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도보 군산구불길(1)
(2018년 12월 29일∼30일)
瓦也 정유순
당초계획은 옹진군 자월도에 갈 예정으로 배 출발시간에 맞춰 인천여객터미널로 가는 도중에 심한풍랑으로 출항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송년도보가 무산되는 가 싶었으나 진행자의 기지로 군산으로 급커브를 돌린다. 군산으로 변경되기까지의 시간은 한 시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애 중 가장 절박하고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군산의 지인을 통해 청암산과 선유도구불길을 추천을 받았고, 숙소와 식당이 급히 마무리되어 천만다행이다.
<청암산-군산호수 지도>
버스는 오이도(시흥시 정왕동)를 넘어가지 못하고 핸들을 돌려 시화호 방조제를 지나 안산시 대부도에 들려 ‘대부도 해솔길’이라도 걸어볼 심산이었으나, 그래도 비교적 쉽게 해결되는 바람에 서해안고속도로로 신바람 나게 달려 도착한 곳은 군산시 옥산면에 있는 청암산(靑巖山, 117m)이다. 옥산면은 옥구읍·회현면 일대와 함께 금성산지에 해당된다. 금성산지는 해발 100m 내외의 낮은 산지와 ‘강물에 의해 운반된 자갈 모래 진흙이 범람하여 연안의 낮은 땅에 퇴적함으로써 이루어진’인 충적평야(沖積平野)로 이루어져 있다.
<군산호수 청암산 표지석>
청암산은 과거 푸른산이라는 의미의 ‘취암산’과 ‘샘산’으로도 불러졌고, 이후 청암산으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옥산면 남쪽에 위치하여 옥산면과 회현면의 경계를 이룬다. 북쪽으로 이어진 금성산과 함께 청암산은 옥산저수지로도 불리는 군산호수를 품고 있으며, 산자락과 호수를 경계삼아 ‘군산구불길’인 군산호수둘레길이 있다. 청암산 입구는 군산호수 제방이며 제방 밑으로 억새밭이 넓게 펼쳐져 은빛 장관을 연출한다.
<청암산 표지석>
군산호수길은 청암산 품에 안긴 군산호수공원의 수변산책로다. 청암산 일대는 1939년 수원지로 조성되었으며, 1963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2008년 지정해제 될 때까지 45년 동안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왔다. 그 상수원을 현재 군산호수공원이라 불리며 그 면적은 2.34㎢에 달한다. 서울의 새벽은 살을 찌르는 추위였으나 정오에 가까운 시간인지는 몰라도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바람 끝에 찬바람만 약간 인다. 억새밭을 숨바꼭질 하듯 사이 길로 구불구불 돌며 군산호수둘레 길로 접어든다.
<군산호수 억새밭>
억새밭을 지나면 대나무 숲이 터널을 이룬다. 바람결에 댓잎 부딪히며 일궈내는 댓바람소리는 그리운 사람의 속삭임이다. 아니 그동안 참아왔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소리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아니 하늘거리는 댓잎에 사랑노래 실어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고 싶다. 뭉게구름 두둥실 떠가는 호수 수면 위로 수초는 갈색 옷으로 갈아입고 오는 봄을 기다린다.
<청암산-군산호수 대나무숲길>
봄이면 생명의 싹들이 움트고 꽃이 피며 새들이 지저귀는 선율들이 어우러져 녹음이 짙어지는 수변산책로 주변은 다양한 습지서식생물들의 중요한 서식지다. 많은 수의 철새들은 아니지만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정겹다. 길은 낮은 언덕으로 오르내리며 대나무 숲을 지나다 소나무 밭이 나오고 신우대가 줄을 잇는다. 그러나 소나무는 언제 심었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고유재래종이 아니고 아쉽게도 리기다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군산호수>
수면 가장자리로 얼은 어름은 수면이 출렁일 때마다 철석∼철석∼ 울음소리를 낸다. 조선의 선비들은 연꽃이 필 무렵이면 동트기 전 새벽 연못으로 나가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즐기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했다는데, 얼음이 물결과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는 천상의 소리다. 이런 곳에 자연학습장을 만들면 어린이는 물론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분들에게 시나브로 호연지기의 장이 될 것 같다.
<군산호수 얼음>
<청암정>
호수의 상류에는 왕버들이 군락을 이룬다.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높이는 약 20m, 지름 1m로 자라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새로 나올 때 붉은빛이 돌며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잎 뒷면은 흰색이 돌며 커다란 귀 모양의 턱잎이 있다. 동행한 도반들과 숲속의 작은 음악회도 하고 이야기하며 약4시간 정도 걸으면 원점으로 회귀한다. 호수내음과 물살에 굴절되는 햇살과 푸른 하늘의 그윽한 그리움이 기분을 안정시켜준다.
<왕버들군락>
군산은 1990년 금강하굿둑이 완성된 후 넓은 담수호가 조성되면서 겨울철새들의 낙원이 되었다. 혹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석양의 가창오리의 군무(群舞)를 상상하며 서둘러 금강습지생태공원으로 이동한다. 군무가 장관인 가창오리는 봄과 가을에 한국을 거쳐 가는 철새로 시베리아 동부에서 번식하고 한국·일본·중국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세계적인 희귀조로서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수록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타이밍이 안 맞았는지 생태공원에서 산책만 하고 돌아선다.
<금강철새조망대>
금강습지생태공원이 있는 금강하구는 고려 말 최무선(崔茂宣)이 화기(火器)를 써서 왜구의 배 500여척을 무찌른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천포영(舒川浦營)이 위치하였으며, 수군만호(水軍萬戶)가 배치되었던 군사적 요지였다. 조운제도(漕運制度)가 발달하였던 시기에는 조세운반의 주요수로 및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조선말까지 교역의 중심지였으나, 호남선의 개통과 더불어 육상교통발달로 내륙수로로서의 운송기능은 상실되었다.
<금강습지생태공원-금강정>
급하게 마련한 숙소인 군산시청소년수련원에서 곤한 잠을 자고 조반을 위해 군산시 월명동으로 이동한다. 밤새 내린 하얀 눈은 세상을 소복하게 만든다. 월명동은 군산의 근대 역사 테마 관광 명소로 부상하고 있으며 각종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이전인 1899년 5월에 부산, 원산, 제물포, 경흥, 목포, 진남포에 이은 일곱 번째로 일제 강압에 의해 개항되었다. 이전까지는 옥구군에 딸린 아주 작은 포구였다.
<금강하구의 석양>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 가는 거점이었고, 일본의 공산품이 강제로 들어오는 창구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이중 수탈창구가 되면서 급속히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오면서 1910년에는 군산을 옥구군에서 완전 분리하여 오다가 1995년에 도농통합에 의해 옥구군까지 군산시로 편입되었다.
<군산시 월명동의 왜식 가옥>
일본은 개항 전부터 전북의 비옥한 땅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면서 군산을 쌀 수탈의 창구로 개항한 후에 항만을 대폭 늘렸다. 정부를 압박하여 전주와 군산의 전군도로를 개설(1908년)하였고, 호남선(1912년)과 군산선을 개통하여 더 많은 쌀을 쉽게 빼앗아갔다. 그리고 1908년에는 약200여 곳의 일본인농장이 생겨 인근 주민들을 소작인으로 전락시켰고, 일제강점기에는 군산항을 통해 나가는 화물의 95%가 쌀이었다. 그때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집과 건물들을 군산의 ‘근대문화유산마을’로 조성하였다.
<군산시 월명동의 왜식 가옥>
그래서 군산은 어떤 주제로 묶일 수 있는 유적이나 볼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 우리 국력이 쇠잔하여 일본에 강점되고 수탈의 역사가 시작됨으로써 생긴 도시가 바로 군산이기 때문이다. 그 흔적들을 보전하는 이유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와 같은 역사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한 각성의 산물로 꾸며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식으로 변색되어 남아 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그 이전의 것으로 돌려놓거나 한국식으로 바꿔야 한다.
<군산시 월명동의 왜식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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