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선의 옛 역사를 찾아서(7)

와야 정유순 2018. 8. 15. 21:26

조선의 옛 역사를 찾아서(7)

(201872481)

瓦也 정유순

7. 필가산과 홍해탄(7.31)

   어제 우하량은 먼 길이어서 예정시간을 넘겨 랴오닝성[요녕성(遼寧省)] 진저우[금주(锦州)]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아침에는 다른 날 보다 비교적 여유가 있어서 조반 전에 산책을 나와 해안가로 나갔다. 어젯밤 묵었던 호텔이름도 비쟈산[필가산(笔架山)]이고, 앞에 보이는 섬도 비쟈산[필가산(笔架山)]이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찾아와 표를 사려고 줄을 서고, 무더운 날씨는 해안공원에 서있는 선녀(仙女) 석상을 뜨겁게 달군다.

<선녀상>


   해안공원 입구에는 돌기둥과 아치형으로 만든 석문이 있는데, 양쪽 돌기둥 위에는 삼족오(三足烏)가 새겨져 있고, 아치형 돌 가운데에는 치우천황의 귀면상(鬼面像)이 양각되어 있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吉鳥)인 동시에 세 발 달린 검은 새로 천손(天孫)의식이 깊은 한()민족 고유의 상징이다. 또한 삼신일체사상(三神一體思想), 즉 천((()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삼족오는 이곳을 지배했던 고구려의 상징이었다.

<필가산해변 입구>

<삼족오와 귀면암 문양>


   귀면상은 민족의 무신(武神) 치우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도깨비상으로 오래 동안 국난을 당할 때마다 어떤 침략자에게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우리 민족의 얼굴로 여러 곳에 새겨져 전해 왔다. 도깨비 상들은 무서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의 없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 우리 민족의 근엄하고 강건하며 호탕한 기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우리 붉은악마의 트레이드마크이다.

<충주고구려비전시관의 삼족오 문양>

<붉은 악마 깃발-네이버캡쳐>

   평소보다 좀 늦은 조반을 하고 선박을 이용하여 필가산으로 들어간다. 금주와 필가산은 천교(天橋)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다. 물길이 열리면서 조약돌로 된 길이 생긴다. 이 길을 천교라고 하며 길이가 1,620이고 폭은 10에 달한다. 하루에 두 번 썰물 때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데 이때를 이용하여 걸어서 드나들 수가 있다. 우리는 일단 배를 타고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면 걸어 나올 심산이다. 그래서 아침에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천교-물 빠지기를 기다리며>

   선박은 모터보트 형 이라 가르는 바람이 시원하다. 기록에 의하면 천여 년 전의 송()나라 때 이곳에 관아를 설치했고, ()나라 때는 이곳을 해운의 거점으로 삼았다. 썰물 때 섬까지 바다길이 열리면 사람들은 그 길을 천교(天橋)라 불렀고, 그 길을 통해 필가산에 올라 많은 유적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필가산을 천교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필가산-섬>


   필가산은 산의 모양새가 붓걸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붓 필(), 시렁 가()를 써서 필가산이라고 이름 지었다. 필가산은 금주항에 위치해있는데 발해를 마주하고 있다. 필가산의 남북 길이는 1120미터정도, 동서 넓이는 220미터, 해발높이 78미터 이상이며 면적은 1,2이다. 필가산풍경구의 관광코스로는 제일 볼만한 것이 천교이다. 그러나 선녀상 앞에는 仙女造橋(선녀조교)라는 표지석이 서있는 것으로 보아 천교를 선녀가 만든 다리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선녀조교>


   필가산에는 돌로만 건축된 여조정(呂祖亭), 오모궁(五母宮), 삼청각(三淸閣) 등이 있는데, 옥황대제, 석가모니 등 불교와 도교에 관한 크고 작은 석상이 43점이 칸칸마다 가득 공양되어 불교와 도교·유교가 모두 참배하는 성지이다. 청나라 때 한 가난한 수도승이 돌이 많은 이 섬에 처음으로 정착해 와 명당자리인 이곳에 사찰을 짓기 위한 모금을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섬에 수많은 전각이 세워져 있으며 모든 건물이 경첩과 이음새까지도 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중 가장 큰 삼청각은 높이가 26m6층 건물이다

<삼청각>


   그리고 삼청각에는 유일하게 중국의 천지창조의 주인공 반고(盤古)상이 모셔져 있다. 반고는 알 속에서 태어나 18천년이 지난 다음에 천지개벽을 하여 알의 밝은 부분이 하늘이 되고 알의 누런 부분이 땅이 되었으며, 하늘이 점점 높아지고 땅이 두꺼워져 반고의 몸집도 커졌다. 그의 머리와 팔다리는 오악(五岳)으로 변했고, 피와 눈물은 강과 하천이 되었으며, 눈은 해와 달이 되었고, 털은 풀과 나무로 변했다.

<반고 상>


   그의 입김은 비바람으로 변했고, 음성은 천둥이 되었다. 눈빛은 번개와 벼락이 되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낮이었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되었다. 입을 열면 봄, 여름이 되었고, 입을 다물면 가을, 겨울이었다. 기분이 좋으면 날이 맑았고, 화를 내면 날이 흐렸다. 이상은 양나라 임방이 편찬했다고 하는 <술이기(述異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필가산 정상에는 반고가 하늘을 열었던 자리라는 표시로 <盤古開天之虛(반고개천지허)> 석물이 자리하고, 그 옆에는 삼청각에 관한 시석(詩石) 삼청각부(三淸閣賦)가 놓여 있다.

<반고개천지허>

<삼청각부>


   필가산 후면에 있는 불법(佛法)으로 은혜를 베푸는 법우사(法雨寺)’ 대웅전 앞으로 하여 해변 길을 따라 선착장으로 나온다. 바닷길이 열리는 천교(天橋)는 반쯤 열리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물 빠지기를 기다리며 장사진을 이룬다. 주변에는 어패류 등을 즉석에서 요리해주며 제공하는 시장이 열린다. 물이 빠진 자리까지 걸어 나와 모터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와 오전을 마감한다.

<법우사 전경>

<법우사 대웅전>

<천교-열리기를 기다리며>


   오후에는 요서(遼西)에서 요동(遼東)으로 건너가기 위해 긴 시간 버스를 타야한다. 똑 같은 요령성 땅이지만 요하(遼河)를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뉜다. 한때는 요서지역이 백제의 땅이었고, 요동지역은 고구려 땅이었다는 기록도 심심찮게 나온다. 발해(渤海)를 끼고 펼쳐지는 넓은 평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꾸 무거워 지는 눈꺼풀과 씨름을 하며 처음 와보는 조선의 옛 땅을 마음에 담아보려고 용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만주(요서)의 지평선>


   얼마나 졸았고 차는 얼마나 달렸을까? 비몽사몽간에 어느 지점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산에서는 가끔 가는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광활한 평야에서도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땡볕에 지치도 않고 달리던 버스도 갑자기 멈추더니 밀당을 여러 번 한다. 그 사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원유를 생산하는 유정(油井)이 낯설게 눈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고 넓은 지평선 위로 많게도 꽂혀 있다.

<유정>

<송유관>


   버스도 제자리를 찾아 쌩쌩 달린다. 좁은 지방도로에서 해매이다가 고속도로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큰 강이 지나쳐 차를 세워달라고 했더니 고속도로라 새울 수가 없다고 한다. 방금 지나친 강이 바로 요하(遼河)였다. 요하는 내몽골 남동부지역과 송화강 이남의 만주지역을 적시며 발해만으로 흘러든다. 수량은 계절에 따라 큰 변화를 보이는데 여름에 최대로 늘어난다.

<만주벌판>


  평야의 경사도는 아주 낮아서 요하 하류는 옛날부터 광범위한 제방을 쌓았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여름만 되면 홍수를 겪는다. 이 강은 또한 많은 양의 토사를 운반한다. 이 지역은 1년 중 약 3개월 동안은 얼음에 갇히기 때문에 해빙기에도 홍수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 늪지대라고 한다.

<저(늪)지대>

   약40여 년 전 유현종(劉賢鍾, 1939)작가의 소설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생각난다. ‘당태종 이세민이 안시성에서 양만춘장군의 화살을 눈에 맞고 퇴각하다가 요하의 늪지에서 빠져 죽고 얼어 죽은 병사의 수가 전쟁에서 죽은 병사보다 더 많다고 한 대목이 지금 지나고 있는 이 지역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다. 혹시 그렇다면 안시성도 가까운 곳에 필히 있을 터인데 

<저수지>


  갈수록 들녘은 끝이 없고 유정(油井)의 수는 더 늘어난다. 또 다른 풍경은 논에 물을 대서 참게를 양식한다는 양식장이 줄을 잇는다. 한국에서 우리가 맛있게 먹는 참게는 대부분 이곳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그 당시 이 땅을 지키지 못한 조상들이 일차 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의 김춘추(金春秋)가 괜히 미워진다.

<참게양식장>

<요동지역의 유정>


   해는 옆으로 많이 기울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요령성의 판진[반금(盤錦)]시 발해만에 인접되어 있는 훙하이탄[홍해탄(紅海灘)]이다. 발해 연안으로 잘 발달 된 해안습지의 갯벌에 붉은 색상의 칠면초가 붉은 여울을 만들어 사람들은 이곳을 홍해탄이라고 부른다. 붉은 노을처럼 아름답고 눈부시게 바다와 하늘까지 쭉 이어져있는데 마치 백리나 뻗어나간 갯벌에 깔아놓은 거대한 융단 같다.

<홍해탄 입구>

<홍해탄>


  CNN에서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풍경15>에 꼽힌 <붉은 해변(Red Beach. 홍해탄. 紅海灘)>은 거대한 생명의 보고이며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현장이다. 399종의 야생동물과 260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멸종위기종인 붉은왕관두루미(Red-Crowned Crane)들이 모여 살고 있어서 두루미의 고향이라고도 불린다.

<홍해탄의 물길>

<새들의 낙원-홍해탄>


   홍해탄에는 나무로 만든 부두와 아홉 구비 휘돌아 가는 회랑 구곡낭교(九曲廊橋), 두루미를 비롯한 물새들의 낙원을 관찰할 수 있는 수금원(水禽園), 달이 뜨면 더 아름다운 월아만습지공원(月牙灣濕地公園) 등이 발해로부터 몰려오는 밀물에 조용히 하루가 잠기고, 오늘 따라 저녁노을에 홍해탄은 더 붉게 긴 여울을 남긴다.  ) -->  

<구곡낭교>

<홍해탄의 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