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일곱 번째-2)

와야 정유순 2018. 8. 30. 00:15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일곱 번째-2)

(201882526, 2왜관교논공읍 박석진교)

瓦也 정유순

   낙동강 고령군 쪽 강변에는 대가야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주민 숙원사업의 일환으로 대가야시대 유물과 문화를 모형물로 설치하여 주민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여 흥미와 역사성 고취에 기여하고자 조성하였다고 한다. 낙동강 변에는 유독 공원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러면 우선 이용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이에 소요되는 예산은 어찌할까

<대가야역사문화공원>

<다산문화공원>

<성산별빛공원>


   또 멸종위기종 흑·재두루미 도래지역이라며 소음과 불빛에 매우 민감하고 경계심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는 간판을 세워 놓고 여러 가지 제한행위를 적시해 놓았다. 그러나 아주 가까운 곳에는 파크골프장등 주민 운동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아는지 모르는지 자동차가 왕래하기에는 불편한 강둑으로 자동차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저 간지럼을 태우면 활짝 웃는 배롱나무만 속없이 붉은 꽃을 피운다.

<흑.재두루미도래지역 상징물>

<파크골프장>

<배롱나무>


  다산문화공원이 조성된 사문진교 아래로는 유람선이 여유롭다. 강둑에는 북미가 원산으로 생태교란 종으로 지정된 가시박이 갈대숲을 잠식해 나간다. 그래도 개발제한구역 주민을 위해 국고보조금으로 조성된 고령행복누리길은 지친 우리들에게 산과 들 그리고 강을 보면서 자연과 사람이 함께 호연지기(浩然之氣)할 수 있는 여유를 베풀어 준다.

<낙동강 유람선>

<가시박>


   고령군 다사중학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수변은 수초가 잘 발달되어 수생태계가 건전하게 보인다. 모 교회 앞에는 붉은 찔레꽃이 피었나 싶어 반갑게 사진을 찍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늦게 핀 장미다. 어디에 무슨 꽃이 피어 있던 꽃은 참 곱다. 칡넝쿨은 너무 무성하여 사람이 다녀야할 길까지 뻗어 나온다. 인도를 따라 고비를 살짝 넘어가는데, 왠 괴물이 칡넝쿨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다. 무슨 이유야 있겠지만 그 비싼 중장비(크레인)를 강변에 왜 버렸을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다.

<낙동강 습지>

<찔레꽃 같은 장미>

<수변에 버려진 크레인>


   아침에 눈을 뜨니 제법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도 조반을 마치고 어제 도보를 마쳤던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지점에서 이어 .걷는다. 월성리에는 대가야시대 토성 유적이 있는 곳이지만 비가 행동을 제약한다. 월성리를 지나 약1.5쯤 지나면 다사면 송곡리로 당시 고령에서 유일하게 노론계 서원이었던 조선후기 노강서원이 나온다. 더욱이 영남 사림(士林)들이 미워했던 우암 송시열을 모신 서원이 있다는 자체가 의외다.

<고령군 다사면 월성리 출발지점>


   노강서원(老江書院)은 영조 때인 1692년 창건하여 송시열(宋時烈)을 주향으로 하고 권상하(權尙夏), 한원진(韓元震), 윤봉구(尹鳳九), 송환기(宋煥箕)를 배향하고 있다. 당시 고령에서 유일하게 노론계 서원이었던 노강서원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성주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 때 고령군으로 편입되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고종5)에 훼철되었다가, 1946년 지방유림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매년 음력3월 중정(中丁)일에 향사를 지낸다. 송시열은 거제로 귀향을 가고 올 때 이곳을 거쳐 간 곳이라고 한다.

<노강서원>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강변 성산별빛공원도 표지석만 확인하고 지나친다. 궂은 날은 가끔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는데, 지금 막 길을 잃어버리고 길이 아닌 미끄럽고 질퍽한 둔덕을 넘어 들어가니 모 골재공장이다. 다행이 휴일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남의 공장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며 숨을 고른다.

<모 골재공장>


  다시 길을 재촉하여 막 나서는데, 성채(城砦)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찾아 갔으나 건물은 언제부터 공사를 시작했는지 좀 오래된 것 같고, 중앙문은 굳게 닫혀 있다. 무슨 기념관을 지으려고 시작했으나 아직 마무리를 못한 것 같다. 조금 도 방치하면 흉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마당 옆에 큰 비석에는 兵曹參判密城朴公大福戰績碑(병조참판밀성박공대복전적비)’라고 쓰여 있다.

<공사가 중단된 건물>


   박대복(朴大福, 1558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 김면(金沔)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 2,000석을 지원하여 굶주리는 군사에게 제공하였으며, 주둔해 있던 왜적을 대파하여 시체가 낙동강 물을 막을 정도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37세의 나이로 전쟁터에서 순절하였으며, 비석에는 병조참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문헌에는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증직 되었다고 나온다.

<병조참판 박대복 전적비>


   88낙동강교 교각 밑으로 하여 고령교를 지나 달성군 논공읍 성산대교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 광주대구고속도로는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에 이르는 길이 181.9의 고속도로이다. 1981년에 착공하여 1984년에 2차선으로 개통하였다. 그리고 201512월 전 구간을 4차선으로 확장하고, 명칭을 88올림픽고속도로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변경하였다. 88올림픽고속도로는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기념동서화합의 목적으로 건설하여 얻은 이름이었다.

<광주대구고속도로 원경>

<광주대구고속도로-네이버캡쳐>


   성산대교(星山大橋)200412월 새로 개통된 고령군 대가야읍대구 간의 자동차 전용 고속화도로로서 국도 26호선 고령 진입부에 위치한 다리로, 대구와 고령군의 경계인 낙동강을 가로질러 가설되었다. 대구시에서는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의 위천 삼거리에서 진입하며, 고령의 관문 역할을 하는 다리로 규모는 총 길이 860m, 총 폭 20m, 유효 폭 20m, 높이 20.7m이다. 다리 밑의 시원한 공간을 이용하여 양파를 보관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성산대교 아래의 양파보관>


  길마다 빗물이 고여 내를 이룬다. 발목을 빠져가며 도착한 곳은 달성보다. 달성보(達城洑)는 달성군 논공읍 하리와 고령군 개진면 인안리를 잇는 낙동강 보로서 취수 기능을 확대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청정에너지인 소수력 발전과 친수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4대강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2009122일 착공하여 20111126일에 준공되었다. 총길이는 580m(가동보 162m, 고정보 418m)이며, 높이는 9.5m이며, 달성보 우안 고령 쪽에는 941소수력 발전 시설 3대가 설치되었다.

<빗물이 고인 낙동강변길>

<달성보>


  달성보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살펴본다. 주변에는 파크골프논공달성보구장등 달성노을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서쪽 고령군 개진면 인안리로 지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달성노을공원으로 명명했다고 하는데, 비오는 날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생각한다는 것이 호사스럽다. 홍수예방을 위해 건설된 대형 댐 크기의 달성보에는 자전거 길과 걷기길이 조성되어 통행이 자유롭다.

<달성보 전망대>

<달성노을공원>

 

  전망대에서 내려와 조성된 길을 따라 무듬들을 지나 대구환경공단달성사업소의 최종방류구에서 나오는 물이 용호천을 경유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온다. 대구환경공단은 대구시 전역에서 발생되는 하수·분뇨·생활쓰레기·음식물쓰레기·침출수 등을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구환경공단 달성 사업소는 달성군 현풍면, 유가면, 구지면 일부 지역에서 유입되는 생활하수와 공장폐수 등을 처리하여 낙동강으로 방류한다. 그리고 박석진교에서 마감한다.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용호천>

<박석진교>


   오후에는 비슬산유가사로 향한다. 비슬산유가사(琵瑟山瑜伽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내리던 비는 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일주문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가면 너덜바위 위에 작은 돌로 정성들여 쌓은 돌탑들이 앙증맞고, 유량이 불어난 계곡의 물은 폭포를 이룬다. 조금 더 올라가면 유가사 108돌탑이 이곳을 찾는 신도들의 신심을 짐작케 한다.

<비슬산유가사 일주문>

<108돌탑 중 일부>


   유가사 입구에는 찬포산이성관기도성(讚包山二聖觀機道成)”이란 보각국사일연시비(普覺國師一然詩碑)’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一然)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유가사는 827(신라 흥덕왕2) 도성(道成)이 창건하였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이곳을 포산이라 했고, 지금도 이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그래서 시의 내용은 비슬산에 유가사를 창건한 도성(道成)을 찬양하는 내용 같다.

<비슬산 계곡>


  그리고 일연스님은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승려이다. 가지산문은 신라말기 도의 선사가 전남 장흥군 가지산 보림사를 거점으로 일으킨 산문이다. 도의선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원조로 꼽힌다. 선종의 흐름은 고려시대 3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유가종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에 일연스님이 있었다. 그래서 비슬산 자락에 있는 유가사나 유가사가 있는 지명인 유가면에서 일연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보각국사 일연시비-찬포산이성관기도성>


   계단을 밟고 사천왕문과 범종루(梵鐘樓)를 지나면 주황색 지붕의 시방루(十方樓)가 나온다. 시방루(十方樓)시방(十方)’은 불교에서 우주에 대한 공간적인 구분으로 동북의 사방(四方), 동북동남서남서북의 사유(四維), 하의 열 가지 방향을 말하는 것으로 시간 구분인 삼세와 통칭하여 전 우주를 가리킨다고 한다.

<유가사 시방루>


  시방루를 지나면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모셔져 있고, 좌우에 협시불(脇侍佛)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세운 대웅전이 나온다.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세울 경우에는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한다. 항상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유가사 대웅전>


   그러나 중국의 동북지방과 우리나라에만 대웅전(또는 대웅보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대웅전 뒤편으로 칠성각이나 산신각(산령각) 또는 삼신당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불교국가를 가보면 석가모니불과 여러 보살을 모신 전각을 보았지만 대웅전이란 현판을 붙인 전각도 없고 칠성각이나 산신각이라는 전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국내 사찰만 보고 다닐 때는 다른 생각을 갖지 않았었는데, 외국의 불교사원을 볼 때마다 그 의문은 자꾸만 커져 갔다.

<유가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