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래길과 금산(1)
(2018년 12월 1일∼2일)
瓦也 정유순
(1절)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2절)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섬 집 아기(한인현 작사 이흥렬 작곡)]
남해바래길! 옛날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둥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을 하며 다니던 길! 엄마가 그리운 날, 갯벌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어깨가 축 처진 엄마의 그늘진 모습을 보면서도, 마냥 엄마 얼굴이 반가웠던 그 섬 바래길…
<남해도 지도>
그 곳에 가면 혹시 아련한 엄마의 모습이라도 그려볼까? 하는 심사로 초겨울 찬바람 가르고 새벽길을 나선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야가 앞을 가려 더 아련한 엄마의 모습을 끄집어내려고 눈을 감아보다가 꿈속에 잠깐 빠져보는 순간, 달리는 차창에 엄마의 따뜻한 숨결이 스쳐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엄마는 ‘영원한 고향’이다.
<남해바래길14코스-망운산노을길>
남해대교 건너기 전에 이른 점심을 하고 오늘 걷고자 하는 남해바래길 14코스 ‘망운산노을길’ 입구인 노구마을에 도착 하는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망운산(望雲山, 786m)은 ‘산봉우리가 구름을 내려다본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으며, 남해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서면(西面) 연죽리(烟竹里)에 소재한다. 망운산노을길은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어서 명명된 길이다.
<노구마을>
노구(蘆九)마을은 망운산 북서쪽 끝자락에 있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갈대가 많이 있는 언덕’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비교적 고도가 낮고 평탄한 지대다. 서북쪽으로 광양제철소의 굴뚝이 희미하게 보이고 광양컨테이너 부두로 출입하는 배들이 화물을 가득 싣고 항로를 따라 드나든다. 바다 건너 섬 같이 보이는 산들은 전남 여수시다. 그러고 보니 섬진강이 바다로 빠져나오는 광양의 망덕포구가 지척이고, 그 물줄기가 가로질러 남해군과 광양, 여수 간의 경계를 이룬다.
<노구마을회관 앞>
<미새먼지 속의 광양만>
노구마을에서 밭마다 남해의 특산품인 마늘농사가 한창인 고샅길을 따라 언덕배기를 두어 번 넘으면 유포마을이다. 이 마을은1120년경 망운산 기슭 계곡에 화전을 일구고 광석을 채취하면서 살던 몇몇 가구가 바닷가로 옮겨 오면서 형성되었고, 망운산의 사계절과 바다목장의 풍요로움이 어우러져 대자연이 주는 축복받은 반농반어(半農半漁)의 마을이다. 2007년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된 유포마을은 서해안의 독살 같은 물막이 공간인 석방렴(石防簾) 등을 만들어 놓았다.
<마늘밭>
<유포어촌체험마을안내소>
<석방렴>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길목 가정집 울안에는 참다래(또는 양다래)가 알알이 맺혀 있다. 참다래는 중국이 원산지라 중국에서는 양도(揚桃)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뉴질랜드로 전해져 개량을 거듭하면서 갈색 털이 야행성 새인 키위의 깃털과 닮았다 하여 오늘날 키위(Kiwi)가 되었다. 또한 밭두렁에는 840년(신라 문성왕2)에 장보고(張保皐)가 당나라 상인에게 얻어와 널리 퍼졌다고 하는 유자(柚子)가 신 맛을 돋운다.
<참다래>
<유자>
또한 고사리를 제배하는 밭도 보인다. 봄에 잎이 피기 전에 애기 손 같은 순을 꺾어 나물 등 음식에 넣어 먹는 고사리는 양치류(羊齒類, ferns)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극지나 사막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한다. 그리고 양치류인 고사리처럼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의 생식 세포인 포자(胞子, Spore)를 홀씨라고 한다. 그래서 노랫말에 나오는 ‘민들레 홀씨 되어∼’의 홀씨는 생물학적으로는 맞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고사리밭>
남해에서는 감성돔 낚시로 유명한 곳이 염해항(鹽海港)이다. 서면 남상리에 위치한 이 항구는 어촌정주어항으로 바다로부터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가 낚시 터가되어 입질이 좋다고 하며, 봄철이면 특히 5짜급 감성돔을 자주 만날 수 있어 전문꾼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예부터 마을에 염전이 있었으며, 주민들의 대부분이 제염(製鹽)에 종사하여 마을이름을 ‘염해(鹽海)’라 불리게 되었다.
<염해항>
전남 여수시 돌산도에서 갓김치로 유명한 갓이 이곳 남해에서는 돌보는 이 없이 밭두렁이나 남의 돌담장 틈새에 뿌리를 박고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갓의 종자는 가루로 만들어서 향신료인 겨자 또는 약용인 황개자(黃芥子)로도 쓰인다. 산기슭이나 산 가장자리 밭 언저리 등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덩굴식물 ‘하늘타리’도 덩굴에 매달린 채 겨울을 맞이한다. 하늘타리의 한자이름은 括蔞(괄루)이며,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천지근(天之根), 즉 ‘하늘의 뿌리’라는 의미로 적혀 있다.
<담벼락에 붙은 질긴 생명-갓>
<하늘타리>
망운산 서쪽 중턱에 있는 남상리(南上里)는 농토가 발달되어 있고, 바다 쪽으로는 해안이 발달하였으며 어민정주어항이 마련되어 있다. 어느 길이던 오르내리는 곳이 있기 마련이지만 섬 길은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더욱이 언덕에서 내려와 남상리 어항을 지나 해안 자갈길을 걸을 때는 불규칙한 돌들 때문에 힘이 더 든다. 그래도 예쁜 몽돌들이 있어 좋았지만, 옛날 대간첩작전의 일환으로 바위마다 깨진 유리파편을 박아 놓은 자국들은 흉물스럽다.
<남상리 몽돌해안>
<유리파편을 박아 놓은 갯바위>
이러한 길을 반복하여 도착한 곳이 작장리(勺長里)마을이다. 작장마을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과 어촌마을이 복합적으로 섞인 마을이다. 산마루를 사이에 두고 전에느 같은 마을이었던 상남마을과 함께 매년 음력 10월15일에 동제(洞祭)를 올릴 때 마을사람들이 각자의 제물을 준비해 가는 행렬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동제는 우리고유민속으로 보존되어야 마땅한데, 그러나 지금은 두 마을이 갈라지고 관심이 줄어들면서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고 한다.
<작장리 앞바다 바위>
<꽃향유>
예계마을은 약600여 년 전 현풍 곽 씨(玄豊郭氏)라는 사람이 마을북쪽의 일명 텃밭이라는 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그 후 들끓는 도둑을 피해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양지바르고 따뜻’하다고 해서 ‘여기방’이라고 불러왔는데, 1910년 경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개편 시 한자지명으로 표기를 하면서 ‘예계(禮戒)’로 바뀌었다.
<예계마을 표지석>
<예계마을 주택>
예계마을을 지나 서상항으로 접어든다. 서상항은 남해군 서면 서상리에 있는 항구로, 고려시대 때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왔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호수가 있어 호포(湖浦)였는데, ‘홀포’ 또는 ‘홀개’로 불리다가 1910년 경 서면소재지에 있는 상등마을이라 하여 서상(西上)으로 바뀌게 되었다.
<서상항여객선터미널>
서상마을에는 스포츠전지훈련장으로 유명한 체육시설이 있다. 10만평 규모의 남해스포츠파크에는 사계절 축구와 야구는 국가대표팀, 프로팀, 대학·실업팀, 초·중·고등 팀을 망라해 훈련을 하고, 복싱, 검도, 배드민턴, 배구 등 실내경기 전지훈련 팀도 남해를 찾고 있어 동계 훈련지로 각광받고 있다. 저택 같은 서면보건지소 앞에 도착하니 해 그림자가 길게 옆으로 기운다.
<남해군 스포츠 전지훈련장>
남해바래길 14코스 망운산노을길을 따라 펼쳐진 바다는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어패류·해조류 등 많은 수산물이 생산되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뱃일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지금은 여천과 광양만에 들어선 공단 때문에 뱃일이 쉽지 않다고 마을주민들은 한숨을 길게 쉰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돌밭을 일구고 살아가는 그 내력을 알 것 같다.
<서면보건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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