있는 물 흐르는 소리 청아한 ‘여울목’이라는 마을은 검룡소에서 발원하는 남한강이 마을 북쪽으로 감싸 흐르며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가곡면(佳谷面)은 1914년 단양군과 영춘군이 합병되기 이전에는 영춘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가야면과 대곡면이 통합되면서 단양군 가곡면으로 개칭되었다. 가곡면은 남으로는 소백산 국망봉(國望峰, 1421m)과 비로봉(毘盧峰, 1440m)이 경북 영주시 순흥면과 경계를 이룬다.
<여울목전망대>
여울목전망대의 아침은 강물 흐름소리와 어우러져 상큼한 하루를 약속한다. 강변의 수령 300년 이상 된 보호수 느티나무도 한껏 아침 기지개를 펴고, 강 건너 단애(斷崖)는 더 푸르른 녹음으로 아침햇살을 받는다. 데크길이 완비된 강변에는 온통 푸른 빛 뿐이다. 가곡면 문화재로는 어제 들렀던 향산리 3층석탑(香山里三層石塔) 등이 있고, 어의곡리(於衣谷里)에는 천연기념물인 소백산의 주목군락(朱木群落)이 있다.
<여울목 단애>
덕천삼거리에서 덕천교를 건너 오른쪽 너른 강가로 접어들자, 강 건너 소백산자락에서는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하는 사람의 욕망을 싣고 나르는 패러글라이딩의 날개 짓이 한창이다. 덕천리에서 매포읍 도담리에 있는 석문과 도담삼봉까지는 길을 이용할 수 없어 버스로 이동한다. 1980년 12월 1일 읍으로 승격한 매포읍(梅浦邑)에는 대단위 석회석 시멘트 공장들이 많이 있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제물(祭物)을 장만할 수 없어 ‘비 오는 날이 제삿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소백산의 패러글라이딩>
단양팔경의 하나이며 명승 제45호(2008년 9월)인 단양 석문(石門)은 도담삼봉에서 북쪽 언덕 위에 있는 이향정을 넘어 30분 정도 산길을 따라 걸어가야 석문을 볼 수 있다. 이 석문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자연유산으로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남은 동굴 천장의 일부가 마치 구름다리처럼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문 자체의 형태도 특이하고 아름답지만, 석문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건너편 농가의 전경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다.
<단양 석문>
구름다리 모양의 돌기둥 자연경관자원 중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졌으며, 석문 안에 살았다는 마고할미의 전설이 서려있다. 비녀를 잊어버린 마고할미가 비녀를 찾기 위해 땅을 판 것이 99마지기 논이 되었다고 하며, 마고할미는 이곳에서 술과 담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평생을 살다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데, 석문에는 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들고 있는 형상의 마고할미 바위가 있다. 다시 돌아 나오면 명승 제44호인 도담삼봉(嶋潭三峰)이다.
<이향정에서 바라본 도담삼봉>
단양팔경의 하나로, 남한강 한가운데에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 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다. 조선왕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 이곳 중앙봉에 ‘삼도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가끔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하며,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도 도담삼봉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도담삼봉은 충주댐의 완공으로 약 1/3이 물에 잠겼다.
<도담삼봉>
장군과 첩의 다정하게 도란거리는 속삭임에 본처는 고개를 외로 꼬고 돌아앉은 도담삼봉 모습은 위대한 자연이 만든 인간사가 반추(反芻) 되는 것 같다. 자전거도로로 개설된 길에는 마차가 방울소리 찰랑거리며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도담삼봉구역을 벗어나면 단양읍 별곡리다. 별곡리는 주변의 산형(山形)이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은 형상의 무자봉 동쪽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벼리(벼랑)가 있으므로 벼리실 또는 벼실이라고 한데서 별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마차>
단양읍(丹陽邑)은 단양군의 중부에 위치하며 읍 소재지는 별곡리다. 충주호로 흘러드는 남한강이 읍의 서부를 곡류한다. 소백산의 영향으로 읍 전체가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남동부 일대는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읍내는 대성산을 주산으로 하고 남쪽의 양방산을 마주보고 있다. 현재 현천·덕상·심곡리 등 17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으며, 특히 충주댐의 건설로 단양읍내 및 그 일부가 수몰되었으나, 도전리·별곡리에 새로이 건설한 신단양은 호반의 도시로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다양읍 안내도>
남한강을 따라 패러글라이딩은 계속하여 하늘을 나르다가 단양읍 둔치로 나비처럼 사뿐히 착륙한다. 강 건너 양방산(陽坊山, 664m) 정상에는 단양읍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너른 마당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양방(陽坊)은 햇볕이 오래 내려 쪼여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또 암벽에는 인공으로 조성한 양백폭포가 70m 높이에서 물줄기를 쏟아내며, 야간에는 오색 조명이 비추어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양방산을 양백산(兩白山)으로도 부른다.
<양방산전망대>
<패러글라이딩 착륙>
<양백폭포>
신단양 시가지에 있는 상진고개에는 소금정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시가를 좌우로 나눈다. 좌측의 다리는 상진대교와 상진철교로서 중앙선철도와 국도5호선이 지나가고 주로 주거와 숙박시설이 밀집된 곳이다. 우측의 도전리는 단양군청을 비롯한 행정타운과 시장 그리고 교육시설이 밀집된 곳이다. 단양읍에서 남한강을 가로질러 고수동굴로 이어지는 아치형 철골트러스 교량은 고수대교로서 신단양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고수대교>
소금정공원(邵今鼎公園)은 나그네가 쉬었다 가던 옛 상진고개로 임금이 신에게 제물을 올릴 때 손을 깨끗이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단 앞에 선 형상이라고 한다. 이렇듯 경건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임한다면 하늘도 스스로 도울 것이며 모든 일이 엄숙하고 정연하게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이러한 뜻을 기려 이곳을 ‘소금정’이라 명명 하였다고 한다.
<소금정공원>
소금정공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상진대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변수직절벽에 선반이나 시렁을 매달아 놓은 듯 절벽에 쇠막대기 등을 밖아 고정 시킨 뒤 그 위에 상판을 깐 단양강잔도(棧道)다. 단양읍 상진리(상진대교)에서 강변을 따라 적성면 애곡리를 잇는 길이 약1,200m, 폭 2m로 조성됐다. 단양강잔도는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던 남한강 암벽을 따라 갈 수가 있어 트래킹의 낭만과 짜릿한 스릴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남한강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단양강잔도>
<상진대(철)교>
강물 위를 걷듯 발밑으로 출렁이는 물결과 눈 희롱하며 도착한 곳은 적성면(赤城面) 애곡리(艾谷里)다. 잔도가 끝나는 애곡리에는 ‘만천하스카이워크’가 있는데 둘러보지 못했다. 만천하스카이워크는 남한강 절벽 위에서 수면 아래를 내려 보며 하늘 길을 걷는 곳이다. 전망대에는 고강도 삼중 유리를 통해 발밑에 흐르는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절벽 끝에서 걷는 짜릿함도 경험할 수 있고, 짚라인으로는 남한강 수면으로부터 120m 높이의 상공에서 시속 50km를 넘나드는 스릴도 맛 볼 수 있다고 한다.
<만천하스카이워크>
또한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垂楊介)에 있는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에 걸친 유적(사적 제398호) 등 볼거리가 많이 있지만 이를 뒤로하고, 자동차가 일방통행으로 양쪽 끝에서 수신호가 있어야 갈 수 있는 이끼터널을 통과하여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에 있는 사인암으로 이동한다.
<수양개이정표>
사인암 입구에는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창건하고 아미타여래삼존을 모신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원래 대강면 황정리에 있었으며, 대사찰이던 대흥사의 말사였으나, 조선말엽인 1879년 일본군 침략 때 본사인 대흥사는 불타 소실되었고, 1954년 적색분자 소탕작전으로 황정리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지자 그곳 주민과 함께 이곳 사인암리 산 27번지에 이주하면서 기존의 대들보와 기둥을 함께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암자에는 충북유형문화재 제309호로 지정된 목조보살좌상이 있다.
<청련암>
단양팔경 중의 하나이며 명승 제47호인 사인암(舍人巖)은 높이는 약 50m로 기암 아래는 남조천이 흐르며 소(沼)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풍치를 더해준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려 때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1263∼1342)의 행적 때문에 지어졌다. 고려 시대 우탁이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정4품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에 있을 당시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가 우탁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사인암>
사인암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거의 사다리 같다. 숨 가쁘게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입구에는 올라갈 때 지나쳤던 우탁의 시 <탄로가(嘆老歌)>가 가슴에 와 닿는다. “한 손에 막대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사인 역동 우탁 지음> 우탁은 감찰규정으로 근무할 때 왕의 비행을 고치고자 도끼를 앞에 놓고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던 충신이라고 한다.
<우탁의 탄로가>
사인암을 빠져나와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이 있는 선암계곡으로 이동하여 먼저 상선암에 도착한다. 상선암(上仙岩)은 맑은 벽계수가 용출하여 반석사이를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 폭포가 되어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지니 그 음향이 우레와 같고 튀는 물방울이 탐승객의 옷깃을 적셔 준다.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상선암>
중선암(中仙岩)은 조선 효종조의 문신 김수증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며 삼선구곡의 중심지다. 암계류에서 쌍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쌍용폭’이라 한다. 옥염대 암벽에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란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는데 이는 관찰사 윤헌주가 1717년(숙종43)에 특서한 것이다. 여기서 사군이란 단양·영춘·제천·청풍을 말한다. 백색의 웅장한 2개의 바위는 <옥염대>와 <명경대>다. 단양팔경 중 하나이나 차창 밖으로 지나친다.
<선암계곡 지도>
하선암(下仙岩)은 삼선구곡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 바위는 넓이가 백 여척이나 되어 마당을 이루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있는데, 그 형상이 미륵 같아 <불암>이라고도 불린다. 그 바위는 조선 성종 때 임재광이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 하여 <선암>이라 명명하였는데 거울같이 맑은 명경지수가 주야장천 흐르고 있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하여 <홍암>이라고도 한다. 단양팔경의 하나로 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이다.
<하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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