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송년도보 군산구불길(2)

와야 정유순 2019. 1. 1. 22:55

송년도보 군산구불길(2)

(2018122930)

瓦也 정유순

   조반을 마치고 선유도 구불길을 걷기 위해 선유도로 이동한다. 육지에서 보면 바다 위에 여러 산()들이 무리()지어 보인다하여 군산(群山)이었던 곳에 조선 태조가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수군진영을 설치하였으며, 왜구들은 이를 우회하여 육지로 들어오자 세종은 금강하구인 진포(鎭浦)로 수군진영을 옮기면서, 그곳이 군산이 되었고 원래 군산이었던 이곳은 앞에다가 옛 고()자를 붙여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군산군도는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등 6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중 16개의 섬에 사람이 살고, 행정구역은 군산시 옥도면에 소속되어 있다.

<고군산군도 지도>


   원래 군산도(群山島)라고 불리었고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도(仙遊島)는 고군산군도의 대표적인 섬으로 선유팔경을 볼 수 있는데, 일몰이 아름다운 선유낙조,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고운 모래가 펼쳐진 명사십리 해변, 많은 비가 내리면 78개의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는 망주봉폭포, 기러기 한 마리가 백사장에 날아와 앉은 형상의 평사낙안4경은 선유도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고

<선유도 명사십리 해변>


   무녀도와 선유도 사이의 서쪽의 무인도가 세척의 돛배가 귀향하는 것 같은 삼도귀범, 바로 옆 섬 장자도에서 고기잡이하는 배들의 휘황한 불빛의 장자어화, 동쪽의 신시도 월영봉 가을의 월영단풍, 방축도 말도 등 선유도를 둘러 싼 열두 섬의 봉우리형상이 병사의 모습과 흡사한 무산십이봉4경은 주변에서 선유도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경치들이다. 그러나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가 기러기 형상이라 4경인 평사낙안의 팽나무는 명을 다해 사라졌다고 한다.

<선유도 제방의 조형물>


   최근 선유도의 명물로 떠오르는 스카이라인(일명 zip라인) 건물이 45미터(12) 높이의 위용을 자랑한다. 11층은 전망대이고 12층은 하강장(下降場)으로, 이곳에서 출발하여 외줄타기로 조그만 솔섬 700m까지 가는 코스로, 줄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스릴을 안겨준다. 솔섬에서는 백사장방조제 까지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카이라인 하강장>


   그리고 방조제 밑으로 선유 제2경인 명사십리 해변이 장관을 이룬다. 해수욕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욕망은 숨길 수 없다. 망주봉을 우측으로 한 바퀴 돌아 선유3구 마을 앞으로 하여 몽돌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해안으로는 밀물이 밀려오고 파도소리는 점점 커진다. 언젠가 선유도에서 무료한 저녁시간을 때우기 위해 찾았던 속 다르고 겉 다르다는 노래방!’은 젓갈 집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남악마을 뒤의 아주 작은 몽돌해변 파도의 속삭임은 예사롭지 않다.

<선유해수욕장>

<몽돌해수욕장>


   밤새 눈이 내려 고물을 뿌려 놓은 것 같은 망주봉(望主峰)은 선유도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해발 152의 낮은 바위산이지만 선유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들어오면서부터 나갈 때까지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도 금방 눈으로 들어오는 바윗덩어리이다. 망주봉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 선유도에 유배된 충신이 매일 산위에 올라 한양에 계신 임금을 그리워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또는 천년 임금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부부이야기도 전한다.

<망주봉>


   선유해수욕장으로 다시 돌아 나와 장자대교를 건너 장자도로 향한다. 장자도(壯子島)는 선유8경 중 6경인 장자어화(壯子漁火)를 볼 수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천연적인 대피항으로 유명한 장자도는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 하여 장자도로 불리게 되었다. 뛰는 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섬은 풍수지리상 바다 건너 선유도가 감싸주고 있어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교육열이 상당히 높은 지역으로 장자도에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전해올 정도 큰 인물을 많이 배출한 섬이다.

<장자대교>

<장자대교 전경>


   선유도에서 장자도까지 걸어 들어가는 장자대교는 19861231일에 개통된 길이 286m 3m의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다리로 두 섬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선유도에 비해서 경제적으로나 인구로 보나 작은 섬이다 보니 장자도 주민들은 선유도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20182월에 준공된 장자교(연도교)가 개통되어 자동차가 섬 안으로 직접 들어와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넓은 주차장은 차들로 꽉 들어차고 동네골목은 시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국도 4호선의 시·종점이 되었다.

<장자대교와 장자교>

<장자교>


   장자도 골목길을 따라 대장교를 건너면 대장도다. 대장도(大長島)는 선유도와 관리도, 무녀도 등과 가깝고 현재는 다리가 개설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짐에 따라 펜션 등 관광 산업이 발달되고 있다. 대장봉(大長峰, 142)을 등지고 들어선 마을도 포근하고 꽤 안정되어 보인다. 대장봉 아래에는 8높이의 장자할매바위가 슬픈 전설을 안고 서있다. 장자할매바위는 마치 여자가 애기를 업고 밥상을 차려 들고 나오는 형상이다.

<대장도 전경>


   그 옛날 장자할머니는 장자할아버지가 글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에 전력을 다한다. 할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먼 길 오시느라 행여 배라도 고플까 하여 애기를 엎은 채 밥상을 들고 마중 나갔던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에 있는 소첩을 보고 그만 기가 막혀 몸을 돌려 버렸으며, 서운한 마음에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되었으며, 동시에 이상하게도 할아버지를 따라온 무리들도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 사실은 할머니가 본 소첩은 여인이 아니라 서울서 따라온 역졸들이었다.

<장자할매바위>


   밤새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 대장봉에 올라갈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본다. 가파른 계단은 다리를 후들거리게 한다. 사람들의 발에 다져진 눈은 단단하게 뭉쳐져 미끄럽다. 스틱과 난간에 의지하며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오른다. 장자할매바위가 보이는 지점에는 사당인지 서낭당인지 알 수 없는 3칸 폐가만이 덩그러니 뒹굴고 있다. 그 안에 묻어 있던 사연들과 대장도의 전설들이 무너진 흙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만 같다.

<폐가>


   대장봉 정상에 서서 사계를 바라보니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고군산열도 안의 바다는 드넓은 호수다. 섬들은 떠돌다 멈춰버린 한 폭의 정물화다. 남쪽으로 멀리 위도(蝟島)가 가물거린다. 동쪽으로는 새만금방조제를 비롯한 섬들이 점을 찍었고, 서쪽으로는 관리도 너머 서해가 수평선을 그린다. 북으로는 방축도와 군산 앞바다가 펼쳐지고, 섬 연안의 양식장들은 이곳의 풍요를 약속한다.

<대장봉 정상>

<고군산열도의 바다>


   대장봉에서 내려와 장자도를 가로질러 장자교를 따라 다시 선유도로 건너와서 옥돌해변으로 들어선다. 옥돌해변에 오는 길목에는 연리지(連理枝)소나무가 길 가운데에 서있다. 연리지는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진 가지라는 뜻으로, 다정한 연인이나 애정이 깊은 부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나무를 찾는 모든 이에게 더 깊은 사랑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 본다.

<선유터널>

<연리지-소나무>

<옥돌해변>


   옥돌해변 입구에서 데크를 따라 군산구불길 8코스인 고군산길의 일부인 선유도 남쪽 해안이다. 해안 쪽으로 아주 작은 주상절리(柱狀節理) 같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주상절리는 아니고 해식작용으로 이루어진 편마암(片麻巖) 같다. 구름 낀 하늘 아래 바다에 떠 있는 주삼섬은 방랑시인 김삿갓의 삿갓모양이다. 간간이 불어오는 해풍은 내 볼이 시리도록 어루만진다. 선유1교차로까지 올라와서 걷기를 마무리 한다. 버스가 선유대교를 건너 돌아 나오는 동안 망주봉은 잘 가라고 끝까지 배웅한다.

<고군산길-선유도>

<주삼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