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변 길-샛별길(제6코스)
(꽃지해변∼황포, 2019년 2월 16일)
瓦也 정유순
긴 겨울 가뭄으로 온 산하가 갈증을 느끼며 미세먼지가 풀풀날리고 흙길마다 먼지투성인데 어제부터 서설(瑞雪)이 휘날리었으며, 새벽길 나서는데도 눈발은 오락가락한다. 기상예보도 서해안의 파도높이는 4∼5m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고 신호를 보낸다. 새벽공기 가르며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홍성IC를 빠져나와 제40호 국도를 타고 홍성군 서부면 광리교차로 지나기 이전에는 마을의 당산목으로 보호받는 소나무가 지나는 이들의 안전을 기원하는데, 항상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고 지나치기만 한다. 교차로에서 서산방조제를 지나 안면대교를 지난다.
<홍성군 서부면 광리 소나무>
안면도(安眠島)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태안반도의 남쪽 끝으로 길게 뻗어 나와 천수만을 이룬 ‘태안곶(또는 안면곶)’이었는데 조선 1638년(인조16)에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거둬들인 세곡(稅穀)을 한양으로 운송하는 뱃길을 새로 내어 지금 연육교가 들어선 남면과 안면도 사이의 ‘창기리’를 끊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운하가 되었으며, 여섯 번째 되는 큰 섬이 되었다. 이 뱃길은 1869년에 건설한 수에즈 운하나, 1914년에 완공한 파나마 운하보다 약200년 이상 앞선다.
<안면도 지도>
이 ‘안면 땅’을 섬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고려 1134년(인종12) 때부터 천수만과 가로림만 사이를 물길로 연결하여 백오십리가 넘는 뱃길을 7㎞의 뱃길로 바꾸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4㎞ 정도의 땅을 파고 나머지 3㎞는 암반에 막혀 번 번히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1968년 연육교가 처음 개통되면서 다시 배를 타지 않고도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태안해안길-샛별길>
연육교를 건너 버스는 꽃지해변주차장에 도착하여 오늘 코스의 출발점이며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할애비·할미바위’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 바위의 전설은 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張保皐)가 서해안의 견승포(안면)에 전진기지를 두고 이 기지의 책임자로 승언장군을 임명했는데, 승언은 견승포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이곳을 지키다 진군 명령을 받고 출전한 뒤 돌아오지 않자, 일편단심으로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바위가 되는데, 이 바위가 할미바위이고, 그 후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 듯 하더니 할미바위 옆에 할애비바위가 우뚝 솟았다고 한다. 이곳의 지명도 안면읍 승언리이다.
<할미-할애비바위>
방포항 사이에 있는 할애비·할미바위의 노을 진 아름다운 석양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침나절에 철석이며 밤새 파도를 삼키고 새벽을 연 꽃지해변으로 들어선다.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지’라는 예쁜 이름을 얻었다. 여름 내내 향내 피우던 해당화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봄 소리를 들으며 길게 기지개를 펴는 것 같다.
<꽃지해변>
마주보며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은 할애비·할미바위도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깨금발을 하며 귀를 쫑긋한다. 그 곱디고운 꽃지의 모래는 국제꽃박람회를 개최한다는 명분으로 대형주차장과 해안도로 등 해안공원을 만든다고 바람 길을 막아버려 모래밭 위에 자갈들이 시나브로 쌓여 거칠게만 보인다. 1989년에 개장한 꽃지해수욕장은 안면도에서는 제일 큰 해수욕장이다. 넓은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 맑고 깨끗한 바닷물, 알맞은 수온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다. 솔밭 숲속에는 대형 리조트시설이 스카이라인을 가린다.
<거칠어진 꽃지해변>
<꽃지해변의 대형리조트>
솔숲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서쪽으로 자라목처럼 길게 뻗은 구릉(丘陵)을 넘고 잡초가 우거진 묵은 밭을 지나면 조수가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만(灣) 특유의 지형인 병술만(兵戌灣)이 속살을 들어내 놓고 기다린다. 넓게 펼쳐진 갯벌에는 아침나절 늦잠을 자는지 뭇 생명들의 흔적은 눈에 띄질 않고 바닷물 진입을 막은 둑 안으로 큰 민물고기들이 줄을 잇는다고 하여 부지런한 강태공은 짜릿한 손맛 보기에 바쁘다고 한다.
<병술만 방조제>
‘병술만’은 고려시대 삼별초가 주둔했던 군사요충지였지만 흔적은 없다. 삼별초(三別抄)는 고려 때 최씨 무신정권이 고용한 군인으로서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으로 구성된 사병이었으나, 몽골이 침입하자 유격전술로 몽골병들을 괴롭혔으며, 무신정권이 무너지면서 몽골과 강화(講和)하고 개경(開京)으로 돌아가자 이를 끝까지 반대하며 대몽항쟁을 강화도에서 안면도로, 진도로, 제주도로 주둔지를 옮겨가며 계속하다가 제주도에서 완패 당했다. 그러나 삼별초의 저항은 고려인의 자주 정신을 보여 주었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병술만>
뭉게구름은 겨울하늘에 둥실 떠있고, 갯벌 샛강은 물길을 S자를 그린다. 병술만 갯벌에 그려진 모양들은 자연이 만든 예술이다. 곡선을 그리며 숲 그늘과 어우러진 모래밭도 봄을 기다리는 춘망(春望)이다. 꽃지해변에서 넘어왔던 고개는 북풍한설(北風寒雪)을 막아주는 병술만의 병풍이로다. 모래언덕 위로는 사륜구동차(ATV)가 미끄러지고,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를 숨바꼭질 하듯 비집고 지나가면 ‘줄밭머리’가 나온다.
<병술만 샛강>
줄밭머리는 신석기시대의 돌도끼와 돌칼 등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조약돌이 많이 쌓인 돌자갈산이었는데, 간척 등 농지를 개간하면서 야생 줄(부추의 충청도 사투리)이 많이 돋아나서 돌밭에 줄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으며, ‘줄밭이 좋은 바닷가 머리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마을이름이 ‘줄밭머리’라고 한다. 그러나 옛 마을은 형체가 없어지고 외형이 닮은 펜션 두 채만 터를 지킨다.
<줄밭머리마을 펜션>
비닐하우스가 더 많은 마을 앞에는 뽕나무(?)로 추정되는 고목이 마을을 지킨다. 원줄기 같은 가지는 힘이 부쳐 가랑이가 찢어져 목 끈으로 버티는 모습이 애처롭다. 병술만을 뒤로하고 줄밭머리 마을 끝자락을 돌아서면 샛별해변으로 가기 전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 갯골 사이로 연못이 한 개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사리 때만 물이 들어오고 조금 때는 물이 들어오지 않아 자연으로 연못이 만들어졌던 모양이다. 그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어 방죽을 쌓게 되었는데 그것이 기원이 되어 마을 이름이 ‘연방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방죽은 보이지 않은 채 표지판만 서있다.
<뽕나무(?) 고목>
파도의 해식(海蝕)작용으로 형성된 암석과 바다 건너에 있는 ‘섬(장고도) 밖의 외딴 섬’이라는 외도(外島)와 눈 맞춤을 하듯 스치며 샛별해안으로 들어선다. 샛별해안은 일직선으로 뻗은 단조로운 편이다. 백사장은 모래와 자갈이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샛별’은 자연간척지로 ‘샛벌’로 불리다가 ‘샛별’이 되었다고도 하고, 자염(煮鹽) 생산지로 ‘새벗’이라고 불리다가 “샛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태안해변길 6구간이 ‘샛별길’로 명명된 것도 이곳에서 연유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외도>
<샛별해변-2017년9월촬영>
샛별해안을 지나 다시 숲길고개로 접어든다. 잘 다듬어진 임도를 따라 고개를 넘어간다. 국사봉(107m)자락 고갯마루 삼거리에서 ‘쌀 썩은 여(礖)’ 푯말을 지나칠 뻔 했다. 혼자 찾아간 전망대는 찾아오는 사람 없어 외로웠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전망대에 올라 하늘색과 바다색이 엇비슷한 바다가 보이고 그 가운데에 섬 망재가 바다에서 하늘로 가는 고개처럼 외롭게 떠있다.
<쌀 썩은 여 전망대-2017년9월촬영>
이곳의 이름인 ‘쌀 썩은 여(礖)’여의 여(礖)는 썰물 때는 바닷물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는 바다에 잠기는 암초(暗礁)를 말하는데, 세곡미(稅穀米)를 나르던 배들이 하도 많이 침몰하여 쌀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쌀 썩는 여(礖)’다. 고을 수령들이 국고미를 착복하기 위해 선장과 짜고 사고로 위장 보고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일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나라의 운명을 가른다.
<섬 망재-2017년9월촬영>
국사봉 자락을 넘으면 황포해변이 보인다. 황포(黃浦)는 홍수로 인해 갯벌(개)에 누런 황토물이 흘러 ‘누런개’로 불리다가 ‘황개’로, 다시 ‘황포’로 바뀌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해안을 따라 설치된 방조제로 인해 민물의 유입이 적어 황토물의 흐름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물 빠진 황포항에는 어선들이 발 묶여 있고, 꽃게잡이 통발들도 봄날을 기다린다.
<황포해변-2017년9월촬영>
<황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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