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해남 달마고도와 미황사

와야 정유순 2018. 5. 22. 15:20

해남 달마고도와 미황사

(2018519520)

瓦也 정유순

   전북 진안의 주화산(珠華山, 565)에서 백두대간을 빠져나온 호남정맥은 남으로 뻗어 나오다 월출산에서 동쪽 광양 백운산으로 꺾이는 지점인 호남정맥 팔꿈치부분이 해남 땅 끝을 향해 흘러와 정기가 뭉쳐 우뚝 솟은 산이 두륜산(頭輪山, 703)이고, 두륜산에서 땅 끝으로 마지막 뻗은 달마산(達磨山, 489m)은 바위가 공룡의 등처럼 울퉁불퉁 솟아 있어 금강산의 만물상을 일부 빌려온 것 같으며, 날렵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에워 싸 달마를 호위한다.

<달마산 지도>


   땅 끝 천년 숲 옛길은 국토순례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에 맞춰서 해남군에서는 달마산과 미황사 주변으로 달마고도(達磨古道)를 만들었다. 201711월 개통한 달마고도는 한반도 최남단 봉우리 달마산의 7부 능선을 잇는 트레킹 코스로 중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연인원 1만여 명이 호미와 곡괭이로 9개월 작업하여 정성으로 빚은 길이어서 붙은 별명이며 소요예산 135000만원 중 90%가 인건비로 쓰였다고 한다.

<달마고도 표지목>

<달마고도 올라가는 길>


   이러한 땅 끝 해남 달마산 달마고도를 찾아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건만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녹녹치 않다. 그래도 지금은 도로망이 발달되어 전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하루가 꼬박 걸려야 했다. 가다가 중간에서 점심을 하고 예정시간을 조금 넘겨 미황사 주차장에 당도한다. 미황사 일주문 앞에서 우로 꺾어 달마고도 4코스로 접어들어 용담굴에서 도솔암으로 올라간다.

<달마산 미황사 일주문>


   열매를 돌로 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일시적으로 호흡을 중지시켜 떼로 물위에 뜬다.’고 하여 이름이 된 때죽나무는 흰 꽃을 통째로 떨어뜨려 꽃길을 만들어 놓았건만 도솔암(兜率庵) 올라가는 길은 울퉁불퉁한 수직 돌사다리를 타는 기분으로 기어오른다. 힘들게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는 짜릿한 기분은 그 무엇에 비유하리오. 어렵게 정점에 올라서면 그와 비례하여 발 아래로 보이는 천하가 다 내 것인 것을

<때죽나무 꽃>

<도솔암 올라가는 길>


   도솔암은 미황사의 열 두 암자중의 하나로 신라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 달마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솔암은 천년을 이어 내려오며 여러 스님들의 기도도량으로 쓰였고,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도 이곳에서 수행정진 했다고 전해진다. 높은 절벽위에 자리하고 있으나 바위가 빙 둘러싸서 바람 한 점 들어오기 어려운 조건은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바위에 둘러싸인 도솔암>

<달마산 도솔암>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왜군이 퇴각하며 불을 지르는 바람에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다가 현주지인 법조스님이 2002년에 3일 동안 연속해서 똑같은 꿈을 꾸고 사람들을 모아 1800장의 흙 기와를 손수 들어올려 500년 동안 버려졌던 도솔암을 꿈꾼 지 32일 만에 복원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앞마당 V자 축대(築臺)는 누구의 손으로 어떻게 쌓았을까? 이것도 신심의 극치일 것이다.

<도솔암 V자 축대>


   어렵게 올라간 도솔암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지만 밀물처럼 찾아오는 뒷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좁은 바윗길로 빠져나온다. 혼자 겨우 걸을 수 있는 오솔길로 800쯤 떨어진 도솔봉 중계탑 아래에는 자동차로 도솔암을 찾아오는 사람을 위해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도솔봉 아래로 펼쳐지는 마을과 들녘, 그리고 청정한 바다가 시원하다. 계절의 여왕답게 5월의 숲은 녹음이 짙어지고 봄꽃 떨어진 자리에 열매를 맺어 세월을 살찌운다.

<도솔봉 중계탑>

<달마산 도솔봉>

<도솔봉 아래 들녘과 바다>


   달마고도 4코스는 해남반도 서쪽을 바라보며 물고리재로 내려오는 길이다. 해가 서산으로 길게 드리울 때 갈두산 땅 끝전망대로 가지 않고 내려온 곳은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해안이다. 송호리(松湖里)란 지명은 바닷가에 소나무가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송호리해변의 해송림(海松林)은 전라남도기념물(142, 199239)로 지정되었다. 마침 서쪽으로 기우는 낙조(落照)는 풍요로운 내일을 저축한다.

<갈두산 땅끝전망대>

<송호리해변>

<송호리해변의 낙조>


   땅 끝 마을에서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나니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인근 식당에서 조반을 하고 달마고도 제3코스부터 제1코스로 가는 역방향으로 걷기 위해 마봉리약수터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때마침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달마산 찔레꽃 향기는 남쪽바다를 진동한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1942년 일제강점기 때 백난아가 불러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국민애창곡이 되었던 찔레꽃 노래가 꽃말처럼 고독에 지쳐 가슴에 피멍이 들었던지 그 때는 찔레꽃 피는 온 땅이 붉게 물들었으리라.

<찔레꽃>


   달마산 7부 능선을 따라 외부 자재나 장비 없이 순수한 인력만으로 시공해 조성된 달마고도는 스님들이 수련이나 건강을 위해 자주 찾던 산길을 일반 주민들도 쉽게 이용 할 수 있게 만들었다. 3코스 끝과 시작점인 몰고리재는 도솔봉에서 내려와 땅 끝 천년숲길과 교차하는 지점으로 어제 한번 지나쳤다고 벌써 눈에 익는다.

<달마산 도솔봉>


   물고리재를 지나면 편백나무 숲, 노간주나무 고목, 하숙골 옛길 등이 노지랑골 사거리까지 6.63로 이루어 졌다. 2코스는 노지랑골사거리부터 작은금샘, 큰금샘을 지나 떡갈나무 고목, 천재단 암자 터로 하여 큰바람재까지 4.37연결된다. 1코스는 큰바람재에서 편백나무 숲, 암자 터, 너덜, 산습지를 거쳐 미황사까지 구간으로 2.71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걷는 사람들이 어디쯤 지나는지 알게끔 작은 푯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달마고도>


<달마봉>


   바다건너 완도가 큰 산처럼 우뚝하고 멀리 노화도와 보길도 가는 뱃길이 바다를 긋는다. 처음에는 멀리서 가물거리던 완도대교가 걸을수록 더 가까이 다가온다. 달마고도는 미황사를 시작점과 끝점으로 달마산을 일주하게 되어 있다. 땅 끝의 아름다운 자연의 생태가 그대로 살아 있고, 미황사를 비롯한 달마산의 곳곳에 숨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어우러진다.

<완도와 완도대교>


   신라 경덕왕 8(749)에 창건된 미황사는 달마산의 품에 안겼는데, 인도에서 금인(金人)이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다 이미 다른 절이 있어 소의 등에 싣고 되돌아 가다가 이곳이 인연의 땅이 되어 사찰을 지어 봉안 하였다. 그때 소울음소리가 아름다워 아름다울 ()’자와 금인을 상징한 ()’자를 써서 이름이 된 미황사(美黃寺)는 달마산의 정기를 받아 기상이 뻗는다. 주춧돌에는 연화문(蓮花紋)과 함께 게와 거북문양 등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음을 암시한다.

<미황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주춧돌의 거북>

<대웅보전 주춧돌의 게>


   자하루(紫霞樓) 중앙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건물의 외부는 단청이 다 지워져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947)이 나온다.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閔黯, 16341692)이 숙종18(1692)에 세운 사적비에 따르면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가 사자포(땅끝마을)에 도착하였는데, 의조화상과 100여 명의 향도가 그 배를 맞이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황사와 달마산>


   부처님 오신 날이 모래인데 미황사 대웅전 마당에는 연등 하나 걸려 있지 않고 등을 걸 줄만 격()자로 쳐져 있다. 바위산 능선이 그려 내는 거친 선을 병풍처럼 뒤에 두르고 동백나무 숲으로 소복이 감싸인 미왕사의 참한 품새를 마주 보면 포근하게 감싸주는 모습이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다.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데 달마산을 바라보는 달마대사는 또 오라 손짓한다.

<달마대사상>