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올림픽공원에서 월드컵공원까지 밤샘도보(2)

와야 정유순 2018. 6. 14. 02:37

올림픽공원에서 월드컵공원까지 밤샘도보(2)

(성수대교한강대교, 20186910)

瓦也 정유순

   성수대교 남단 압구정동 강 건너에는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는 없어진 섬이 하나 있다. 중랑천이 한강으로 치고 들어올 때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삼각주(三角洲). 두 물이 부딪히는 곳에 섬이 있어 물살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섬 안에는 구릉과 연못과 모래밭이 펼쳐지는 저자도! 닥나무가 많아 저자도(楮子島)로 불리는 이 섬은 속칭 옥수동 섬이라고도 한다.

<1966년도 서울시지도(저자도)-다음캡쳐>


   조선시대에는 서울 앞을 흐르는 한강구간을 따로 경강(京江)이라 불렀는데 옥수동과 금호동 일대의 강을 경강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호(東湖)’라 했다. 저자도는 동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대표하는 자연자산이었다. 세조 때 권신 한명회(韓明澮, 14151487)가 저자도 남쪽 대안(對岸)에 압구정(鴨鷗亭)이란 정자를 지은 것도 그곳에서 보는 한강 풍광이 으뜸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압구정도-네이버캡쳐>


   고려 때에는 한종유(韓宗愈)란 사람이 여기에 별장을 두었고, 조선 때에는 세종이 이 섬을 정의공주(貞懿公主)에게 하사하여 그의 아들 안빈세(安貧世)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소유하였다고 한다. 이 섬은 겸제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진경산수화를 그릴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었으나, 1970년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은 현대건설이 저자도의 흙과 모래를 파내어 지금의 압구정동 택지를 조성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저자도는 한강에서 완전히 사라졌다.(이상은 정유순의 <서울 숲과 응봉산 그리고 저자도>에서 인용)

<겸재 정선의 압구정과 저자도-다음캡쳐>


   압구정과 강북의 옥수동을 연결하는 한강의 15번째 다리가 동호대교이다. 다리 가운데로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전철교인 동호대교(東湖大橋)는 길이는 1,095m. 너비는 35m이며 한남대교와 성수대교 사이에 있는 연속 트러스교이다. 19806월에 착공하여 198522일에 개통되었다. 지하철 양옆으로 각각 2차선으로 된 도로교가 지나는 복합교량이며 인도 폭은 5m이다.

<동호대교-2017년3월촬영>


   동호대교를 지나면 선상(船上)웨딩홀이 불야성을 이룬다. 둔치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도 눈에 띤다. 그리고 1979년에 발표된 인기가요 제3한강교(길옥윤 작사·작곡, 혜은이 노래)로 더 유명했던 한남대교는 예나 다름없이 강물이 흘러간다. 한남대교는 한강철교를 포함하여 한강에 건설된 4번째 교량으로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의 진입 관문이다.

<한강 선상 웨딩>


   1966119일 착공해 4년 만인 19691225일 준공하였으며, 길이는 970m이며, 너비는 27m로 이 가운데 보도가 3m를 차지했다. 6차선 교량으로 제3한강교로 부르다가 1985년 지금의 한남대교로 변경되었다. 인근의 교통량 증가로 인해 199612월부터 기존 교량의 하류에 너비 25.5m, 길이 919m의 확장공사를 시작해 20013월 개통하고 20048월에는 너비 51.2m 왕복 12차로로 확장 개통하였다.

<한남대교-네이버캡쳐>


   동호대교를 지나면서 반포대교까지는 둔치에 마련된 한강공원에 테니스장, 농구장, 축구장, 수영장 등 각종 운동장 시설이 갖춰져 있고, 청소년광장과 생태학습장 등이 마련되어 있으나 어둠이 깔려 분간하기 힘들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동안에도 한강에 나온 일부 시민들은 늦은 시간과 상관없이 밤을 새워 야영을 하려는 심산인지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않는 것 같다. 달빛 무지개 분수로 유명한 반포대교(잠수교) 달빛광장에 도착할 때는 자정이 되어 야참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야참>


   반포대교(盤浦大橋)는 용산구 서빙고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다리로, 한국 최초의 2층 교량이며 한강의 9번째 다리이다. 1층은 홍수가 났을 때 물에 잠기도록 설계된 잠수교이다. 1층은 길이 795m, 너비 18m(4차로), 2층은 길이 1,490m, 너비 25m(6차로)이다. 한강 호수화(湖水化) 계획의 일환으로, 잠수교에는 바지선(barge)이 통과할 수 있는 승개장치(昇開裝置)가 있고, 21·22번 교각에는 승개시설을 끌어올리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반포대교-네이버캡쳐>

<반포대교(잠수교)-2017년3월 촬영>


   반포는 이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 하여 서릿개[반포(蟠浦)]’라고 하다가 음이 변하여 오늘날의 반포(盤浦)가 되었다는 설과 이 일대가 상습 침수 지역이므로 반포(盤浦)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197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지금 구 반포라고 불리는 반포본동지역에 주택공사에서 최초로 지은 A.I.D(국제개발처)차관아파트만 있던 지역이었는데,

<반포본동(구반포) 지도>


   19751114일 고속버스업계 9개사가 공동 출자하여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를 설립하고 19769월 강남종합버스정류장을 준공하여 동대문에 있던 고속버스터미널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으며, 터미널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으로써 신반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하철 3호선과 7호선, 9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서울고속터미널(호남선)-2016년11월 촬영>

<서울고속터미널(경부선)-네이버캡쳐>


   반포대교 남쪽 하류에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강 수상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 인공섬인 세빛둥둥섬은 모든 눈을 감고 어둠속에서 잠을 잔다. 한글 명칭인 세빛은 서로 그 빛을 겹칠 때 가장 많은 색깔을 만들어내는 빛의 삼원색인 빨강·파랑·초록처럼 채빛섬, 가빛섬, 솔빛섬’ 3개의 섬이 조화를 이루어 한강과 서울을 빛내라는 바람을 담고 있고, ‘둥둥은 수상에 띄워진 문화공간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세빛둥둥섬>


   짧은 휴식을 끝내고 봄이면 유채꽃이 아름답다는 서래섬을 경유 한다. 서래섬은 반포한강공원에 있는 섬으로, 원래 반포섬이라고 불리는 모래섬이었으나, 1980년대에 올림픽대로 건설 및 한강 종합개발을 하면서 조성한 인공 섬이다. 물길을 따라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고, 1년 내내 각종 꽃과 식물들이 가꾸어 지면서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서래섬 지도>

<서래섬의 봄-네이버캡쳐>


   서래섬 샛강을 건너면 국립서울현충원이 있는 동작동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19557월 국군묘지로 창설되어 전사 또는 순직군인과 군무원 및 종군자의 영현을 안장하였으나, 10년 후인 19653월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국가원수, 애국지사, 순국선열을 비롯하여 국가유공자, 경찰관, 전투에 참가한 향토예비군 등이 추가 안장되었다. 19966월 국립묘지관리소가 국립현충원으로 변경되었고, 2006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현충문-네이버캡쳐>

<국립서울현충원 지도>


   동작대교(銅雀大橋) 용산구 서빙고동 및 이촌동과 동작구 동작동을 잇는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연장 1,330m, 40m이며 197810월에 착공하여 198411월에 준공하였다. 도로교와 지하철 4호선 전철교의 복합 교량으로, 그 폭이 한강다리 가운데서 가장 넓으며, 난간이 알루미늄으로 꾸며졌고, 조명효과를 위하여 메탈할라이드 램프등으로 가로등을 달았다. ‘동작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때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동재기나루터에서 유래하였다.

<동작대교-2017년3월 촬영>

<겸재 정선의 동작진>


   올림픽대로 노량대교 밑으로 조성된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를 따라 흑석동지역을 지난다. 흑석동은 남쪽 일대에서 나오는 돌이 검은색을 띠므로 검은돌[黑石]마을이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현충원 뒷산인 서달산 정상에는 1920년 일본인 목하영(木下榮)이란 사람이 명수대(明水臺)란 별장과 놀이터를 만들고 맑은 한강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이라고 하여 이 곳 이름이 명수대라고도 불리기도 했으며, 별장은 8·15 광복 후에 철거되었다. 흑석동에는 사학(私學)의 명문 중앙대학교 본부가 자리한다.

<흑석동 중앙대학교 지도>


   흑석동을 지나면 능수버들이 늘어지고 백로가 노닐었던 노량진이 나온다. 노량진(鷺梁津)은 예로부터 한강(漢江)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으며, 1936년 경기도 시흥군 북면(北面)에서 서울로 편입되었다. 1899년에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京仁線)이 이곳에서 제물포(濟物浦, 지금의 인천)까지 개통되자, 철도 시발지로서 각광을 받았으나, 1900년에 한강철교, 1917년에 한강 인도교가 개통되면서 그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부근 일대의 중심지로 발달하여 서울의 부도심이 되었다.

<노량진역-네이버캡쳐>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충신로와 장승로의 교차지점 일대에 상가가 발달하였으며, 1974년에 전철이 개통되면서 노량진역에서 전철·버스를 갈아타는 교통인구가 증가하면서 동작구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또한 강북지역 및 강남의 영동·반포지구와 영등포·시흥·안양 등을 잇는 도로교통의 요충지로서 자리를 잡았다. 노량진역 북쪽에 수산물·청과물 도매시장이 있고, 한강교 다리목에 있던 상수도 수원지는 체육공원으로 바뀌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노량진수원지공원-2016년11월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