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와 대청도에 가다(1)
(2018년11월19일∼21일)
瓦也 정유순
백령도! 신이 남기고 간 한 편의 작품 같은 서해의 종착역 백령도! 1990년대 중반 백령도에 ‘점박이물범’이 서식한다는 보도를 보고 처음 백령도 길을 나섰다가 풍랑으로 되돌아섰던 기억. 그리고 두 번 정도 마음먹었다가 목전에서 접어야 했던 그 섬. 그 곳을 가기 위해 새벽공기를 가르고 인천항 여객터미널로 달려가 아침 8시30분 출발하는 백령도 행 쾌속정에 몸을 싣는다. 파도가 출렁이는 만큼 설렘도 비례하여 출렁인다.
<인천-백령도 쾌속선>
정시에 출발한 배는 방파제 밖으로 빠져나와 인천대교 밑을 지나자 파도는 점점 높아진다. 선창 밖으로 인천연안의 실미도·자월도·덕적도 등 섬들이 차례로 손 흔들며 인사하더니 금방 사라지고, 거친 파도만 일렁이는 망망대해를 해쳐나간다. 파도는 점점 더 사나워져 선실 안에서 서서 걷는 것도 힘들어지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속이 메스꺼워진다. 자세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목으로 올라오는 멀미를 겨우 참아낸다. 거의 4시간 넘게 소청도와 대청도를 잠시 들렀다가 백령도 용기포신항에 도착한다.
<인천대교>
용기포항 마당의 넓은 주차장에는 의외로 자동차들이 거의 자리를 메꾼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는 용모 단정한 아줌마 심청이가 점박이물범들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 있다. 백령면소재지이며 심청각이 있는 진촌리 쪽으로 가는 도중에 시골집 같은 어느 식당에서 백령도식 가정용 백반으로 점심을 한다. 이 섬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맛 본 음식이었는데, 의외로 입맛이 당긴다. 심청각 가는 길목에 백령면사무소가 있어서 잠깐 들러 보기도 했다.
<용기포항의 심청공원>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이 된 백령도(白翎島)는 북한의 장산곶 남쪽 북방한계선(NLL)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91.4km 떨어져 있다. 면적 46.3km2, 해안선 길이 52.4km로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큰 섬이다. 한편 전설에는 ‘어느 고을의 선비가 사모하는 여인이 갑자기 사라져 애타게 기다리는데, 꿈속에 백학(白鶴)이 주소가 적힌 종이를 물어다 주어 장산곶에서 배를 타고 들어와 그 여인을 만나 단란하게 살았다’하여 백학도로 불리다가 백령도로 되었다고도 한다.
<백령도와 대청도 위치도-네이버캡쳐>
<백령도 지도>
<백령면사무소>
백령면사무소 뒤 언덕 해안가에 심청각이 있다. 대표적인 전래소설인 심청전의 배경무대인 백령도는 심청전 중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가 환생했다는 연봉바위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이를 기리기 위해 심청각을 건립하여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함과 아울러 ‘효’사상을 함양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영화대본, 고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심청각>
<효녀 심청상>
심청각에서 백령초등학교를 지나 왼쪽 해안으로 내려가면 고봉포구다. 백령도 북쪽 해변에는 두 개의 포구가 있는데, 하나는 동북쪽에 있는 고봉포구이며, 다른 하나는 서북쪽에 있는 사항포구다. 고봉포구에는 용맹스런 사자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의 사자바위가 있다. 그러나 사자바위 앞에 방파제와 양식장이 바짝 붙어 있어 사자의 위용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고, 주변의 풍광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방파제 넘어 고봉포구 해안은 파도만 철석일 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사자바위>
사항포구로 연결된 관창길을 따라 두무진로로 접어들어 두무진으로 향한다. 백령도 최북단에 있는 두무진은 백령면 연화리에 있는 포구로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228.8㎞, 황해도 서쪽 끝인 장산곶과는 불과 12㎞ 밖에 안 된다.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이라 두무진(頭武津)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수억 년 동안 파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동해의 금강산만물상과 비슷하여 일명 해금강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두문진 표지석>
<두문진항>
<두문진 통일기원비>
명승(제8호)으로 지정된 두무진 암석에는 물결무늬 자국과 폭풍에 의해 생기는 작은 구릉 같은 퇴적구조가 발견되는데, 이는 수심 50m 이내의 얕은 바다에서 퇴적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 암석은 무려 10억 년 전에 모래가 바다에서 퇴적되었던 것이 깊은 땅 속에 묻혀서 강한 압력을 받아 규암(硅巖)으로 변한 다음 지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양한 변화를 받았음에도 퇴적 당시의 모습을 간직함은 물론 아름다운 경관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두문진의 기암1>
<두문진의 기암2>
<두문진의 기암3>
두무진항에서 통일기원비가 있는 곳까지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걸어서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도보로 갈 수 없는 곳은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상관찰을 한다. 배 안에서는 선장의 구수한 목소리로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암, 형제바위 등 온갖 형상의 바위가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는 모습들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다. 배가 나가는 방향으로 왼쪽 자리에 앉은 사람은 설명을 들으며 구경을 잘 할 수 있다. 이것도 하나의 운인가…
<선대암>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두무진에서 연지동에 있는 천안함위령탑으로 향한다. 이 탑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초계정(哨戒艇)인 천안함이 뇌격으로 침몰하여 우리 해병장병 46명이 희생된 것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하였다.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지만 이유여하를 떠나서 국토방위의무를 수행하다가 꽃다운 생명들이 희생된 것에 대하여는 이유 불문하고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머리 숙여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천안함위령탑>
<46용사 영정>
해는 이미 서해바다 너머 중국 쪽으로 많이 기울 무렵 바삐 서남쪽의 중화동포구에 당도한다. 오늘의 모든 애환을 저 붉은 노을 속에 담아 묻어버리고 화려한 내일을 저축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품어왔던 그릇된 생각,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남을 미워했던 속 좁은 심보, 언행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불편을 드렸던 어설펐던 작위(作爲) 등 그동안 반추하지 못했던 지나온 날을 되돌아본다.
<중화동포구의 낙조>
<중화동헤변>
이곳 연화리 중화동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이며, 백령도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인 중화동교회가 있다. 한국기독교의 역사는 19세기 말인 선교의 물결이 밀려올 때인 1898년 백령도진의 참사(參事)벼슬을 지냈던 허득(許得)이 이곳에 유배 온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과 함께 한학서당에 교회를 1898년 10월에 설립하고, 1899년에 황해도 소래교회의 도움을 받아 초가 6칸(39.6㎡) 규모로 지었다.
<중화동교회 전경>
중화동교회 계단 옆에는 천연기념물(제521호, 2011.1.13.)로 지정된 ‘옹진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甕津 白翎島 蓮花里 無窮花)’가 있다. 수형이 우수하고 높이가 6.3m로 현재 알려진 무궁화 중 가장 크며 꽃이 홍단심계로 순수 재래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다. 수령 90∼1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3m이고 가슴높이 둘레가 북쪽가지 0.69m 남쪽가지 0.72m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무성했던 잎이 다 떨어져 지금은 가지만 앙상하다.
<옹진 백령도연화동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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