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다섯 번째-2)
(삼강나루∼구미시 도계면, 2018년6월23∼24일)
瓦也 정유순
오늘은 얼마나 찌려는지 아침부터 태양은 뜨겁다. 조반을 끝내고 사벌국(沙伐國) 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이 있는 사벌면 화달리로 일찍 이동한다. 경북도기념물 제25호로 지정(1977년 12월 29일)된 이 능은 신라 54대왕 경명왕의 다섯 번째 왕자 박언창(朴彦昌)의 묘라고 전하는데, 박언창은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었으나 후에 사벌국이라 칭하고 자립왕으로 11년간 다스리다 견훤의 침공으로 패망하고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사벌왕릉>
사벌왕릉 바로 옆에는 화달리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으로 상주나 문경지방에 분포한 탑의 특징으로 8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 위에 탑을 세웠는데, 기단부는 단층으로서 하층기단 면석을 생략한 형식이다. 높이는 6.24m이며 건립연대는 9세기경으로 추정한다. 현재 덮개돌 위에 있는 목 없는 불상 1구는 이 탑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고, 삼층석탑 주변에 있는 재실 같은 전각들도 궁금하다.
<화달리 삼층석탑>
<목 없는 석불>
사벌왕릉과 삼층석탑을 둘러보고 어제 끝 지점인 강창교 둔치로 이동한다. 강창교는 상주시 낙동면과 중동면을 이어주는 교량이다. 강창교 북동단의 ‘낙동강생명의숲공원’에는 시민들이 나와서 야영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빼곡하다. 그리고 낙동강이 적시는 상주 벌 들녘에는 논과 밭에 심어 놓은 농작물들이 뿌리를 튼실하게 잡아가고 우렁이는 벼 포기마다 알을 실어 친환경자연농법을 실천한다.
<강창교>
<우렁이 알이 실린 벼 포기>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정기룡(鄭起龍)장군을 기리는 상주의 전통 활터인 충의정이 나온다. 매헌 정기룡(梅軒 鄭起龍, 1562∼1622)장군은 158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싸움에서 500여 명을 격파 하였고, 곤양의 수성장이 되어 왜군이 호남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또 격전 끝에 상주성의 왜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 고령에서 적장을 생포하기도 하면서 무장으로 용맹을 떨치다가, 1622년 통영의 진중에서 전사하였다. 시호는 충의(忠毅)이고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충의정 활터>
상주시 중동면 죽암리에는 낙암서원이 있다. 낙암서원(洛嵓書院)은 김담수(金聃壽)와 두 아들 김정용(金廷龍), 김정견(金廷堅)을 배향한 곳이다. 1796년(정조 20)에 창건되어 향사되어 오다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단소만 남아있었던 것을 1988년 다시 복원하였다. 낙동강이 멀리 바라보이고 야트막한 산이 뒤를 둘러싼 배산임수형에 위치하며, 낙암은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매년 음력 3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낙암서원>
낙암서원 앞으로는 낙동강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비옥한 강변의 들에는 농작물들이 충분한 일사량에 쭉쭉 크지만 허수아비는 홀로 외롭게 서있다. 인근의 공군초소의 호위를 밭으며 도착한 곳은 ‘옛 토진(兎津)나루터’이다. 토진나루는 상주·의성·예천의 하상(河上)무역의 중심지로 문물이 교환되는 시장이 번성하였던 곳이었으나 1982년 11월에 중동의 신암리와 낙동의 물량리를 잇는 중동대교가 개통됨으로서 나루터의 명성은 옛날로 묻혀 버렸다.
<전원과 허수아비>
<옛 토진나루터>
중동대교를 건너면 낙동면 물량리(物良里)로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자전거도로 옆에는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자전거 이용객들의 편익을 제공하기 위해 국토해양부(부산국토관리청)에서 보양정(甫陽亭)이란 정자를 세웠다. 보양이란 이름은 물량의 옛 마을이름으로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중동대교>
<보양정>
물량리 뒷산인 나각산(螺角山, 240m)은 낙동강 1300리 중 유일하게 ‘낙동’이라는 지명을 가진 상주시 낙동면에 낙동강과 어우러져 솟아있는 산이다. 산체가 둥글어 소라 형국이고 정상 능선에는 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며, 정상 주변의 바위에는 부처손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나각산 입구에는 장승이 우뚝 서서 길 안내를 하며, 특이한 것은 원래 강이 융기되어 산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나각산>
<나각산 입구 장승>
당진∼영덕 고속도로 밑으로 몇 구비 고개를 넘어 도착한 곳은 낙단보공원이다. 공원 아래에는 2017년 8월에 개관한 낙동강역사이야기관이 있는데 들르지 못하고 오전을 마감한다. 낙동강역사이야기관은 상주시가 낙동강이 간직한 역사와 상징성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전당이다. 이야기 관은 어린이 체험관, 4D 영상관, 낙동강 갤러리, 수석 전시실, 생활문화관, 나룻배체험관, 경제 교류관,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당진∼영덕 고속도로>
<낙동강역사이야기관>
점심은 구미시 선산읍에 와서 하고 한 낯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죽장사로 향한다. 죽장사(竹長寺)는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서황사(瑞凰寺)라고도 불리는 이 절에는 국보 제130호로 지정(1968년12월)된 죽장동오층석탑이 유명하다. 이 탑에는 신라 때 한 남매가 서로 재주를 겨루다가 각각 다른 자리에 오층석탑을 쌓기로 했는데, 누이가 먼저 이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한다. 높이가 10m로 전탑형의 5층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죽장동 오층석탑>
죽장사는 한때 폐사되었다가 1954년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법련사라 불렀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명효(明曉)가 대웅전과 삼성각·요사채 등을 지으며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마당가에는 한 줄로 모아놓은 열여섯 개나 되는 주춧돌이 탑과 더불어 이 절의 옛 모습을 그리게 만든다. 개중에는 모서리 기둥을 받쳤을 것으로 짐작되는, 큰 사분원과 작은 반원을 합친 것 같은 주좌가 새겨진 것들도 더러 보인다. 초목에 가려 있어도 천진난만한 애기부처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죽장사 대웅전>
<애기부처>
죽장사에서 더위를 피한 후 다시 낙단보 건너 경북 의성군 단밀면에 있는 관수루(觀水樓)로 이동한다.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낙단교와 낙정양수장 사이에 있는 누각이다. 고려중엽 창건 시에는 강의 서안(西岸)에 위치하였는데 조선초엽 수해를 입어 동안(東岸)으로 이건하여 1734년(영조 10)에 중건 하였고, 1842년(현종 8)에 중수 하였으나, 1874년에 유실된 것을 1990년 지역민의 힘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관수루>
‘인자(仁者)는 요산(樂山)이요, 지자(智者)는 요수(樂水)’라 예로부터 내왕 객이 끊임없던 낙동나루터,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수 백리를 쉼 없이 흘러온 낙동강물이 머물다 가는 곳. 자연의 절경이 내려 보이는 누대(樓臺)에 올라 바쁜 세상사를 관조(觀照)하는 여유로움이 고려조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 1431∼1492), 김일손(金馹孫, 1464∼1498), 이황(李滉, 1501∼1570) 등이 지은 15편의 글들이 관수루에 걸려있다.
<점필재 김종직의 시>
관수루 하류에 있는 낙단교(洛丹橋)는 상주시 낙동면과 의성군 단밀면을 연결하는 낙동나루터에 세운 교량이다. 이 다리가 완공되기 까지 선거 때마다 교각이 하나씩 세워져 수 십 년이 걸렸다는 우스게 소리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1985년 4월 23일에 착공하여 1986년 8월 30일에 완공했다. 다리의 길이는 434m, 폭은 10m이며 무게는 32.4톤에 달한다.
<관수루에서 본 낙단교>
<낙단교>
낙단교 상류에 있는 낙단보(洛丹洑)는 2009년부터 시작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에 조성된 8개 보 중 상류 2번째에 위치한 보이다. 낙단보의 경관은 낙동강 3대 정자 중 하나인 관수루(觀水樓)의 처마를 모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북도 구미시 세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융합되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물은 흐르는 게 순리’이거늘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 것은 아닌지…
<낙단보>
무쇠도 녹여버릴 기세로 세상을 달구는 폭염은 발걸음을 자꾸 더디게 한다. ‘그늘 중의 가장 시원한 그늘’은 역시 ‘다리 밑’이다. 상주∼영천 간 고속도로의 낙동강대교의 교각 밑은 옛날 할머니 말씀대로 가장 시원한 고향 같다. 할머니께서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며 손주를 놀리셨다. 잠깐 더위를 식히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지만 무더위에 시간도 길게 늘어진다. 낙동강 따라 발길을 옮겨 의성군을 지나 구미시 도개면 가산리에 도착한다.
<구미시 도개면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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