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옛 역사를 찾아서(1)
(2018년7월24∼8월1일)
와야 정유순
1. 중화삼조당과 비호욕 공중초원(7.24∼25)
열대야가 계속되는 무더위 때문인지 또는 조선의 옛 땅을 찾아가는 설렘인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세고 바람을 가르며 김포에서 북경(北京)공항으로 향한다. 베이징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 나라의 수도였으며, 후에 요(遼)·금(金)·원(元)·명(明)·청(淸)의 도읍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서 8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다. 그리고 수도가 아닐 때는 동북변방(東北邊方)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삼조당 입구>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받고 버스로 약120㎞를 달려 중국 하베이성[河北省] 장자커우[张家口]에 위치한 중화삼조당(中华三祖堂)으로 향한다. 삼조당은 중국의 선조를 참배하는 곳으로, 건물 내에는 헌원황제(軒轅黃帝), 염제(炎帝), 치우천황(蚩尤天皇)의 대형 소상(塑像)이 있고, 줘루[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출토된 돌도끼, 가락바퀴, 돌화살촉 등 인류가 처음 만들어낸 다양한 생활용품과 전쟁무기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벽에는 탁록(涿鹿)전쟁, 반천(阪泉)전쟁, 합부부산(合符釜山) 등 탁록의 4대 역사적 사건을 그린 대형 벽화가 있다.
<삼조당 가는 길>
그런데 기존의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염황지손(炎黃之孫)’이라고 일컬어왔다. 그리고 중국 역사책에는 ‘치우천왕과 황제 헌훤’이 하북성 탁록에서 수십 차례 전쟁을 치르고 이윽고 치우천왕이 황제에게 패하여 전사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책에는 그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치우비’라는 부장이었고, 치우천왕은 헌원황제를 물리치고 150세가 되도록 산동성과 하북성을 두루 통치했다고 한다. 치우천왕은 배달조선(倍達朝鮮) 14대 환웅으로 본래 이름은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이다.
<삼조당>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춘추전국시대에는 이곳 제(濟)나라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되었고, 이어 진나라, 한나라 때는 주민들이 제를 지냈다. 또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 치우에게 제를 올린 다음에 출전했다고 한다. 특히 치우의 능에서 붉은 연기 같은 것이 깃발처럼 휘날리면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치우천왕은 신화시대를 지나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 역대 왕릉에 도깨비상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나타난다.
<삼조당 전면의 8마리 용과 여의주>
또한 백번 양보하여 중국의 정사인 사기를 따른다고 해도 탁록의 마지막 전투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비극적 인물인 치우는 수 천 년이 흐른 뒤인 1999년 붉은 악마로 또다시 깨어난다. 붉은 악마는 당시 회원이던 한 축구디자이너의 권고로 1999년 치우천왕을 공식캐릭터로 정한다. 그리고 그해 3월29일 한국과 브라질 전이 열린 잠실경기장에 가로 4m, 세로 3m의 대형 치우천왕 깃발이 첫 선을 보인다. 이날 우리나라는 한국 축구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강 브라질을 1 대 0으로 물리친다.
<헌원황제의 항복을 받는 치우천황-김산호화백>
4500년 만에 깨어난 치우천왕이 ‘불패의 신화’를 또 한 번 보여준 걸까? 그리고 붉은 악마는 이후, 경기에 앞서 애국가가 울릴 때는 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한국 팀이 골을 넣으면 치우천왕기를 펼치는 것이 공식화 돼 있다. 그리고 치우천왕이 등장한 이후, 처음 맞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팀은 4강 신화를 만들어 낸다. 이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까? 우리는 현실로 일어나는 신화도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는 것일까?
<붉은 악마 깃발-네이버캡쳐>
외국의 신화들은 줄줄 외우면서 정작 우리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모르는 것은 서글픈 이야기가 아닌 가? 중국은 신화시대도 역사화를 하는데, 우리는 엄연한 역사임에도 신화로 둔갑시키는 우를 범하며 그 옛날 중원을 호령했을 치우천왕은 어디에다 내팽겨 쳤단 말인가? 그렇게 미워했던 남의 조상 치우천왕을 중국 조상으로 둔갑시켜 놓은 뻔뻔함에 뒤틀린 심사로 황제성과 황제천, 황제호수 등 삼조당을 둘러보고 하북성(河北省) 중서부에 있던 태항(太行)산맥 중의 골짜기 비호욕(飛狐峪)으로 빠져 들어간다.
<황제천>
<황제호>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다가 멎은 비호욕은 여우가 골짜기를 날아다니며 구름으로 재주를 부리는지 ‘돌 고개 가을구름[石嶺秋雲(석령추운)]’ 너울대듯 하늘에 무지개로 아름다운 홍교(虹橋)를 그린다. 고원으로 올라갈수록 몽골지방의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게르 같은 천막촌도 보인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공중초원이지만 구름이 끼어 하늘에는 피워 놓은 모닥불의 불티들이 대신 반짝거린다.
<공중초원의 무지개>
<석령추운(石嶺秋雲)>
<캠프파이어>
‘별 볼일 없는 밤’을 지내고 새벽 산책을 하는데 ‘마고촌(蘑菇村)’이란 간판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마고란 구비설화를 통해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면서 전승되는 여성거인신이다. 대체로 마고할미라는 명칭을 지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설문대할망, 서해안의 개양할미, 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 등이 여성거인신적 존재로서 그 행위나 성격이 마고할미와 동일한 지역적 변이형으로 파악되는데, 이곳에서 ‘마고’라는 단어를 만난다는 것은 외국이 아닌 이웃처럼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마고촌 간판>
공중 초원은 래원 현 북쪽과 위 현이 접경한 해발 2,158m의 고지에 형성된 평지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서 탁 트인 드넓은 초원을 만나는 경험이 마냥 신기하다. 말 등에 올라 초원을 달려본 다는 것도 하나의 큰 추억거리다. 끝없이 펼쳐진 야생화는 에델바이스만 빼 놓고는 이름을 알 수 없어 미안할 따름이며, 웅장한 산세와 넓은 초원은 말 그대로 ‘꽃의 바다[화해(花海)]’이다. 초원 끝까지 말 등에 올라 다다랐다가 꽃들과 대화하며 공중초원 입구로 되돌아온다. 초원 입구의 가게에서 떡메 치는 광경도 낯설지가 않다.
<말을 타고~>
<꽃의 바다-화해>
<야생화 초원>
<에델바이스>
<떡메>
남북 길이만 600㎞, 동서로 250㎞나 뻗은 거대한 태항산맥 골짜기의 하나인 비호욕은 어제 올라갈 때 보았던 풍경과 사뭇 다르다. 내려올 때 골짜기는 더 깊게 보이며 ‘아바타’ 영화의 주 무대였던 ‘장가계’만큼 기암절벽들이 줄을 잇고, 때로는 중국의 ‘황산’보다 더 웅장하다. 비호욕 일대 산세는 평균 해발이 1500∼2500m에 이르며 산봉우리가 기이하고 협곡이 신비롭다. 20여㎞ 이상 이어진 협곡사이로 자동차 두 대가 겨우 교행 할 수 있게 만든 도로는 걸을 때나 버스에 탈 때나 마찬가지로 스릴이 있다.
<비호욕>
<비호욕>
<비호욕>
눈길이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아닌 것이 없다. 어느 것은 큰 바늘처럼 날카롭게 하늘로 솟았고, 어느 것은 만리장성처럼 웅장한 성채(城砦)를 이루어 군사적으로도 요충지(要衝地)로서의 역할이 클 것 같다. 치우천황(蚩尤天皇)은 이곳에 진을 치고, 헌원황재(軒轅黃帝)는 비호욕 입구인 탁록(涿鹿) 들에 진을 쳐 대치하다가 치우의 부장 치우비가 명령을 받지 않고 출격했다가 황제의 군사에게 대패하는데, 헌원황제는 이를 치우로 착각하여 신체를 5등분하여 처단하였다고 한다.
<송곳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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