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찾아서-7(사려니 숲 등, 完)
(2018년 11월 14일)
瓦也 정유순
오래 걸으면 집이 가까워진다고 했던가? 추자도를 시작해서 제주도에서 생활한지 벌써 7일 째이다. 조반을 마치고 짐을 꾸려 버스에 오를 때는 그간 묵었던 숙소가 자꾸 되돌아봐진다. 며칠 안 되지만 고운 정 미운 정이 들었나 보다. 오늘은 사려니숲길을 가기 위해 숙소에서 약40㎞정도 떨어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사려니숲길 입구로 이동한다. 봉개동은 원래 탐라국(耽羅國)의 도읍지로 알려져 있고, 천연기념물(제159호)인 왕벚나무 자생지이다.
<사려니숲길 입구>
사려니숲길은 비자림로의 봉개동 구간에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숲길이다. 사려니는 ‘살인이’ 또는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또는 ‘솔’은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신역(神域)의 산명(山名)에 쓰이는 말이다. 이는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총 길이는 약 15km이며 숲길 전체의 평균 고도는 550m이다.
<사려니숲길 안내센터>
전형적인 온대성 산지대에 해당하는 숲길 양쪽을 따라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의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울창한 자연림과 인공조림된 편백나무, 삼나무 등이 넓게 펼쳐져 에코 힐링(eco-healing)을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치유의 숲이다. 이 숲 안에는 오소리와 제주족제비를 비롯한 포유류, 팔색조와 참매를 비롯한 조류, 쇠살모사를 비롯한 파충류 등 다양한 동물도 서식하고 있어 건전한 생태계가 유지되어 있다고 한다.
<사려니숲>
또한 숲길 곳곳에는 잣성(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과 숯가마터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제주의 산림목축문화를 엿볼 수 있는 숲길로, 신성한 공간이자 자연생태문화를 체험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 숲길을 걸으면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하여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2009년 7월 제주시가 기존의 관광 명소 이외에 제주시 일대의 대표적인 장소 31곳을 선정해 발표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이다.
<사려니숲>
입구로 들어서면 삼나무 숲이 길게 늘어선다. 삼나무는 상록교목이며 높이 45m, 지름 2m인 나무로 성장속도가 다른 나무에 비해 비교적 빠르기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산림녹화사업의 일환으로 한라산과 오름 등에 심었고, 방풍림의 일환으로 감귤농장에도 심었다. 특히 1930년대 인공으로 조성된 사려니오름 일대에 위치한 ‘난대림산림연구소’의 한남시험림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에는 제주도에서 최고령을 자랑하는 삼나무가 있다고 한다.
<삼나무 숲>
사려니숲길의 길바닥에 깔린 흙은 붉은 색을 띤 것은 ‘송이(scoria)’라는 화산재인데, 분석(噴石) 또는 암재(岩渧)라고도 한다. 송이는 현무암질 마그마의 폭발로 분출되는 직경 2∼64㎜정도의 용암덩어리이다. 송이는 다공질(多孔質)이며, 많은 미정질(微晶質)의 철산화물(鐵酸化物)을 포함하고 있어 불투명하고, 흑색이나 흑적색을 띤다. 송이가 붉은 색을 띠는 것은 분출될 때 철의 산화상태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송이 길>
제주도의 장묘문화에는 지역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제주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여 봉분을 만들고 빠른 시일 내에 산담을 둘러야 한다. 만약에 산담을 하지 않으면 방목하는 말이나 소가 들어와 풀을 뜯으며 묘를 허물 수 있으며, 진드기 구제 및 목초의 생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늦가을 목장지대에 불을 지르는 ‘방애불’로 위험에 처해지기도 한다. 특히 산담 안에는 무덤을 수호하고 망자의 시중을 들어주는 동자석(童子石)이 세워지고 영혼의 바깥출입을 위해 60㎝정도의 신문(神門)을 만들어 놓았다.
<산담이 둘러처진 제주봉분>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월든삼거리와 민오름 입구삼거리를 지나는데 오전이 금방 지나간다. 민오름 입구에서 점심요기를 하고 머체왓숲길 중 서중천탐방로로 들어선다. 머체왓은 ‘돌(머체)로 이루어진 밭(왓)’이라는 제주도의 이름이고, 서중천은 한라산 흙붉은오름(1391m)에서 발원하여 남원읍 한남리를 가로질러 바다로 들어간다. 서중천은 하폭이 좁고 하천바닥은 투수성이 큰 현무암과 기암절벽으로 되어 있어 용암층 밑으로는 지하수가 흐르는 건천이다.
<서중천>
서중천의 가장자리에는 ‘올리튼물’이라는 고인물이 있다. 올리튼물의 ‘올리’는 ‘올란이’ 또는 ‘올랭이’ 등과 아울러 ‘오리’를 가리키며, ‘튼’은 ‘뜨다’의 제주 토속어다. ‘가뭄에도 물이 풍부하여 원앙새 오리 등이 둥지를 틀어 물 위에 한가롭게 떠있다’하여 ‘올리튼물’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하천의 흐르는 물과 분리되어 습지형태를 이루고 있어서 주변은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자원의 보고다. 이곳에서 원앙새를 보면 복이 찾아온다는 설도 있다. 한남리(漢南里)는 한라산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올리튼물-숲 속 나무가지 사이>
금새 서중천탐방로를 빠져나와 ‘머체왓방문객지원센터’ 앞에서 용눈이오름으로 바쁘게 이동한다. 용눈이오름(해발 247.8m)은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도 하며 산 한가운데가 크게 패어 있는 것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화구의 모습이 용의 눈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용와악(龍臥岳)이라고 한다. 정상에는 원형분화구 3개가 연이어 있고, 그 안에는 동서쪽으로 조금 트인 타원형의 분화구가 있다.
<용눈이오름>
주차장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오름 기슭은 나무가 별로 없는 초원으로 보인다. 올라가면서 관찰해보니 전체적으로 산체가 동쪽 사면으로 얕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룬다. 화산체가 형성된 뒤 용암류의 유출로 산정의 화구륜 일부가 파괴되면서 용암류와 함께 흘러내린 토사가 산재해 있다. 전 사면이 잔디와 풀밭으로 덮여 있는데, 계절이 가을이라 풀들은 갈색으로 변하여 정체를 알 수 없으나 보라색으로 물들이는 꽃향유가 그나마 존재를 알린다. 정상의 분화구를 돌며 손자봉·다랑쉬오름·동거미오름 등을 볼 수 있으며 성산일출봉과 우도 등이 동쪽으로 멀리 보인다.
<용눈이오름 분화구>
<용눈이오름 분화구>
<멀리 성산일출봉>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다랑쉬오름 입구로 하여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비자림으로 이동한다. ‘오름의 여왕’으로 꼽히는 다랑쉬오름(382.4m)은 오름에 쟁반같이 뜨는 달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하여 이름 붙은 제주말로, 높은 봉우리라는 뜻의 ‘달수리’ 또는 한자식 표현으로 ‘월랑봉’(月郞峰)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곳에도 4∙3항쟁의 아픈 멍울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1948년 월랑봉 동굴로 피난 나온 주민 11명이 군경검색대에 발각되어 동굴 속에서 질식사한 곳이다. 9살 어린이부터 51살 아주머니까지…
<다랑쉬오름>
천연기념물(제374호)로 보호 받고 있는 비자림(榧子林)은 448,165㎡의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하여 자생되고 있다. 비자나무는 늘 푸른 바늘잎나무로서 제주도와 남부지방 일부에서만 자라는 귀한 나무다. 잎 뻗음이 非(비)자를 닮았다 하여 비자(榧子)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며, 암·수나무가 따로 있다. 비자열매는 땅콩처럼 단단한 씨앗이 속에 들어 있고, 옛날부터 이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많이 쓰여 졌으며,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데 사용되어 왔다.
<천년의 숲 비자림>
<비자림>
비행기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비교적 짧은 원을 그리며 비자림 속으로 들어간다. 높이는 7∼14m, 직경은 50∼110㎝에 이르는 거목들이 군집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비자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비자림 안에는 나도풍란, 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蘭科)식물의 자생지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에는 달랑쉬오름, 용눈이오름 등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조화를 이룬다.
<속이 텅빈 비자나무>
우측 시계반대방향으로 길을 택해 안으로 들어가는데, ‘비자림 숨골’이 나온다. 숨골은 동물의 뇌에서 생명유지를 위해 호흡을 담당하는 필수기관이다. 강이 없는 제주에서는 물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생명처럼 중요한 빗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구멍을 숨골이라고 한다. 지하로 스며든 빗물은 암석의 틈 사이를 지나며 점점 깨끗해져 ‘제주삼다수’를 만들고, 숨골을 통해 나오는 공기는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겨울철에는 따뜻한 바람이다. 나도 이 숨골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다.(完)
<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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