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옛 역사를 찾아서(6)
(2018년7월24∼8월1일)
瓦也 정유순
6. 우하량을 찾아서(7.30)
옛날부터 중국으로 사신이나 교역을 위해 우리 선조들이 다녔던 길, 아니 그 이전에는 우리의 옛 땅이었던 갈석산과 산해관을 다시 돌이켜 보며 홍산문화권에 포함되는 우하량(牛河梁)유적을 보러 버스에 오른다. 훙산[홍산문화(紅山文化)]는 내몽골자치구 적봉시(赤峰市) 홍산(紅山)을 중심으로 한 요서(遼西) 지역에서 생성된 신석기시대 위주의 문화집합체이며, 우하량유적은 요령성 능원시(凌源市) 우하량에서 발굴된 고대 복합유적이다. 요령성은 동북3성의 하나로 옛 만주(滿洲) 땅이다.
<우하량 칮이가는 지도>
우하량지역을 흐르는 다링강[대릉하(大凌河)]은 발해연안의 고대문화와 고조선 시대의 역사 전개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대릉하 상류 우하량에서 발굴된 돌무지무덤 안에서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짠 상자 모양의 돌널과 깬 돌을 쌓아 올린 돌널이 함께 배치되어 이루어졌고,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채색토기·옥기 등 전형적인 홍산문화유형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래서 우하량(牛河梁) 유적지는 홍산문화의 꽃으로 불린다.
<우하량유적지>
이 유물들을 보러 아침부터 버스는 달렸지만 상당히 먼 거리인지라 차오양[조양(朝陽)]에서 점심을 하고 또 달려 우하량박물관 돌무지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전시관은 큰 온실모형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돌무지[적석총(積石塚)]의 무너진 돌들이 일정한 틀에 따라 흩어져 있었다. 2층의 관람대를 따라 돌아가며 관람하게 만들었으며, 중간지점에서는 계단으로 내려가 더 가깝게 볼 수 있었다. 관람통로 주변에는 이 유물과 별로 관련이 없는 중국의 유물홍보물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우하량 유적박물관>
<돌무지 전시관 내부>
<돌무지 발굴>
우하량(牛河梁) 유적지에서 발견된 돌무지무덤 군집(群集)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돌무지무덤이란 돌을 쌓아 만든 무덤 양식으로 주로 고구려와 백제의 초기무덤이며,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우하량의 돌무지무덤은 놀랍게도 그 모습이 고구려와 백제의 돌무지무덤과 너무나 닮았다. 이 유물을 보는 순간 생뚱맞게 서울 송파구 석촌동고분군의 돌무지무덤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석촌동고분군 제3호분-2018.217>
전시관을 나와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관람차를 타고 우하량유적지로 간다. 우하량유적에서 가장 먼저 발굴 조사된 것은 제1지점의 여신묘이다. 여신묘(女神廟)의 현실(玄室)은 평면 ‘中’자형의 반지하식 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 구조물은 주실과 양측의 동측실과 서측실, 주실 남북의 남실과 북실, 남실 남측의 남단실(南單室)로 구성되어 있다.
<여신묘 현실 모형>
<여신묘 현실 평면도-네이버캡쳐>
나는 이 여신묘를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아 멍한 기분이 들었다. 어쩜 충북 충주의 <고구려비 전시관>에 전시된 <안악3호분>의 현실(玄室) 내부구조와 이렇게 똑 같을 수가 있을까? 닮아도 너무 닮았다. 안악3호분은 황해도 안악에 있는 고구려 고분으로 북한 국보 제28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BC 4000∼BC 3000년 전의 유물과 AD 357년에 제작된 고분의 현실 배치도와 규모가 거의 같다. 최소 3000년 이상 시공(時空)의 간극을 메꾸는 것 같다.
<충주고구려비전시관내 안악3호분 현실 입체도>
<충주고구려비전시관내 안악3호분 현실 평면도>
다시 관람차를 타고 유물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주변의 밭과 임야에서는 아직도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오제의 소상(塑像)이 전면을 장식한다. 삼황은 하북성 탁록의 삼조당에서 보았는데, 오제는 우하량에서 보게 되어 졸지에 이번 여행에서 삼황오제를 다 보게 되었다. 오제(五帝)는 소호(少昊)·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임금을 가리키는데 홍산문화와 어떤 관계인지는 설명이 없다.
<오제소상>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여신묘와 그 부근에서 발굴된 것으로 곰의 턱뼈와 함께 푸른 옥으로 장식된 눈이 달린 여신상이 발굴되었다. 이 ‘홍산문화 여신상’은 우하량 유적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자세가 인상적인 여신상은 실물 크기로 제작 되어 다른 여신상과는 다르게 실제적인느낌을 준다. 특히 둥근형의 얼굴, 낮은 콧등 등 전형적인 몽골 여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발굴 당시 여신두상>
<실물로 재현한 여신좌상>
대표적인 유물로는 옥으로 돼지 모양을 한 ‘옥저룡(玉猪龍)’, 옥으로 봉황모양을 한 ‘옥봉(玉鳳)’, 옥으로 사람모양을 한 ‘옥인(玉人)’ 등이 진열되어 있으며, 마을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는 모습, 제사장의 지휘에 따라 ‘하늘에 제사[천제(天祭)]를 지내는 모습 등을 형상화 해놓았다. ‘옥저룡(玉猪龍)’에 대해선 보는 사람의 생각과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내 눈으로는 ‘곰의 형상[옥웅룡(玉熊龍)]’으로 보인다.
<옥저룡(玉猪龍)>
<옥봉(玉鳳)>
<옥인(玉人)>
<도기>
갈 길이 멀어 유물들을 서둘러 보고 나오는데 ‘여신’의 두상은 두 눈에 옥을 박은 채 발견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해 놓았으며, 두상 앞에는 향을 피울 수 있는 향로도 마련되어 있다. 여신상과 함께 출토된 곰의 턱뼈와 곰발 토기 등은 곰 토속신앙문화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神市)가 혹시 홍산 또는 이곳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신묘 제단>
홍산문화는 일본의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대륙침략의 일환으로 1906년 중국 내몽골자치구의 적봉시(赤峰市) 홍산(紅山)을 중심으로 한 요서(遼西)지역에서 지표조사를 하다가 많은 신석기 유적과 돌무지[적석묘(積石墓)]를 발견한 결과이다. 20세기 초부터 일본은 교토대학(京都大學)을 중심으로 이른바 ‘만주학(滿洲學)’이란 하나의 관학(官學)을 만들어 만주지역에 대한 정보 탐지에 악용해 왔다.
<천제를 지내는 모습>
홍산문명의 출현은 중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더 발달된 문화가 만리장성 이북지역에서 발굴됐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중국은 만리장성을 기점으로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한계선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중화문명의 기원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라는, 이른바‘다(多)기원론’을 들고 나왔다. 중국은 오랫동안 황화문명을 중화문명의 기원지로 보았지만, 1970년대 들어서는 장강문명, 그리고 최근엔 홍산문명을 요하문명으로 이름을 바꿔 시원지로 삼고 있다.
<중국의 고국왕릉 설명문>
그리고 중국은 이제 그들의 자부심이었던 황하문명과 만리장성을 넘어 홍산문명을 그들 문화의 원형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요하 일대는 원래 중화민족의 시조라는 황제(黃帝)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황제가 활동하던 곳이고, 황제가 여기서 문명을 건설하고 내려오면서 또 중원에서 문명을 이뤘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요하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소수 민족은 모두 황제의 후예라는 것이다.
<우하량유적지-표지석>
하북성 삼조당에서는 ‘마귀 같이 취급하던 치우천황(蚩尤天皇)을 헌원황제(軒轅黃帝) 옆에 모셔 놓았고, 오제(五帝)를 아무 관련도 없는 우하량박물관 입구 전면에 도열 시켜 놓았다. 이런 일련의 행태들은 홍산문명을 전설적인 인물 황제(黃帝)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 이것이 중국 동북공정의 속 샘 같다.
<홍산문명과 관련 없는 홍보물-무이산>
<홍산문명과 관련 없는 홍보물-평요고성>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안악3호분>의 ‘견우와 직녀’ 벽화와 ‘우하량(牛河梁)’이란 글자가 자꾸 겹쳐진다. 우하량의 ‘우하(牛河)’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기 위해 필히 건너야 하는 은하수(우하)’이고, ‘량(梁)’은 ‘칠월칠석 날 두 사람이 만나야 하는 은하수의 오작교(烏鵲橋)’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일까? 역사는 실증(實證)이라기보다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퍼즐게임이 아닐까…?
<충주고구려비전시관내 안악3호분 벽화-견우직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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