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일곱 번째-1)
(2018년8월25일∼26일, 제2왜관교∼논공읍 박석진교)
瓦也 정유순
밤새 길게 울어재끼던 매미소리는 여름을 보내는 소리였던가? 온 세상을 불가마로 만들었던 여름이 조금은 비껴 서는 것 같다. 전 보다는 조금 시원한 아침이지만 그 뜨거웠던 잔열(殘熱)이 아직도 남아있어 폭염에 대비하고 길을 나선다. 지난 번 도보의 끝 지점이었던 동정천(同廷川)이 합류하는 낙동강은 변함없이 물 흐름이 느리고, 물이 멈춘 곳에는 녹조(綠藻)가 성하다.
<동정천이 만나는 낙동강>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왜물고(倭物庫)가 있어 성시를 이루었던 왜관나루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 변에는 그 때를 기다리며 월견초(月見草)라 불리는 달맞이꽃이 활짝 반겨준다. 5월에 안동의 풍산을 지날 때는 금계국이 황금벌판을 이루더니 왜관에서 대구시 달성군으로 지나가는 8월의 강변에는 달맞이꽃이 노랗게 수(繡) 놓으며 가을을 기다린다.
<낙동강 변의 달맞이꽃>
달맞이꽃은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며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될 무렵에 들어왔다고 하여 일명 ‘해방초’라고도 부른단다. 물가·길가·빈터에서 자라고 어린잎은 소가 먹지만 다 자란 잎은 먹지 않는다고 하며, 한방에서 뿌리를 감기나 인후염 약재로 쓰이고, 씨앗은 월견자(月見子)라고 하며 기름을 짜면 ‘달맞이꽃종자유’로 당뇨와 고지혈증에 유용하다. 꽃말은 ‘기다림’이고 전국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달맞이꽃과 나비>
제67호 지방산업도로 변에는 왜관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공장들이 낙동강을 따라 도열한다. 1990년 3월부터 조성된 왜관산업단지는 기산면에 있는 농공단지와 함께 대구·구미의 국가산업단지와 더불어 내수 및 수출에 따른 생산 활동이 활발하여 중소 도시의 지방 산업 발전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교통·통신·물류 등 사회간접자본이 갖추어져 있어 지방 특작농산물과 연계한 산업 활동도 용이하다.
<무덤산과 왜관산업단지>
이곳 왜관산업단지 뒷산은 옛날부터 고려장을 했던 곳이라 하여 무덤산 또는 사투리로 무지미산이라 불리었다. 실제로 1990년 산업단지 조성공사를 시작할 때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과 상당한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특히 고려시대 제기(祭器)가 많이 나와 주민들까지 ‘고려장(高麗葬) 터’로 믿어왔다. 그러나 불효죄가 역적죄만큼이나 엄했던 고려시대에 ‘늙은 부모를 생매장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무덤도굴을 합리화하기 위해 퍼트린 일제의 조작으로 밝혀지고 있다.
<무덤산과 왜관산업단지 지도>
무덤산에서 서쪽으로 강 건너 멀리 마주 보이는 곳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로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 사적 제444호)이 있는 곳이다. 1438년(세종 20)에서 1442년(세종 24) 사이에 조성된 태실로,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기를 합쳐 모두 19기로 조성되었다. 이 태실이 자리 잡은 태봉(胎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던 곳이었으나,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묘를 이장하도록 하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성주의 세종대왕자태실-네이버캡쳐>
그 가운데를 흐르는 낙동강은 생과 사의 숭고한 운명을 함께하는 묘한 기운이 흐르는데, 가까이 와 있으면서도 두 장소를 가보지 못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야하는 심사가 안타깝다. 그리고 칠곡군을 벗어나면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라는 곳인데, 이곳은 지난달에 찾아봤던 ‘사육신 중에서 유일하게 후손을 둔’ 박팽년(朴彭年)의 후손들이 세거(世居)하는 곳이고 유신사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사실이라도 아는 양 제사상에 제일 먼저 진설되는 대추는 이번 여름 무더위를 용케도 견뎌내고 도톰한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낙동강변의 대추>
데크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면 하빈면 하신리에 있는 하목정이 나온다. 하목정(霞鶩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낙포 이종문(洛浦 李宗文)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霞鶩亭(하목정)이란 정호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 이지영에게 직접 써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일반 백성들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인 부연(附椽)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 한다.
<하목정 전경>
<하목정>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사랑채로 이용되었던 이 집은 전체적으로 T자형 구조로 되어있어서 처마곡선도 부채 모양의 곡선으로 처리되었다. 정자 주변에는 석류와 배롱나무 붉은 꽃이 한참이고 뒤로는 정자보다 높은 곳에 사당이 있다. 내부에는 김명석·남용익 등 많은 유명인들이 쓴 시의 편액이 걸려있다.
<인조가 써준 하목정>
실은 어젯밤 자정 무렵에 도착한 숙소에서 눈을 뜨며 새벽바람을 쐬러 나왔더니 바로 옆에 하목정이 있어서 몇 방울 떨어지는 빗속을 뚫고 미리 구경을 했었다. 하목정이란 이름은 정자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에 오리들이 아침 안개를 가르고 나르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현재는 물길이 바뀌고 대구와 성주를 연결하는 국도 제30호의 성주대교가 개통되어 옛 풍경은 멀어져 갔다. 대신 앞마당에 핀 상사화처럼 만날 수 없는 옛날만 그리워한다.
<하목정의 상사화>
성주대교(星州大橋)가 있는 낙동강 변에는 예로부터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서 성주대교 북쪽으로 인접한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를 연결하는 하산 나루[하목정 나루]가 있었다. 이곳에 1975년 성주대교가 총 길이 1,050m, 총 폭 8.5m, 유효 폭 7m, 높이 10m로 건설되어 대구∼성주 간의 거리를 16㎞ 단축하였고,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1995년 기존 다리에서 남쪽으로 약 10m의 간격을 두고 왕복 2차선의 다리가 새롭게 건설되었다.
<성주대교>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 홍해를 가르듯이 무성한 억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다시 하천을 따라간다. 수변에는 하빈지구 공원이 있다고 하는데, 수초에 가려 눈에는 잘 보이질 않고 칠곡군 지천면 송정리 장원봉(壯元峰, 370.2m)에서 발원하는 하빈천과 만난다. 하빈천(河濱川)은 물길이 달성군 하빈면을 관통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유로 길이는 약12㎞이고 유역 면적은 12.36㎢이다. 강정보가 가깝게 보이고 하빈천이 낙동강과 합류할 때 오전도 지나간다.
<억새 사이 길>
<하빈천>
오후에는 먼저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화원유원지로 이동한다. 화원유원지는 화원 동산과 사문진역사공원을 포함하고 있다. 화원 동산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역사의 숨결이 스민 곳으로 신라 때에는 토성을 쌓아 행궁(行宮)을 두고 왕이 꽃을 감상한 상화대(賞花臺)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 때 상화대 자리에는 팔각정이 있어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봉화대를 설치하여 교통 통신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서 깊은 곳이다.
<화원유원지(화원동산)전망대>
1928년 일제강점기 때 대구유원지로 개발되어 1940년 대구시립공원이었으나, 해방 후 방치해 오다가 1978년 10월에 화원 동산으로 개칭하였다. 화원동산은 주류 회사인 ‘금복주’가 조성하여 1993년 대구시로 기부채납 했으며, 지금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화원유원지의 사문진역사공원은 2013년에 조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화원동산 표지석>
사문진(沙門津)은 과거 경상도 관아가 있었으며,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대구지역의 물류 중심지로 사람과 물산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던 곳이었다. 또한 사문진나루터는 1900년 3월 26일 미국 선교사 사이드 보탐에 의하여 그 당시 ‘귀신통’이라 불리던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곳이기도 하다. 1993년 사문진교(沙門津橋)가 완공되어 사라질 번했던 것을 화원동산과 함께 사문진주막촌 복원 등 도심형 수변공원으로 조성하여 다시 태어났다.
<사문진나루터>
<주막촌>
사문진나루터에는 유람선이 운항 중이고, 화원동산에는 꽃시계가 재깍거린다. 사랑나무 연리지는 떨어질 줄 모르고 흐린 날 주막촌은 한가롭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그 많던 화원성산리고분군 중 4기만 남아 있다. 동물원을 지나 사문진 피아노계단은 건반을 밟을 때마다 도레미 소리를 낸다. 화원정(花園亭)과 함께 안동댐에서 옮겨온 송사정(松士亭)은 봄철 벚꽃이 피기만 기다린다. 바쁘게 매점이 있는 전망대 위로 올라가니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하중도(河中島)는 아메리카 지도를 그린다.
<꽃시계>
<피아노계단>
<송사정>
<금호강과 합류하는 낙동강>
금호강(琴湖江)은 길이 116km, 유역면적 2,053.3km2으로 포항시 죽장면(竹長面) 북부에서 발원하는 자양천(紫陽川)을 비롯한 고촌천(古村川) 등 여러 하천이 영천시에서 합류하여 경산시를 관류하고 대구시에 들어와 북쪽으로 돌아 달성군에 들어가서 남류(南流)하여 낙동강에 합류한다. 금호강의 ‘琴(금)’은 강 주변의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가야금 소리와 같다는 의미이고, ‘湖(호)’는 금호강의 지세가 낮고 평평하여 흐르는 강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금호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
서둘러 강정고령보를 보다 가깝게 보기 위해 사문진교를 건너 고령군 다사면 곽촌리로 이동한다. 4대 강 16개 보 중에서 최대 규모인 강정고령보(江亭高靈洑)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낙동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 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다. 우륵교라는 다리가 있지만 지역갈등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강정고령보 조금 위 죽곡산(竹谷山, 196m)의 능선 아래에는 최근 발암물질 검출로 물의를 일으킨 대구광역시 문산취수장이 있다.
<강정고령보>
<대구 문산취수장>
우륵교는 강정고령보를 통과하는 공도교로 2012년 보가 완공될 때 함께 만든 1등급 교량으로 43t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교량이지만, 지금까지 전국 4대 강 16개 보 중 차량 통행이 가능한 5개 보 가운데 유일하게 차량이 다니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대구시 달성군 측이 “우륵교에 차가 다닐 경우 차량 혼잡 및 소음 등 각종 문제 발생이 우려된다”며 차량 통행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달성군 쪽에는 ‘강정보 먹거리촌’이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우륵교>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합수 지점에는 독특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강과 물, 자연을 모티브로 한 ‘디 아크(The ARC)’다. 4대강문화관이라고도 불리는 디 아크는 건축물이자 예술작품으로서 독특한 외관 못지않게 보인다.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쉬드가 설계한 디아크는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과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잘 표현해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낙동강의 역사문화와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의 혼(魂)이 함축되어 있는지는 미지수다.
<디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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