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찾아서-5(비양도와 수월봉)
(2018년 11월 12일)
瓦也 정유순
제주도에는 동서남북에 ‘섬 속의 섬’이 있다. 북쪽에는 추자도, 동쪽에는 우도, 남쪽에는 가파도와 마라도 그리고 서쪽에는 비양도이다. 이 비양도를 가기 위해 숙소에서 조반을 마치고 한림읍 수원리(洙原里) 구름들을 지나 동네 고샅길을 비집고 약 2.5㎞를 걸어서 한림항으로 이동한다. 한림항은 제주항으로부터 서쪽으로 28.65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항구 남서쪽 3.1km 지점으로는 비양도(飛揚島)가 있다. 한림항은 제주 서부지역의 연근해 어업의 중심지이자 모래·시멘트·감귤 등 지역 연안 화물을 처리하는 화물항이다.
<비양도-한림 운항하는 배>
풍랑이 일어 배가 떠날 수 있을까 하고 걱정도 했지만 첫 배는 오전 9시에 뱃고동을 울리며 방파제를 벗어나자 배는 파도의 위아래를 넘나들며 심하게 요동친다. 만약에 파도가 없는 바다를 생각해 본적도 있다. 그러나 바다에 파도가 없다면 그것은 ‘정열이 없는 청춘’이며 ‘희망이 없는 삶’일 것이다. 파도는 바다가 숨 쉬는 호흡이고, 바다의 심장이 뛰는 박동이다. 파도소리가 들려야 바다 속 수많은 생명들에게 양식이 공급됨은 물론 살아 있는 자들의 소통의 광장이다.
<파도가 일렁이는 제주바다>
파도에 의지하고 15분 쯤 지난 후에 배는 비양도에 도착한다. 비양도(飛揚島)는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딸린 섬으로, 63가구에 167명(2014년 기준)의 주민이 거주하는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말 그대로 고려시대 중국에서 한 오름이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1002년(고려 목종5)에 화산이 분출하여 생긴 섬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공식기록으로 19세기 말인 고종13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비양도 지도>
비양도에 도착하자마자 등대가 있는 비양봉으로 직행한다. 비양봉(114m)은 ‘비양오름’이라고 부른다. 별로 높지 않을 것 같았으나 거의 직선으로 난 계단을 타고 오르는데 숨이 가빠온다. ‘항상 겸손 하라는 자연의 가르침’을 잠시 잊은 듯하다. 신우대가 터널을 이루어 만들어 내는 싱그러움에 가쁜 숨도 확 가신다. 억새밭을 지나면 정상부위는 민둥산이다. 오름 꼭대기에 있는 등대는 비양봉이 제주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턱 끈이 없는 모자를 썼다면 틀림없이 바람에 날렸을 것이다.
<비양봉 올라가는 계단>
<신우대터널>
<비양봉과 등대>
<비양봉등대 앞에서>
등대 뒤로 분화구 능선을 따라 내려온다. 해안가 갯바위에서는 미역 같은 해조류 채취에 여념이 없다. 이 해조류는 화장품 원료로 쓰인다고 한다. 비양봉을 올라갈 때도 많았지만 내려와서 해안가 산 아래에는 억새들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군무를 춘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 주면은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이를 보는 순간 황동규의 시 ‘기도’의 일부분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슨 심사일까?
<비양봉 분석구>
<비양봉의 억새>
비양도 해안을 바람이 가라는 대로 시계방향으로 돌아본다. 바람과 파도가 만들고 세월이 보듬은 코끼리바위는 오늘도 그 자리에 끄떡없다. 또 조금 떨어진 자리에는 ‘애기 업은 돌’이 서있다. 이 돌은 높이 4.5m, 직경이 1.5m로 1002년에 분출한 화산생성물인 호니토(honito)로 이루어진 바위 40여개 중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비양도 주변은 제주도 최대의 화산탄 산지로 초대형 화산탄들이 바닷물에 잠겨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분석구가 바다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해석한다. 호니토는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되었다.
<코끼리바위>
<애기업은 돌>
비양도를 더욱 특별한 섬으로 만드는 것은 동남쪽에 위치한 염습지인 ‘펄랑못’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염습지로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간만조 수위를 형성하고 있다. 펄랑못 서쪽능선에는 해송과 억새 대나무 등 251종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옛날에 농경지로 사용되었던 저지대에는 황근, 해녀콩, 갯질경이 등이 군락을 이룬다. 겨울철에는 청둥오리 등 철새들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길이 500m, 폭 50m의 호수로 비교적 얕은 편이다. 2003년 자연과 조화롭게 964m의 산책로를 설치하였다.
<펄랑못>
섬을 한 바퀴 돌고 비양도의 특미로 알려진 보말죽으로 이른 점심을 하고 다시 한림항으로 나와 애월읍 납읍리에 있는 난대림 금산공원으로 간다. 보말은 제주도 지방의 사투리로 ‘고둥’을 말한다. 복족류에 속하는 연체동물의 총칭이며, 좁은 뜻에서는 복족류 중 소라·소라고둥 등과 같이 비틀린 껍데기가 있는 나선모양의 껍데기를 가지는 동물을 총칭한다. 고둥은 숙취, 해독, 간, 위를 보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제주도 보말에는 남성의 활력을 돕는 아르기닌성분이 장어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보말죽>
천연기념물 제375호(1993년8월)로 지정된 금산공원(錦山公園)은 면적 3.4 ㎢로 200여종의 난대림으로 밀림을 이루고 있는데, 정해된 길 따라 걷는 동안 내가 아는 나무는 후박나무·종가시나무·동백나무뿐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원래 돌무더기 땅이었는데, 주민들이 건너편 금악봉(今岳峰)이 훤히 보여 납읍마을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므로 이곳에 나무를 심어 액막이를 한 것이 금산공원의 시초라고 한다. 공원입구에는 동제(洞祭)를 지내는 포제단(酺祭壇)이 있고, 그 곁에는 500여 점의 유물을 갖춘 박물관이 있다.
<금산공원 난대림>
<포제청>
<금산공원 외부전경>
<종가시나무 열매>
수월봉으로 가기 위해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포구로 이동한다. 이 길은 제주올레길 12코스의 일부에 포함되는 지역이다. 신도포구에는 도구리와 모살물 유래가 있다. ‘도구리’는 서해안의 독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선녀들이 해산물을 구하러 신도포구로 내려와서 준비한 해산물을 보관할 곳을 찾던 중 큰 도구리 하나와 도구리 3개를 발견하고, 큰 곳에는 해산물을 넣어두는 곳으로, 작은 도구리는 목욕하는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신도포구 도구리>
올레길 12코스 중간지점에서 올레길을 따라 ‘수월봉’으로 간다. 지금 경유하는 대정읍 신도리는 좀처럼 보기 드문 넓은 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무 등 각종 채소가 들녘을 꽉 메운다. 집집마다 둘러쳐진 돌담들도 운치를 더해준다. 제주 돌담은 작은 돌로 아래 부분 기단을 쌓고 큰 돌로 읫 부분에 쌓아 돌 간의 간격을 넓혀 담 사이로 바림이 잘 통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란다. 그러나 지금은 담을 치는 기술자가 없어 담 쌓기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신도리 들>
<제주도 돌담>
제주의 가장 서쪽 끝머리 해안가에 솟아있는 조그마한 봉우리가 수월봉이다. 수월봉은 해안에 돌출해 있는 높이 약 77m의 봉우리로 절벽이 예리하고 운치가 있으며 곳곳에서 솟는 용천수는 약수로 유명하다. 수월봉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육각정인 수월정이 있다. 수월봉 아래 해안을 끼고 이어지는 절벽은 화석층이 뚜렷하여 자연의 신기함을 더하는 곳이다.
<신도리에서 본 수월봉>
<수월정>
더욱이 수월봉 정상에 있는 수월정에 앉아서 바라보는 낙조는 제주 어느 곳에서 보는 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수월봉’에는 영산비가 정상을 지키고 ‘고산기상대’가 우뚝 서 있다. ‘차귀도’ 쪽의 하얀 절벽은 옆줄무니(화산쇄설층)로 도열을 한다. 차귀도는 바람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지 호안 쪽으로는 천혜의 항구로 보인다.
<수월봉 기상관측소>
<영산비>
그리고 수월봉지역은 2010년 10월 유네스코 제9차 세계지질공원 운영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은 지역이다. 수월봉은 지하에서 상승하던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나 발생한 폭발적인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체이다. 수월봉 해안절벽 곳곳에는 다양한 크기의 화산탄(화산암괴)들이 지층에 박혀있고, 지층이 휘어져 있는 탄낭구조를 볼 수 있는데, 무수히 많은 화산체와 탄낭구조는 수월봉의 화산활동이 얼마나 격렬하게 일어났는지 짐작케 하는 단초들이다.
<수월봉 화산탄층>
그 밖에도 수월봉 해안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도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으려고 구축해 놓은 갱도진지가 구축되어 있고, 병든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수월봉 절벽에서 오갈피를 채취하다 떨어져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며 한없이 흘린 눈물이 흘러나와 이를 ‘녹고의 눈물’이라 불렀으며, 이 남매의 효심이 지금의 ‘수월봉’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열대성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여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생태계의 보고로 각광 받는 차귀도(遮歸島)를 바다건너 멀리서 바라보며 섬 뒤로 지는 해와 이별한다.
<수월봉 해안>
<차귀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를 찾아서-7(사려니 숲 등, 完) (0) | 2018.11.28 |
---|---|
제주도를 찾아서-6(쫄븐갑마장길) (0) | 2018.11.27 |
제주도를 찾아서-4(노꼬메와 저지리) (0) | 2018.11.23 |
제주도를 찾아서-3(찬아숲길) (0) | 2018.11.18 |
제주도를 찾아서-2(상추자도) (0) | 2018.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