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선의 옛 역사를 찾아서(4)

와야 정유순 2018. 8. 11. 23:40

조선의 옛 역사를 찾아서(4)

(201872481)

瓦也 정유순

4. 산시성[산서성(山西省)] 면산(7.28)


   복중(伏中)이라 중국의 날씨도 만만치 않다. 미앤산[면산(綿山, 2556)] 입구에는 淸明·寒食之源(청명한식지원)’이란 빨간 바탕에 황색글씨로 현판처럼 걸려 있고, 앞에는 개자추(介子推)의 동상이 반갑게 맞이한다. 면산(綿山)은 중국 산서성(山西省) 진중(晋中)에 있는 유적지로 진국(晋国)할육구주(割肉救主)’의 명신 개자추(介子推)의 일화로 유명한 곳이다. 표 구입 등 입장 절차를 마치고 셔틀버스 대신 우리가 타고 온 버스를 이용하여 좁은 도로를 곡예 하 듯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미앤산(면산)입구>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망명생활을 할 동안 자기 살을 베어 먹이며 그를 모셨는데[割肉救主], 훗날 문공이 왕위에 올랐음에도 자신을 찾지 아니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으로 숨어들어간다. 잘못을 뉘우친 문공이 개자추를 뒤늦게 찾았지만 개자추는 더 깊이 숨었으며, 문공은 궁여지책으로 그가 숨은 산에 불을 지르면 결국 나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개자추는 끝내 불에 타 죽고 만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문공이 개자추를 기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찬 음식을 먹는 한식(寒食)의 유래가 되었다참고로 한식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 째 되는 날이다.

<개자추동상>


   수 천길 절벽 길을 기쁨 반 공포 반의 신음을 뱉어가며 도착한 곳은 시셴구[서현곡(栖贤谷)]이다. 서현곡은 25억 년 전에 형성된 대협곡으로, 전설에 의하면 개자추가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거쳐 은거지로 갔다고 한다. 개자추의 충성스럽고 효도하며 청렴 강직한 인격과 공로를 필설(筆舌)로 다 할 수 없는 공헌정신(貢獻精神)’은 역대왕조와 문무백관들의 사표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심신도야를 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서현곡으로 들어가는 길>


   서현곡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우선 승강기로 난코스를 대신한 후, 개자추의 묘를 찾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 옆으로 백송(白松)이 반겨준다. 원래 백송은 중국이 원산이라 하였는데 이곳 면산이 백송의 군락을 이룬 자생지 같다. 백송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간 곳은 대리석에 恩煙臺(은연대)’라고 새긴 비석이 서있다. 은연대는 진문공(晋文公)이 개자추(介子推)를 찾으려고 면산에 불을 놓으매 짐승들이 연기를 에워싸고 타지 못하게 하여, 그 후에 은연대(恩煙臺)’라는 집을 지어 은덕을 기렸다는 의미라고 한다.

<은연대>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개자추의 묘가 있다. 개자추의 넋이 백송으로 환생하였는지 길 가에는 백송이 줄을 선다. ()는 절벽에 흰 벽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고, 중앙에는 홍교(虹橋)형으로 벽돌을 쌓았으며, 묘 앞에는 제물을 올리는 상석과 양 옆으로 석상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서있다. 십 여보 떨어진 앞에는 향을 피울 수 있는 큰 화로 같은 향로가 준비되어 있다.

<개자추 묘>

<백송군락>


   개자추의 묘에서 내려와 개자추와 개자추 어머니의 넋을 모신 개공사당(介公祠堂)’이 있다. 사당은 절벽을 안으로 파서 들여 놓은 것처럼 되어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개자추의 좌상이 있고, 좌우로 스승과 어머니의 좌상이 서로 독립된 공간처럼 배치되어 있다. 벽에는 개자추의 일생을 조각 같은 입체적인 그림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사당의 마당에는 비석마다 (((((((()를 새긴 8개의 비가 서있다. 이는 개자추의 탐천지공(貪天之功)’교훈을 시사(示唆)하는 것 같다.

<개공사당>

<개자추소상>

<충.효.인.신.예.의.염.치 비>


   다음은 칙건정과사(敕建正果寺)’로 이동한다. ‘敕建(칙건)’은 아마 어느 황제의 칙명으로 절이 건립되었다는 의미이다. 정과사는 오용전이라는 이름도 같고 있다. 이는 다섯 마리의 용이 불경소리를 듣고 날아갈 때 다섯 갈래의 협곡을 남겨서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가면서 눈에 확 띄는 것은 암벽에 만들어 놓은 천애삼존불(天涯三尊佛) 황금빛이 찬란하다.

<칙건정과사 입구>

<천애삼존불>


   정과사 경내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높이가 69이며 7층의 영응탑(靈應塔)이 있다. 영응탑은 정토종(淨土宗)의 초조(初祖)가 되는 담란스님을 추모하는 탑이다. 담란(曇鸞, 476542)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사람으로 염불문(念佛門)을 집대성한 스님으로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담란의 등신불이 모셔진 영응탑은 원래 3층이었으나 중·일전쟁 때 일본의 폭격으로 무너지자 다시 복원하면서 7층탑으로 증축하였다고 한다.

<영응탑>


   승강기로 올라가 영응탑 내부를 3층까지 돌아보고 내려와 정과사로 간다. 정과사는 불교 성인 8명과 도교 성인 4명 등 12분의 등신불이 안치되어 있는 절이다. 등신불은 사람의 키만 한 정도로 만든 불상을 가리키는데, 이곳에 안치된 등신불들은 고승이 입적을 하면서 육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어, 점토질과 채색을 하여 생전 모습 그대로다. 중국인들은 영기(靈氣)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육신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진정한 신심이 맺은 열매라는 의미로 정과사(正果寺)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등신불>


   아래서 보았을 때 깎아지른 절벽에 지네발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 잔도(棧道)를 통하여 윈펑쓰[운봉사(云峰寺)]로 향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코스라 힘이 덜 드는 대신 발밑을 내려 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약간의 현기증(眩氣症)을 수반하기는 하나 비례적으로 상승하는 스릴도 만끽한다. 불교 사원 경내로 들어서자 이름이나 내용을 알 수 없는 불교전각들이 숲을 이룬다.

<잔도>


   운봉사가 있는 곳은 깎아지른 절벽에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불교 사원 군()이 들어섰다. 동굴만 보자면 사람의 배꼽을 닮았고, 전체적인 형상이 마치 두 손으로 배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아서 포복암(抱腹岩) 동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동굴 높이는 약 60m, 깊이는 50m, 길이는 180m에 이른다. 동굴에 조성한 운봉사와 그 밑으로 이어지는 불전을 전부 합치면 200여개에 달한다. 641년 당나라 때 처음 조성된 이래 지속적으로 증축과 개보수가 이어졌다.

<운봉사>


   당 태종 때 극심한 가뭄이 들자 극진히 기도해 비를 내리게 했다고 전해 온다. 그때부터 운봉사가 소원 성취 사찰로 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소원을 빌려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동굴 사원 위 절벽을 보면 무수히 많은 방울종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도 소원이 이뤄지길 기다린다기다릴()’과 발음이 같은 등‘()’을 달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소원이 이뤄지면 다시 이곳을 찾아와 등불이 아닌 방울을 단다고 한다. 신선이 영험하다는 의미로서 영험할 령()’방울 령()’의 발음이 동일하기 때문이란다.

<절벽에 걸린 방울>


   하늘도시 면산의 공중호텔로 불리는 운봉서원(云峰墅苑)에서 약간 늦은 점심을 하고 바쁘게 천교로 이동한다. 맨 위에는 높이가 300이고 길이가 300자형 다리인 천교(天橋)가 있는데, 이는 춘추전국시대 노예의 신분으로 후조(后赵, 319351)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던 석륵(石勒)이 만들었다고 한다.

<운봉서원>

<천교>


   극심한 혼란기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헤어 나올 길이 없자, 석륵이 군사를 이끌고 면산에 들어와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만든 최고의 군사방어시설인 석채(石寨)를 만들고 요새로 삼았다. 무려 1천여 명의 군사가 몸을 숨길 수 있으며, 실제로 진나라 군대가 진압하러 왔다가 천교에서 쏟아지는 맹공격에 대패했다고 한다.

<석채>

 

  따루오공[대라궁(大羅宮)]으로 이동하여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태·팔괘가 절벽 중앙에 매달려 있다. 태극문양과 팔괘 중 건···(乾坤坎離)는 분명히 우리국기인 태극기이다. 태극·팔괘를 만든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는 조선인인가 또는 중국인인가? 치우천왕을 한()족의 조상이라고 중화삼조당에 모시더니 우리 국기의 뿌리마져 중국화 되는지 모르겠다. 천문학자 박석재가 쓴 개천기에서는 치우천황’과 태호복희씨는 분명 조선인이다.

<대라궁의 태극팔괘>


   대라궁은 개자추가 꿈속에서 본 선경을 현실에 옮겨 놓았다고 전해 온다. 깎아지른 절벽 면에 높이 110m에 달하는 건물이 붙어 있다. 7층으로 두모전, 재신전, 삼청전 등 도교의 전당을 집대성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도교 사원 자체로 흥미롭다.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간다. 도교(道敎)는 신선사상을 기반으로 자연 발생하여, 거기에 노장사상·유교·불교 그리고 통속적인 여러 신앙 요소들을 결합되어 형성된 종교이다.

<대라궁-우측이 승강기>

<대라궁 도교사원>

  ​면산은 1년이면 130만 명의 중국인이 찾는 명산이다. 석회암과 화강암으로 이뤄진 협곡에 운무가 피어오르는 아침이 절경이라고 한다.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면 해발 2,000m 협곡 지대의 절벽을 따라 도교와 불교 사원이 별처럼 박혀 있는데,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인문학적 볼거리도 풍부할 것 같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구경하였으나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없던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일정이 추가되어 이 만큼 만이라도 구경했다는 게 어쩌면 큰 행운이었다.


<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