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령도와 대청도에 가다(2)

와야 정유순 2018. 12. 9. 14:01

백령도와 대청도에 가다(2)

(2018111921)

瓦也 정유순

   싱싱한 현지생선 회 맛을 보고 백령도에서의 첫 밤을 곤한 잠으로 보낸 후 이른 새벽 해맞이하기 위해 용기포()선착장으로 나간다. 새벽어장에 나가는 한 척의 어선이 파도 위로 미끄러질 때 바다 멀리 보이는 북한 땅에는 여명이 밝아온다. 수평선 너머 황해도 하늘이 붉어지더니 알몸으로 둥근 해가 솟아오른다. 이 땅에 평화가 깃들고, 태양이 솟아오르는 저 땅을 자유로이 갈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빨리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황해도 땅의 여명>

<백령도의 아침>


   용기포구는 사곶해변의 시작점이다. 천연기념물(391)로 지정된 사곶해안은 백령도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을 정도로 비행기가 뜨고 내릴 정도로 모래가 단단하며. 이태리 나폴리 해변과 더불어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으로 꼽힌다. 그러나 사곶해변 남단 주변에 간척(干拓)을 하여 담수호를 만든 다음부터 조금씩 주변 환경에 변화가 온다고 하는데 걱정스런 마음으로 두고 볼 일이다.

<사곶해변과 담수호>


   백령우체국부근에서 조반을 마치고 유격군백호부대전적비가 있는 진촌리 언덕에 올라선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14후퇴 당시 백령도로 많은 북한주민들이 피난 왔으며, 황해도 장연·신천·은율·안악·옹진군과 일부 평안도 출신 애국청년들이 미극동사령부 8240부대에 소속되어 귀중한 목숨을 바쳐가며 유격훈련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19512월부터 19542월까지 계급과 군번도 없이 5,610명의 대원들이 악전고투 끝에 공산군 3개 군단을 견제하는 전략적 효과를 거두었다.

<전적비에서 본 북한 황해도 땅>

<유격군백호부대전적비>


   멀리 북한 땅을 바라보며 해안으로 내려오면 진촌리 현무암(玄武岩)지대다. 이곳의 검은 현무암 속에는 녹색이나 노란색의 작은 암석조각이 발견된다. 이는 지하 수십에 있던 감람암(橄欖岩)이 상승하는 마그마에 잡혀서 올라온 것이다. 이런 암석은 인간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지각(地殼) 깊은 곳에 있는 물질로 지상에서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리고 이곳처럼 넓고 다양한 분포를 보이는 곳이 희귀하여 천연기념물(393)로 지정되었다.

<감람암이 포집된 현무암>

<현무암지대>


   이른 아침부터 물범생태를 조사하러 나와 철조망이 열려 있는 틈새를 이용하여 하늬해변으로 진입한다. 이 해변은 현무암지대이면서 바다 앞의 조그만 바위섬이 점박이물범들이 올라오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철조망 바다 쪽 해안에는 용치(龍齒)라는 철창(鐵槍)이 바다를 향해 60°각도로 서있다. 용치는 용의 이빨이라는 뜻이며, 이 철창은 대간첩작전의 하나로 해안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나 보기에는 영 아니다.

<하늬해변>

<용치(龍齒)>


   물범바위에는 점박이물범이 보이지 않는다. 점박이물범은 물범과의 해양포유류로 몸은 은색 또는 회색 털로 덮여 있으며 검은 불규칙한 반점 무늬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몸길이는 사람 키와 비슷하나 몸무게는 훨씬 많이 나간다. 물범류 중에는 소형이다. 황해에서 남해와 동해를 거쳐 일본 연안과 오호츠크해, 베링해에 이르는 북태평양과 북극해에 널리 분포한다. 300마리가 여름에 백령도 주변에서 관찰되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서식 환경 악화 등으로 멸종위기다.

<물범바위>


   다시 가까운 백령국토끝섬전망대로 이동한다. 20136월에 문을 연 국토끝섬전망대는 북한의 월래도를 내려다보는 용기원산에 자리 잡았다. 북녘 땅을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이곳 2층 전시실에는 백령도의 주요 관람할 곳이 전시되어 있다. 만약에 다시 백령도에 온다면 이곳에 먼저 들러 보고 싶은 곳을 꼼꼼히 챙기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백령국토끝섬전망대>


   서둘러 다시 두무진포구 쪽에 있는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대기오염집중측정소로 이동한다. 전에 근무했던 소속직원들이 오지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비록 얼굴은 생면부지일지라도 이곳에 온 김에 위로 차 찾아갔는데, 반갑게 맞이해 준다. 2008년부터 업무를 시작한 측정소는 미세먼지 관측의 전초기지로 거듭나고 있으며, 두무진포구로 가는 길목의 높은 산 정상에 있는 기상관측소 올라가는 산중턱에 위치한다.

<백령도기상관측소>


   백령도 섬 자체에서는 오염물질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중국 발 미세먼지가 서풍을 타고 한국으로 유입되는 장거리이동대기오염물질을 감시하는 곳이다. 위치상으로도 중국 산둥반도 끝으로부터 약 180km에 위치함으로써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을 측정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측정·분석된 결과는 한반도 미세먼지 배경 농도와 국외로부터 유입되는 미세먼지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백령도 대기오염집중측정소>


   어느덧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북포리에서 점심을 하고 남포리에 있는 용트림바위로 간다. 용트림바위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바위 스스로가 하늘을 향해 나선처럼 꼬며 올라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바위는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용트림바위 건너편에는 천연기념물(507)로 지정된 남포리습곡구조가 있으나 먼발치로 눈요기만 하고 용기포신항으로 이동하여 대청도로 이동한다.

<용트림바위>

<용기포신항 전경>


   백령도에서 하룻밤 자고 떠나지만 이곳 주민들의 직업이 주로 농업이란 사실에 의아해 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지만 6070%가 농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이유는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백령도 사방 800m 이내로 어로 활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분단 전까지만 해도 건너편 황해도 땅을 이웃집 다니듯이 드나들었던 넓은 생활권이었는데 이제 가 볼 수도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결국 분단은 주민들에게 직업마저도 농·어업에서 대부분 농업으로 바꾸어 놓았다.

<백령도위치도-네이버캡쳐>


   또 하나의 특징은 기독교인이 많다는 점이다. 주민의 7080%가량이 기독교 신자다. 인구가 5천여 명인데 교회는 무려 12개에 이른다. 조선시대 중국에 있던 선교사들은 바닷길을 이용해 백령도에 오게 되었으며, 백령도에는 1832년 선교사가 처음 들어와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전쟁 때 공산당 치하에서도 중화동교회 등 모든 교회들이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중화동교회 바로 아래에는 초기 선교 역사박물관인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다.

<백령기독교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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