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 구도장원길
(2018년 6월 16일)
瓦也 정유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 1504∼1561)와 어머니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 1504∼1551)의 사이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년)는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출생했지만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 파주의 율곡에서 성장하고 학문을 익혔다. 그래서 고향 이름 율곡(栗谷)을 따서 아호로 삼았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李元秀, 1504∼1561)가 중종 때 인천 수운판관(水運判官)을 지냈고, 어머니 신사임당은 화가이자 문인이었으며 대표적인 현모양처 형으로 우리나라 5만 원 권 지폐의 주인공이다.
<율곡 이이 초상-네이버캡쳐>
부모의 용꿈으로 점지되어 태어난 율곡은 ‘8세 어린나이에 시’[팔세부시(八歲賦詩)※]를 짓는 등 수재(秀才)의 재능이 있었으며, 과거에 응시 9번 장원급제를 차지하여 ‘구도장원공’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이런 율곡 이이가 과거를 보러가며 걸었던 길을 가리켜 <율곡 이이 구도장원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길은 이미 개설된 율곡수목원 도토리둘레길이다.
<율곡 이이 구도장원길 행사장>
파주시가 주최하고 경기관광공사가 주관한 “파주시 <율곡 이이 구도장원길 걷기>”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바람을 가르며 율곡습지공원으로 길을 나선다. 오늘의 걷기 코스는 율곡습지공원을 출발하여 철책선을 따라 임진강 상류로 조금 걷다가 이이 율곡 구도장원길(율곡수목원 도토리둘레길)을 돌아 다시 율곡습지공원으로 돌아오는 행사이다. 율곡(栗谷)습지공원답게 입구부터 짙은 밤꽃 향이 온몸을 휘감고 황금빛 보리는 카펫을 깔아 놓는다.
<율곡습지공원 보리밭>
율곡습지공원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의 버려져 있던 습지(濕地)를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생태공원(生態公園)으로 만든 곳으로 봄이면 유채꽃이 화사하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거린다. 율곡(栗谷)이라는 이름답게 밤나무 숲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쉼터를 제공한다. 밤은 제사상에서 대추 다음 자리에 올려놓는데, 이는 ‘조상이 후손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다. 밤이 싹이 터서 큰 나무가 되고 죽을 때까지 뿌리의 중앙에 그대로 붙어 나무를 보호하듯이, 사당의 신주(神主)를 밤나무로 만드는 이유는 이러한 조상의 애틋한 마음을 기리는 이유라 한다.
<율곡습지공원 밤나무>
준비된 식장에서 치어걸 공연 등 식전행사가 끝나고 육군 경계병의 호위를 받으며 임진강 철책선 안으로 들어간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법동군 두륜산에서 발원하여 244㎞를 흘러 한강으로 흘러드는 임진강(臨津江)은 약65%가 북한에서 흐르다가 겨우 휴전선을 넘어와서도 대부분이 철책에 갇히어 그저 바라만 볼 뿐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다.
<식전 행사>
<임진강 철책>
임진강은 처음에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더덜’ 또는 ‘다닫다’라는 뜻의 ‘임(臨)’자와 ‘나루’라는 뜻의 ‘진(津)’자를 써서 임진강(臨津江)으로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군사분계선으로 사람의 접근이 통제되어 섬진강(蟾津江)과 함께 바다와 소통이 되는 하천으로 토종 민물어종이 풍부하고, 민물참게와 황복(黃鰒) 등 귀한 어류자원의 보고로 비교적 자연생태계가 양호하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임진강>
율곡습지공원에서 출발하여 임진강 철조망길을 금방 벗어나 제37호 국도 밑으로 하여 율곡수목원 입구로 들어가 ‘도토리둘레길(6㎞) 순환코스로 접어든다. 임도를 따라 한 30분쯤 걸었을까? 구도장원길 답게 율곡의 명문장이며 과거시험의 장원답안인 천도책(天道策)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구도장원길 초입>
천도책은 최인호의 소설 <유림(儒林)>에도 나오는 대목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만 가지 변화의 근본은 하나의 음양일 따름이다. 이 기(氣)가 움직이면 양(陽)이 되고, 고요하면 음(陰)이 된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은 곧 기이고, 움직이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이(理)이다.”(竊謂萬化之本 一陰陽而已 是氣 動則爲陽 靜則爲陰 一動一靜者 氣也 動之靜之者 理也, 절위만화지본 일음양이기 시기 동칙위양 정칙위음 일동일정자 기야 동지정지자 이야) 이이 율곡의 천재성이 들어난 천도책의 첫 문장에 나오는 대목이다.
<천도책>
밧줄을 잡고 조금 올라가면 장원굴(壯元窟)이 나온다. 켜켜이 쌓은 바위 틈새로 난 굴인데 ‘이 굴을 통과하면 과거시험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있는 굴이다. 그리고 옆에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의 ‘문바위’가 있다. 예전부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문바위 앞에서 백일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라고 한다.
<장원굴>
<문바위>
짙은 녹음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임진강의 풍광은 오늘 따라 더 아름답다. 참나무가 우거진 도토리 길에도 능선 따라 수백그루의 소나무가 굽은 등으로 솔향기 듬뿍 내뿜는다. 솔향기길을 지나 전국에서 사진 찍기 좋은 10대 명소 중 하나인 율곡수목원 전망대에 올라 북에서 내려오는 임진강을 바라보며 물살에 밀려오는 소식은 없는지 두 귀를 쫑긋해 보고 실바람에 실려 오는 꽃 편지를 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본다.
<솔향기길>
<율곡수목원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임진강 상류>
유아숲체험원을 경유하여 만발한 알리움 꽃밭을 지나면 산부추가 고개를 내민다. 누런 소 형상이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리는 율곡습지공원에 도착하여 주최 측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오전을 마감한다. 그새 밤꽃은 뜨거운 햇빛에 열을 듬뿍 받았는지 꽃향기 더 짙어졌다. 오후에는 덤으로 화석정을 경유하여 장산전망대까지 이어 걷는다.
<알리움>
<산부추>
<율곡습지공원의 황소 상>
화석정(花石亭)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자주 들러 시를 짓고 명상을 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임진강이 굽어보이는 강변의 절벽위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25년(1443년)에 율곡이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처음 지었으며, 성종9년(1478년)에 이숙항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화석정 측면>
화석정 아래 철책 안에 있는 임진나루는 임진강유역의 대표나루로 관북과 관서지방으로의 분기점이 되는 곳이다. 조정에서는 총융청(摠戎廳)소속으로 임진진(臨津鎭)을 두어 관리하였으며, 옛날 한양에서 송도를 거쳐 의주로 가는 교통이 빈번한 곳이었다. 또한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위해 화석정에 불을 질러 임진나루의 뱃길을 밝혀 주었다고 한다.
<철책 안의 임진나루>
그 후 80여 년간 빈터만 남아 있다가 1673년(헌종14)에 증손들이 복원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복원하였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과 신사임당의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청을 하였으며 주위도 정화되었다. 건물 정면의 현판은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朴正熙)가 쓴 “花石亭”이 걸려 있다.
<화석정 정면>
화석정에서 장산전망대로 가는 아스팔트길에 복사되는 6월의 태양은 더 뜨겁게 달구어지고, 나무 그늘 아래를 따라 올라선 곳은 장산전망대이다. 너른 평지 위에 작은 너와정자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하여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 전망대는 탁 트인 임진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 멀리로는 도라산, 개성공단, 가정동마을, 송악산, 대성동마을, 마식령 산맥줄기까지 관찰할 수 있는 임진강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숨은 명소이다. 저 멀게만 느껴지는 우리 땅! 이제 장막을 걷어치우고 다가 갈 날만 기다려 본다.
<장사전망대>
<장사전망대에서 본 임진강 초평도>
※화석정 시[팔세부시(八歲賦詩)]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林亭秋已晩 임정추기만)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구나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멀리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을 향해 붉구나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강은 멀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울고 가는 소리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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