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올림픽공원에서 월드컵공원까지 밤샘도보(3 完)

와야 정유순 2018. 6. 14. 21:36

올림픽공원에서 월드컵공원까지 밤샘도보(3 )

(한강대교월드컵공원, 20186910)

瓦也 정유순

   노량진역 동쪽 언덕 위에는 지방유형문화재인 사육신묘(死六臣墓)가 있다. 사육신은 조선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6명을 가리킨다. 이들 외에도 성승(成勝) 김문기(金文起) 70여명이 모반 혐의로 처형되거나 유배되었고, 이들의 친자식들도 모두 목을 매어 죽이는 교형(絞刑)에 처해졌다.

<사육신 공원 의절사-2016년11월 촬영>

<사육신 묘-네이버캡쳐>


   조선시대 때는 한양도성과 삼남대로로 왕래하는 사람들의 발길로 붐볐을 노들나루터(노량진)도 어둠에 싸여 깊은 잠에 빠졌고, 조선 정조(正祖)가 화성행차 때 배다리[船橋]를 띄웠던 자리 부근에는 한강의 최초의 대교인 한강대교가 떡 버틴다. 한강대교는 용산구 이촌동에서 동작구 노량진을 잇는 교량으로 한강에 놓인 최초의 인도교(人道橋)191710월에 첫 준공되었다.

<한강대교와 노량진수원지아파트-2017년3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노들섬용산부분의 소교가 대부분 유실되었다가 19299월에는 이 구간이 재개통되었고, 19375월에 노들섬노량진부분이 다시 개통되었다. 당시 주관자는 조선총독부 한국인 직원이었던 최경열(崔景烈)이란 사람이고, 길이 1,036로 총 공사비 250만원에 연인원 28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한강대교 북단-2017년3월>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북한군이 밀려오자 당시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야반도주하였고, 육군참모총장이라는 사람은 명령을 내려 한강다리를 폭파해 버렸다. 그래서 북한군에 밀려 철수하려던 국군과 피난민들의 퇴로가 차단되어 엄청난 피해를 불러왔다. 이는 우리의 전사(戰史)에 큰 오점(汚點)을 남겼으며 국민의 지탄을 받았지만 당시 명령을 받고 폭파한 육군 공병감 최창식(崔昌植)에게만 책임을 물어 총살하였다.

<한강대교와 노들섬-2017년3월>


   제1한강교로도 불렸던 이 다리의 개통으로 영등포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심이 발달하고 교통량의 증가로 19794차선 교량을 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하여 198112월에 준공하여 쌍둥이다리가 되었고, 한강인도교라는 이름도 한강대교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한강대교의 중간에 있는 중지도(지금은 노들섬)를 중심으로 백사장이 잘 발달되어 여름에는 서울시민들의 수영장이었고, 겨울에 얼음이 꽁꽁 얼면 스케이트와 썰매를 즐기던 휴식처였다.

<노들섬-2017년3월>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는 당시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당 후보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 1894. 61956. 5)30만 군중 앞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외치며 포효(咆哮)를 하던 곳이었다. 해공선생은 불행하게도 정권교체를 눈앞에 두고 선거일 전에 호남선 열차 안에서 돌연사(突然死) 하고, 이때 나온 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손로원 작사 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은 공전의 인기곡이 되었다.

<해공 신익희선생 동상-네이버캡쳐>


   한강대교를 지나면 바로 한강철교가 나온다. 한강철교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놓여 진 다리이다. 용산역과 노량진역을 이어주는 한강철교(A)19007월에 최초 준공되었으며, 지금은 교량이 4(A·B·C·D)선으로 이루어 졌다. B선은 19129월에, C선은 19446월에, D선은 1995년에 건설하였으며, 지금의 용도는 A선은 경인선과 직통전철, B선은 화물열차, C선은 경부선 호남선 장항선 등의 철도, D선은 수원행 인천행 전철이 사용하고 있다.

<한강철교와 여의도빌딩 숲-2017년3월>


   한강철교를 지나 샛강을 건너면 여의도 63빌딩과 원효대교가 나온다. 원효대교는 용산구 원효로와 여의도를 연결하는 길이 1,470의 한강의 13번째 다리로 민간자본에 의해 1981년도에 건설된 국내최초의 디비닥공법 교량이다. 디비닥공법은 콘크리트 받침대 없이 두 교각에서 콘크리트를 쳐 나가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교량 상판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유료도로였으나 1984년 서울시에 기증하여 현재는 무료로 통행한다.

<원효대교-2017년3월>


   여의도(汝矣島)는 한강의 하중도(河中島)로 면적 2.9(87만평)이다. 영등포에서 샛강 건너에 있는 모래섬 이었으나 일제가 19169월에 이곳에 간이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접수하여 사용하였고, 백범 김구(白凡 金九) 등 독립투사 등이 이곳을 통해 개별 귀국하였다. 1967년에는 충남 청양의 구봉광산 매몰사고로 16일간 갇혀 있던 광부 양창선도 구조된 후 헬기를 이용하여 여의도공항으로 후송되었다.

<여의도 지도>


   1968년 여의도 윤중제(輪中堤)가 축조되면서 여의도비행장은 경기도 성남으로 이전하였고, 지금의 여의도로 변신하기 시작하여 영등포에서 여의도를 가로 질러 마포로 연결되는 마포대교(19705, 4번째), 원효대교(198110), 서강대교(1999, 19번째)가 차례로 개통되었다. 그리고 입법기관인 국회의사당, KBSMBC 등 언론기관, 증권회사 등 각종 금융기관, 초대형 교회, 63빌딩, 쌍둥이 빌딩 등 고층건물이 숲을 이루고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다.

<63빌딩 야경-네이버캡쳐>


   국회의사당은 제헌국회(1948) 때는 당시 중앙청 중앙홀을 사용하였고, 한국전쟁으로 피난시절에는 부산의 경남도청과 부산극장을 사용하였으며, 서울 수복 후 별도의 건물이 없이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는 시민회관 별관(현 서울시 의회)을 사용하다가 1975815일에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을 비롯한 의원보좌관과 사무처직원 등 2,200여명이 근무하는 국회의사당은 잘 정리된 주위의 조경과 화강석 건물이 조화를 이루어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국회의사당-2017년4월>


   또한 매년 4월 초 화사한 벚꽃이 만발할 때 국회의사당 주변으로<서울여의도벚꽃 축제>가 열려 인산인해를 이룬다. 2000년부터는 10월 하순쯤이 되면 63빌딩 앞 한강시민공원에서 ‘21세기 한국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고, 민족의 화합의지를 다지는 기쁨과 희망의 장으로 삼고자 기획된 <세계불꽃축제>가 어둠이 짙어질 무렵인 저녁 8시경에 열려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

<여의도벚꽃축제-네이버캡쳐>

<2005세계불꽃축제-네이버캡쳐>


   여의도를 빠져나와 지하철 2호선의 당산철교를 지나면 양화대교가 나온다. 양화대교는 두 차례에 걸쳐서 건설되었는데, 2한강교로 불리는 구교는 한강대교와 광진교 다음으로 건설된 한강 위의 세 번째 다리이다. 특히 이 다리는 해방 후 우리 기술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한강다리로 길이 1,053, 1819651월에 준공하였다. 그러나 김포공항 확장과 경인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량이 계속 늘어나 8차선으로 확장하여 19892월에 신교가 개통되면서 이름도 양화대교로 바뀌었다.

<양화대교-2017년4월>


   그리고 다리 중간에 있는 선유도(仙遊島)는 과거 정수장 건물을 자연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재생생태공원이다. 선유도에는 1978년부터 서울 서남부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을 건설하여 사용되다가 200012월 정수장이 폐쇄된 후, 정수장 건축시설물을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재활용하여 선유도공원을 만들어 20024월에 문을 열었다, 이는 그야말로 콘크리트 회색문화지대에 꽃이 핀 형국이 되었다.

<선유도 전경-2017년4월>

<선유도공원관리사무소-2017년4월>


   먼동이 틀 때 양화대교를 건너 한강북단으로 발을 옮긴다. 한강둔치에 마련된 망원동한강시민공원에는 농구장, 축구장, 테니스장 등 체육시설과 시민들이 여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시민들은 벌써 새벽 산책을 나와 바삐 움직인다. 구축함과 잠수함 등 군함을 비치하여 찾아오는 사람에게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서울함공원>을 따라 가면 성산대교 북단이다.

<서울함공원-2018년4월>

<서울함공원의 군함-2018년4월>


   19806월에 준공된 성산대교(城山大橋)는 마포구 망원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다리로 1,410의 길이에 폭 27이다. 그리고 이 다리는 서울 서부지역의 교통 분산에 효과적이었고, 서부간선도로와 연결되어 서해안고속도로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한강의 12번 째 다리로 성수대교와 같은 트러스트공법으로 세워졌으며, 바깥 측을 반달형으로 하여 특유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성산대교-2017년4월>

<한강과 홍제천 합류지점>


   성산대교 북단 홍제천 합류지점을 건너 거울분수를 돌아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이 나온다. 월드컵공원은 서울의 서쪽에 위치하여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간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로 만들어진 2개의 거대한 산과 넓은 면적의 매립지를 2002 월드컵 개최와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270의 면적의 대규모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을 안정화, 공원화하면서 환경·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월드컵평화공원 지도>


   이번 도보의 종점은 바로 월드컵공원의 대표공원인 평화의공원이다. 판문점으로 연결되는 강변북로 아래로 통과하여 평화의 정원을 지나면 명경(明鏡)처럼 맑고 고요한 난지연못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안아준다. 어젯밤 9시에 출발하여 도착한 지금 시간은 새벽 6시이다. 꼬박 밤을 세워가며 9시간 걸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중간에 쉬면서 야참도 했지만 육중한 체중을 지탱해준 발바닥이 조금씩 화끈거린다.

<난지연못의 아침>


   출발할 때 130여명이었는데, 월드컵공원에 도착하고 보니 100여명만 골인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완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한번 도전 해보겠다는 마음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떠한 일을 성취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함께 참여한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 전하고, 이 행사를 주최하면서 속을 검게 태우며 노심초사했을 운영진에게도 한없이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30밤샘도보를 마감한다.()

<30km 완주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