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파계봉을 올라 제2석굴암까지
(한티재∼제2석굴암, 2018년6월30일)
瓦也 정유순
태풍이 제주도 서쪽으로 많은 비를 몰고 우리나라로 올라온다는 기상예보를 안고 조금 염려되는 마음으로 새벽길을 나선다. 버스는 예정대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청주JC와 청주∼영덕고속도로 상주JC를 거쳐 상주∼영천고속도로 동군위IC를 빠져나와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한티재휴게소에 도착한다. 한티는 ‘높고 큰 고개’를 뜻하며 한티재는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700m 산줄기에 있고,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와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를 잇는 고개이다.
<한티재∼파계봉∼수월정사 도보코스>
<한티휴게소>
1980년 5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팔공산(八公山, 1,193m)은 대구 북쪽 끝에 위치하여 경북 군위군 부계면(缶溪面)과 경북 영천시 신녕면(新寧面)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봉(東峰, 1,155m)과 서봉(西峰, 1,041m)의 양 날개를 펴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염불봉(念佛峰)·수봉(壽峰)·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관봉(冠峰) 등이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파계봉(把溪峰)을 넘어 가산(架山)에 이른다.
<팔공산도립공원 안내도>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公山)·부악(父岳)이었고, 후백제 견훤(甄萱)이 신라를 공략할 때에 고려 태조 왕건이 5천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군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 동수(桐藪, 현 대구 동구 지묘동)에서 오히려 견훤의 군에게 대패를 당한다. 그 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당시 신숭겸(申崇謙)과 김락(金樂), 전이갑(全以甲)·전의갑(全義甲) 형제, 이름을 알 수 없는 4명의 장군 등 8명의 공신이 죽었다하여 팔공산이 되었다.
<팔공산 파계봉 올라가는 계단>
한티재휴게소에서 데크계단을 이용하여 파계봉을 향한다. 대구는 여름이면 너무 무더워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를 만든 대구시민들이 이곳 팔공산자락으로 피서를 겸해서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숲이 우거져 밖의 풍광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다만 숲속에서 자연이 연출하는 경관만 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세워 놓은 것 같은 입석(立石)들은 다리 아픈 나그네에게 좋은 의자구실도 할 것 같다.
<팔공산 입석>
올라가는 길목에는 ‘願堂封山(원당봉산)’이라고 쓰인 표석(標石)이 나온다. 대구 파계사 원당봉산표석은 ‘원당’과 ‘봉산’ 두 단어를 조합한 것으로 팔공산 파계재에서 한티재방향으로 약400m 지점에 있다. 원당은 ‘왕실의 안녕이나 명복을 빌던 장소’를 뜻하며, 봉산은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한 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표석은 원당으로 지정된 사찰의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의 산림도 보호하고자 세운 것이다.
<원당봉산 표석>
1806년에 작성된 <파계사원당사적(把溪寺願堂事蹟)>에 따르면 파계사는 1696년(숙종22) 세자(후에 영조)의 탄신을 기원하기 위해 왕실의 원당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1696년 이후 파계사가 원당으로 지정되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파계사(把溪寺)는 대구 동구 중대동의 팔공산(八公山) 서쪽 기슭에 있으며, 804년(신라 애장왕 5) 심지(心地)가 창건한 사찰로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이 중창하였으며, 숙종의 부탁으로 현응이 백일기도를 하여 영조(英祖)가 출생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팔공산 소나무 숲>
한 10여분 걸어올라 간 지점에는 소나무 한 쌍이 서 있어서 ‘쌍둥이소나무’ 또는 ‘부부소나무’로 불리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뒤에 있는 소나무는 지난겨울 쌓인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리가 꺾이었으며, 꺾이면서 사람이 다니는 길목을 막아선 가지들은 톱으로 팔뚝이 잘려 나갔다. 왜 수 많은 나무들 중에 이 나무만 표적이 되었을까? 자연도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것일까?
<팔공산 부부(?)소나무>
<팔공산 죽은소나무>
고도와 경사를 높이면서 호흡도 빨라지고 땀의 양도 많아진다. 옛날에는 삼태기나 바구니를 만드는 재료였던 참싸리가 꽃을 피운 채 터널을 만들어 준다.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은 바위를 지나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면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의 파계봉이 나오고 약150m쯤 떨어진 곳에는 대구시 동구 공산동 파계봉(把溪峰, 991.2m)이 있다.
<팔공산 참싸리>
<팔공산 입석>
<팔공산 입석>
대구 쪽 보다 장소가 좀 넓은 군위 쪽 파계봉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하고 다시 아래로 되돌아와 파계사 쪽 갈림길에서 반대편인 수월정사로 계곡을 타고 내려온다. 30여 년간 통행을 금지 시켰다가 최근에 출입을 허용해서 그런지 숲속은 밀림을 방불케 하는 정글이다.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있지만 거의 초목으로 덮여 있어 보행하기가 좀 힘들고, 군락을 이루어 막 피기 시작한 산수국은 가짜 꽃잎으로 세상을 막 유혹한다.
<팔공산 파계봉(대구 동구)>
<팔공산 밀림>
<산수국>
문이 굳게 닫힌 수월정사에서 2㎞ 남짓한 군위삼존석굴사(軍威三尊石窟寺, 제2석굴암)로 간다.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삼존석굴사는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이 절에는 국보 제109호로 지정된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이 있다. 이 석굴은 불상조각의 정수인 경주석굴암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제2석굴암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처음에는 석굴내부를 제한 없이 공개하였는데, 지금은 난간을 낮추어 밖에서만 관람하도록 하였다.
<군위삼존석불-제2석굴암>
지상에서 약 20m 높이에 있는 동남향의 자연절벽 안쪽에 석굴을 파서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온화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세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가 1970년대 초 학자들에 의해 경주석굴암 보다 1세기 이상 일찍 창건된 것으로 세계적 문화재로서의 가치성을 인정받았다. 난간 입구가 주먹만 한 자물통으로 잠겨 있어 석굴로 올라가지 못하고 학처럼 목을 빼어 구경만 하다가 9세기경에 만들어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배웅을 받으며 극락교를 건너온다.
<팔공산 군위삼존석불>
<석조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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