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거금도와 미르마루길(2)
(2018년10월13일∼14일)
瓦也 정유순
2. 우미산 천년의 오솔길과 미르마루길
어제 말벌에 쏘인 자리는 통증은 좀 완화되었지만 부기는 그대로다. 좀 서투른 젓가락질로 조반을 마치고 바로 ‘천년의 오솔길’이 있는 우미산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우미산(牛尾山, 449.7m)은 고흥군 영남면(影南面)에 위치한 산으로 팔영산(八影山, 608m)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영남면은 1966년 점암면 양사리(楊蛇里)에 양사출장소가 설치되어 행정을 관할해 오던 중, 1986년 4월 산내면(山內面)으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 4월 명칭만 ‘팔영산의 남쪽에 위치’하여 영남면으로 변경되었다.
<고흥군 영남면 지도>
녹동의 숙소에서 약50여분을 버스로 달려 영남면 우천리 간천마을회관 앞에 내려 고샅길을 빠져나간다. 마을의 나무마다 감은 주렁주렁 달려 주인의 손길만 애타게 기다린다. 우미산 입구에는 신우대가 숲을 이뤄 길을 터준다. 신우대는 대나무의 시누이격으로 시누대라 부르기도 하고 대나무보다 굵기가 얇고 무게가 가벼워 화살대나 낚시대로 적합하여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적당하게 불에 구워주면 단단해지고 일자로 반듯하게 바로 잡을 수 있다.
<간천리마을회관>
<우미산 입구 신우대길>
임도를 따라 우미산 동록(東麓)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동안 팔영산(八影山, 620m)이 계속 고개를 더 내민다. 고흥의 진산인 팔영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이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영’이란 이름은 중국 위왕(魏王)의 세숫물에 여덟 봉우리가 비춰져 불리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팔영산 앞에 걸려 있는 산등성이는 민둥산을 만들어 쌍놈 볼기짝 까발리듯 흉물스럽다. 아마도 저렇게 멀쩡한 숲을 망가트리면 그 안에 살던 생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 또한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은 떠돌이가 되었구나.
<팔영산>
우미산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숨을 고르고 우미산 정상을 피해 좌측 숲길로 몸을 숨겨 우암전망대로 향한다. 우암전망대로 가는 도중에는 승천하는 용을 따라가다 뒤틀렸는지 소나무 한 그루가 용틀임하다 멈춘 것처럼 서있다. 360도 회전하여 옆으로 비스듬히 서 있기도 힘들거늘 앞으로 바람의 장난과 기압의 무게를 어찌 견딜 것인지… 그래도 나무 끝은 하늘을 향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용틀임 소나무>
이곳의 전망대는 여러 사람이 올라 설 수 있는 데크나 마루 같은 시설이 없이 그냥 버티고 설 수만 있는 바위만 있으면 아무개전망대라고 이름 붙여 놓았다. 중앙삼거리를 지나 당도한 우암전망대(1·2·3)도 마찬가지다. 같은 남해에 있는 섬이라 해도 통영 앞바다의 한려해상 섬들과 고흥 앞바다를 비롯한 다도해상의 섬들은 느낌이 다르다. 한려해상의 섬들은 ‘일제히 위로 솟아올라 그대로 멈춘 형상’으로 동(動)적이고, 다도해의 섬들은 ‘떠돌다 멈춘 형상’으로 정(靜)적이다.
<다도해상의 섬들>
우암전망대에서 중앙삼거리로 다시나와 용암전망대로 향한다. 바위 끝 벼랑 위에 서서 한껏 자세를 취해가며 사진 찍기가 바쁘다. 쪽빛바다를 바라보며 하늘로 비상하고 싶은 욕망이 어찌 생기지 아니 하리요… 아름다움을 보면 살이 떨리고 마음이 요동치며 경탄(敬歎)할 줄 아는 게 세상을 여행 하는 자들의 기쁨이 아니던가? 이러한 순간의 희열(喜悅)을 느끼려고 얼마나 가쁜 숨을 턱밑까지 몰아쉬었던가?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흥 앞바다>
전망대에서 멀리 가물가물 보이던 ‘고흥우주발사전망대’를 등대삼아 해안 쪽으로 내려온다. 다 내려와서 뒤돌아 본 우미산은 정상에서 우암전망대 쪽으로 뻗은 능선이 하나의 고래 등 같다. 아니 곡선이 아름다운 여인이 옆으로 누워 길게 뻗은 각선미(脚線美)다. 숲은 엉덩이에서부터 발끝까지 속살을 덮어주는 한 폭의 치마 같다.
<우미산 전경>
너른 마당에는 ‘통일운동의 성지’라는 큰 돌기둥이 서있다. 받침돌에는 “(전략) 고흥에서 창립한 시민단체 <통일기금모으기운동>은 발기인 33인을 중심하여 2008년 8월 29일 우리나라 최초로 통일기금모으기운동을 전개 하였다.(중략) 여기에 전 국민의 뜻을 모아 고흥군을 통일운동의 성지로 선포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조선이 일본에 강제 병탄 당한 8월 29일 국치일에 날을 잡았을까?
<통일운동의 성지 표지석>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고흥우주발사전망대’ 앞에 서니 날로 발전해가는 우리의 우주과학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미소를 머금는다. 이 전망대는 나로도우주발사대에서 우주선이 발사되면 고스란히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고흥은 우주로 통하는 우리나라의 관문이다. 우주발사전망대 높이 47m, 지상 7층 규모의 구조물이며, 전체 면적 680여㎡에 외관은 우주선 모양으로 설계되었으며, 우주센터와 직선거리로 12㎞가량 떨어져 있다고 한다.
<고흥우주발사전망대>
우주발사전망대에서 남열해돋이해수욕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미르마루길이 시작하는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미르마루’는 순 우리말인 용의 ‘미르’와 하늘의 순 우리말인 ‘마루’를 합친 이름이다. 우주선 발사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사자바위와 용바위의 전설을 들으며 용암마을까지 걸을 수 있는 고흥군의 생태문화의 명품탐방로로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보는 환상’에 젖어 보는 길이기도 하다.
<남열해돋이해수욕장>
<고흥미르마루탐방길 입구>
내려오면 사자바위가 기다린다. 웅크리고 있는 바위모습이 사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두 마리의 용 싸움에서 패해 승천하지 못한 용이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을 향해 활을 쏜 류시인을 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하였는데, 승천한 용은 자신을 도와준 류시인을 몽돌해변에 해안을 지키는 수호바위로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큰일을 치르기 전 꼭 이곳에 들려 사자바위를 만지며 안전과 풍요를 기원했으며, 사자의 이빨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액운을 물리치고 재물과 행운이 온다고 한다.
<사자바위>
사자바위를 앞에 두고 있는 300m길이의 몽돌해변은 승천하지 못한 용에게 죽임을 당한 류시인의 아내가 이곳에 찾아와 사자바위가 되어버린 남편을 바라보며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그리워하다 죽었다고 한다. 그 뒤로 아름다운 파도소리가 때론 아내의 슬픈 울음소리처럼 들리고, 아내의 눈물은 둥글둥글한 몽돌로 변하여 햇빛이 비칠 때마다 영롱한 빛이 난다고 한다.
<몽돌해수욕장>
해안 길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다가 밑으로 급하게 경사진 계단을 만난다. 용굴로 내려가는 길인데, 길을 막아 놓았다. 금년 10월초에 지나간 태풍 ‘콩레이’가 지나가며 망가트렸기 때문이란다. 이 용굴은 싸움에 져 승천하지 못한 용이 이 속에 들어가 나오지 못했는데, 비 오는 날에는 분노에 가득 찬 용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10㎞ 떨어진 울려 퍼진다고 하여 수백 년 동안 이 소리로 날씨를 점쳤다고 한다. 용굴 우측 절벽은 금을 파기 위해 파해 친 흔적이 남아 있다하여 ‘강금절벽’이라 부른다.
<용굴-네이버캡쳐>
용굴과 용바위 사이에는 ‘미르전망대’가 있다. 용의 순 우리말인 미르전망대는 용 두 마리가 승천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과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전망대는 80m 해안 절벽 위에 철제 빔을 설치하고 그 위에 2m 길이의 특수 제작된 강화유리로 설치하였다. 투명유리를 통해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함은 스릴 넘치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 또한 전망대 아래 바닷가에는 낚시꾼들이 찾아오는 낚시 포인트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미르전망대>
미르전망대에서 더 잘 보이는 ‘용바위’는 고흥 10경 중 제6경으로 지정된 고흥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바다와 접해 있는 높이 약 120m의 바위산으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경치가 뛰어나다. 용이 암벽을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어 용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절벽 한쪽에 용이 승천했을 때 남겼다는 자국이 있다.
<용바위>
<용의 자국이 있는 바위-네이버캡쳐>
용바위 하단부를 빙 둘러 드넓은 암반층이 형성되어 있어 관광객들과 낚시꾼들이 많이 찾고, 입시철에는 자녀들의 합격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이들이 모여든다. 용바위 정상을 빙 돌아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빛 찬란한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재현해 놓았다. 용바위 아래 용암마을의 어느 집에서는 이바지를 받았다며 머루포도를 내 놓아 훈훈한 인심으로 나그네를 안아 준다.
<승천하는 용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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