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주도를 찾아서-6(쫄븐갑마장길)

와야 정유순 2018. 11. 27. 01:33

제주도를 찾아서-6(쫄븐갑마장길)

(20181113)

瓦也 정유순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갑마장길에 가기 위해 제주시 한림읍 숙소에서 약55떨어진 가시리에 한 시간 이상 한라산 중산간도로를 달려 도착한다. 가시리(加時里)는 말 그대로 시간을 더하는 마을같은데, 시간을 더하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시간을 더하든 추억을 더하든 이 마을에 머물면서 자연에 심취되어 세상사 근심걱정을 잊어버리는 것이 가시리의 뜻이 아닌 가? 그리고 중산간내려오는 한라산의 능선과 올라오는 들판이 만나는 자리로 산도, 들도 아닌 곳을 제주에서는 중산간이라고 부른다.

<갑마장길 안내도-네이버캡쳐>


   갑마장길은 20가 넘는 올레길 코스로 하루 종일 걷기에도 부담이 되는 길이다. 그래서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10남짓한 쫄븐갑마장길을 지정해 놓았다. ‘쫄븐짧은의 제주사투리이고, ‘갑마(甲馬)’말무리 가운데 으뜸가는 말로 가장 튼튼하고 잘 달리는 말이며, 그 말들을 키우던 곳이 갑마장이다조선시대 때 한라산 중간산지역인 가시리 일대에 조성됐던 곳이 갑마장이고 그 말들이 다니던 길이 바로 갑마장길이다. 쫄븐갑마장길은 그 중에서 갑마장을 중심으로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연결하는 길이다.

<쫄븐갑마장길 안내도>


   가시리 조랑말박물관 앞에 하차하여 쫄븐갑마장길로 접어드는 입구에는 행기머체가 있다. ‘머체는 돌무더기의 제주사투리로 머체 위에 행기물(녹그릇에 담긴 물)’이 있었다 하여 행기머체라 부른다. 원래 오름의 내부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시간이 지나 외부로 노출된 것으로, ‘지하용암돔(또는 크립토돔 Cryptodome)’이라고 불리는 행기머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유일한 분포지이며 동양에서도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행기머체>


   수많은 갑마들이 뛰어 놀았을 갑마장 가장자리 길을 따라 따라비오름으로 길을 향한다. 숲길로 들어서기 전에는 말들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음틀이 설치되어 있는데, 정확한 명칭을 몰라 자의로 막음틀로 부른다. 이 막음틀은 자형으로 서서 걷는 사람은 쉽게 지나갈 수 있으나 네 발로 걷는 짐승들은 허리를 꺾지 못해 뛰어 넘지 않는 한 통과가 불가능 하다.

<막음틀>


   막음틀을 빠져 나가면 편백나무 숲이 반긴다. 제주에서는 나무를 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편백나무를 백백낭이라고 부른다. 이 백백낭이가 빽빽하게 줄을 선 편백나무 숲길을 피톤치드의 세례를 받으며 기분 좋게 지나간다. 숲길을 지나면 오르막이 시작되어 숨이 가빠지는 찰나(刹那)에 억새꽃이 춤을 추고 바람이 등을 밀어주어 저절로 따라비오름에 오른다. 제주시인 현길언(玄吉彦)오름의 여유는 그 능선의 부드러움에 있다고 노래한다. 

<편백나무 숲>

<따라비오름 능선>

   그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오른 따라비오름(342)은 분화구가 세 개나 있다. ‘따라비는 모자오름(母子岳)에 이웃해 있어 마치 지아비, 지어미가 서로 따르는 모양에서 연유됐다고 하나, 옛 지도에는 多羅非(다라비)로 적혀 있어 따라비로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 개의 분화구 중 윗부분 두 개의 오름이 서로 마주보며 하트모형()을 만든다. 그러나 이 오름에는 43제주양민학살사건(1948) 때 가시리주민 5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해야 했던 처참한 역사의 현장이다.

<따라비오름 분화구>


   세차게 부는 바람에 온갖 근심 다 날려 보내고 올라온 반대방향으로 내려와 잣성길로 접어든다. 잣성은 국영목마장의 상하 경계선에 해당되며 조선시대 군마와 역마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제주도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국영 마목장인 10소장을 설치하면서 축조하였다. 위치에 따라 하··상잣성 그리고 간장(間牆)으로 구분된다. 가시리에는 번널오름 하잣성, 갑마장 잣성, 갑마장과 10소장 구분용 간장, 대록산 중잣성이 있으며, 현존하는 중산간 지대 잣성 가운데 가장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잣성-네이버캡쳐>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어우러진 잣성길을 지나면 대록산(大鹿山, 472.1)이라고도 불리는 큰사슴이오름이 시야에 보이고 올라가는 길은 억새가 바람에 휘날린다. 억새밭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요기를 한 후 완만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간다. 큰사슴이오름 거의 상부쯤 지점에는 숲이 우거진 아래로 방공호 진지 같이 페인 동굴이 나온다. 동행한 도반 몇 분이 들어갔다 나오더니 끝이 안 보인다고 한다. 또 다른 제주의 석회석동굴의 발견이 아닌지 모르겠다.

<삼나무 숲길>

<큰사슴이오름 올라가는 길>

<미확인 동굴 입구>


   큰사슴이오름 정상에 올라서면 가시리 일대의 들판에 일만 필의 갑마가 뛰어 놀던 너른 평원이 눈앞에 펼쳐진다그 갑마장에는 억새밭이 펼쳐지고 말 대신 풍력발전기들이 무리지어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이 지대의 풍력 발전기들이 소음을 내며 돌아가도 그 풍경이 제주도의 바람과 썩 어울린다. 그리고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화력 발전소나 재앙의 위험이 도사린 원자력발전소에 비하면 에너지(전기)를 만들어 내는 바람개비와 제주의 바람은 또 하나의 어울림이다.

<풍력발전기>


   큰사슴이오름(대록산)형태는 전반적으로 가파르고 둥근 산체에 다소 동서로 퍼져 있고, 화구는 정상 쪽에서 숲으로 덮여 있어 북으로 터진 말굽형 화구로 보이나, 정상부의 동서 봉우리 사이에 둥그렇게 패여 있는 원형 화구를 갖고 있는 화산체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주변에 녹산장(鹿山場)’이라는 산마장이 있었다. 조선지형도에는 대록봉(大鹿峰)’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오름의 형세가 사슴을 닮은 것으로 보인다.

<큰사슴이오름(대록산)>


   큰사슴이오름 정상에서는 좀처럼 얼굴을 안 보이던 한라산도 서쪽하늘 구름 사이로 살포시 보인다. 긴 계단으로 이루어진 하산 길은 은빛 물결로 넘실대는 억새밭이 마음을 급하게 한다. 붉은 단풍 대신 억새들이 농익은 만추(晩秋)를 희롱하며 까마귀도 내려와 추임새를 넣는다. 멀리 모 항공사의 비행연습용 비행기도 대지를 박차고 쪽빛 창공으로 나른다.

<구름에 덮인 한라산>


   바람(?)이 가르마 타듯 갈라놓은 갈대밭 사이를 동심의 세계에 젖으며 빠져 나오면 태양광발전소 옆으로 하여 매년 4월 봄마다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단지와 대한항공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석항공관 후면을 지나 처음 출발했던 조랑말박물관 앞으로 회귀한다. 돌아오는 길목에는 꽃머체가 완주를 축하해준다. 꽃머체는 규모만 다를 뿐 행기머체와 같이 하용암돔(또는 크립토돔 Cryptodome)’ 위에 구슬잣밤나무와 제주참꽃나무가 자라 꽃이 핀다하여 꽃머체라 한다.

<갈대밭 길>

<억새의 속삭임>

<꽃머체>


   해는 중천에 있어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이승만별장(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3)으로 이동한다. 송당리 입구에서 약1정도 삼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는 입구와 그 주변에 조성된 울창한 나무숲은 마당 한 가운데에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다. 제주국립목장 안에 있는 이 별장은 1957년 미군의 지원을 받으며 국군 공병대가 축조한 건물로, 1959년 이승만대통령이 이곳에 머물렀던 것을 계기로 이승만 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삼나무 숲길>

<팽나무>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와 외벽 우측에는 두 가지 기쁨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쌍희()’자와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를 기원하는 회문 장식 등 우리나라의 의장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1950년대 이후 나타나는 서구의 주택 모습을 보여주는 미국식 주택 건축 양식과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벽돌로 지은 박공지붕 형태의 지상 1층 건물로 건축면적 234.7이다.

<제주 이승만별장>


   저녁 예약을 한 서귀포에 일찍 도착하여 덤으로 세연교로 향한다. 세연교는 제주도 전통 배인 떼배(일명 태우 또는 티우)를 본 따서 만든 다리로서 ‘세섬과 육지를 연결했다 해서 세연교라고 부른다. 건너편 서귀포항 선박장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척의 떼배가 바다 위를 떠가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바빠서 대신 세섬을 빠른 걸음으로 돌아보고 나오는데, 멀리 범섬 위로 태양은 내일의 풍요를 약속하며 햇살을 옆으로 길게 뻗는다. 참고로 제주도 떼배는 한라산 중턱 이상에서 자라는 100년 이상 된 구상나무로 만든다.

<세연교>

<세섬>

<범섬 위로 태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